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중앙쪽 동문에 세운 아치의 장미는
올따라 무척 건강해 보이군요.
봄철이면 장미 순에는 약을 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진딧물이 다닥다닥 붙는데
어디를 보아도 싱싱하고 멀쩡합니다.
기분이 좋아서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진딧물의 꿀을 향해 오르락내리락해보는 개미보다
훨씬 더 많은 무당벌레의 유충들이 한가로이 쉬면서
포식자다운 여유를 즐기는 것 같았어요.
몇 년 째 저 화분 속 송엽국은
크리핑와일드타임 아래로 차마 발을 내딛지 못하는군요.
무서운건지 부끄러워선지 모를 반동그란 자태로
가끔씩 오가는 주인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여기서는 한 데 얼려 아까울 것 하나 없이 한 가족이 되었군요.
쯧쯧... 이 땅에 먼저 뿌리를 내려 한껏 부풀었던 차나무는
난데없는 저 크리핑타임의 파도에 떠밀려 난파선입니다그려.
그래도 생 땅이 드러난 이곳은 소나무에겐 기회의 땅입니다.
실컷 낳고 기르며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는 약속의 땅인 거죠.
세상 모든 삶은 이렇게 틈새에 끼인 채로 꾸는
고봉밥 같은 꿈이 아닐까요...
밤새워 전쟁을 치른 개미들의 사체가 내 혀의 모래알 같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어요.
누군가의 가슴에 안겨줄 내겐 연분홍 꽃이 있기 때문이죠.
고아처럼 나서 홀로 자라는 나를 주인께서
쓰다듬어 예쁘게 몸매를 잡아주셨어요...
어쩌다 자리를 잘 잡은 내게 기꺼이 웃어주시는군요...
남의 마당에 들어설 때는 이렇게 예의를 갖추어야지
이렇게 늬 땅이 다 내 땅이다 드러누워서야 되겠습니까?
꽃범의꼬리는 가운데 마련해준 땅을 다 비우고
귀퉁이로 가서 꼬리를 사립니다. 주인의 맴을 몰라주는 새침뜨기.
석창포가 아무리 늙었다고 한 복판을 꿰차고 앉은 것은
또 무언 욕심이고 무례신지!
이렇게 하면 사방팔방이 즐겁고 행복할텐데...
비좁지만 식구가 많은 것은
주택풍수에서 다복하고 길하다던데...
좀목형 나무가 지금 아기를 출산 중인가요?
어디서 씨 한 톨 날아와 남의 집을 살아도 저렇게 당당한 배롱나무는
딱 제 자리를 찾아서 앉더니 날개를 낮고 넓게 펼쳐서
주인의 수고를 전혀 빌리지 않는 수형으로 자라나 저렇듯 예쁜 짓을 합니다.
소나무에 이어 어린 편백들도 곳곳에서
한 자리 차지하려고 야단들입니다만 글쎄요 집주인이 내버려둘까요?
주인이 배정해준 자리에선 이태 째 세 잎도 못 내더니
심지도 않은 이곳 수호초 밭에는
아이비가 이미 주인행셉니다.
새악시처럼 수줍은 큰애기나리도 이곳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군요.
ㅋ 잔디밭에 들어온 할미꽃이 모른 척 시치밀 떼요.
애기별꽃이 겨울을 나기 위해
바위며 풀섶에 깃들어 잘도 살아있었어요.
ㅉ.. 뽕나무 씨가 경계를 넘었군요. 안됐어요...
어린 국화씨가 단단한 시멘트를 깨트리고 새로 태어났어요.
갤러리 뒤로 그늘진 구석에서 삽주가
조용히 대가족을 이루어가고 있어요.
번지면 잡초요 심으면 화초인 뜰의 경계를 사는 등심붓꽃이
주인 몰래 싹을 내어 몰래몰래 제 살 땅을 샀어요.
주인님의 바지는 모르는 듯 눈길도 주지 않고 스쳐지나갑니다.
지난겨울에 죽은 줄 알았던 일일초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풀잎 새로 얼굴을 내미는군요. 안녕~~!
꽃 피는 기간이 얼만데 지가 일일초라 할까?
매일매일 한 송이씩 새 꽃이 피니 일일초라 한다지요만...
두릅나무 한나가 세 살쯤 먹었는데
후미진 뒤뜰에서 엔간한 숲을 이루었군요.
올 봄은 저 두릅순에 절은 내 입으로 말끝마다 쌉싸레한 향기를 냅니다.
뒷뜰, 밤숲 속의 미운 외돌토리 오동나무.
기죽지 않고 올해도 연보랏빛 생의 희망을 활짝 부풀립니다.
저 작은 텃밭에 섰던 일단의 수수쭉정이.
겨울을 나면 절로 스러질 줄 알았던 조곳이 아조 허수아비처럼 떡 버티고 서서는
하도 당당하길래 이제나저제나 방을 뺄까 기다리던 이 집 마님이
어제는 갑자기 비 그친 사이로 사라지더니
여기 와서 저걸 냅다 뽑았더라는 거 아닙니까?
아이고 허리야~~! 들어오더니 누워서 인날 줄 모릅니다.
가난한 수수쭉정이가 갑질 마님에 반발하여
그녀의 양 고관절 샅바를 붙잡고 을질로 냅다 뽑아버린 거시었던 것입니다.
투덜이 한의사 서방님이 엉덩이를 까고 침을 놓고
어혈과 통증을 잡는 탕약을 달여 새벽 1시까지 극진히 간호한 끝에
아침 밥은 그래도 앉아서 얻어먹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는 밭에 나가 이놈들을 "때치"하며 휘어잡고 저렇게 죄 뽑아버렸습니다.
울타리의 잡초, 특히 무성하던 쑥을 뽑으면서 그 자리에 왜란를 심었던 것이
사년인지라 공간을 빼곡히 채워서 한결 깨끗해졌죠.
여기에 작년부터 지면패랭이를 보탰더니 더욱 단정해졌어요ㅣ
그런데 저 띠풀이나 억새들은 잡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냥 가위들고 가끔 잘라주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뿌리로선 햇살의 영양을
머금지 못하여 땅 속에서 힘을 잃고 점점 삭어가겠지요?
할 수 없어요 난.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이 땅에서만은
기필고 단정하고 예쁘게 살거니까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