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普賢行의 七願
가, 神通의 四願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成普賢行하야 一光이 普照盡虛空界一切世界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成普賢行하야 得無量智慧하고 具一切神通하야 說種種法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成普賢行하야 入於如來盡一切劫不可測量神通智慧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成普賢行하야 住盡法界諸如來所하야 以佛神力으로 修習一切諸菩薩行호대 身口意業이 曾無懈倦하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행을 이루어서 한 광명이 온 허공의 일체 세계를 두루 비추느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행을 이루어서 한량없는 지혜를 얻고 모든 신통을 갖추어 갖가지 법을 연설하느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행을 이루어서 일체 겁(劫)이 다하여도 측량할 수 없는 여래의 신통과 지혜에 들어가느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행을 이루어서, 온 법계의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 머무르면서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일체 모든 보살의 행을 닦되 몸이나 입이나 뜻으로 짓는 업(業)에 조금도 게으름이 없느니라.”
*
보현행(普賢行)의 칠원(七願)
*
신통(神通)의 사원(四願)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성보현행(成普賢行)하야 : 보현행을 이뤄서
일광(一光)이: 한 광명이
보조진허공계일체세계(普照盡虛空界一切世界)하며 : 진 허공계 일체 세계를 널리 비추며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성보현행(成普賢行)하야 : 보현행을 이루어서
득무량지혜(得無量智慧)하고: 무량 지혜를 얻고
구일체신통(具一切神通)하야: 일체 신통을 갖추어서
설종종법(說種種法)하며 : 가지가지 법을 설하며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성보현행(成普賢行)하야 : 보현행을 이루어서
입어여래진일체겁불가측량신통지혜(入於如來盡一切劫不可測量神通智慧)하며: 여래의 일체 겁이 다하도록 측량할 수 없는 신통지혜에 들어가며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성보현행(成普賢行)하야 : 보현행을 성취해서
주진법계제여래소(住盡法界諸如來所)하야 : 진법계 모든 여래의 처소에 머물러서
이불신력(以佛神力)으로 : 부처님의 신력으로
수습일체제보살행(修習一切諸菩薩行)호대: 일체 모든 보살행을 수습하되
신구의업(身口意業)이 : 신구의 업이
증무해권(曾無懈倦)하니라: 일찍이 게으름이 없느니라.
나, 四辯의 三願
以着無縛解脫心으로 成普賢行하야 不違於義하고 不壞於法하야 言詞淸淨하야 樂說無盡하야 敎化調伏一切衆生하야 令其當得一切諸佛無上菩提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修普賢行하야 入一法門時에 放無量光하야 照不思議一切法門하고 如一法門하야 一切法門에도 皆亦如是하야 通達無礙하야 究竟當得一切智地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住菩薩行하야 於法自在하야 到於普賢莊嚴彼岸하야 於一一境界에 皆以一切智로 觀察悟入호대 而一切智가 亦不窮盡하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행을 이루어서, 뜻에도 어기지 않고 법에도 어기지 않으며 말이 청정하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변재(辯才)가 다하지 아니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여 그들로 하여금 마땅히 일체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보리를 얻게 하느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행을 닦아 한 법문에 두루 들어갈 적에 무량한 광명을 놓아 불가사의한 일체 법문을 비추며, 한 법문과 같이 일체 법문에도 또한 이와 같이 하여 통달하고 걸림이 없어 구경에는 마땅히 일체 지혜의 지위를 얻느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살의 행에 머물러서 법에 자재하여 보현으로 장엄한 저 언덕에 이르며, 낱낱 경계에 일체 지혜로 관찰하여 깨달아 들어가되 일체 지혜는 또한 다하지 아니하느니라.”
*
사변(四辯)의 삼원(三願)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성보현행(成普賢行)하야 : 보현행을 이루어서
불위어의(不違於義)하고 : 이치, 뜻, 그것을 어기지 아니하고
불괴어법(不壞於法)하야 : 법을 또 어기지 아니하며, 여기서는 간단하게 말하고 있지만 법과 의, 이것은 기신론 같은 데서 아주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서 법을 하나의 사람으로 본다면 그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고 뜻이 있고 이치가 있다.
뭐든지 다 그렇다. 법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의 작은 것에서부터 경전에서 설하고 있는 의미까지 다 포함되지만 거기에는 전부 법이 있고 법에 따르는 반드시 의가 있다. 이치가 있다. 해서
언사청정(言詞淸淨)하야 : 언사가 뛰어나서
요설무진(樂說無盡)하야 : 그 이야기를 잘해서 다함이 없어서
교화조복일체중생(敎化調伏一切衆生)하야: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해서
영기당득일체제불무상보리(令其當得一切諸佛無上菩提)하며: 그들로 하여금 마땅히 일체 모든 부처님의 무상보리를 얻게 하며, 모든 부처님의 무상보리 가장 높은 깨달음을 얻게 하며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수보현행(修普賢行)하야 : 보현행을 닦아서
입일법문시(入一法門時)에 : 한 법문에 들어갔을 때에
방무량광(放無量光)하야: 한량없는 광명을 놓아서
조부사의일체법문(照不思議一切法門)하고 : 부사의 일체 법문을 비추고
여일법문(如一法門)하야 : 한 법문과 같이
일체법문(一切法門)에도 : 일체 법문도
개역여시(皆亦如是)하야 : 다 또한 이와 같이 해서
통달무애(通達無礙)하야 : 통달무애 하야
구경당득일체지지(究竟當得一切智地)하며 : 구경에 마땅히 일체 지혜의 땅을 얻게 하며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주보살행(住菩薩行)하야 : 보살행에 머물러서
어법자재(於法自在)하야 : 법에 자재해서
도어보현장엄피안(到於普賢莊嚴彼岸)하야: 보현 장엄의 피안에 이르러서, 보현 장엄의 피안에 머문다.
