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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9:29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는가? 아니, 죽은 자도 말하고, 방향을 가리키고, 소리 없는 음성으로 부릅니다.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를 보며 손짓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그 무대에 곧 합류할 자로서 후손에게 남겨야할 것은 무엇인가? 공주야! 열 두 아들들에게 모두 축복한 후 야곱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죽으면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묻어달라고 유언한다. 그 굴에는 이미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레아가 묻혀 있다.
Does the dead disappear without words, leaving nothing behind? No, the dead also speak, point in direction, and call in a silent voice. Cloudy witnesses are beckoning us and calling us. What should we leave to future generations as soon to join the stage? Princess! After blessing all 12 of his sons, Jacob will once again say, If he dies, bury him in the cave of Makbella, the land of Canaan. Abraham and Sarah, Isaac and Livga, and Leah are already buried in the c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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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톨레돗으로 만들어진 휴먼드라마가 이제 종영만을 남겨 둔 채 마지막 약전의 주인공 야곱이 오늘 그의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 짓는 순간이다. 그는 두 번씩이나 그 땅은 아브라함이 합법적으로 값을 치르고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산 매장지임을 강조한다. 앞으로 받을 기업의 보증이며 양도할 수 없는 재산인 이 막벨라 굴에 묻히겠다는 것은 마치 “약속의 땅에 먼저 가서 기다릴 테니 별처럼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이루면 그때 오거라”하고 말하는 듯하다.
It is the moment when Jacob, the protagonist of the last medicine contest, ends his turbulent life today, with only the end of the human drama made of 10 Toledots. Twice, he stresses that the land is a burial ground that Abraham legally paid for and bought from Ebron the Het man. To be buried in this Makbella cave, which is a corporate guarantee and inalienable property to receive in the future, seems to say, "I will go to the promised land first and wait, so if you make many offspring like sand like stars, come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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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꼭 남겨야 할 유언은 바로 죽음이 끝이 되지 않게 하는 천국의 산 소망이 아니겠는가? 어머니의 태를 치고 나오고(25:22-26), 속임수를 써서 하나님의 약속을 차지하려고 했던(25:29-34)야곱이 영원한 약속 안에서 평안히 제국의 존경을 받으며 떠나고 있다. 나중 된 자로 늘 목말라 집착하고 속이고 속는 삶을 쉼 없이 살았던 그가 바로에게조차 존경을 받으며 죽음으로써 먼저 된 자로 회복 되고 있다.
Isn't the will that must be left alive not the end of death a living wish in heaven? Jacob, who came out of his mother's womb (25:22-26) and tried to take over God's promise by deception (25:29-34), is leaving peacefully respected by the empire in his eternal promise. As a later man, he has always lived a life of thirst, obsession, deception, and deception, and non-stop, and he is recovering as the first man by dying with respect even from Phara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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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 주는 죽음 너머의 희망을 붙잡는 믿음 위에 하나님께서 벌써부터 내리기 시작한 영생과 복의 상징이다. 요셉은 바로에게 야곱의 유언을 전하며 가나안에 아버지를 묻고 돌아올 수 있도록 허락을 받는다. 병거와 기병의 호위를 받으며, 마치 출애굽의 경로를 예견하듯 빠른 길을 놔두고 시내반도를 가로질러 가데스바네야를 거친 후 사해 동편으로 북진하고, 여기서 요단강을 건너 헤브론 땅에 들어간다. 약속의 땅을 향하는 야곱의 시선은 절대 애급의 안전과 번영 때문에 약속을 잊지 말고 그들의 시선을 약속의 땅에 고정시켜 살라는 최후의 말 없는 설교였다. 애급 인들이 야곱의 죽음을 슬퍼한(아벨미스라임) 이유가 무엇인가?
It is a symbol of eternal life and blessings that God has already begun to give on the belief that holds hope beyond death given by promise. Joseph delivers Jacob's will to Pharaoh and asks permission to bury his father in Canaan and return. He is escorted by soldiers and cavalry, as if foreseeing the path of Egypt, he leaves a fast path, crosses the city peninsula, passes through Kadesbaneya, and then goes north to the east of the Dead Sea, where he crosses the Jordan River and enters the land of Hebron. Jacob's gaze toward the promised land was the last wordless sermon to never forget the promise and keep their eyes fixed on the promised land because of the safety and prosperity of Egypt. What is the reason why the passionates grieved Jacob's death (Avelmisra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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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유언과 장례를 보며 우리가 남겨야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묻힐 것인가, 그냥 흙으로 끝날 것인가, 영생을 얻을 것인가?
