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와 금기담에 나타난 남성 우월
신화와 종교에서 나타나는 남성다움이 보편적인 남성의 특질을 규정한다면 유교는 한국의 특수성을 만들어 냈다. 유교는 집약 농업적 생산 양식을 경제적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의 국가 통치 이념이었다. 집약 농업은 일정 기간에 집중적인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협력이 강조 되었고, 남녀의 성 역할 구분이 뚜렷해서 남자는 생산자로서 그 위치가 커지고 여성은 어머니로서 출산과 양육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이 시기에는 근본적으로 친족 중심적이며 수직적인 인간 관계가 이루어졌고, 국가 조직은 친족 집단 연장자가 행하던 권위가 확대되어 남성 중심적 연대를 강화했다. 따라서 남성은 국가에 대한 일정한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었다. 피지배 집단 남성도 한 집안의 대표자였고, 남성적 가치를 평가받았다. 그러나 여성은 비주체적인 존재로 권력을 통합하기 위한 혼인 동맹의 매개물로 이용되었고 생산물에 대한 권리와 성인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고, 생산 능력조차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유교적 덕치주의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한 양반들은 필연적으로 현세적이고 실용적인 가치관의 유교를 신성시했으며, 유교는 생활의 원리이자 행동의 규범으로 강조되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 양반층이 비대해지자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유교 윤리를 더욱 형식화하였고, 양반들은 문중 중심의 조직과 기존의 득세 가문끼리 뭉쳐 신분 확보를 꾀했다. 17세기 이후에 일반화되기 시작한 족보 간행, 서원과 향약을 중심으로 한 배타적 결사체의 활성화, 동족 부락의 형성은 이러한 양반 지배 질서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순수한 부계 혈통을 확보하고 가부장권을 강화하는 과정이었다.
그 실례로 가족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내던 윤회 봉사가 장자에게 넘어갔고 남녀가 똑같이 재산을 상속받던 것도 장자를 우대하고 남녀를 차별하여 상속하게 되었다. 족보도 형제 서열순으로 기록되던 방식이 남녀 순으로 바뀌었고, 사위와 외손의 가계도 기록되던 것이 사위와 외손의 이름만 올리는 식으로 변화하여 딸은 출가 외인이라는 의식이 강해졌다.
결국 유교적인 가부장제의 핵심적 이데올로기는 남성은 가정의 중심이 되고 여성은 집에서는 아버지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좇는 삼종지도로 집약되었다. 또한 남녀 칠세 부동석, 사랑채와 안채의 분리, 여자와 남자가 함께 상을 받지 못하는 관습, 바깥 양반과 안사람 구분 등 남녀를 격리시켰다. 소학의 내칙에서는
"일곱살이 되면 사내 아이와 계집 아이가 자리를 같이 하지 않게 하며 함께 먹지 않게 한다. 열 살이 되면 바깥 스승에게 나아가 배워서 바깥방에 거처하고 잠자며 글씨와 셈을 배우게 한다"
고 하였다. 사소절에서는
"남자가 오래 집안에 거처하면서 자주 규방에 들면 행동에 실수가 많고 명령이 잘 행해지지 않는다"
고 경계할 정도였다.
(안으로 네 가지 마음가짐(사단: 어질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롭고)과 밖으로 아홉 가지 몸가짐(구용: 발은 무겁게, 손은 공손하게, 입은 신중하게, 소리는 고요하게, 머리는 똑바르게, 숨소리는 고르게, 설 때는 의젓하게, 낯빛은 단정하게) 및 다섯 가지 떳떳한 윤리(오품: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임금과 신하의 의리, 남편과 아내의 분별, 어른과 어린이의 질서, 벗과 벗의 믿음)는 하늘이 마련한 근본 도리여서, 이를 잘 닦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어기면 곧 훌륭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이처럼 남자가 갖추어야 할 성품과 행실을 통해 남성을 군자와 소인으로 나누었다. 군자는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고 소인은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남성의 이상형이 바로 군자였다.
군자 소인
사람의 도리를 안다. 사람의 도리를 깨닫지 못한다.
덕과 대의를 생각한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두루 통하고 공정하다. 편파적이다.
참고 견딘다.
마음이 평정하고 너그럽다. 항상 겁내고 두려워한다.
