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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일의 이동장터입니다. 지난 추석 명절 이후 주간의 목, 금은 이동장터를 하지 않았습니다. 명절에 많은 돈을 쓰다보니, 명절 직후에는 어르신들께서 물건 구입을 많이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명절로 인해서 남은 음식과 선물들로 인해 살 것들이 많이 없습니다. 그래서, 명절 직후 목금에는 어르신들께 배달만 진행을 하고, 한주를 넘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르신들을 찾아뵙는것이 거의 2주만에 찾아뵙게 되는 이동장터가 되었습니다. 명절의 안부를 여쭙는 인사로 9월 마지막 주의 이동장터도 시작해봅니다.
9시 15분,
최근 농촌은 벼멸구로 인해 곳곳에서 시름입니다. 쌀값이 폭락하고 있는 상황에 수확을 앞둔 논들이 병충해까지 매우 심각합니다.
벼멸구는 뿌리부터 벼를 먹고 올라면서 번지기 때문에 약으로도 잡는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한 번 퍼진 벼멸구는 다른 논으로도 번지기도 합니다. 묘량에와서 여태까지 이런논을 본적이 별로 없었었는데, 올해는 폭염이 더해져서 그런지 병충해가 심각해진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첫 마을에서 오전 손님은 없었고, 쓰러져간 논 풍경을 보고 시작하려니 맘이 착찹했습니다.
9시 25분,
어르신께서 기다렸나봅니다. 바로 앞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 보자마자 바로 오십니다.
지난주에 장터를 안가서 필요한것이 더 있으셨을까요? 아마도 배달을 한다고 말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배달 전화를 하지 않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고르시다가 오늘 제가 새롭게 갖고간 비비고 곰탕을 집어 드셔봅니다. 바로 냄비에 넣어 끓여드시면된다고 하니 하나 사보십니다. 한봉지 2천원이라 부담이 없습니다. 어르신께 명절 안부 여쭙고 자리를 나섭니다.
9시 45분,
지난주 불가리스를 건너뛰었다는 어르신. 담당자인 제가 전달못했던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저는 주말 장터하느라 명절 이후 목금을 쉬었던지라, 주기적으로 받으셨던 어르신의 생필품을 깜박했습니다. 괜찮다고 이야기해주시는 어르신. 오늘도 두줄 사십니다. 아랫집 어르신도 집안에 계셨습니다. 2줄 더있느냐는 물음에 2줄 더 사갖고 가십니다. 결제를 하시면서 봉투에 적습니다.
"내가 이렇게 안하면 돈을 어디다 썼는지 기억도 못해~ 까먹어~" 하십니다.
과거 사고 휴유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어르신. 그래도 이름을 까먹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아직도 무엇을 살려고 했는지는 종종 까먹는다고 합니다. 사실 이 어르신도 불가리스를 2줄씩 꾸준하게 사신다고 하셨다가 이 인지 기능 문제로 인해 중단하였었습니다. 이 어르신이 사지 않으면, 불가리스를 사는 어르신을 찾는것이 어렵기에, 중단할 수 밖에 없었지요. 이렇게 만나뵐 때라도 많은 이야기 나누고,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질문들을 던져주는것이 지금의 최선이라 생각됩니다.
9시 55분,
내려가는 길 붙잡는 어르신.
명절 잘 보내셨는지 여쭤보니,
"우리는 여행 갔다왔어~" 하십니다.
칠순 맞아, 명절에 제주도로 자식들하고 함께 갔다왔다는 어르신. 자녀들이 힘좀 썼겠어요~ 하고 여쭤보니,
"암~ 이제 지네들이 좀 써야지~" 하시며 웃으십니다. 여행이 좋으셨나봅니다.
"이제는 명절에 제사도 잘 안지내고~ 가족끼리 이렇게 여행 갔다오는걸로 많이 바뀌었어~" 하십니다.
옛날 명절의 모습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시대의 변화겠지요. 명절의 의미. 가족과 함께 보내는 그 시간, 단지 방법이 바뀌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10시,
마을에 두 어르신들이 안나오시나 싶었는데, 안쪽 남자 어르신 나오십니다.
늘 고등어와 라면, 댓병을 사시는 어르신. 오늘도 고등어 한 손, 댓병 2개, 라면 한 봉지 사서 가십니다.
혼자 사시는 중년 어르신일지... 눈여겨 둡니다.