어일일경계(於一一境界)에 : 낱낱 경계에 다
개이일체지(皆以一切智)로: 일체 지로써
관찰오입(觀察悟入)호대 : 관찰해서 깨달아 들어가되
이일체지(而一切智)가 : 일체지가
역불궁진(亦不窮盡)하니라 : 또한 다함이 없느니라.
(7) 攝法의 廣大自在德
가, 智慧의 三願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始從此生으로 盡未來際토록 住普賢行하야 常不休息하고 得一切智하야 悟不可說不可說眞實法하야 於法究竟하야 無有迷惑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修普賢業하야 方便自在하고 得法光明하야 於諸菩薩所行之行에 照了無礙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修普賢行하야 得一切方便智하야 知一切方便하나니 所謂無量方便과 不思議方便과 菩薩方便과 一切智方便과 一切菩薩調伏方便과 轉無量法輪方便과 不可說時方便과 說種種法方便과 無邊際無畏藏方便과 說一切法無餘方便이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처음 이 생(生)으로부터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보현의 행에 머물러서, 항상 쉬지 아니하여 일체 지혜를 얻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진실한 법을 깨달으며 모든 법에 구경까지 미혹함이 없느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업(業)을 닦아, 방편에 자재하고 법의 광명을 얻어 모든 보살의 수행하는 행(行)을 비추되 장애가 없느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행을 닦아, 모든 방편의 지혜를 얻어 일체 방편을 아느니라.
이른바 한량없는 방편과 부사의한 방편과 보살의 방편과 온갖 지혜의 방편과 일체 보살의 조복하는 방편과 무량한 법륜(法輪)을 굴리는 방편과 말할 수 없는 시간의 방편과 갖가지 법을 말하는 방편과 그지없고 두려움이 없는 장(藏)의 방편과 일체 법을 설하여 남음이 없는 방편이니라.”
*
섭법(攝法)의 광대자재덕(廣大自在德)
*
지혜(智慧)의 삼원(三願)
*
청량국사의 소초를 위주로, 통현장자의 화엄론에서 참고할 것은 참고 하면서 나는 이러한 소제목들을 정했다. 공부하다 보니 오류도 많아서 ‘꼭 맞는 제목이다’라고 볼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너무 엉터리로 달아놓고 그 위치도 틀린 것들이 더러 발견이 된다.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시종차생(始從此生)으로: 비로소 여기에서부터 남으로 해서
진미래제(盡未來際)토록: 미래제가 다 하도록
주보현행(住普賢行)하야 : 보현행에 머물러서
상불휴식(常不休息)하고 : 항상 휴식하지 아니하고
득일체지(得一切智)하야 : 일체 지혜를 얻어서
오불가설불가설진실법(悟不可說不可說眞實法)하야 : 불가설 불가설 진실법을 깨달아서
어법구경(於法究竟)하야 : 법에 대해서 완성 완전하게 해서
무유미혹(無有迷惑)하며 : 미혹이 없게 하며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수보현업(修普賢業)하야 : 보현의 업을 닦는다. 참 친절하다. 보현행을 주로 수없이 많이 이야기 하다가 여기는 보현업이라고 해버렸다. 보현보살의 업이 뭐 별거겠는가. 보현의 업을 닦아서
방편자재(方便自在)하고 : 방편에 자재하고
득법광명(得法光明)하야 : 법의 광명을 얻어서
어제보살소행지행(於諸菩薩所行之行)에 : 모든 보살의 행할 바의 행에
조료무애(照了無礙)하며 : 환하게 비춰서 걸림이 없게 하며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수보현행(修普賢行)하야 : 보현행을 닦아서
득일체방편지(得一切方便智)하야 : 일체 방편지를 얻어서
지일체방편(知一切方便)하나니 : 일체 방편을 아나니
*
소위무량방편(所謂無量方便)과 : 소위 무량방편과
부사의방편(不思議方便)과 : 부사의 방편과
보살방편(菩薩方便)과: 보살방편과
일체지방편(一切智方便)과 : 일체지 방편과
일체보살조복방편(一切菩薩調伏方便)과 : 일체 보살 조복 방편과
전무량법륜방편(轉無量法輪方便)과 : 무량 법륜을 굴리는 방편과
불가설시방편(不可說時方便)과: 불가설시 방편과
설종종법방편(說種種法方便)과 : 종종법을 설하는 방편과
무변제무외장방편(無邊際無畏藏方便)과 : 무변제 무외장 방편과
설일체법무여방편(說一切法無餘方便)이니라 : 일체 법을 설하여 남음이 없게 하는 방편이니라. 이러한 일체 방편들을 다 얻는다. 보현행을 닦으면 이러한 방편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나, 利益의 二願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住普賢行하야 成就身業하야 令一切衆生으로 見者歡喜하야 不生誹謗하고 發菩提心하야 永不退轉하야 究竟淸淨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修普賢行하야 得了一切衆生語言淸淨智하야 一切言詞를 具足莊嚴하야 普應衆生하야 皆令歡喜하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행에 머물러서, 몸으로 하는 업을 성취하고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보는 이마다 환희하여 비방하지 않게 하며 보리심을 내어 영원히 퇴전하지 아니하고 구경에 청정케 하느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행을 닦아, 일체 중생의 말을 아는 청정한 지혜를 얻고 구족하게 장엄한 모든 말로써 중생에게 널리 응하여 모두 환희케 하느니라.”
