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숲 소리에 귀를 맡기면…‘충남 청양 칠갑산’
겨울산의 주인은 바람이다. 산길에 내려앉은 나뭇잎들, 잔바람에도 놀라 몸 뒤집으며
푸르던 숲의 기억을 서걱서걱 펼쳐보인다. 맨몸의 나무들이 찬 바람에 마음을 정갈하게 헹구는 곳. 곧 피워올릴 화려한 눈꽃잔치를 위한 새 단장의
무대다. 초겨울 산행은 그래서 무얼 보러 가기보다는 들으러 가는 일에 가깝다. 인적 뜸한 산길에서 나뭇잎들과 바람이 주고받는 고즈넉한 대화를
듣는 일이다. 충남 청양땅 칠갑산은 이런 초겨울 숲의 소리를 귀에 담아가기에 좋은 곳이다. 산길에 밟히는 낙엽이 푸짐하고, 천년고찰의 그윽한
풍경소리가 있다. 눈 쌓이면 그 소리들이 더 눈부시게 울려올 법하다.
두개의 대웅전 갖춘 고찰 장곡사
충남도 도립공원 칠갑산(561m)은 험하지 않은 산길과, 특색있는 천년 사찰들을 품은 아늑한 산이다. 만물의 7대 근원이라는 뜻의
`칠`자와 싹이 난다는 뜻의 `갑`자로 이뤄진 산이라고 한다. 이 산을 대표하는 절이 칠갑산 서쪽 자락에 들어앉은 장곡사다. 신라시대(850년)
보조국사 체징이 창건했다는 절로, 산비탈에 돌담을 쌓고 건물을 앉혔는데 그 자태가 소박하고 아름답다. 국내 사찰중 유일하게 대웅전이 두개라는
점과 탑이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 동남향의 상대웅전과 서남향의 하대웅전은 모두 보물로 지정된 고려양식의 조선시대 건물이다. 두개의 대웅전을 갖게
된 데는 칠갑산 남동쪽 자락에 있던 도림사가 임진왜란때 불탄 뒤 남아 있던 대웅전을 장곡사로 옮겼으리라는 추측 등 여러 설이 있다. 상대웅전의
철조약사여래좌상 좌대석은 국보, 하대웅전의 약사여래좌상은 보물이다. 하대웅전·운학루·봉향각과 함께 ㅁ자형 배치를 이룬 설선당은 강설과 참선이
행해지던 조선 중기 선방 건물인데, 휘어진 자연목의 미감을 그대로 살린 기둥들이 볼만하다. 그 마루에 걸터앉아 듣는 풍경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상대웅전 앞 감나무엔 지금도 얼고 녹기를 거듭하는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1년전 통행편의를 위해 만들었다는 절 오른쪽 시멘트
돌밭길은 볼썽사납다.
|
△ 칠갑산 한티재
옛길.(위)칠갑산 장곡사. 중앙이 하애둥전, 왼쪽이 설선당이다. 상대웅전은 오른쪽 언덕위에
있다.(아래)
|
부드러운 산세와 낙엽 쌓인
오솔길들
칠갑산 산행길은 일곱 가지. 왕복 1시간30분에서 길어야 3시간30분 짜리다. 오르내리기에 따라 다양한 코스 배합을 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등산로는 북쪽 한티재 옛길 정상 칠갑산장에서 시작해 정상 거쳐 신라시대 고찰 장곡사로 내려오는 길(2시간)이다. 한티재쪽 길은 평지에
가까운 대로가 닦여 있어 차를 산장 주차장에 대고 온가족이 가볍게 다녀오기(1시간30분)에 좋으나, 산행 맛을 보기엔 좀 밋밋하다. 장곡사쪽
코스(사찰길)는 다소 오르막이 이어지고 낙엽쌓인 오솔길도 갖춰 거닐 만하다. 백제시대 고찰 도림사 터와 백제 유적 자비성(두솔산성) 흔적을 살필
수 있는 도림리쪽 코스 및 천장호수의 운치를 즐길 수 있는 천장로 코스는 한적하면서도 옛 산길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산장쪽 등산코스 출발점인 한티재 옛길도 아름다운데, 1983년 도로 직선화공사로 대치터널이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청양~공주를 잇는 유일한
교통로였다. 조선시대까지 오솔길이었던 것을 왜정때 넓히고, 60년대초 더 확장했다. 확장할 당시 노동력 동원에 밀가루를 이용해 `밀가루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10여년전까지 비포장길이었으나 산사태 등을 막기 위해 아스팔트로 포장하면서 옛 정취는 반감됐다. 그러나 소나무 우거진
아기자기한 숲길이어서 차 두대가 겨우 지날 만큼 좁고 짧은 길(3.5㎞)인데도 찾아드는 이들이 많다.
한티재 정상 최익현 동상에서 북쪽 대덕봉·사인봉까지 이어진 오솔길도 거닐어볼 만하다(편도 약 2㎞, 왕복 1시간30분). 이 소나무 울창한
산길은 도립공원지역은 아니지만 같은 칠갑산 자락. 좌우 전망이 좋고 참나무잎과 솔잎들이 짙게 깔린 호젓한 길이다. 쌓인 나뭇잎들 밟는 소리는
기분좋을 정도로 소란하다. 청설모·너구리들이 정적을 깨우는 오솔길을 서너번 오르내리면 헬기장이 있는 대덕봉이다. 500m쯤 더 가면 옛날
대홍수때 네 사람이 큰물을 피해 목숨을 건졌다는 사인봉이 있다. 사인봉 못미쳐 아름드리 상수리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 홍성나들목을 나와 홍성 거쳐 청양으로 간다. 36번 국도 따라 공주쪽으로 가면 대치터널 직전 왼쪽으로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한티마을이 나온다. 좌회전하면 한티재 옛길이다. 장곡사로 가려면 청양에서 대치터널쪽으로 오르기 전 645번 지방도 따라 우회전해 팻말 따라
간다. 장승공원 지나 일주문이 나온다.
<먹을거리>
별미로 장곡사쪽 장평면 지천리의 둥지가든(041-943-0008)에서 내는 참게장백반(1만5000원)·참게매운탕(3만원)을 먹어볼 만하다.
양식한 참게를 간장에 두세달 숙성시켜 깊은 맛을 낸다. 찜 1마리 1만2000원, 튀김 5000원. 한티재 중턱
칠갑산산마루(041-942-9513)에서는 손두부버섯전골(2만원)을 잘한다. 박칠성씨가 하는 집. 느타리·표고버섯을 듬뿍 넣고
두부·야채·소고기·당면과 함께 끓인다. 구기자백숙 3만원, 산채정식 1만원, 비빔밥 5000원.
<묵을곳>
한티재의 칠갑산산마루 민박 2만~3만원. 칠갑산샬레호텔은 한티재에 있는 깨끗한 별장식 호텔. 7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