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91년 어느 날, 88서울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현정화는 갑작스러운 훈련소집 연락을 받았다. 이렇다 할 설명 없이 공항으로 향한 탁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훈련은 다름 아닌 일본에서 열릴 1991년 제41회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그것도 한국 스포츠 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남북한 단일팀의 일원으로 참가하는 대회였다.
(남북한 단일팀이라는 소식에)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거부감부터 들었습니다. ‘이용당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죠.
▲1991년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당시 리분희 선수(좌)와 현정화 선수
다소 편치 않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남북한 선수들은 46일간의 합숙훈련을 하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 드디어 남북한 단일팀과 중국의 결승전이 열린 4월 29일, 일본 마쿠하리체육관 관중석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이날 남북한 단일팀 선수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이 결승전 경기를 주목하고 있을 남북한 사람들. 그간 공허한 개념에 그쳤던 7천만 동포의 눈빛이었다. 현정화 감독(한국마사회 탁구팀)은 당시를 회상하며 무조건 ‘이기고 싶었다’고 전했다.
세트스코어 2:0에서 중국팀의 기세가 살아나 2:2까지 몰렸습니다. 마지막 세트에서 북한 유승복 선수가 신들린 경기를 해서 최종 우승했어요. 정말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도 그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가슴 밑에서부터 뜨거운 게 올라오는데… 선수 생활하면서 우승하고 단 한 번도 울었던 적이 없는데… 그 대회 때는 정말 너무 많이 울었어요.
▲남북 탁구 단일팀을 다룬 영화 ‘코리아’ 한 장면. 배우 배두나 씨(좌)가 리분희 선수를, 하지원 씨가 현정화 선수를 맡았다. [출처=한국영상자료원]
“남북 함께한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계속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아쉬워”
현 감독은 1991년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역사’라고 말하고 싶어했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 중국을 이겼다는 사실, 그리고 한 치의 가식도 없이 한마음으로 진실한 땀을 흘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현 감독은 아쉬움을 여러 번 이야기했다. 1991년 역사적으로 이뤄진 남북 단일팀 이후로도 계속해서 남과 북이 한마음으로 한 팀이 되어 다양한 종목에 출전했다면 어땠을까.
1991년 이후에 계속 단일팀이 만들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정말 남북한 단일팀이 꾸준히 만들어져왔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정말 귀하다는 겁니다. 30년 가까이 교류가 없다가 스포츠를 통해 서로 마주보자는 건데, 이를 훼방 놓아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요.
현 감독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보았다. 이번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통해 스포츠를 넘어 문화, 나아가 경제적, 정치적인 교류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졌던 남북 단일팀 논란과 관련해 현 감독은 크게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그 누구도 안전하지 못한 상황인 거죠. 미래의 아이들에게 이런 위험한 상황을 그대로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이 사는 이 땅은, 지금보다는 더 안전하고 평화롭고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평창 女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 ”미래 생각해야…정부 차원 관심 필요해”
올해 초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가능성을 시사한 이래 급물살을 탄 남북 단일팀. 하지만 우리 선수들이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따르면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은 우리 선수 23명에 북한 선수 12명이 가세해 총 엔트리를 35명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의 배려로 단일팀의 엔트리는 35명으로 늘었지만, 경기 출전 가능 선수는 다른 나라와 동일하게 22명으로 제한된다.
현 감독은 문제 상황에 대한 논란만 있고, 이후 어떻게 해결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는 뜻을 전했다. 이번 남북 단일팀 사안에 대해 국제 스포츠계의 배려 덕분에 전체 엔트리가 늘어난 점을 두고 되려 다른 나라들이 반발하는 상황이라는 점도 함께 말했다. 다만, 현 감독은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정부가 훈련이나 경기를 하고 싶어도 환경이 좋지 못했던 아이스하키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했다.
88 서울올림픽, 그리고 2018 평창올림픽 “국민들이 희망 볼 수 있는 대회 되길”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으로부터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이 땅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88 서울올림픽은 한국전쟁으로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며 세계인에게 그 눈부신 발전상을 선보이는 장이 되었다. 그리고 2018 평창올림픽은 30년간 IT 강국이자 세계의 문화를 선도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한 대한민국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현 감독에게 평창 동계올림픽은 어떤 느낌일까. 우리 선수들을 향한 당부도 들어보았다.
