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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창(金鍾昶, 企業銀行 대치역 PB센터 開店) [記事] : 김종창(보문면 출생) 기업은행장은 서울 강남 대치역 인근에 프라이빗뱅킹 전문점인 대치역 PB센터를 2003년 12월 3일 개점했다고 밝혔다. 김 은행장은 대치역 PB센터 개점식에 직접 참석해 PB센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치역 PB센터는 분당, 목동 지역에 이어 세 번째 PB센터로 최고의 시설과 인력을 갖추고 VIP 고객의 자산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PB특화 점포이다. PB센터는 금융 상품, 부동산 재무 상담과 금융소득종합과세 상담 신고 등의 세무, 법률 등 종합적인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신설된 특화 점포로써 PB지점장 외에 PB(프라이빗뱅커) 2명과 PBA 등 다수의 자산 관리 전문가가 근무하게 된다.(醴泉新聞 2003-12-05 14:50:03)
김종창(ꡒ國策銀行도 改革ꡓ金鍾昶 企業銀行長…납작 엎드린 組織 바꾸기, ꡒ2005年엔 世界 100大 銀行ꡓ) [記事] : 그 동안 국책은행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부정적인 면이 많았다.ꡐ폐쇄적이고 경직돼 있으며 변화를 싫어한다ꡑ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국책은행장 또한 대충 임기 3년을 때우고 나가면 그만인 자리로 여기는 경향이 많았다. 지난 2001년 5월에 취임한 김종창(56) 기업은행장은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대담한 변화를 추진해 왔다. 돌이켜보면 그의 개혁은 취임 직후 넓은 행장실을 좁은 곳으로 옮기는 일부터 시작됐다. 예전 행장실은 이제 직원용 휴게실로 바뀌었다. 처음 이러한 김행장의 모습을 지켜본 직원들은,ꡒ쇼 아닌가?ꡓ라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 이어진 개혁 움직임은 구체적이고도 끈질긴 것이었다. 2003년 말에는 기업은행 주식을 코스닥에서 거래소로 옮기는ꡐ이전(移轉)상장ꡑ을 이뤄냈다. 기업은행의 규모나 수익에 맞는ꡐ옷ꡑ으로 갈아입어 기관투자가나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고 유동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내부적으로는 납작 엎드린 조직을 바꾸기 위한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실적 위주의 직원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고, 기존 조직을 사업부로 바꾸는 등 구체적인 변화를 시도하자 직원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4년 5월 임기 만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도 김 행장의 개혁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모든 직원들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진명출판)라는 책을 읽도록 했다. 그의 개혁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5년, 10년을 내다본 작업이기 때문이다.(김명룡 記者 이코노미스트 722號 2004.1.27)
김종창(金鍾昶 : 金融通貨委員 任命돼) [記事] : 김종창(56․보문면 출생) 기업은행장이 2004년 2월 2일 금융통화위원으로 임명됐다. 김 위원은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영국 주재 재무관에 이어 재정경제원 국민생활국장,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을 지냈다.(醴泉新聞 2004-02-06 10:48:37)
김종창(김종창 委員 慶北大서 特講) [記事] : 김종창(보문면 출생)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2005년 6월 14일 경북대학교 경상대학 최고경영자과정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우리 경제의 구조 변화와 앞으로의 과제'라는 주제로 경제특강을 하였다. 대구경북지역 학계 및 금융․산업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날 특강에서 김 위원은 우리 경제의 구조 변화, 국내외 경제 동향, 우리 경제의 위상 및 세계 경제 판도 변화 등에 대해 설명하고 향후 우리 경제의 성공을 위한 과제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특강 참석자들은 세계 경제의 주요 트렌드, 우리 나라의 경쟁력 및 위상 등의 내용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으며, 특히 우리 경제의 성공을 위해서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성장 잠재력의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을 표시했다.(醴泉新聞 2005-06-24 11:03:57)