나는 죽음을 남겨놓고 무엇을 유산으로 남길 것인가?
What should we leave behind by looking at Jacob's will and funeral?
Where am I going to be buried, will I just end up with dirt, will I get eternal?
What am I going to leave behind death and leave be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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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죽음(29-33)
a.야곱의 마지막 유언:29-32
b.야곱의 죽음:33
야곱의 장례(1-14)
a.요셉과 이집트인들의 애곡:1-3
b.요셉의 장례청원:4-6
c.장례행렬:7-9
d.아벨미스라임;10-11
e.막벨라 굴에 매장:12-13
f.이집트로 귀환: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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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들에게(29a)
명하여 가로되(29b)
내가 내 열조에게로(29c)
돌아가리니(29d)
나를(29e)
헷 사람 에브론의(29f)
밭에 있는 굴에(29g)
우리 부여조와 함께(20h)
장사하라(2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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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굴은(30a)
가나안 땅 마므레 앞(30b)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30c)
아브라함이(30d)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30e)
밭과 함께 사서(30f)
그 소유 매장지를(30g)
삼았으므로(3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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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31a)
그 아내 사라가(31b)
거기 장사되었고(3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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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과(31d)
그 아내 리브가도(31e)
거기 장사되었으며(31f)
나도 레아를(31g)
그곳에 장사하였노라(3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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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밭과(32a)
거기 있는 굴은(32b)
헷 사람에게서(32c)
산 것이니라(3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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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아들에게(33a)
명하기를 마치고(33b)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33c)
기운이 진하여(33d)
그 열조에게로(33e)
돌아갔더라(3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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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아비 얼굴에(1a)
구푸려 울며(1b)
입 맞추고(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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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2a)
향 재료로(2b)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2c)
의사가 이스라엘에게(2d)
그대로 하되(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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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일이 걸렸으니(3a)
향 재료를 넣는 데는(3b)
이 날수가 걸림이며(3c)
애급 사람들은(3d)
칠십일 동안(3e)
그를 위하여(3f)
곡 하였더라(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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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하는 기한이 지나매(4a)
요셉이(4b)
바로의 궁에 말하여(4c)
가로되 내가(4d)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4e)
청컨대 바로의 귀에 고하기를(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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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가(5a)
나로 맹세하게(5b)
하여 이르되(5c)
내가 죽거든(5d)
가나안 땅에(5e)
내가 파서 둔 묘실에(5f)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5g)
나로 올라가서(5h)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5i)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5j)
하였더니(5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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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가 가로되(6a)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6b)
올라가서(6c)
네 아비를 장사하라(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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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자기 아비를(7a)
장사하러 올라가니(7b)
바로의 모든 신하와(7c)
바로 궁의 장로들과(7d)
애급 땅의 모든 장로와(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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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온 집과(8a)
그 형제들과(8b)
그 아비의 집이(8c)
그와 함께 올라가고(8d)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8e)
양떼와 소떼만(8f)
고센 땅에 남겼으며(8g)
병거와 기병이(9a)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9b)
그 떼가 심히 컸더라(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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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요단강 건너편(10a)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10b)
거기서 크게 호곡하고(10c)
애통하며(10d)
요셉이 아비를 위하여(10e)
칠일 동안 애곡하였더니(1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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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땅 거민(11a)
가나안 백성들이(11b)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11c)
가로되 이는(11d)
애급 사람의 큰 애통이라(11e)
하였으므로(11f)
그 땅 이름을(11g)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11h)
곧 요단강 건너편이더라(1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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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아들들이(12a)
부명을 좇아(12b)
행하여(1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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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13a)
가나안 땅으로(13b)
메어다가(13c)
마므레 앞(13d)
막벨라 밭 굴에(13e)
장사하였으니(13f)
이는 아브라함이(13g)
헷 족속 에브론에게(13h)
밭과 함께 사서(13i)
소유 매장지를(13j)
삼은 곳이더라(13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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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아비를(14a)
장사한 후에(14b)
자기 형제와(14c)
호상군과 함께(14d)
애급으로 돌아왔더라(1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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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유언_Jacob's will
야곱의 죽음_Jacob's death
유언의 이행_the fulfilment of one's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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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마지막을 아벨미스라임으로 대우해 주시고 막벨라 굴에 장사지내지게 하는 감격적인 순간이나이다. 주님, 우리가 여전히 부족하고 한계가 있는데도 기필코 야곱의 예언을 이루신 실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도 야곱처럼 죽음 앞에서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It is an emotional moment to treat Jacob's end as Abel Miss Lime and bury him in the cave of Machpelah. O Lord, we praise the faithful God, who has fulfilled Jacob's prophecy, even though we are still lacking and limited. Give me grace so that I may have heavenly desires in the face of death like Jacob..