10시 20분,
일이 많아 지셨나봅니다. 지난번 병 맥주 한 박스 배달 시키셨는데, 오늘도 한 박스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거기에 생수 500ml 묶음 2개까지. 밖에서 일할 때는 생수도 좋지만,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갈증을 많이 해소하게 됩니다.
안주로 드실 생두부까지 2모 사십니다.
빈병을 갖고 가라는 어르신. 담주에 챙기겠다고 말씀드립니다.
다음번 올 땐 공병값으로 물건 바꾸시겠구나 싶습니다.
10시 50분,
조용합니다. 나오는분들이 안계십니다. 지난번 끝에집 어르신은 병원에서 퇴원 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괜찮으실지 괜히 한 번 더 쳐다보고 갑니다. 해당 어르신은 늘 점빵차가 오는 시간이 읍에 병원에 갔다 오는 시간이라하시며 만나기가 어렵다고 하십니다. 점빵차가 갈 때 쯤 시간이 읍에서 버스타고 오는 시간이라고 하십니다. 놓치게 되면 이야기해달라고 말씀드렸었는데, 다시 전화를 하시길 기다려봅니다.
11시 10분,
회관에 가니 시정에서 어르신들이 트롯 방송을 보고 계십니다. 요즘 티비 곳곳에 트롯방송이 많습니다. 어르신들이 참 좋아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잠시 있다 가려고하니, 회관 옆집 낯선 이모님이 오십니다. 누군가 싶었는데, 해당 집 어머님의 딸이라고 합니다. 대구에서 왔답니다. 동네에 장터가 이렇게 다니는줄 몰랐다며 필요한것들 고르십니다. 당연히 현찰만 거래되는 줄 알았던 따님, 카드도 된다고 하니 더 놀라십니다. 지난 겨울 김장할 때도 어머님 집에 한 통 제가 갖다놨다고 하니 또 한 번 놀라십니다. 따님에게 이동장터 홍보지 한 장 건네 드립니다.
혹시나 어머님 걱정되거나, 필요하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달라고 말씀드리며 나섭니다.
11시 20분
여기도...멸구 천지입니다. 멸구 멸구.. 벼멸구...
올해 농민들 곳곳에서 곡소리 나오는소리가 벌써 들립니다.
11시 30분,
시정에서 기다려도 어르신들 안보여 윗집도 가니 문이 잠겨있습니다. 지팡이는 있는데.. 어디가신걸까 싶다가 내려가다 늘 두부 콩나물 사시는 어르신 집 앞을 보니 신발이 여러개가 있습니다. 잠시 가서 인사드리니 놀라시며,
"소리가 안들렸네~! " 하시며 "두부 2모만 줘~!" 하십니다.
안에 들어가보니 요양보호사와 아버님,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어르신께선 커피 타주신다며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그사이 아까 비어있었던 윗집 어르신 전동차 타고 지나가다 내리십니다.
"나도 커피 한 잔 얻어먹어야지~" 하십니다.
어르신께서 먼저 주신 커피, 윗집 어르신 먼저 드렸더니 어르신 급하시다며 바로 원샷하시고 가신다고 합니다. 어르신께 먼저 드렸다고 하니,
"아이고! 거기 어르신 당뇨 있어서 설탕 넣으면 안되는데~" 하시며 어쩔수 없지~ 하십니다.
"내가 지비 먹으라고 일부러 설탕탔는데, 그걸 먼저 줘버리면 어떻게하나~ " 하시며 웃으십니다.
제 커피를 다시 내어주시는 어르신. 그러면서 한과를 함께 주십니다. 어르신께도 동락점빵 홍보지 전달하니 옆에 계신 요양보호사분께서 보시곤,
"아~ 이동장터는 그러니깐 주요 역할이 어르신들 안부 확인하는 것이군요? 이걸로 장사해서 돈 번다는 그런 목적은 아닌가보네요~" 하십니다.
목적을 바로 이해해주시는 활동가님. 주변에 많이 알려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명절 안부 인사드리며 나섰습니다.
11시 45분,
마당에서 기다리니 어르신들 나오십니다.
두부, 콩나물, 계란 사시고 떠나려던 찰나 뒷집 어르신이 붙잡으십니다. 안보였는데.
콩나물 한 봉지 추가로 사고 이동해봅니다.
