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패밀리 장례식장을 방문하다
최광희 목사
우리나라 최초의 임종(臨終) 감독 송길원 목사가 대표로 있는 하이패밀리의 장례식장, 전에부터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생겼다. 필자는 최근 “성경적 죽음을 준비시키는 설교 방안 연구”라는 소논문을 쓰는 중에 죽음과 장례식에 대해 다양한 성경적 관점을 제공한 송 대표의 저서들과 「월드뷰」에 실린 인터뷰 기사들로부터 많은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활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장례식이 진행되는 현장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러나 개인적 필요를 위해 낯선 분의 장례식에 끼어들 수는 없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차에 때마침 절친의 모친 장례식을 여기서 진행하게 되어 유가족 틈에 끼어 엔딩 플래너 송길원 대표의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이패밀리 장례식장, 여기는 사실상 장례식장이 없다. 그래서 일부 조문객은 입구까지 왔지만 잘못 온 줄 알고 차를 돌려 내려갔다가 올라온 사람도 있다. 말하자면 하이패밀리는 죽은 사람의 공간이 아니라 산 사람들의 공간에서 장례식을 진행하는 것이다.
다른 장례식장과 비교해서 하이패밀리 장례식장에는 여러 가지가 없다. 장례식장이라는 간판이 없고, 흔히 빈소라고 부르는 흰 국화로 도배한 제단이 없다. 빈소 입구에서 흰 국화를 제공하지도 않기에 의례 하는 헌화(獻花) 절차가 없다. 분향은 당연히 없다. 상주가 조문객을 접견하는 장소에서 신을 신고 의자에 앉아있기에 고인의 영정 사진을 향해 넙죽 절할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다.
여기는 검은 띠를 두른 고인의 영정 사진은 없는 대신에 모니터에 고인의 환한 얼굴이 비치고 친교실 대형 모니터에는 고인과 가족의 다정한 사진들이 반복 재생되고 있다.
송 대표에 의하면 사각형 영정 사진에 人(사람인) 모양의 검은 띠를 두르면 그 모양이 영락없이 죄수를 뜻하는 수(囚)자 된다는 것이다. 영정 사진에 띠를 두름으로 고인을 죄수로 만들어버리는 이런 관행은 과연 어디에서 유래했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우리는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송 대표는 이런 장례식에 익숙하지 않은 유족을 위해 장례식 콘셉트와 사용할 공간에 대하여 일일이 안내하며 설명해 주는데 하이패밀리 장례식에서 특별한 부분은 두 가지, 유족들이 마음껏 예배할 수 있는 예배실과 고인을 위한 시신 안치실이다.
송 대표의 말대로 전시(戰時)가 아니라면 시신 아래 시신이 있을 수 없고 시신 위에 시신이 포개져 있어서는 안 되는데 병원 장례식에는 고인을 냉장 서랍에 넣어 층층이 수납하고 있다. 하이패밀리에서는 고인을 존엄하게 모시기 위하여 단 한 분의 장례만 치르는데 정원에 마련된 시신 안치실을 막벨라 호텔(Hotel Macpelah)이라고 부른다.
막벨라 호텔 옆에는 조용히 앉아서 고인을 생각하며 고인과 대화할 수 있는 좌석도 비치되어 있는데 더욱 특이한 것은 안치실 바로 옆에는 고인 옆에 누워 자신의 생애에 관해 묵상해볼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 공간의 벽에는 송 대표의 저서 『죽음이 배꼽을 잡다』에 등장하는 다음 문장이 새겨져 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떠날 것처럼 사랑하라.”
하이패밀리가 강조하는 장례식은 대면식 장례이다. 송 대표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비대면으로 장례를 치르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우리나라 장례식의 경우 조문객은 물론이고 유족들조차도 고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고인의 모습은 오직 입관식을 하는 순간뿐인데 만에 하나 외국에 있던 자녀가 늦게 도착한다면 장례식에는 왔어도 부모의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장례를 치러야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하이패밀리에서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늦게 도착한 가족이 아니어도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메이크업을 해서 생전의 모습을 유지한 채 편안히 누워있는 부모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 대면식 장례식의 특징이다. 물론 대면 장례라고 하여 모든 조문객이 고인을 대면하는 것은 아니다. 고인을 대면하는 일은 가족과 친척 혹은 생전에 고인과 관계가 있었던 지인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하이패밀리 장례식의 특징은 화장(火葬) 절차에 모든 유족이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송 대표에 의하면 부모 혹은 가족의 시신을 화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신적 충격이 크고 더구나 심약한 가족이나 어린이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 일을 대리인을 시켜서 수행하되 가족 대표만 동행하게 한다. 이처럼 화장절차를 대행하게 하고 유족들이 장례노동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은 영국방식이라고 한다. 나머지 가족은 화장장으로 출발할 때 전송을 하고 장례식장에서 추모하며 기다리다가 유골이 돌아오면 영접하여 비로소 장례예배를 드린다.
