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개관은 지난 연말 미술계를 뜨겁게 달궜던 핫이슈였다. 지난 해 11월 13일 개관식을 가진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 서울관 개관식을 찾는 관객은 꾸준해 보였다. 방학이라 그렇긴 해도, 한겨울의 과천관을 생각하면 뜨거운 열기에 가깝다.
서울관의 부지는 조선시대 소격서, 종친부, 규장각, 사간원이 있던 자리로,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의 수도육군병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으로 사용된 곳이기도 하다. 한국 전쟁 후에는 서울대 의대 부속병원, 국군수도통합병원, 기무사로 이어진 지리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입성하게 되면서 이목이 집중되었었다.
개관에 맞춰 시작한 전시는 총 7가지.
1. 자이트가이트-시대정신 (~2014.4.27)
2. 연결-전개 (~2014.2.28)
3. 알레프 프로젝트 (~2014.3.16)
4. 미술관의 탄생: 건립기록전(~2014.7.27)
5.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 서도호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2014.5.11)
6. 현장제작 작품설치 프로젝트: 최우람
오페르투스 루놀라 움르바(~2014.11.9)
7. 현장제작 작품설치 프로젝트: 장영혜중공업
GROOVIN' TO THE BEAT OF THE BIG LIE(~2014.2,28)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도호의 건물 지하와 1층 중앙에 자리잡은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이었고, 줄이 가장 길었던 《알레프 프로젝트》도 인터렉티브 아트의 현주소를 보여주어 반응이 좋았다. 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자이트가이트-시대정신》 전도 흥미로운 여러 요소들을 보여주었지만, 개관특별전의 기획력을 펼쳐 보여준 것은 《연결-전개》라고 할 수 있다.
《연결_전개》 전은 기존의 관습적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차원의 융·복합이 가능해진 시대에 예술과 삶의 결합이 미술문화라는 기호를 통해서 해석되는지를 살펴보자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개인의 세계관이 어떻게 분출되고 소통되는지, 이 시대, 사회의 예술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했다는 다소 거창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최은주(한국), 리차드 플러드(미국), 앤 갤러거(영국), 유코 하세가와(일본), 이숙경(한국), 베르나르트 제렉세(독일), 푸자 수드(인도)이고, 이들이 선정한 작가는 타시타 딘(영국), 킴 존스(미국), 아마르 칸와르(인도), 마크 리(스위스), 리 밍웨이(대만), 키시오 스가(일본), 양민하(한국)의 7명이다.
킴 존스, [양동이와 부츠가 있는 머드맨 구조물], 1974년
나무, 테이프, 천, 왁스, 페인트, 셸락, 진흙, 아크릴 등, 가변크기, 작가 및 피어로기(Pierogi) 갤러리 소장
킴 존스는 이번 전시에서 머드맨 퍼포먼스와 관련된 설치 및 영상 작품과 함께 그의 대표적인 드로잉 연작 중 하나인 [전쟁 드로잉]을 보여주었다. 이 대규모 벽면 드로잉 작품에서는 거대한 캔버스나 벽을 전장으로 삼아 x와 o라는 가상의 두 집단이 군사작전을 펼치는 장면이 연출된다. 어린 시절에 해봤을 법한 전쟁놀이나 보드게임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인간에 의해 기획, 통제되고 다시 인간을 희생시키는 커다란 게임과 같은 전쟁의 속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모노하 작가로서 키시오 스가는 물질 사이의 관계성에 주목하여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물 혹은 산업용 자재나 건축부자재 등을 작품의 재료로 활용하며 설치작업을 하였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捨置狀況(Shachi Jokyo)]와 [依存差(Izonza)]는 각각 1972년과 1973년에 만들어진 설치 작품으로, 현재 여기의 맥락에 맞게 재구현된 것이다. 서로 다른 사물들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 그리고 사물과 공간 사이의 관계 형성을 살펴보고 이러한 상호의존성의 관계를 재구축함으로써 사물의 세계가 지닌 구조를 탐색한다.
키시오 스가, [依存差](이존자), 1973년, 2013년
아연판, 돌, 콘크리트 벽돌, 청동파이프 등, 가변설치
사진 : 도쿄 사토 갤러리 설치 장면, 1973년. 촬영 : 키시오 스가
스위스 출신의 미디어 작가 마크 리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미디어 작품을 통해 인터넷의 구조와 체계, 작동방식,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관계를 언급한다. 이번 《연결_전개》전에서는 [10,000개의 움직이는 도시들]이라는 인터넷 기반의 인터랙티브 설치작품을 전시한다. 이는 관람객이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는 컴퓨터의 검색엔진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나라 또는 도시를 선택하면, 전시 공간에 서있는 하얗고 거대한 큐브 구조물들 위에 방금 기입한 지역과 관련된 이미지, 사운드 등을 포함한 각종 정보가 실시간으로 검색되어 입혀지는 방식이다. 자신이 검색한 지역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큐브들 사이를 움직이면서 관객은 그 지역을 통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새로운 정보로 인해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들은 끊임없이 변하고 관객은 직접적으로 이를 접촉하게 된다. [10,000개의 움직이는 도시들]은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와 개입 그리고 이를 통한 가변적이고 지속적인 상황 전개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다.
마크 리, [10,000개의 움직이는 도시], 2013년
인터랙티브 미디어 설치, 가변크기, 작가소장
대만 출신의 리 밍웨이는 이번 《연결_전개》전에서 2011년 작 [움직이는 정원]과 신작 [소닉 블로썸]을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움직이는 정원]에서 작은 정원 속 꽃들은 관객들에 의해 나눠지고 흩어지지만, 이는 기억과 경험의 공유를 위한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리 밍웨이, [움직이는 정원], 2009년
관객참여형 설치, 혼합매체, 가변크기, 개인 소장
양민하는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구상한 신작 [엇갈린 결, 개입](2013)이라는 미디어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서울관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맥락을 “결”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장소 역시 시간의 흐름에 적응하고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날카로운 예각을 가진 7m 높이의 구조물을 벽에 덧붙여 설치하고 이 구조물과 복도 바닥에 “결”을 형상화한 이미지를 투영시킨다. 이 영상은 구조물의 외벽과 바닥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 바닥의 어느 한 틈으로 빨려 들어간다. 여기에 관객은 자신의 신체적 움직임을 통해 일정한 빛의 흐름에 파문을 만들어 새로운 상황을 더해가며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양민하, [엇갈린 결, 개입], 2013년
인터랙티브 미디어 설치, 13x6x9.5m, 작가 소장
현대미술의 다양한 조형적인 방법론, 개념을 가진 작가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가 관람객이 받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대답을 구하기 다소 어려운 것이 아니었나 싶다. 전통과 현대, 역사와 시대, 사회와 예술 등 다양한 연결고리가 한데 어우러지는 것, 다양한 예술적 지향, 새로운 연결, 관객의 참여, 맥락의 중요성은 다른 현대미술 전시나 페어에서도 드물지 않은 컨셉이다. 서울관의 개관에 맞추어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와 지향을 말하고자 한 대표적인 전시라고 하기에 약간 임팩트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나 싶은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