▲88 서울올림픽 탁구 여자복식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낸 현정화 선수(좌)와 양영자 선수
30년이라는 세월이 정말 빨리 갔어요.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웃음) 저는 88년이 아니라 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서울!'하고 개최지를 발표한 순간부터 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탁구 유망주로 키워졌기 때문이죠. 게다가 88 서울올림픽은 탁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첫 대회이다 보니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정말 컸어요.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우리 선수들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이를 잘 떨쳐내고 좋은 경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데, 이번 대회를 통해 선수들이 국민들에게 많은 기쁨을 안기고 희망을 심어주길 바랍니다."
"박수칠 때 떠나고 싶었다"…그리고 한국마사회 탁구팀에서 시작된 지도자 생활
세계 탁구계 최초로 그랜드슬램(세계탁구선수권 개인전 93, 단체전 91, 복식 87, 혼합복식 89년)을 달성한 현 감독은 1994년 3월 선수로서 최고의 전성기였던 26살, 다소 이른 나이에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독보적인 실력에 미모까지 겸비한 현 감독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현 감독은 그 시기의 은퇴를 늦출 수 없었다고 전했다.
국가대표 선수 생활만 10년을 했습니다. 더 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선수로서 좋은 모습으로 기억될 때 은퇴하는 게 목표였어요. 선수로서 이룬 것들이 많아질수록, 부상 등의 이유로 경기에서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고 싶었어요. 제가 계속 있으면 후배들이 더디 가게 되는 것도 아쉬웠고요.
▲한국마사회 탁구팀 현정화 감독과 선수들
이후 현 감독은 한국마사회 탁구팀에 자리를 잡았다. 1996년 한국마사회 탁구팀 창단과 함께해서 2007년 감독에 부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을 잘 지도해서 올림픽과 국내외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마사회가 진행하는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에도 앞장서서 참여하고 있다.
경마 시행처인 한국마사회에 대한 다소의 부정적 시각이 있는데, 한국마사회 탁구팀 감독으로서 다양한 봉사활동 및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사람들에게 마사회의 긍정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 일환으로, 지난 20여 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전국 한국마사회 장외발매소나 렛츠런문화공감센터의 탁구교실을 돌면서 동호인 분들을 만나고 있어요. 이분들께 직접 탁구도 가르쳐 드리고 종종 사인회를 하기도 합니다.
▲한국마사회 탁구팀 현정화 감독은 탁구교실 동호인들을 지도하는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며 살아야”…남북 단일팀 이뤘던 北 리분희 선수와의 만남은?
현 감독에게 리분희 선수 이야기를 꺼냈다. 1991년 남북 단일팀으로 합을 맞추었던 북한의 리분희 선수가 이번 평창 올림픽 이후에 진행되는 패럴림픽에 조선장애인체육협회 서기장 자격으로 평창을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한 살 위였던 리분희 선수를 제가 ‘언니’ ‘언니’ 하면서 엄청 따랐어요. 언니도 살가운 저를 좋아했고요. 91년 일본에서 대회 우승을 하고 헤어지는데 ‘건강해라’ 딱 그 말밖에 못 했어요. 만날 수가 없으니까… 이번에는 꼭 만나고 싶어요.
▲남북 탁구 단일팀을 다룬 영화 ‘코리아’ 포스터 [출처=한국영상자료원]
세계 탁구계에서, 그리고 우리나라 스포츠에 있어 레전드로 자리 잡은 ‘현정화’라는 이름. 그의 플레이를 보며 자란 선수들과 그에게서 희망과 감동을 느꼈던 수많은 국민들을 향한 현 감독의 메시지를 전한다.
우선 선수들에게는 평범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테이블 안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자신과 약속을 꼭 지키기를 바라고요. 꿈이 있고 최선을 다하면 그 꿈은 무조건 이뤄지니까 걱정 말고 아낌없는 노력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지금, 현재가 제일 중요합니다. 지금 하는 이 게임, 지금 내가 몸담은 한국마사회.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이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나중이라고 만족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내가 속한 환경과 여건에 감사하면서 정말 최선을 다할 때 새로운 기회가 오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