김종창(이영탁 理事長의 苦悶) [記事] : 강원도 태백 함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물이 소백산자락과 맞닿는 인의(仁義)의 고향 영주. 이영탁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이 태어난 곳이다. 영주는 인근의 예천․안동과 더불어 유교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지역이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이곳 출신들은 원칙과 신의, 예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소신을 좀체 꺾지않는다. 반면 잘 타협하지 못하고 시대의 흐름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다는 평도 동시에 받는다. 이 이사장뿐만 아니라 이 곳 출신인 이정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영주), 김종창 전 금통위원(예천)도 비슷한 성향이다. 한마디로 선비같은 양반들이다. 경상도 양반 이 이사장이 통합거래소 수장에 취임한 지 1년 6개월. 임기를 절반쯤 통과한 시점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소 체면도 구겼다. 이 이사장은 취임 후 출신 기관이 다른 직원들의 인사․보수 및 IT통합, 조직과 제도정비, 국제교류 활성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남겼다. 문제는 사소한 데서 출발했다. 공석이 된 거래소 감사에 청와대와 가까운 ꡐ386 회계사ꡑ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그 것. 노조는 강력 반발했고 2006년 7월 21일 파업을 가결했다.(파이내셜뉴스 2006년 7월 23일 (일) 17:35)
김종창 : 예천의 자랑(1260) : 미울 출신 김종창, <그레이트 뱅크> 출판(附 예천의 의로운 가축들)(장병창 (), 2007-01-14 오후 5:10:26, 조회 805)/ 김종창('國策銀行 赤子는 私企業 赤子보다 더 큰 罪惡' : 金鍾昶 前 企業銀行長 이야기 '그레이트 뱅크' 펴내) [記事] : 김종창(보문면 출생) 전 기업은행장은 최근 발간한 저서에서 ꡒ국책은행의 적자는 사기업의 적자보다 더 큰 죄악ꡓ이라고 밝혔다. 김 전 행장은 최근 자신이 행장으로 있을 때의 이야기를 다룬 저서 「Great Bank - 전 기업은행장 김종창의 기분 좋은 변화 경영 이야기」를 펴냈다. 그는 2001년부터 3년간 국책은행 기업은행을 진두지휘하여 연간 당기순이익 1조 원을 바라보는 우량 은행으로 탈바꿈시킨 ꡐ돈 버는 국책은행ꡑ으로 변화 경영의 폭풍을 일으킨 용기있는 CEO이다. 김 전 행장이 거둔 기적과 같은 성과의 핵심은 ꡒ변화ꡓ였다. 재임 3년간 32번의 경영전략회의에서 한번도 빠뜨리지 않고 `변화'를 외쳐 `변화와 혁신의 전도사'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 그는 이번 저서에서 ꡒ국책은행도 내부 혁신에 상업적 마인드를 적용하면 얼마든지 흑자 경영을 이루어낼 수 있다ꡓ고 조언했다. 저자 김종창 전 기업은행장은 보문면 미호리 미울 태생으로 대창중고교,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고 미국 워싱톤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재학중 행정고시(재경직)에 합격,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재정경제원 국민생활국장 등을 거쳤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거쳐 지금은 법무법인 광장에서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동시에 이화여대 겸임교수, 한국금융연수원 자문교수 등으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으며 김종직 전 예천군기획감사실장이 친형이다. 공직자로 삶의 모범을 실천으로 보여준 우리 시대의 선비정신의 덕목을 지닌 지도자이기도 하다.(醴泉新聞 2007년 01월 11일 16:22:11) 이후 생략...(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김종창('國策銀行 赤子는 私企業 赤子보다 더 큰 罪惡' : 김종창 前 企業銀行長 이야기 '그레이트 뱅크' 펴내) [記事] : 김종창(보문면 출생) 전 기업은행장은 최근 발간한 저서에서 ꡒ국책은행의 적자는 사기업의 적자보다 더 큰 죄악ꡓ이라고 밝혔다. 김 전 행장은 최근 자신이 행장으로 있을 때의 이야기를 다룬 저서 「Great Bank - 전 기업은행장 김종창의 기분 좋은 변화 경영 이야기」를 펴냈다. 