장례예배 후에는 맞은편 언덕에 마련되어 있는 수목장 장소로 이동하여 유골을 묻어드리는 것으로 장례절차를 마친다. 보통의 경우 화장장 예배까지만 공식 절차로 인식하여 조문객이 동행하지만 여기서는 장례예배 후에 수목장에 유골을 묻는 절차까지 동행하여 고인에게는 예를 다하고 유족을 끝까지 위로함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의미가 있다.
하이패밀리 장례식에는 유족과 상의하여 장례식에 주제를 정해 준다. 이번 장례식의 경우 “나 주님만 따라가리”를 주제로 정했는데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찬송이 BGM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올라온 사진을 볼 때 온 가족이 부흥회를 방불케 하는 모습의 찬양과 예배를 드리는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덧붙여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 중 하나는 이렇게 장례를 치를 경우 비용은 얼마나 드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송 대표는 일반 장례식에서 필요 없는 거품이 너무 많다고 한다. 여태까지 상조회가 조합 가입을 권유할 때 내세우는 것은 4가지 필요성 때문이었다.
첫째는 옛날 차가 많이 없던 시절에는 유족들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장의차를 제공해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가족마다 승용차가 있어서 이동 문제가 사라졌다. 만일 장의차를 탈 경우 개인적으로 먼저 이동하는 것이 불편해서 대형 버스에 고작 서너 명만 타는 현상조차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수의(壽衣)가 비싸서 갑작스럽게 상을 당한 유족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었는데 상조회는 미리 수의를 준비해 주었다. 그런데 하이패밀리에서는 고인이 입던 평상복 가운데 좋은 옷을 골라 입혀드리고 메이크업까지 하는 대면식 장례식이므로 그런 수의가 전혀 필요 없게 되었다.
세 번째로 관(棺)도 상당히 비싸서 유족에게 부담이 되었다. 게다가 장례식장에서는 유족의 효심을 부추겨 더 비싼 수의와 관을 권하기에 유족이 무조건 싼 것을 선택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하이패밀리에서는 종이로 만든 관을 사용하므로 그렇게 비싼 관(棺) 값이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 종이 관을 사용하면 화장(火葬)할 때 자연 보호에도 일조(一助)하는 의미도 있다.
네 번째로 비용이 드는 것은 제단 장식비인데 여기서는 기존에 있던 가구들을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하이패밀리는 기존의 장례식과는 달리 두 가지 꽃을 사용하지 않는데 먼저 조화(造花)이다. 왜냐하면, 조화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는 절화(折花) 역시 생명이 없기에 사용하지 않는다. 빈소에 헌화(獻花)가 없는 이유도 그것이다. 고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굳이 꽃을 드리고 싶다면 화분을 드리라는 것인데 장례식이 마친 후에는 유족이 가져가서 계속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송 대표의 설명 중에 재미있는 표현 하나는 조화(弔花)를 드리는 경우 조문객이 가고 나면 다 걷어서 다시 화병(花甁)에 담곤 하는데 고인 처지에서 보면 왜 꽃을 주었다가 도로 빼앗아 가느냐고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니 일반 장례식에서 장례 비용이 수천만 원 드는 것에 비해 하이패밀리에의 장례 비용은 겨우 몇백만 원으로 끝난다. 훨씬 아름답고 은혜 충만한 장례식을 하고도 비용 걱정까지 해결되는 장례식을 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에 널리 보급할 장례문화일 것이다. 그래서 송길원 목사가 대표로 있는 하이패밀리에서는 이런 장례문화가 한국교회 안에 확산될 수 있도록 엔딩 플래너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첫댓글 국민일보 기사 (1) https://www.themiss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700
국민일보 기사 (2) https://www.themiss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