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일
제목 광야에서 누린 행복
본문 요1:19-34
황량한 광야에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세례요한은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세례요한이 머물며 사역하던 현장은 물이 없고 더위와 추위에 시달려야 하는 거친 광야입니다. 불편으로 가득한 광야였지만, 요한은 광야에서 세 가지의 행복을 누렸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행복
구약 선지자 사무엘,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는 예수님이 올 것이란 예언은 했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선지자인 요한은 어머니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마리아의 태에 있는 예수님을 만나 기뻐 뛰어놀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예수님께 세례까지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11:11에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요한이 누린 행복은 소유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그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구속을 이루신 일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것만으로 행복이 넘쳤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입고 삽니다. 성령으로 내주하시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말씀을 주셨습니다.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도 세례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례요한보다 더 많은 특권을 입었으니 더 큰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광야입니다. 외로움, 질병,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실감 나지 않은 행복이지만, 그렇다고 행복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지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신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아직 광야였기에 행복이 실감 나지 않았지만, 행복한 자인 것처럼 우리 역시 현실은 실감 나지 않으나 행복한 자입니다. 현실은 힘들어도 예수님을 믿는 것 그 자체가 행복임을 믿으십시오. 찬송가처럼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 행복을 노래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행복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위한 사명 때문에 행복
요한이 행복했던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을 위한 사명 때문입니다. 요한은 “네가 누구냐?”라는 질문에 요1:23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요한의 행복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게 해줍니다. 요한은 자신이 주목받고 어떤 이득을 얻음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오시는 길을 준비하므로 행복했습니다. 사명을 따라 살았기에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도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삶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독일의 나치는 유대인들을 가스실에 고문하여 죽이기도 했지만, 날마다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게 하여 삶의 의욕을 잃게 하여 죽게 했습니다. 그런데 홀로코스트 생존자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기적으로 살아남습니다. 그는 수용소에서 경험했던 일을 책으로 남겼습니다. 그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저서에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수용소에서 발견한 진리는 삶은 의미 있고 목적 있음입니다. 리빙스톤은 “사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삶의 목적이 분명하므로 광야의 어려움을 버텨냈습니다.
요셉은 기근 때 식량을 구하러 온 형들을 만나 이렇게 말합니다. 창45:5 “당신들이 나를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자신 애굽에 팔려 온 것이 히브리 민족의 태반이 될 야곱의 가족 70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달았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봉사임을 알았습니다. 종살이하며 옥에 갇혔어도 자신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기에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우리도 사명을 가지고 살 때 행복합니다. 요셉과 요한은 오실 예수님을 위한 봉사였다면 우리는 오신 예수님을 위해 봉사할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을 위하여 목사나 선교사가 되어야 함은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면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일이 됩니다. 목마른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고, 주린 자에 먹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주고, 병든 자를 돌보는 것이 곧 내게 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1983년 12월 8일, 필라델피아에서 12살 된 한 소년은 수은주가 내려가 노숙자가 얼어 죽을 수 있다는 뉴스를 듣고 담요 한 장을 들고 노숙자에게 전달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도시 전역에 퍼지자 담요와 빵을 기부하고, 군부대 남은 담요와 코트를 나눔으로 그해 겨울 한 사람도 얼어 죽지 않았습니다. 담요 한 장으로 도시의 겨울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명이 있으십니까? 직업이 무엇이든, “주께 하듯” 하면 그 일이 주를 위한 봉사가 됩니다. 교회를 위해 작은 일 하나를 해도, 예수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교회당에 떨어진 휴지를 줍고, 불필요한 전등을 끄고, 주방 봉사를 함도 주께 봉사함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쓴 로렌스 형제는 수도원에서 설거지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예수님과 연관된 일을 한다면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 안에 임했으며, 행복한 자임을 믿으십시오. 사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예수님을 높임 때문에 행복
사람의 본성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세례요한은 인기를 얻었지만, 자신을 높이지 않고 예수님 높이는 것을 행복으로 삼았습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삶은 공허하지만, 예수님을 높이는 삶은 참된 기쁨을 줍니다. 요1:36-37에 보면 요한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까지도 자기 곁에 두지 않고 예수님에게 돌려 드렸습니다. 자기를 주목하는 군중들의 시선을 예수님께로 돌렸습니다. 요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1:31 세례를 베풂도 예수님을 이스라엘 가운데 나타내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는 불의한 헤롯을 꾸짖다가 옥에 갇혔고 목 베임을 당했어도 서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퇴장으로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음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요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앞세움이 요한의 행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사촌 동생이자, 어릴 때부터 친구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향해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며,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높인 것입니다. 요1:34에서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또 요1:15에서 자기가 먼저 태어났지만,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고 하므로 육신으로 오시기 전부터 계셨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높여드림을 행복으로 삼았습니다. 바울은 대단한 스펙을 가졌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자랑하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였습니다. 창조주시며, 구주이시며, 왕이신 예수님을 높임을 받음이 마땅합니다.
용인 출신 조광조 선생은 조선 중기 중종 때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었습니다. 그는 무죄함을 알고도 사약을 내린 임금을 높이는 시를 짓습니다. “임금을 어버이같이 사랑하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도다./ 밝고 밝은 햇빛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으니/ 거짓 없는 내 마음 훤하게 비춰주리라.”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죄인을 벌하지 않고 죄인이 대신하여 벌을 받고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을 얼마만큼 높여야 할까요?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계5:12-13 “죽임을 당한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더라.” 예수님을 높임이 구원받은 신자의 본분입니다. 예수님 높임을 행복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결론/요한의 행복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며, 예수님을 높인 데서 왔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 안에서 행복을 찾으십시오. 예수님 믿고, 예수님을 위해 살고, 예수님 높이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빈 들에서도 오천 명을 먹이셨던 예수님, 제자들을 거친 파도에서 구원하셨던 예수님은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힘겹게 사는 우리를 책임져 주시고 행복으로 인도하실 주실 것입니다. 행복은 예수님에게서만 나오는 줄 믿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