*
이익(利益)의 이원(二願)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주보현행(住普賢行)하야 : 보현행에 머물러서
성취신업(成就身業)하야 : 신업을 성취하야
영일체중생(令一切衆生)으로 :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견자환희(見者歡喜)하야 : 견자환희 하며, ‘내 모양을 보는 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는 보리마음 모두 내어 윤회고를 벗어나되’ 하는 발원문도 좋고, 나옹스님 발원문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 견아형자득해탈(見我刑者得解脫)’도 좋다. 견아형자득해탈을 여기는 견자환희라고 하였다. 세상을 살다보면 내가 보기 싫은 사람도 많고 또 나를 보기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참 신기하다. 이렇게 보살행을 열심히 읽고 외우고 읊조리고 생각하고 ‘야 참 근사하다 이래야 되는데 내 인격이 이렇게 돼야 되는데’ 하면서도 도대체가 그것이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보기 싫은 사람은 지금도 계속 보기 싫다. 이렇게 한 번 토로하면서 참회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엄경에서 우리에게 주문하는 것은 최고의 보살행 그중에서도 부처님의 장자인 보현보살의 행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새카만 중생이다. 그래서 나는 늘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라고 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지만 어느날 ‘그 연약한 계란을 한 번 던져서 계란은 멀쩡하고 저 큰 바위가 무너질 때가 있을 것이다’ 라고 한다.
틀림없이 그런 때가 있을 것이다.
계란은 멀쩡하고 바위가 사정없이 가루가 되어버리는 때가 있을 것이다. 계란을 던지기도 전에 그 바위가 가루가 될 수도 있다. 과거 선례를 보면 그런 사례들이 많다.
무착무박해탈심으로 보현행에 머물러서 신업을 성취하야 일체중생으로써 보는 사람이 다 환희하게 한다. 이거 하나만 성취해도 좋다. 그래서
불생비방(不生誹謗)하고 : 비방을 내지 아니한다. 대개는 그 사람에 대해서 약점부터 먼저 떠올린다. ‘아 저자식 그전에 어땠는데’‘어떤 짓을 했다는데’ 하고 자기가 보지도 않고 어디서 소문만 듣고 판단을 한다. 중생의 알량한 좋지 아니한 습관들이다. 그런 것을 하나하나 털어 내야 된다. 비방을 내지 아니하고
발보리심(發菩提心)하야 : 보리심을 발해서
영불퇴전(永不退轉)하야 : 영원히 퇴전하지 아니해서
구경청정(究竟淸淨)하며 : 구경에 청정하며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수보현행(修普賢行)하야 : 보현행을 닦아서
득료일체중생어언청정지(得了一切衆生語言淸淨智)하야 : 일체 중생의 어언청정지를 깨달아 얻어서
일체언사(一切言詞)를 : 일체 언사를
구족장엄(具足莊嚴)하야 : 구족히 장엄한다.
말도 장엄이 잘 되어야 한다. 일체 언사가 구족히 장엄이 되어야 한다.
어떤 주제만 가지고 강의하면 아무래도 실수가 많은데 교재를 딱 놓고 그것만 따라가면서 하면 그래도 실수가 적다. 그런데도 내가 내 강의를 들어보면 실수가 많다. 나는 내 강의도 많이 듣는데 어떨 때는 얼굴이 막 붉혀지면서 ‘다른 좋은 소리가 얼마든지 있는데 왜 저런 소리를 했는가’ 하는 때가 있다. 구족장엄이 참 필요하다. 일체 언사를 모든 말에 대해서 구족히 장엄해서
보응중생(普應衆生)하야 : 널리 중생에 맞춰서
개령환희(皆令歡喜)하니라 : 다 하여금 환희케 하느니라. 듣고 기분이 좋아야 한다.
부처님 말씀을 하면서 듣고 마음 상하게 하고 얼굴 찌푸려지게 하면 법문이 아니다.
물론 꾸중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도 개령환희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 廣大한 三業의 一願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住普賢行하야 立殊勝志하고 具淸淨心하야 得廣大神通과 廣大智慧하야 普詣一切廣大世間과 廣大國土와 廣大衆生所하야 說一切如來의 不可說廣大法과 廣大莊嚴圓滿藏하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행에 머물러서, 수승한 뜻을 세우고 청정한 마음을 구족하여 광대한 신통과 광대한 지혜를 얻어서 모든 광대한 세간과 광대한 국토와 광대한 중생의 처소에 널리 나아가서, 일체 여래의 말할 수 없이 광대한 법과 광대하게 장엄한 원만장(圓滿藏)을 설하느니라.”