그는 2001년부터 3년간 국책은행 기업은행을 진두지휘하여 연간 당기순이익 1조 원을 바라보는 우량 은행으로 탈바꿈시킨 ꡐ돈 버는 국책은행ꡑ으로 변화 경영의 폭풍을 일으킨 용기있는 CEO이다. 김 전 행장이 거둔 기적과 같은 성과의 핵심은 ꡒ변화ꡓ였다. 재임 3년간 32번의 경영전략회의에서 한번도 빠뜨리지 않고 `변화'를 외쳐 `변화와 혁신의 전도사'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 그는 이번 저서에서 ꡒ국책은행도 내부 혁신에 상업적 마인드를 적용하면 얼마든지 흑자 경영을 이루어낼 수 있다ꡓ고 조언했다. 저자 김종창 전 기업은행장은 보문면 미호리 태생으로 대창중고교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고 미국 워싱톤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재학중 행정고시(재경직)에 합격,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재정경제원 국민생활국장 등을 거쳤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거쳐 지금은 법무법인 광장에서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동시에 이화여대 겸임교수, 한국금융연수원 자문교수 등으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으며 김종직 전 예천군기획감사실장이 친형이다. 공직자로 삶의 모범을 실천으로 보여준 우리 시대의 선비정신의 덕목을 지닌 지도자이기도 하다.(醴泉新聞 2007년 01월 11일 16:22:11)
김종창(우리金融 6派戰 : 김종창 "官僚&民間 强點") [記事] : 우리금융 회장직에 출사표를 던진 김종창 전 금통위원은 기업은행장, 금통위원 등을 거친 화려한 경력이 강점이다. 무엇보다 관료 출신이면서도 금융기관장을 역임한 경험을 함께 갖췄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정통 관료로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장을 거쳐 금통위원까지 역임, 현역 CEO로의 복귀 가능성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우리금융 회장 선임 본선까지 진출, 무시못할 후보가 됐다. 김 전 위원은 1948년 경북 예천 출생으로 서울 상대를 나와 행시 8회로 관직에 입문했다.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가 행시 동기다.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재경부 국민생활국장,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거쳐 2001년 5월 기업은행장에 취임했다. 기업은행장 취임 전 노조의 '낙하산 인사' 시비에 휘말리며 힘들게 임기를 시작했지만 3년 후 퇴임이 확정되고 후임 행장 공모 절차가 진행될 때 노조가 이례적으로 후임행장은 재경부 출신이 바람직하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할 정도로 성과를 인정받았다. 은행 조직을 사업부제로 개혁, 임원과 경영계약을 체결해 국책은행을 시장경쟁체제로 전환하고 `파인뱅크(fine bank)'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도입하는 한편 기업은행을 거래소시장에 상장시키기도 했다. 김 전 위원 역시 박병원 전 차관과 마찬가지로 관료 출신이라는 부담을 넘어서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현직 차관직을 박차고 나온 후배와 경쟁한다는 모양새도 부담이다.(진상현 記者 머니투데이 2007년 2월 13일 (화) 08:12)
김종창("確固한 꿈을 갖고 끊임없이 努力하라" : 金鍾昶 前 中企銀行長 母校 醴泉 大昌高 特講) [記事] : 김종창 전 중소기업은행장이 모교인 예천 대창고등학교를 찾아 후배들에게 강연을 하고 있다. 85년 전통의 사학 명문인 예천 대창고등학교(교장 현우택)가 동문인 전 중소기업은행장 김종창 씨를 초빙, 재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실시해 학생들에게 모교에 대한 자부심은 물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줬다. 예천군 보문면 출신인 김종창 씨는 이 학교 12회 졸업생으로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금융감독위원회 상임위원과 금융감독원 부원장, 중소기업은행 은행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 금융, 경제계의 브레인으로 정평이 나있는 인물이다. 김씨의 모교 방문은 현우택 교장의 초청으로 어렵게 이뤄졌는데 340여 명의 고등학교 1,2학년 재학생들을 상대로 학교 시청각교실 대강당에서 개최된 이날 초청 특강에서 김씨는 학생들에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 학교 교훈인 정심(正心)임을 강조하며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갖자고 당부했다. 