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터야, 노올~자!] 뭣 허고? 감 따고!
8월 26일 흙날.
느지막이 눈을 떴다. 9시 10분이다. 10시께 용철이한테 전화를 했다.
“형님, 아직 목포 집이네?”
“잉, 그려. 게으름조깨 피웠구만? 근디 자네 시방 어디?”
“효천역에서 사람들 기다리고 있그만요. 곧 출발헐라요.”
“이, 그렁가. 글믄 이따가 금성고서 보세, 이?”
‘오늘 녈, 솟터 식구들 만나믄 보나마나 뻔헌디... 반쪼기 차 ‘애밸라’ 각꼬 가믄 씨겄는디...’
한 소리 들을 것 같이서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는디, 자기 차 몰고 가잔다. ‘으흐흐흫..불감청 고소원이었네, 그랴! 울 마눌은 어찌 그리 속도 깊고 넓으셔?’
큰놈은 안 간다고 벌렁 누워있고, 둘째는 간닥헌 놈이 여전히 잠옷 차림이다.
“아야 두째야, 뭣허고 있냐, 언능 옷 안 입냐?”
10시가 조깨 지나서 집을 나섰다. 다른 때 같으믄 국도를 탄디 서해안고속도로를 탔다.
“어야 마누래, 나 소리해도 되까?”
“응, 그러소?”
“이, 글믄 시작해보까? 윽크음~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심청가, 흥보가, 춘향가 대목소리를 헌다. 울 마눌이 추임새를 는디, 이복산이다. 자기도 귀명창은 된단다. 근디 뒷자리 분유구가 별로다. 이 놈이 몸살을 헌다. 함평 학다리께를 지나는디 드디어 자리를 주먹으로 탕탕 친다. 나는 아랑곳 않고 계속 소락때기를 지른다.
“너, 왜 그래! 좋게 안 앉어? 이 놈의 자식이...”
드디어 울 반쪼기 폭발헌다.
“시끄럽잖아요오~!”
“알았어, 알았어. 인자 고만 허께.”
11시께, 금성고 체육관에 도착했다. 아무도 안 보인다. 여그저그 찌웃짜웃 히도 꿩 궈묵은 자리다. 용철이한테 전화를 헌다. 안 받는다. 경도한테 했다.
“어이, 경동가? 나 체육관 앞에 왔는디, 자네들 시방 어딩가?”
“이, 왔어? 우리 요 근방에서 감 따고 이동헐락 허네. 거기 꽉 있으소, 잉?”
금성고 건물 뒤 그늘에 서서 악을 쓰고 있는디, 저 짝 산 우게서 희건 카니발이 내려온다. ‘이, 쪼곳이그만?’ 차가 내 앞에 선다. 문을 연다. 승태 성이 '헤에~'허고 웃는다. 용철이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 그 젙에 경도가 타고 이장렬 회장, 경도, 이동철 선생이 뒤에 타고 있다. 경도가 영광 대마 할머니 동당주허고 홍어 회무침 갖고 왔단다. 벌써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이, 나도 온 아칙에 오징어 데친 놈 갖꼬 왔네.”
“아따, 놀토가 있어서 좋기는 좋그만, 이?”
“인자, 어디로 강가? 종입이 선배 감밭으로 가지매?”
“종입이 성이 목포 가셨다요.”
“아, 배 우게서 시낭송헌다고 나무나루 간닥 했제? 글믄 어디로 강가?”
“형님, 제 차만 따라오쑈.”
동신대 앞에서 왼 쪽으로 꺾는다. 한 1분 정도 가더니 또 외약 짝으로 꺾는다. 과수원 근처에 차를 댄다. 우리 애밸라도 넘의 집 다무락 젙에 세웠다. 경도가 동당주 병을 챙긴다.
“몇 병이나 내리까?”
“그리도 두 병은 내려야제?”
염불보다 젯밥이다.
머리 허연 노인 양반이 우리를 맞아 주신다. 이장렬 회장 금성고등학교 동무 아버님이시란다. 집 왼 짝으로는 감밭이고 오른 짝으로는 배밭이다. 대문 안에 들어서자 큰 감나무가 떡 버티고 서있다. 근디 폴뚝들이 잘려있다. 허벌나게 굵어서 백년은 더 묵어보인다.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기는 헌디, 쥐밤만씩 허다. 따네, 마네 헌다. 쥔네 영감님은 다 따가락 허신디, 따봐야 별로라고 이동철 선생이 고개를 젓는다. 그믄 욍기까 허다가 기왕에 자리 폈는디 술은 묵고 가자고 했다.
역시 대마 동당주다. 약내도 안 나고, 감칠맛이 일품이다. 오징어 데친 것도 싱싱해서 그런지 맛나다. 쥔네 영감님 안 자신다는 것을 억지로 권해드렸다. 조금 있응게 회장의 핵교 동무가 온다. 많이 본 얼굴이다. 금성고 분회장도 허고 서울서 허는 전국교사대회에도 뻔질나게 올라댕겼다고 헌다. ‘금매, 얼굴이 익드랑게?’