*
광대(廣大)한 삼업(三業)의 일원(一願)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주보현행(住普賢行)하야 : 보현행에 머물러서
입수승지(立殊勝志)하고 : 수승한 뜻을 세우고 아주 좋은 뜻 그리고
구청정심(具淸淨心)하야 : 청정심을 갖추어서
득광대신통(得廣大神通)과 : 광대한 신통과
광대지혜(廣大智慧)하야 : 광대한 지혜를 얻어서
보예일체광대세간(普詣一切廣大世間)과 : 널리 일체 광대한 세간과
광대국토(廣大國土)와 : 광대한 국토와
광대중생소(廣大衆生所)하야 : 광대한 중생 처소에 널리 나아가서
설일체여래(說一切如來)의 : 일체 여래의
불가설광대법(不可說廣大法)과: 불가설 광대법과
광대장엄원만장(廣大莊嚴圓滿藏)하니라: 광대한 장엄 원만장을 설하느니라.
라, 淸淨한 三業의 一願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成滿普賢廻向行願하야 得一切佛淸淨身과 淸淨心과 淸淨解하야 攝佛功德하고 住佛境界하야 智印普照하야 示現菩薩淸淨之業하고 善入一切差別句義하야 示諸佛菩薩廣大自在하야 爲一切衆生하야 現成正覺하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회향하는 행과 원을 이루어, 일체 부처님의 청정한 몸과 청정한 마음과 청정한 이해를 얻느니라. 부처님의 공덕을 포섭하고 부처님의 경계에 머무르며, 지혜의 인(印)으로 널리 비추어 보살의 청정한 업을 나타내 보이느니라. 모든 차별한 글귀와 뜻에 잘 들어가서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의 광대하게 자재함을 보이며, 일체 중생을 위하여 정각(正覺) 이룸을 나타내느니라.”
*
청정(淸淨)한 삼업(三業)의 일원(一願)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써
성만보현회향행원(成滿普賢廻向行願)하야 : 보현 회향행원을 원만히 이루어서
득일체불청정신(得一切佛淸淨身)과 : 일체 부처님의 청정신과
청정심(淸淨心)과 : 청정심과
청정해(淸淨解)하야 : 청정해를 얻어서
섭불공덕(攝佛功德)하고 : 부처님의 공덕을 섭하고
주불경계(住佛境界)하야 : 부처님의 경계에 머물러서
지인보조(智印普照)하야 : 지혜의 도장으로써 널리 비춰서
시현보살청정지업(示現菩薩淸淨之業)하고 : 보살의 청정 업을 나타내 보이고
선입일체차별구의(善入一切差別句義)하야 : 일체 차별한 구절 글귀와 뜻에 잘 들어가서
시제불보살광대자재(示諸佛菩薩廣大自在)하야: 제불 보살의 광대한 자재를 보여서
위일체중생(爲一切衆生)하야: 일체 중생을 위해서
현성정각(現成正覺)하니라 : 정각 이룸을 나타내느니라.
마, 諸根三業의 一願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勤修普賢諸根行願하야 得聰利根과 調順根과 一切法自在根과 無盡根과 勤修一切善根根과 一切佛境界平等根과 受一切菩薩不退轉記大精進根과 了知一切佛法金剛界根과 一切如來智慧光照金剛焰根과 分別一切諸根自在根과 安立無量衆生於一切智根과 無邊廣大根과 一切圓滿根과 淸淨無礙根하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여러 근(根)과 행(行)과 원을 닦아, 총명한 근과 조화롭고 순한 근과 일체 법에 자재한 근과 다함이 없는 근과 일체 선근을 부지런히 닦는 근을 얻느니라.
일체 부처님의 경계가 평등한 근과 일체 보살이 퇴전하지 않는다는 수기(授記)를 받아 크게 정진하는 근과 일체 불법(佛法)을 잘 아는 금강계(金剛界)의 근과 일체 여래의 지혜 광명으로 비추는 금강염(金剛焰)의 근이니라.
일체 모든 근기를 잘 분별하는 자재한 근과 무량한 중생을 일체 지혜에 안립(安立)하는 근과 끝이 없이 광대한 근과 일체 원만한 근과 청정하여 걸림이 없는 근이니라.”
*
제근삼업(諸根三業)의 일원(一願)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써
근수보현제근행원(勤修普賢諸根行願)하야 : 보현제근 행원을 부지런히 닦아서, 보현보살의 안이비설신의 육근의 행원을 부지런히 닦는다는 뜻이다.
득총리근(得聰利根)과: 총리 총명하고 날카롭고 영리한 근과
조순근(調順根)과: 아주 조화롭고 순한 육근과
일체법자재근(一切法自在根)과: 일체법에 자재한 육근과
무진근(無盡根)과 : 다함이 없는 근과
근수일체선근근(勤修一切善根根)과 : 일체 선근을 부지런히 닦는 근과
*
일체불경계평등근(一切佛境界平等根)과 : 일체 불경계 평등근과
수일체보살불퇴전기대정진근(受一切菩薩不退轉記大精進根)과: 일체 보살의 불퇴전 수기 받는 대정진근과
요지일체불법금강계근(了知一切佛法金剛界根)과 : 일체불법을 요지하는 금강계근과
일체여래지혜광조금강염근(一切如來智慧光照金剛焰根)과 : 일체 여래 지혜로 광조하는 금강염근과
*
분별일체제근자재근(分別一切諸根自在根)과 : 일체 제근을 분별하는 자재한 근과
안립무량중생어일체지근(安立無量衆生於一切智根)과 : 무량중생을 일체 지혜에 편안히 세우는 근과
무변광대근(無邊廣大根)과: 무변광대한 근과
일체원만근(一切圓滿根)과 : 일체 원만근과
청정무애근(淸淨無礙根)하니라 : 청정 무애근을 얻느니라. 부지런히 닦느니라. 근수, 청정무애근을 부지런히 닦느니라.