이사님댁에 콩나물 두개 두고 가려던 찰나 정면에서 윗집 어르신 오십니다.
"울 집도 이제 반납했어~ 이제 여서 장봐야해~" 하시는 어르신.
홍보지 드리며,
"금액 상관 없이 필요한것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배달올께요~" 말씀드렸습니다.
고맙다며, 자주 사겠다고 이야기해주십니다. 면허반납이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일일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당장 차량이 있었지만 이제 없이 다녀야하니 생활에 불편함이 크게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그 큰 불편함속에 작은 한 부분이 동락점빵으로 조금이라도 개선되길 희망해봅니다.
13시 40분,
우리 어르신 집 앞 마당에 앉아계십니다.
지난주 못사서, 이번주 사야한다는 어르신. 불가리스 있냐는 말씀에 없다고 하니,
"니미 시벌것, 왜 없어~" 하십니다.
미리 다 팔려서 없고, 많이 갖고 다니기 어려움을 말씀드리니 요구르트로 대체하십니다. 아마도 아들이 오는데, 늘 주고 싶은 맘을 못하게 되니 아쉬움이 크셨나봅니다. 어르신께 인사드리고 길을 나섭니다.
회관에 가니, 어르신들 몇분 계십니다.
반찬 받는 어르신도 오셔서 두부2개, 콩나물 1개 사가십니다. 그 전에 만났을 땐 몰랐는데 반찬 지원나가면서 얼굴을 알게되니, 무엇을 주로 사시는지 관심이 더 가게 됩니다.
14시,
오늘도 시정에 계시는 어르신과 아드님. 이래저래 살피다가 오늘은 새로갖고간 '카레'를 고르십니다.
"나는 카레 살짝 매운 맛 좋아해요~" 하시는 아드님. 카레, 댓병, 비빔면 사십니다. 그리곤 어머님 말씀 듣고는 콩나물 하나 추가로 더 사십니다.
그 사이 윗집 이모님도 오십니다. 지난 명절 때 산 잡채 재료, 잘 해드셨는지 여쭤보니
"네~ 맛있게 잘 먹었어요~" 하십니다.
늘 술만 사시다가 반찬 사는걸 처음 봤던 그날, 어머님도 반찬을 해드시는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사가시는것은 잎새주, 막걸리 그리고 '콩나물' 한봉지.
14시 20분,
두부 놓고 나오는길, 어르신께서 전동차 타고 오십니다.
"안만났으면 읍에가서 사올려고 했는데~ 만났으니 사야겠네~" 하시며,
"노란 설탕 4봉지 줘~" 하십니다.
무엇에 쓰실지 여쭤봤지만 어르신께서는 그냥 먹으려고~ 하시며 3키로 4봉지를 사십니다. 어르신 만난김에 최근에 추가로 돈을 놓는것에 '중멸치'를 놓는것이 맞는지 여쭤보니 맞다고 하셨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혹시나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어르신께는 누적 포인트가 2만점이 넘게 있어서. 쓸수 있다고 말씀드리니 나중에 한 번에 쓰시겠다며 아껴둔다고 하십니다. 어르신께 인사드리며 길 나서봅니다.
14시 35분,
오늘은 어르신께서 안계십니다. 두유를 놓고 갈까하다가 일단 내려옵니다. 밑반찬을 전달해야하는데 그럴수가 없게되어 윗집 부녀회장님에게 전화합니다. 부탁드려보니 집에 두고 가라고하십니다. 먼 뒷집까지 해야하는데, 괜찮다고 합니다. 도움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아랫집 내려가다 잠시 멈추니, 어머님 나오십니다.
"계란 한 판 주쇼~" 하시는 어머님. 아버님 목상태가 좋지 않아 늘 생계란을 드신다고 합니다. 신선한 계란이 좋다고, 어제 온 계란이라 말씀드리며 한 판드립니다. 신선한 계란 사먹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14시 45분,
어르신 댁에 멈추니 어르신 나오십니다.
오늘도 커피 큰놈 하나 사시는 어르신. "커피 한 잔 먹고가~" 하십니다.
어르신께 지난 명절 안부 여쭙니,
"지지난주에 내가 글쌔.. 다리가 마비되었지 뭐야~ 다리가 꼼짝도 안하대~~" 하십니다.