배불리 먹고 편한것을 구하지 않으며 일에 민첩하고 말은 신중하며 도를 좇아 바르게 고치고 배우기를 좋아한다. 경망하고 은혜받기를 좋아한다.
남자는 군자가 될 수 있다. 여자는 소인이므로 남자의 가르침에 따른다.
군자는 소인을 가르치고 이끈다.
이러한 남성다움은 명분적이고 문사 중심적이어서 자연히 육체 노동을 천시하였다. 대부분의 육체 노동은 남성답지 못한 사람에 속한 소인과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은 양반이라 해도 군자의 도를 익히고 체면을 지키느라 실생활에 무능했던 남성 대신 농사나 품팔이 등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결국 이 시대의 남성다움은 상하 위계 질서를 나타내는 가부장제와 신분제가 결합되어 나타났다.
유교 윤리는 특히 금기담을 통해 일반적인 사회 풍습과 윤리에 적용되어 지방 구석구석으로 퍼져 상민에게까지 확산되었다. 비유의 기능을 가진 속담과 마찬가지로 금기담은 일상 생활을 규제하고 통제하여 은연중에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남성에 대한 금기담은 주로 남자의 우월감을 담아 의젓하고 체통을 지키게 하는 내용이다. 특히 여성에게 남자의 존귀함을 알게 하고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기담에 보이는 남성다움은 크게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성이 여성보다 신체적으로 강함을 나타낸 금기담
남자는 죽어도 전장에 가서 죽어라.
남자는 배짱, 여자는 절개
둘째, 남성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금기담
장닭이 울어야 날이 샌다.
아내 행실은 다홍치마 때부터 버릇을 가르쳐 휘어잡아야 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눌리면 집안이 망한다.
남아 일언 중천금
사내 아이가 열다섯이면 호패를 찬다. (남자 나이 열다섯이면 한 사람 몫의 자격이 있으니 떳떳한 구실을 한다)
남자가 셋이 모이면 없는 게 없다
셋째, 남성들의 여성적 외모나 행위를 금하는 내용의 금기담.
남자가 빨래를 널면 재수 없다.
사내가 부뚜막 맛을 알면 계집을 못 거느린다.
남자가 여자 옷을 입으면 출세하지 못한다.
남자가 바가지로 물을 떠먹으면 수염이 나지 않는다.
넷째, 여자에게 남자의 존귀함을 알리는 금기담.
남자는 떡의 귀를 먹지 않는다.
남자의 옷으로 걸레를 만들지 않는다.
남자가 길을 떠날 때 여자가 앞을 가로질러 가면 재수가 없다.
남자가 바가지에 밥을 담아 먹으면 가난해진다.
남자가 밥상 귀퉁이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 출세를 못 한다.
이러한 금기담은 가부장제 역사와 더불어 우리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와 있어서 아무런 비판이나 반대하는 태도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불가피하게 남성과 여성의 행동을 제약한다. 특히 유교 전통의 영향으로 남녀 차별이 음양의 원리인 것으로 여겨졌다. 즉 음인 여자가 양인 남자를 따르며 그것이 땅이 하늘을 따르는 자연의 이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원래 우주의 원리인 음양은 빛과 어둠, 남성과 여성, 여름과 겨울, 죽음과 삶 등 중국 만다라를 의미했다. 그림처럼 검은 물고기 무늬에 흰 점이 있고 흰 물고기 무늬 안의 검은 점이 있는 음양 이미지는 상하 개념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상대적이면서 좌우 대칭의 동등한 원리를 나타낸다. 또한 이 음양 이미지는 남성과 여성은 각각 하나의 우주로서 남성적 특징과 여성적 특징을 고루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유교적 남녀 차별 문화가 완성된 주역에 와서 음양의 원리는 상하, 지배 피지배 관계로 바뀌어 남녀 차별을 거역할 수 없는 천도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조선 시대에 유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우리나라 사람의 의식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주 만물은 음양의 적절한 배합과 유전에 따라 형성되며 남녀의 교합이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
여성과 남성은 각각 음과 양의 원리를 드러내는 상징이며 이 양자는 결코 뒤섞일 수 없다. 그러면서도 이 둘은 하나만으로는 성립될 수 없는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에 동등하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