바, 神通力三業의 一願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修普賢行하야 得一切菩薩神力하나니 所謂無量廣大力神力과 無量自在智神力과 不動其身하고 普現一切佛刹神力과 無礙不斷自在神力과 普攝一切佛刹하야 置於一處神力과 一身이 遍滿一切佛刹神力과 無礙解脫遊戲神力과 無所作一念自在神力과 住無性無依神力과 一毛孔中에 次第安立不可說世界하고 遍遊法界諸佛道場하야 示諸衆生하야 皆令得入大智慧門神力이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행을 닦아 일체 보살의 신통력을 얻느니라. 이른바 한량없이 광대한 힘의 신통력과 한량없이 자재한 지혜의 신통력과 몸을 움직이지 않고 모든 부처님 세계에 널리 나타내는 신통력이니라.
걸림 없고 끊임없이 자재한 신통력과 모든 부처님 세계를 두루 거두어 한 곳에 두는 신통력과 한 몸이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득 차는 신통력과 걸림 없는 해탈로 유희하는 신통력과 짓는 일이 없이 한 생각에 자재한 신통력이니라.
성품이 없고 의지할 데 없는 머무는 신통력과 한 모공(毛孔)에서 말할 수 없는 세계를 차례로 정돈하여 두고[安立] 법계의 여러 부처님 도량에 두루 다니면서 모든 중생에게 보이어 큰 지혜의 문에 들어가게 하는 신통력이니라.”
*
신통력삼업(神通力三業)의 일원(一願)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수보현행(修普賢行)하야 : 보현행을 닦아서
득일체보살신력(得一切菩薩神力)하나니 : 일체 보살 신력을 얻나니
소위무량광대력신력(所謂無量廣大力神力)과 : 이른 바 무량 광대력 신력과
무량자재지신력(無量自在智神力)과 : 무량자재지 신력과
부동기신(不動其身)하고 : 그 몸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보현일체불찰신력(普現一切佛刹神力)과 : 일체 불찰에 널리 나타나는 신력과
*
무애부단자재신력(無礙不斷自在神力)과 :걸림없고 끊어지지 않는 자재신력과
보섭일체불찰(普攝一切佛刹)하야 : 일체 불찰을 보섭해서 널리 섭해서
치어일처신력(置於一處神力)과 : 일처에 두는 신력과, 모든 세계를 한 곳에 갖다 두는 신통력과
일신(一身)이 : 일신이
변만일체불찰신력(遍滿一切佛刹神力)과 : 일체 불찰에 두루하는, 한 몸이 일체세계에 꽉차버리는 신력과, 우선은 당장에 필요한 신력이다. 바쁜 일이 아무리 많아도 서울서도 법회하고 대구서도 법회하고 동시에 여기서도 법회하고 열 곳 스무 곳 할 것 없이 다 나타나서 법회 하는 것이다. 일신이 변만일체불찰신력과
무애해탈유희신력(無礙解脫遊戲神力)과 : 무애 해탈 유희신력과
무소작일념자재신력(無所作一念自在神力)과: 지은 바 없는 일념 자재신력과
*
주무성무의신력(住無性無依神力)과 : 무성 무의에 머무는 고정된 성품도 없고 의지할 바도 없는 데 머무는 신력과
일모공중(一毛孔中)에 : 일모공 가운데
차제안립불가설세계(次第安立不可說世界)하고 : 차제로 불가설 세계를 안립하고,이것은 한 술 더 뜬다. 한 몸이 일체 불찰에 두루하는 정도가 아니고 한 모공에 불가설 세계를 세우는 것이다.
변유법계제불도량(遍遊法界諸佛道場)하야 : 변유 법계 제불 도량에 두루두루 노닐어
시제중생(示諸衆生)하야 : 모든 중생에게 보여서
개령득입대지혜문신력(皆令得入大智慧門神力)이니라: 다 대지혜 문에 들어가게 하는 신력이니라. 참 대단한 신력이다.