2026.5.30.sat.Clay
신학 비평//
나는 어디에 묻힐 것인가? 죽음은 끝인가, 귀환인가? 창세기 마지막 무대에 선 야곱은 자기 삶 전체로 그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죽음을 “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이라 말하지만, 성경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죽음은 침묵이 아니라 마지막 증언이며, 사라짐이 아니라 방향의 고백입니다. 야곱은 죽으면서도 여전히 후손들을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애굽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약속의 땅을 바라보라.” 야곱은 두 번씩이나 막벨라 굴의 법적 소유권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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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장례 절차가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등기부등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값을 치르고 산 그 땅은 아직 완전히 소유하지 못한 미래의 기업이었고, 야곱은 죽어서라도 그 약속 위에 눕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애굽의 총리 아버지로 죽지 않았고, 제국의 번영 속에 묻히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나는 여기 사람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가나안으로 돌아갑니다. 이 장면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평생 집착하며 살았던 사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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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 속에서 형의 발꿈치를 잡았고,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고, 아버지를 속이고, 라반에게 속고, 다시 속이며 살아왔던 인생입니다. 늘 먼저 되려 했으나 늘 불안했던 사람, 결핍과 두려움으로 흔들리던 사람, 그것이 야곱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그의 얼굴에는 집착이 아니라 평안이 남아 있습니다. 왜입니까? 자기 손으로 약속을 붙잡으려던 사람이 마침내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은혜 안에서 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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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죽음이 무너짐이 아니라 “돌아감”으로 표현됩니다. 성경은 죽음을 존재의 삭제로 말하지 않습니다. 관계의 회복이며 약속의 귀환으로 말합니다. 야곱은 흙으로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언약 안으로 들어가는 존재로 죽습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귀향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애굽 사람들이 그를 위해 70일 동안 애곡했다는 점입니다. 왜 제국이 히브리 노인을 위해 울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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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요셉의 아버지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야곱의 생애 속에서 그들은 “다른 종류의 인간”을 본 것입니다. 세상 권력을 다 가진 바로조차 축복했던 노인, 험악한 세월을 통과했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은 사람, 제국 한복판에서도 자기 영혼의 방향을 잃지 않았던 사람을 본 것입니다. 아벨미스라임. “애굽의 슬픔”이라는 이름은 참 역설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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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강한 자의 죽음보다 의미 있는 자의 죽음 앞에서 더 오래 웁니다. 야곱은 부동산이나 금은보화를 유산으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대신 “약속을 잊지 말라”는 시선을 남겼습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설교였습니다. 결국 야곱의 장례는 출애굽의 예고편처럼 보입니다. 애굽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의 백성은 결국 약속의 땅을 향해 이동하는 존재라는 것을 장례 행렬 자체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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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거와 기병이 따르고, 광야 길을 지나고, 요단 동편을 돌아 헤브론으로 들어가는 그 긴 행렬은 훗날 이스라엘 전체가 걸어갈 구원의 길을 미리 상징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결국 자기가 바라보던 곳으로 죽습니다. 돈을 바라보던 사람은 돈의 불안 속으로, 욕망을 바라보던 사람은 공허 속으로, 약속을 바라보던 사람은 소망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야곱의 유언은 단순히 “어디에 묻어 달라”가 아닙니다. “어디를 바라보며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애굽에 너무 익숙해지지 말거라. 너희의 본향은 여기보다 더 멀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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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에 묻힐 것인가?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내 죽음 이후에도 후손들에게 방향을 가리킬 만한 믿음이 내 삶에 남아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