"병원에 갔더니~ 내 허리에 신경이 눌려서 다리가 그렇게 됬었대~" 어르신께, 병원 입원하기전에 장기요양등급 판정 도움받는것이 어떤지 여쭤보니, "그거 돈 내는거 아녀? "하십니다.
그게 아님을 말씀드리며, 등급 받기 어렵기 전에 상담받고 고민해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울 아저씨가 있어서 나는 갈 수가 없는데~ 울 아저씨까 꼼짝도 안해~~" 하십니다.
당장 이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단 등급 받아놓고 나중에 필요할 때 쓰시라는 말씀임을 계속 말씀드립니다. 우리 재가노인복지센터 선생님에게 말씀드려놓고, 방문 상담 드리라고 해놓겠다고 하며 길을 나섭니다.
15시,
어르신 인사드리니 반가워하십니다.
"잘 지냈어~~?" 하시며 안부 여쭤봐주시는 어르신.
덕분에 잘 보내고 왔음을 말씀드립니다. 어르신께서는
"미역있지? 젤 큰놈 하나 갖다 줘~" 하십니다.
지난번에 작은거 산것을 요양보호사님하고 알고 있는데, 어르신께서는 하나 더 사야한다며 달라고 하십니다. 알겠다고 하며 가려던 찰나, 반찬통 다 씻어놨다며 갖고 가라고 하십니다. 일 하나라도 덜어주려고 애써주시는 요양보호사님 감사했습니다.
15시 20분,
시정에 어르신들 인사드립니다. 우리 남자 어르신 오랜만에 술 대신에 반찬 사십니다.
"어~ 오늘은 두부 두모 주쇼~"
옆에 계신 어르신은
"빨래하는 그 가루비누 있어~?" 하십니다.
"젤 큰놈으로 하나 주쇼~" 하십니다. 무거우니 내려갈 때 갖다드리고 갑니다.
차 내려가던 찰나 길 건너편 어르신 나오십니다.
"커피 있어요? 작은거~"
50개짜리가 없어 100개짜리 보여드리니 "이거 맞네~ 이거 주쇼~" 하는데 생각보다 비쌉니다.
가격이 좀 나감에 놀라시지만, 필요하다며 하나 사십니다.
하이타이 10키로 내려드리고, 다음 마을로 갑니다.
15시 35분
시정에 어르신들이 앉아 계십니다. 노인회관 전 총무님은
"어~ 위에 갔다와~" 하십니다.
위에갔다 내려오는 길,
"계란 두판 줘~ 아 그리고 울집에 공병이 엄청 많아~ 박스로 해놨으니 갖고가~" 하십니다.
공병 수거에 박스로 정리해주시는 일이 참 감사합니다.
포대에 넣으면 깨질 수 있는데, 박스는 정리도 수월하고 나르기도 용이하기 때문이지요.어르신께 알겠다고 말씀드리며 길 나섭니다.
15시 45분,
회관 총무님이 부탁하신 식재료를 회관에 넣으러 갑니다.
에어컨이 엄청 빵빵하게 틀어져있습니다. 저녁에 식사 때문에 미리 켜놨나 싶어서 일단 다시 나옵니다.
회관에 넣고 윗 쪽 골목 먼저 들립니다. 오늘은 어르신께서 손짓을 먼저 하십니다. 마당에서 마늘을 까다가,
"살거 없어~ 그냥 가~" 하십니다.
"어르신, 제가 늘 오는게 팔러만 오는게 아니에요~ 어르신 얼굴 한 번 더 보러 옵니다~" 합니다.
"어르신께서 물건 사는것만 생각하면 저도 오는 것이 부담되요~"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르신께서 알겠다며 조심히 가라고 하십니다.
마지막 어르신댁에 가서 회관 물품 정리하고 에어컨 이야기하니,
"아이고.. 어제 놀더니 마지막에 나온 사람이 안껐나보네" 하십니다.
내려가는 길 제가 끄겠다고 말씀드립니다. 필요하신 물건들 다 드리며 장사 마무리를 해봅니다.
곳곳에 논 벼멸구가 창궐함이 보는 내내 안타까웠습니다.
명절에 많은 손자녀들이 왔다갔다는 소식에 흐뭇했습니다.
안타까움과 흐뭇함이 함께 있었던 이번 장터. 내일 가게될 마을의 어르신들은 명절 기간동안 어떠셨을지, 생각해보며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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