(8) 相卽相入의 重重德
가, 入普賢門의 三願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入普賢門하야 生菩薩行하야 以自在智로 於一念頃에 普入無量諸佛國土하야 一身이 容受無量佛刹하고 獲能嚴淨佛國土智하야 恒以智慧로 觀見無邊諸佛國土하야
永不發起二乘之心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修普賢方便行하야 入智慧境界하야 生如來家하야 住菩薩道하고 具足不可說不可說無量不思議殊勝心하야 行無量願호대 未曾休息하야 了知三世一切法界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成就普賢淸淨法門하야 於一毛端量處에 悉包容盡虛空遍法界不可說不可說一切國土하야 皆使明見하고 如一毛端量處하야 徧法界虛空界一一毛端量處에도 悉亦如是하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문에 들어가서 보살의 행을 내어 자재한 지혜로 잠깐 동안에 한량없는 부처님의 국토에 들어가고, 한 몸에 한량없는 부처님의 세계를 용납하여 들이며,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장엄하는 지혜를 얻고, 항상 지혜로써 그지없는 부처님의 국토를 관찰하며, 영원히 이승(二乘)의 마음을 내지 아니하느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방편행을 닦아 지혜의 경계에 들어가고, 여래의 가문에 태어나서 보살의 도(道)에 머물며,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무량하고 부사의한 수승한 마음을 구족하며, 한량없는 서원을 행하여 잠깐도 쉬지 아니하고 삼세(三世)의 일체 법계를 아느니라.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의 청정한 법문을 성취하여 한 털끝만 한 곳에 온 허공과 법계에 있는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국토를 다 포용하여 모두 분명히 보게 하며, 한 털끝만 한 곳에서와 같이 온 법계 허공계의 낱낱 털끝만 한 곳에서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중중덕(重重德)
*
상즉상입(相卽相入) 이것도 화엄경의 전매특허다. 불교에서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에서부터 즉자를 만나기 시작해서 화엄경에까지 상즉상입, 즉(卽)자가 왔다.
이 즉자는 ‘속해 있다’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손에 손가락이 있다’는 이치다.
손에 손가락이 있는 것이 즉자다.
그래서 색즉시공이라고 하면 색이 곧 공이다. 그대로 손에 손가락이 있는 것과 같다.
손 하면 손가락이 자동으로 거기에 포함되어 있고 손가락 하면 손이 자동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 색즉시공에는 색(사물)하면 사물에 공이 자동으로 포함된다. 공즉시색하면 공하면 사물이 자동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노력한다고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그대로 포함된다.
그래서 이 컵도 이미 깨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확실하게 알고 사용하라. 이미 깨어져서 못 쓰는 컵인 줄 알고 사용하라. 이것이 색즉시공이다.
우리 몸으로 보면 이미 죽어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간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히 알고 누리라는 말이다. 그렇게 알고 사용하라. 그러면 지금 사는 것이 덤이고 공짜다.
이런 것이 철저히 내 마음에 계합만 되었다면 언제 가도 괜찮은 것이다. 삶이 덤이고 공짜다.
예를 들어 월급외에 보너스를 타면 인심도 푹푹 쓴다.
그런데 그 사실 하나 철저히 알기가 쉽지가 않다.
또 십현문에서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법은 서로서로 다 연결되어서 자유자재하다는 뜻이다.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에 대해서도 청량스님은 ‘십신역연이상작(十身歷然而相作)하고 육위불난이갱수(六位不亂而更收)라’고 표현하였다.
십신 하면 중생신 국토신 업보신 성문신 연각신 독각신 여래신 법신 허공신 이런 것인데 그것이 전부 하나다. 우리 자신 속에 이미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업보다 중생이다 성문이다 연각이다 보살이다 부처다 하는 것이 내 한 몸속에 이미 갖춰져 있다. 그것이 따로 따로 필요할 때는 그렇게 나눠져서 십신역연(十身歷然)이다. 분명하게 나눠질 수도 있지만 서로서로 그것이 작용을 한다.
우리는 하루 가운데도 중생 노릇을 할 때는 중생노릇을 하고 동물 노릇을 할 때는 멀쩡한 사람이 동물이 되기도 한다. 또 어떨 때는 떡 앉아서 점잖은 부처도 된다.
나만 그런가?
하루 가운데 무슨 동물도 됐다가 점잖은 부처도 됐다가 보살도 됐다가 아주 에고이스트가 되어서 나만 알고 남은 돌아보지도 않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십신이 역연상작이다. 우리는 이미 열 가지 몸을 다 갖추고 있다. 육위불난이 갱수다. 육위는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 묘각을 육위라고 한다. 십신까지 다 쳐도 좋다. 그 모든 것이 어지럽지 아니하면서 또 그것이 하나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즉해 있다고 한다. 제법상즉자재문이라. 서로 즉해 있어서 자유자재한다. 너무 고집스럽게 지위를 나누는 것은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걸 싹 무시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 한 살은 어디까지나 한 살이고 두 살은 어디까지나 두 살이고 청년은 어디까지나 청년이고 장년은 장년이고 노년은 노년이다. 그러면서도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 속에 그 모든 것이 다 무르녹아서 모두 포함되어 버린다.
청년이다 장애인이다 어린아이다 아무 것도 따질 것이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화엄경의 안목은 그렇게 본 것이다.
무상하다 공하다 무슨 인연의 도리다 이런 것은 초등학생들이 보는 견해이고, 화엄경에서는 중생이다 국토다 하는 것이 내 한 몸 가운데 모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부처로 나갈 인연이 되면 부처로 출현하고, 중생으로 출현할 때는 중생으로 출현하고 누구하고 아수라가 되어서 꼭 싸워야 할 때는 아수라로 출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그렇게 살고 있다.
간혹 아수라도 되고 축생도 되고 그러다가 부처도 되기도 하고 보살도 되기도 하고 그렇게 산다. 화엄경의 안목은 그렇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화엄경의 견해는 인생을 무상하다고 하지 않는다. 모두 하나로 싸잡아 보면서 낱낱 하나의 독립된 자체를 충분히 살린다. 그것이 여기 상즉상입이다. 화엄경의 이치는 이 십현문을 가지고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된다.