특히 김씨는 "청소년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꿈을 확고히 가지는 것"이라며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끈기가 인생을 성공하게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며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강의를 마친 김씨는 모교를 돌아보며 모교 교정에 세워진 윤정구 시인의 '세계를 향해 뛰어라'의 글귀처럼 "후배들 모두가 오늘보다 내일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인재가 되길 바란다"며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연간 300만 원씩 10년간 기부하겠다고 밝혀 모교와 후배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기도 했다.(장병철 記者 慶北日報 2007/04/25)
김종창(金鍾昶 金融通貨委員 母校 大昌高서 特講) [記事] : 김종창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2007년 4월 19일 오후 2시간 동안 대창고등학교(교장 현우택) 학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김종창 위원은 보문면 미호리 태생으로 대창중(14회), 대창고(12회)를 졸업하였으며, 후배들에게 용기와 끈기를 심어주기 위해 초청되었다. 이날 김 위원은 특강을 통해 ꡐ긍적적인 사고, 적극적인 행동, 도전적인 자세를 가져라ꡑ고 당부했다. 대창중고 총동문회(회장 김기현)는 이날 김 위원에게ꡐ자랑스러운 송대인ꡑ 기념패를 전달했다. 한편 김종창 위원은 은사님인 김교용 재단이사장을 찾아 큰절로 스승에 대한 감사를 전했으며, 특강이 끝난 뒤 학교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금을 전달해 훈훈함을 더했다. ■김종창 위원 : 보문면 미호리 출생. 경제과학심의회의 사무관, 재정경제원 국제금융증권 심의관, 금융감독원 부원장, 금융감독원 부원장, 중소기업은행 은행장,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법무법인 광장 고문(현)(박동학 醴泉新聞 2007년 04월 27일 09:29:11)
김종창 : 보문면 출신, 대창중고, 서울대 상대, 워싱턴대 대학원 졸업,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총무과장, 재정경제원 국민생활보장, 금융감독원 상임위원 부위원장, 기업은행 은행장, 금융통화위원을 지냈고,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사무실 경제고문이다.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醴泉文學 35號 2007)
김종창(김종창 金融監督院長 內定) [記事] : 금융위원회에서 신임 금융감독원장으로 추천받은 김종창 씨는 48년 경북 예천 생으로 서울대를 나와 지난 70년 경제과학심의회의 사무관(행시 8회)을 시작으로 재무부 국고국 회계과 사무관, 재무부 증권보험국 손해보험과 과장, 재무부 이재국 금융정책과장 등 재무부의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김종창 금감원장 내정자는 아울러 재정경제원에서 국민생활국장을 거쳤으며, 지난 2000년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거쳐 2001년부터 2004년까지는 기업은행장을 지냈다. 또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거쳐 지난 2006년부터는 법무법인 광장의 고문으로 일해왔다.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첫 인상은 조용한 선비형이지만 업무 스타일은 저돌적인 면도 있다. 특히 인사에 대해 공명정대하고 철두철미하다는 평가다. 기업은행장 시절 가까운 지인에 대해서도 일체의 인사 청탁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기업은행장 시절 수행비서 제도를 없앴고, `그레이트 피플, 그레이트 뱅크(great people, great bank)`란 모토를 걸고 국내외 대학으로 우수인력들을 적극 파견하는 등 인력 개발에도 관심이 높다. ▲48년 경북 예천생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과학심의회의 ▲재무부 기획예산담당관․손해보험과장․투자진흥과장․금융정책과장 ▲주 영국대사관 재경관 ▲재정경제원 국제금융증권 심의관․국민생활국장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금융감독위원회 상임위원 ▲금융감독원 부원장 ▲중소기업은행장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이화여대 겸임교수 ▲법무법인 광장 고문(김수미 記者 이데일리 2008.03.21 19:20)