“어이, 재성이. 아버님도 계싱게 자네 소리 한 자리 해보소?”
“싫어허시믄 어쩔라고?”
“소리 싫어 허시는 양반도 있당가?”
“글믄 한 잔 더 묵고.”
용철이가 어디서 꺼먼 식우지름통을 갖꼬 온다. 문지가 허벌나게 묻어있다. 고 놈을 세우고 두 다리 새에 끼운다. 막가지 한나 끊어서 장단을 칠 태세다. 경도가 얼른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어야, 마느래. 조심히 잘 가소, 이?”
“술통, 술 쪼금만 마셔~!”
반쪼기허고 아들내미 광주로 보내고 우리는 장성 장렬이 처가로 갔다. 경도, 이동철 선생, 용철이는 처가 뒤안에 있는 감나무에 붙고, 승태성이랑, 장렬이랑 나랑은 간짓대 들고 장팔이 처가 선산으로 갔다. 감이며, 단풍나무를 겁나게 숭거노셨다. 인자 한 4~5년 되얐단다. 희한허다. 쭉쭉 뻗은 감나무에는 감이 별로 안 달렸다. 아예 한나도 안 달려있는 나무도 쌔부렀다. 근디, 거꾸로 땅을 향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키 작은 나무들에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이 것이 웬 횡재냐, 마다리푸대로 한나 따서 들쳐맸다.
용철이 차 짐칸에 감이 시 푸대가 서있다. 꽉 찬 놈 한나, 3/4짜리 한나, 절반짜리 한나다. 요곳 갖고는 모지랜단다. 경도가 어디론가 전화를 헌다. 화순으로 가잔다. 동면에 고등핵교 동무 부인의 친정이 있는디 거가 감밭이 있단다. 녈 다시 오겄노라고 말씸드리고 광주로 광주로 서둘러 달렸다.
세 시 반께 경도네 아파트 근처에서 전화헌 사람을 만났다. 이름이 이강림씨란다. 내가 가운데 안고 그 분이 조수자리에 앉는다. 술 냄새가 난다고 짐짓 핀잔을 준다. ‘아이코!...’ 경도가 소리를 허라고 헌다. 먼 소링가를 했는디 이 양반 반응이 영 시원찮다. 이런 저런 잡담 중에 경도 호를 한나 지었다.
“어야 경도, 인자 자네는 태평거사시, 태평거사, 이? 어짱가?”
“아따 그래, 무랑태수보다는 더 낫네? 한 단계 거시기했능가?”
“잉, 그려.”
집 앞에 작은 개울이 흐른다. 물이 참 맑고 깨깟허다. 주위로 산들이 빙 둘러 쳐있다. 아늑헌 느낌이다. 근디 집이 다무락도 없고 문도 없다. 달랑 본체허고 헛간만 있다. 집이 허름허다. 어머니가 81년에 돌아가신 뒤로 집을 내비둬부렀단다, 25년째. 근디 어떤 아저씨가 걍 와서 산단다. 헛간에 장작도 싸여있고, 텃밭도 가꾼 흔적이 있다.
“아, 한 잔 허고 허드라고?”
경도허고 나허고 또 술타령이다.
“지금보다 한 일 주일 더 있으믄 좋은데, 지금 따믄 별론데...”라고 쥔네가 말 헌디도 오늘배끼 시간이 없다고 걍 따부렀다. 경도가 한 동안 안 보이더니 어디서 목소리가 들린다. 저 뒤안 끝에 있는 감낭구에 올라가 그 짝 집 쥔네허고 뭔 야그를 허고 있다. 나중에 봉게 장두감을 반 푸대 정도나 따와부렀다. 희거니 때낀 것만 골라 땄응게 괜찮허단다. 헛간 젙에 있는 나무에서 한 차대기 땄응게 이만 허믄 되얐으까? 어쨌든 다섯 차대기다.
이크 5시 반이다. 이 쥔네 6시까지 광주 가야쓴단다. 서둘렀다. 차에 탔다. 휘파람을 불고 콧노래 흥얼거린다. 경도가 또 노래 시킨다. 뭣을 부르까 허다가 소리는 별로 안 좋아허는 것 같이서 ‘이름 모를 소녀’를 불렀다.
“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워 놓고~~~ 쓸쓸히 바라보는~~~이름 모를 강림~~~
밤은 깊어~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조그~만~~연못 속에~~
달빛 젖은 금빛 물결~~~ 바람에 이~누나~~~ 출렁이는 물결 속에 마음을 달래러고~~~
말 없이 기다리다~~~쓸쓸히 돌아서서~~~안개~~속~에 떠나가는~~이름 모를 소녀~~” <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