그것이 화엄경에서 보는 안목이다. 이 세상 사물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고 인생이 그렇고 모든 것이 그렇다. 그런 것은 억지로 만든 것이 절대 아니다. 사사무애라는 것이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고 화엄경의 안목으로 보면 우리가 모두 그렇게 되어 있다. 이미 사사무애다.
제법상즉자재문도 사사무애를 표현하는 한 가지 시각이다.
화엄경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나 사물이나 세상이 다 그렇게 보인다.
제대로 이해만 한다면 화엄경의 안목이 고준하고 뛰어난 것이다.
‘화엄경은 상즉상입으로 보는구나’ 한 사람이 축생도 됐다가 아수라도 됐다가 부처도 됐다가 보살도 됐다가 중생도 되고 국토도 되고 업보도 되고 성문 연각 독각 별별 십신이 되는 것이다. 어디 십신 뿐이겠는가, 백신도 된다. 그것을 청량스님이 ‘십신역연이상작(十身歷然而相作)’이라고 멋지게 해석했다.
오늘 마침 염화실지가 100차이다. 이 책상도 100개다. 그래서 내가 책상을 딴 데 놓지 말고 100개를 아귀 맞춰서 놓으라고 하였다. 열 개 열 개 딱 백이다.
화엄경은 전부 십십 법문이다. 십은 원만을 나타낸다. 본래 우리 인생은 원만하다.그래서 원만하게 살 줄 아면 되는 것이다. 본래 우리는 원만한 존재인데 거기에 우리 아집 아견 아애 아만 이런 것이 개재가 되어서 원만하게 못살 뿐이다.
화엄경은 십십 법문이라서 전부 열로 나가는데 열두 개 열 세 개도 열이라고 하고 아홉 개도 열이라고 해 버린다. 그 열이라고 하는 것이 화엄의 도리고 화엄의 안목에서 인생을 보는 안목이다. 화엄경을 알고 보면 간단하다. 그 열쇠는 아주 간단하다.
그 열쇠하나면 다 풀리는 것이다.
*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중중덕(重重德)이라. 서로 즉해 있다. 축생도 내 한 몸에 즉해 있고 아수라도 내 한 몸에 즉해 있고 도 내 한 몸에 즉해 있고 성문 연각 보살 여래 허공 법신까지도 내 한 몸에 즉해 있다. 그것이 십신, 열 가지 몸이다. 다 나하고 연결되어서 손의 손가락과 같은 것이다.
누가 길가다가 아수라 짓을 하고 축생 짓을 하는 것을 보고 ‘아이고 저거 나도 저랬는데’‘나도 간혹은 저럴 수가 있는데’‘내 몸에도 저런 요소가 있는데’‘나 한테도 저런 요소가 있는데’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다.
*
입보현문(入普賢門)의 삼원(三願)
*
보현문에 들어가는 삼원이라. 화엄경 공부를 해보면 참 중중 중중 중 아니라 할까봐 중중 중중 그리고 무진 무진 끊임없이 중중 중중하고 무진 무진하다.
이것을 청량스님은‘법문중첩(法門重疊)은 약운기장공(若雲起長空)’이라고 표현했다.
법문이 중첩되는 것이 마치 저 하늘에서 구름이 무엿무엿 일어나는 것과 같이 화엄경법문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연 청량스님이다.
다음 달에 대방광불화엄경강설 이세간품을 나눠드릴텐데, 거기에는 ‘운흥이백문(雲興二百問)에 병사이천답(甁瀉二千答)이라’ 구름이 일듯이 이백 가지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 붓는데 이천답을 한다고 나와 있다. 질문을 어떻게 다 외웠는지 낱낱이 답을 하는데 ‘오냐 잘 됐다’ 하고 한 가지 질문에 열 개씩 답을 해버려서 답이 이천 답이 된 것이다.
법문이 중중 중중해서 여름날 구름이 일듯이 이어진다. 그런 구름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가 어렵다. 평원이 드넓은 인도에 가서 봐야 실감이 난다. 인도의 우기에 구름이 무엿무엿 몰려올 때는 몇 겁인지도 모르는 구름들이 손에 잡힐 듯이 몰려온다.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입보현문(入普賢門)하야 : 보현문에 들어가서
생보살행(生菩薩行)하야 : 보살행을 내어서
이자재지(以自在智)로 : 자재한 지혜로써
어일념경(於一念頃)에 : 일념 경에 한 생각 사이에
보입무량제불국토(普入無量諸佛國土)하야 : 무량제불 국토에 널리 들어간다. 오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고 한 순간에 한량없는 제불국토에 널리 들어가서
일신(一身)이: 한 몸이
용수무량불찰(容受無量佛刹)하고 : 한량없는 불찰을 수용한다. 이것이 일다무애다.
앞에서 ‘일다무애(一多無碍)는 등허실지천등(等虛室之千燈)’이라고 하였다. 한 몸이 무량 불찰을 수용한다. 나 한 사람이 여기에 있는 백 명, 이 백 명을 다 수용하고 다 서로 이해한다. 서로서로 조화를 이루고 융화한다. 우리는 본래 그렇게 존재한다. 우리가 올바른 소견을 가졌을 때는 이런 모습이다. 그런데 아견 아애 아집 이런 것 때문에 틈이 생겨서 그렇게 살지를 못한다.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운동이 바로 화엄경 운동이다. 화엄경의 견해를 딱 던져놓고 이것이
획능엄정불국토지(獲能嚴淨佛國土智)하야 : 능히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는 지혜를 얻어서
항이지혜(恒以智慧)로 : 항상 지혜로써
관견무변제불국토(觀見無邊諸佛國土)하야 : 무변 제불국토를 잘 살펴서
영불발기이승지심(永不發起二乘之心)하며 : 영원히 이승의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한다.