김종창(김종창 金監院長 누구인가) [記事] : 2008년 3월 27일 금융감독원장에 공식 임명된 김종창 전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민'과 '관'을 두루거친 정통 금융전문가이다. 김종창 신임 금감원장은 1948년 경북 예천 출신으로 대창고등학교,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1970년 경제과학심의회의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김 원장은 특히 '관' 시절에도 재무부 국제금융국, 금융정책과장, 금융감독위원회 증선위원, 상임위원 등 금융시장 관련 직책을 두루 거친 '관록'이 돋보인다. 2000년에는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역임했고, 이후 중소기업은행장과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거치면서 현장 경험도 쌓았다. '민'과 '관'을 아우르는 김종창 원장의 이러한 다채로운 경력이 새 정부 첫 금융감독당국 수장을 맡게 된 직접적 배경으로 꼽힌다. 김 원장은 전광우(예천 출신) 금융위원장과 쌍벽을 이룰만한 '워크홀릭'으로 유명하다. 법무법인 광장 고문으로 일하던 최근에도 자정에 가까워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한번 몰두하면 그 일은 반드시 매듭지어야 하는 성격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이다. 오랫동안 금융권 고위직에 몸담은 그의 업무 스타일은 '강직함'으로 대변된다. 각처에서 보내오는 명절 선물은 물론 금감원장으로 내정된 이후 집으로 배달된 각종 축하난도 모두 되돌려 보낼 정도로 공과 사 구분이 엄격한 편이다. 기업은행장 시절에는 한국능률협회가 수여하는 고객만족경영대상 최고경영자상을 받을 정도로 유능한 CEO로 인정받았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김종창 전 행장이 재임한 3년은 정부 입김에서 벗어나 기업은행이 민간은행으로 탈바꿈하는 토대를 닦은 시기"라며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도 조직을 장악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함께 임직원들에 민간은행으로의 환골탈태를 끊임없이 당부하는 개혁적 성향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기 의견에 대한 의사 표시가 명확하고 자기 소관 업무는 철두철미하게 챙기는 스타일"이라며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성격"이라고 전했다. 한편 김종창 원장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행시 8회 동기생이다. 또한 서울대 상대 67학번으로 전광우 금융위원장(69학번),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80학번)과 동문이다. 김 원장의 취임식은 28일 오전 9시에 금감원 2층 대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종창 금감원장 프로필> : -1948. 경북 예천 출생, -1967. 대창고등학교, -1971. 서울대학교 상학과, -1985. 미 워싱턴대 대학원, -1970. 경제과학심의회의 사무관, -1976. 재무부 국고국, 국제금융국, -1982.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주 영국대사관 재경관, -1998. 금융감독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1999. 금융감독위원회 상임위원, -2000. 금융감독원 부원장, -2001. 중소기업은행장, -2004.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2006. 법무법인 광장 고문(박수익 記者 아시아經濟 2008-03-27 22:25:47)
김종창(金監院長 김종창 氏 任命) [記事] :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3월 27일 금융감독원장에 김종창(60) 법무법인 광장 고문을 임명했다. 김종창 금감원장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경북 대창고,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 8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재정경제원 국민생활국장, 금융감독위원회 부원장, 중소기업은행장,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등을 거쳤다. 김 원장은 28일 취임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한다.(김상수 記者 東亞日報 2008.03.2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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