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토의 종탑을 내려와서 다음 코스가 성당 내부.
세례당, 종탑, 대성당 내부, 박물관 등 여러 곳을 모두 관람할 수 있는 통합권을 한국서 미리 예약을 했고
첫 곳을 입장한 이후 3일 내로 다 보면 되는데 일정이 오늘 모두 소화를 해야 내일 일정 진행.
성당 내부 관람입니다
돔의 천장을 내부 중앙랑에서 올려다 보고
저 팔각의 난간에 이 따가 올라가게 됩니다
과거 존재했든 작은 성당의 지하시설 보존.
증 개축시 성당은 존엄한 공간이기 때문에 완전히 지워버릴수는 불가하고 이렇게 지하시설은 반드시 남긴다
이제 박물관입니다
기베르티가 세례당 공모전에 출품했든 작품의 진품
그 후 동문 북문 남문의 원판을 홍수로 피해를 입자 시껍을 하고 모두 진품들을 박물관으로 들여놨다고 합니다
이 박물관의 정식명칭은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미켈란젤로 피에타.
참고로 지금 까지 소개했든 미켈란젤로 피에타 작품들은 4곳을 정리하면,
1.1499년 바티칸 피에타 :성 베드로 성당
2. 1547년 피렌체 피에타 : 피렌체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3. 1555년 팔레스티나 피에타: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4. 1564년 밀라노 론다니니 피에타 : 밀라노 스코르체스코 성
ㅎㅎ 까먹지 마세요?
이것이 유명한 도나텔로 " 막달라 마리아 청동상"
나무 같이 보인다
참회하는 막달레나(1453`1455년 사이) 작자 미상으로 보이는데.
더 찾아 볼께요
쿠폴라 제작 당시의 모형을 후에 만들어서 보관
브루넬리스키,
50년 동안 쿠폴라를 올리지 못하고 유례없이 두껑이 없는 이상한 성당을 보면서 그 동네에서 자라난 어린 꼬마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공모전에 나섭니다.
당시의 평가위원회에 자신이 완벽한 돔을 만들 수 있다고 허황된 소리를 해대니,
" 어떻게 어떤 공법으로 할거냐"
" 공개할 수 없다"
" 다른 이들이 내 아이디어를 훔쳐갈 수 있기 때문이다"
" 허풍 떨지마!"
" 그럼 달걀을 세울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자" 고 제안
여러명이 달걀 세우기에 도전했지만 누구도 성공할 수 없었고 브루넬리스키가 달걀 끝을 깨워서 세워버린다
경쟁자들은 그 따위 방법이라면 개나 소나 나도 하겠다.
그래! 바로 이것이 내가 방법을 공개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는 일화.
이래서 콜럼버스 달걀 보다 브루넬리스키 달걀이 원조다!
곡절 끝에 브루넬리스키의 돔 공사는 시작 됐지만 갖가지 이야기들, 오늘은 좀 여유 있으니 이것도 올려 보자.
1420년 8월7일 기공식.
공사에는 돌을 다듬는 채석장 인부까지 총 300여 명이 투입. 근무환경은 열악하고 가혹하다.
작업은 월~토요일 까지 새벽 부터 해질 때까지 이어졌다.
해가 긴 하절기에는 열네 시간 이상을 일했다.
요즘 같은 공사 안전의 안자도 모르고 존재하지도 않았든 시대라 120미터 높이에서 좁은 비계 사이를 오가는 작업자들 중에는 추락사가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건축 위원회는 장례비만 지급할 뿐 유족보상 같은 것은 딴 데 알아봐! 한 푼도 없다.
잔인한 위원회는 공사 인부들이 작업 시간 동안 땅으로 내려올 수 없다는 규정도 만들었다
점심시간에 오르내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 때는 인권위원회도 없었지......
인부들은 종일 그 높은 곳에서 거의 쉬는 시간 없이 혹사 당하고 무더운 여름에 즐기는 시에스타( 낮잠)도 없이 혹사 당했다.
결국 인부들은 들고 일어났고 처우개선을 요구하는데,
브루넬리스키와 위원회는 모두 해고해 버린다.
인부들은 모두 너무나 지독하게 가난했기 때문에 결국 파업을 철회한다.
이 때 위원회는 처음보다 낮은 임금을 강요했고 이 불쌍한 인부들은 어쩔 수 없이 이 가혹한 현실을 동의하고 받아들인다.
저것이 왜 생겼냐~~~~아이러니 하게도 그 악랄한 조상들을 두었든 탓에 지금의 후손들은 큰소리 치며 그런데로 잘먹고 잘산다.
이런 것들이 다 모여서 인류사다
아직 나는 돔에 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