화엄경은 성문 연각 소승들을 배척을 하면서도 수용하고, 수용하면서도 또 이렇게 배척하는 말을 한다. 근본적으로 대승불교는 소승불교를 배척한다. 배척하면서도 사실은 감싸면서 회심하도록 하는 것이다.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또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수보현방편행(修普賢方便行)하야 : 보현의 방편행을 닦아서
입지혜경계(入智慧境界)하야 : 지혜의 경계에 들어가서
생여래가(生如來家)하야 : 여래가에 태어나서
주보살도(住菩薩道)하고 : 보살도에 머물고
구족불가설불가설무량부사의수승심(具足不可說不可說無量不思議殊勝心)하야 : 가히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한량없는 부사의한 수승한 마음을 구족해서
행무량원(行無量願)호대 : 무량한 원을 행하되
미증휴식(未曾休息)하야 : 일찍이 휴식하지 아니해서
요지삼세일체법계(了知三世一切法界)하며 : 삼세 일체 법계를 요지하며 환하게 다 알며
*
이무착무박해탈심(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 무착 무박 해탈심으로
성취보현청정법문(成就普賢淸淨法門)하야 : 보현의 청정 법문을 성취해서
어일모단량처(於一毛端量處)에 : 한 터럭 끝 정도 되는 곳에서
실포용진허공변법계불가설불가설일체국토(悉包容盡虛空遍法界不可說不可說一切國土)하야: 진허공 변법계 불가설 불가설 일체 국토를 다 포용한다. 한 터럭 끝에서 다 포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고 하는데 십현문으로 이야기 하자면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이다. 좁고 넓은 것이 자유자재 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본래 그렇게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을 망각하고 산다.
그것을 청량스님은 ‘광대즉입어무간(廣大卽入於無間)이요 진모포납이무외(塵毛包納而無外)다’라고 표현하였다. 넓은 입장으로 볼 것 같으면 사이가 없는 정도의 작은 곳에까지 그 넓은 것이 들어간다. 그야말로 인허진(隣虛塵)이다. 불교에서는 가장 작은 물질의 단위를 허공과 가장 가까운 먼지라고 해서 인허진이라고 한다. 인허진 다음은 바로 허공이다.
요즘 과학계에서는 분자니 원자니 쿼크니 뭐니 새로운 용어를 자꾸 지어낸다. 가장 작은 물질을 발견해도 거기에서 또 더 작은 물질로 분화가 되니까 그 작은 물질의 이름을 새로 지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별별 이름을 자꾸 지어낸다.
불교에서는 일찍이 그것을 인허진이라고 했다. 인허진 다음에는 없는 것이다. 허공이다. 참 완벽한 표현이다. 인허진이라고 하는 그렇게 작은 것 안에 광대한 세계가 다 들어간다. 그리고 진모포납이무외(塵毛包納而無外)다. 그 작은 먼지가 무외, 바깥이 없는 것까지도 다 에워싼다. 요즘 과학자들은 저 다중 우주 끝에 뭐가 어떻다 하는 소리들을 한다. 뭔가가 우주를 에워싸고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은하계 억만 개를 에워싸고 있는 범위를 설정했다 하면 그 에워싸고 있는 바깥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억만 개 은하계를 내 주먹만 하게 했다고 하면 주먹 밖의 또 공간이 있다. 그 끝을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불교에서는 가장 큰 것을 ‘밖이 없다’고 무외(無外)라고 하였다. 툭 터진 깨달은 사람의 표현은 세상 사람들의 머리로 망상으로 짜낸 표현과는 천양지차다. 그 작은 먼지가 그런 바깥이 없는 정도로 큰 것까지도 다 에워싼다. 그렇게 넓고 큰 것이 자유자재하다.
우리도 본래는 그렇게 살도록 되어 있다. 우리 존재는 본래 그런 것을 다 수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그렇게 수용을 못해서 계속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킨다.
끊임없이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전부 자기 중심으로 자기 계산에 이해가 맞아 떨어지느냐 안맞느냐로 계산을 하는데 그렇게 하면 끝날 날이 없다.
보현 청정 법문을 성취해서 일모단처에서 진허공 변법계 불가설 불가설 일체 국토를 다 포용해서
개사명견(皆使明見)하고 : 다 하여금 밝게 보고
여일모단량처(如一毛端量處)하야 : 일모단의 한량 그 양의 곳에서와 같이
변법계허공계일일모단량처(遍法界虛空界一一毛端量處)에도 : 변법계 허공계 낱낱 모단의 양처에서 모단 터럭 끝 그곳에서
실역여시(悉亦如是)하니라: 실역여시다. 다 그렇다. 어느 한 특정한 모단만 그렇게 하면 안맞는 말이다. 모든 모단에 다 변법계 허공계를 다 에워싸는 것이다. 무외 바깥이 없는 정도로 큰 것을 다 에워쌀 수가 있다.
|
첫댓글 고맙습니다. _()()()_
00000000000000
고맙습니다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萬金價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