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 후유증
조수현
주말부부가 끝났다. 2년간 타 시도 근무를 마친 남편이 대전으로 돌아온단다. 낯선 도시에서 항문농양까지 얻으며 일벌레로 살아낸 대가가 승진이 아니라 고작 연고지 복귀라는 게 씁쓸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남편의 연락을 받자마자 나는 전복, 고기, 채소를 듬뿍 채워 온라인 장보기를 했다. 오후 5시에 올라온 발령 공고를 확인한 즉시 짐을 싼 남편은 다음날 재빠르게 후임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마치고 그날 늦은 밤 기어이 집에 왔다.
저녁에 남편이 집에 있는 삶이라니! 이제 평일 회식에 불참하는 사유를 구구절절 말할 필요가 없고, 어린 딸을 낚아채듯 하원시킨 후 급히 차를 몰아 연수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 겨울 빨래 쌓아두듯 토요일로 미뤄둔 모든 모임과 약속을 평일 저녁으로 잡을 수 있다. 그동안 두 집 살림하면서 생긴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낭비를 줄일 수 있겠구나. 야호!
대전회사 출근 전 이틀 휴가를 낸 남편과 평일 오전에 백화점 지하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오후에는 예쁜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딸아이를 하원시켰고, 나는 장을 봐와서 저녁을 차렸다. 완벽한 가족이라 말하기 아쉬웠던 퍼즐의 한 조각을 찾아 완성한 느낌이 들었다. 심장이 뻐근했다. 하지만 이런 환상은 남편이 대전 지점에 출근한 지 이틀 만에 산산조각 났다.
저녁 9시. 평소처럼 딸아이와 함께 책상에 앉았다. 덧셈 몇 개, 우리말 읽기 학습지 한쪽. 집중하면 금방 끝낼 수 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평소와 달리 딸은 피곤한 표정으로 미적거리더니 급기야 내일 하면 안 되느냐며 울기 시작했다. 맘껏 놀았으면 이제 해야 할 공부도 조금은 해야지! 라며 큰소리를 내던 찰나, 공원 걷기를 마친 남편이 집에 들어왔다.
“가만히 보면 일의 우선순위가 없어. 나 운동 다녀올 동안 뭘 한 거야? 설거지가 중요하게 아니라 아이 관련된 것 먼저 하고 일찍 재우는 게 순서 아냐?. 피곤하고 힘들다는데 당신 할 일 다 하고 뒤늦게 아이 책상에 앉혀놓고 뭐 하자는 건데”
“미친”
반사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들었을까? 설마 못 들었을 거야.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꼬맹이가 남편을 향해 큰 소리로 말한다.
“아빠~! 엄마가 아빠에게 미친 이래.”
‘뚜껑이 열린다’는 말은 추상적 표현이 아니구나! 그때 난 처음 깨달았다. 주중에 혼자 딸아이를 돌보며 마음 졸이고 동동거렸던 시간. 새벽 6시에 기상해서 12시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며 살아온 나다. 주중에 오롯이 홀로 육아를 담당하며 온갖 수고를 해온 지난 2년을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자 눈앞이 흐려졌다. 채점하려고 색연필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편, 아이 교육의 책임이 전적으로 내게 있다고 믿으며 평가 판단하는 말투도 재수 없었다. 딸과 나는 주중에 서로를 의지하며 모종의 규칙에 따라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공부하기 싫어서 부리는 아이의 짜증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잘 달래면 금세 주어진 과제를 마치고 기분이 좋아질 것이었다. 남편이 불쑥 튀어나와 지적하는 말만 안 했다면.
나라고 속이 없겠는가. 대전 복귀의 반가움은 하루 이틀도 안되어 사라졌다. 아침 출근길 마스크를 뜯거나 약을 먹고 난 쓰레기를 휴지통에 제대로 버리지 않고 위에 살짝 얹어 놓는 것, 샤워 후 욕실 뒷정리를 안 하거나 욕실 문에 튀긴 물을 닦지 않는 것, 잠들기 전까지 1~2시간 정치나 야구 관련 유튜브를 보는 것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주중에 혼자 지낼 때나 할 수 있는 행동을 집에 와서도 하고 있다니. 뜯어고쳐야 할 이기적인 주중 미혼 습관에 대해 언제 말할까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도리어 나를 먼저 지적하다니. 분하다.
냉랭한 분위기로 다음 날 아침 남편이 출근했다. 공교롭게 남편과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남편을 둔 직장 선배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어제 있었던 일을 구구절절 털어놓았다. 중간중간
“그 느낌 알겠어.”
라고 호응해 주던 선배가 이야기를 다 듣고 해준 말은 “시간”이었다. 주중에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의 시간이 쌓여야 한다고. 주말부부 이후 결합 역시 시간이 약이란다.
‘아 그렇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주말부부로 떨어져 지내오는 동안 벌어진 틈을 메우는 시간. 그것은 갈등, 부부싸움, 잔소리, 짜증과 지적 등 다양한 이름을 불릴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필요하고 그것을 견뎌낼 때 비로소 온전한 가족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겠구나. 남편과 주말부부를 끝내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구나. 이것은 결혼생활의 기초, 아니 기본 상식 아닌가? 물리적 결합으로 완전한 가족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니. 이 얼마나 성급하고 어리석은 생각인가? 선배와 통화를 마치고 깨달음의 감동이 사라질세라 남편에게 사과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도 얼른 사과 답장을 해 왔고 냉전은 금방 끝났다.
그날 이후 소소한 투덕거림은 있지만 더 이상 집에서 큰소리가 나지 않는다. 주말부부 후유증이 남지 않도록 서로 애쓰고 있다. 무심코 나오려는 지적과 잔소리를 삼키고, 단어를 신중하게 골라 말하는 상대방을 보며 큰소리로 웃기도 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는 만큼 이해와 배려도 깊어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