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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양떼목장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떼들. 금방이라도 피리부는 양치기가 나타나 양떼 심포니를 지휘할 것 같다. |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알프스 초원을 마음 속에 그려본 적이 있는가. 굽이치는 산세 위로 광활하게 펼쳐진 푸르른 초원의 물결. 생각만 해도 가슴이 시원하다. 초원 저 너머로 솟구친 봉우리와 나무들, 한가로이 풀을 뜯는 한 무리의 양떼…. 목가적 풍경의 클라이막스가 따로 없다.
멀리 이국의 땅을 떠 올릴 필요 없다. 바로 대관령의 고원지대가 있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대관령 일대. 해발 800㎙~1,100여㎙의 고원에는 드넓은 목장과 초원, 야생화의 풀밭, 그곳에서 노니는 양떼들의 울음소리가 심포니처럼 어울린다. 험준한 줄만 알았던 백두대간의 산세가 한없이 여유롭고 정겹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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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양떼목장의 전경 |
대관령 양떼 목장
사람처럼 길의 운명도 명멸을 거듭한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 새 길이 나면서 오가는 이 없어진 이곳은 이제 대관령의 한적함 속으로 들어가는 출발점이다. 상행선 휴게소 뒤편으로 나 있는 선자령과 대관령 양떼목장의 양갈래 길. 우선 왼편의 양떼목장으로 가보자.
100㎙ 정도 더 차를 타고 오르면 나오는 ‘대관령 양떼목장’은 1988년 서울에서 낙향한 진영대씨 부부가 15년의 집념으로 이룬 6만2,000여평의 개인목장. 소를 키우는 인근 대단위 목장에 비하면 규모가 아담하지만, 양 250여마리를 사육하는 이국적 분위기가 발길을 잡아 끈다. 대관령을 찾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알음알음 알려졌던 이곳은 2003년 양띠 해를 맞아 전국 명소로 발돋음, 지난해만 7만명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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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서 고개를 내민 양의 표정이 천진난만하다. |
겨울철이면 하얀 설국으로, 봄부터는 푸른 초원으로 이중의 빛깔을 자랑하는 이곳은 이제 막 봄에 진입한 단계. 여태 벚꽃이 피어 있고, 황토빛 사이로 푸른 녹색의 풀들이 듬성듬성 돋아나고 있었다. 이미 초여름에 접어든 평지와 달리 이곳은 일교차가 심해 아직 초봄 기운이 완연하다. 풀들이 무성해지는 이달 중순부터 양들도 우리를 벗어나 방목될 예정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목장 초입에 세워진 소담스런 나무집. 김희선 신하균 주연의 영화 ‘화성에서 온 사나이’의 세트장이다. 하얀 눈밭에서 연인의 사랑이 맺어진 이 건물은 이제 양떼목장의 은은한 빛깔을 드러내는 이정표 구실을 한다.
목장을 한 바퀴 도는 데는 30여분 정도. 해발 1,000㎙의 목장 정상에 오르면 대관령 주변의 산들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물결 친다. 하지만 아직 뭔가가 부족하다. 선자령 때문에 강릉쪽 시야가 막혀 있다.
선자령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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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령 가는 길에 보라빛의 얼레지가 화원을 이룬 듯 무더기로 피어올랐다. |
양떼목장에서 대관령 휴게소 뒤편 갈래길로 되돌아와 오른편 선자령 방향으로 올라간다. 백두대간의 한 능선으로 대관령 북쪽에 위치한 선자령(1,157㎙)은 겨울철 눈꽃 트레킹으로 이름 높은 곳. 하지만 봄여름철에도 눈꽃 못지 않은 보배가 숨겨져있다. 노란색, 하얀색, 보라색 등 갖가지 빛깔로 꾸며진 야생화가 그것이다.
휴게소 뒤편에서 대관령 기상대, KT 중계소를 지나 한국공항공사 강원항공무선지표까지 차가 올라간다. 이곳에서 선자령까지는 걸어서 한시간 거리. 이미 산 정상 높이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비탈이나 오르막길이 거의 없이 평탄한 산책길이 계속된다. 큰 품 들이지 않고 야생화의 진경을 맛보며 대자연의 경치를 즐길 수 있어 가족 산행의 최적지로 꼽힌다.
일부러 화원이라도 만들어 놓은 걸까. 능선길 양쪽으로 봄의 야생화들이 제철이라도 만난 듯 울긋불긋 만개해 아우성을 친다. 노랑제비꽃, 민들레, 괭이밥에 하얀색 봄맞이꽃들이 어울렸고, 특히 보라빛 얼레지가 무더기로 피어올랐다. 풀밭에 드러누우면 말 그대로 꽃밭에 취한 나비라도 될 듯 싶다.
정상 가는 길에 ‘새봉’을 지난다. 바람이 많아 새가 쉬어갈 수 없다고 해서 역설적으로 붙여진 이름. 과연 나무들도 바람 부는 방향으로 가지런히 누워있다. 강한 편서풍 때문이다. 선자령에 눈 많기로 유명한 것도 이 바람과 영동의 습기 많은 바닷바람이 부딪히기 때문이다.
풀밭과 나무숲을 지나 정상 가까이 다가가면 대관령의 초원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그 초원 말이다. 인근 목장들의 잘 가꾸어진 초원도 유려하지만, 선자령 정상 부근은 자연이 만들어놓은 대목초지다. 축구장의 잔디밭 같다. 초원 군데군데 한 두그루씩 외로이 자란 소나무들도 이채롭다.
백미는 역시 초원과 어우러진 봉우리들의 파노라마. 남쪽으로는 발왕산, 서쪽으로 계방산, 서북쪽으로 오대산 등 백두대간의 줄기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강릉시내가 한 눈에 드러온다.
선자령 정상 너머 산 능선에 최근 이색적인 명물도 등장했다. 대관령의 거센 바람을 이용하는 거대한 풍력발전기 4기가 지난해 완공된 것. 50㎙ 높이의 기둥에 25㎙ 길이의 날개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양새가 대관령 고원과 어울려 이색적인 정취를 풍긴다. 평창군은 내년까지 풍력발전기 49기를 더 건설할 계획이다. 하지만 대체에너지 개발이 선자령 등 주변 자연환경을 해치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그것 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대관령=송용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