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린아이들처럼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걷는다. 깔깔대거나 수다를 떨며 기찻길을 따라 간다. 마치 시냇가 징검다리를 건너는 아이들 같다. 소풍가는 동심이다. 문득 어디선가 누렁이가 나타나 터벅터벅 기찻길을 따라 간다. 도대체 쟤는 어디로 가는 걸까.
옛 기찻길은 한강을 따라 간다. 산과 강 사이에 기찻길이 있다. 기찻길은 곳곳에 전망 데크가 있다. 그곳에 앉아 한강과 그 너머 첩첩 산줄기 선들을 바라보면 아슴아슴하다. 전망데크에는 반드시 다산의 시구가 2개씩 붙어있다. 다산 시구 따라 기찻길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향집은 여기서 8백리/맑거나 비 오거나 같은 거린데/ 맑은 날은 가까운 것만 같고/비 오는 날은 멀게만 느껴지네’ ‘서풍은 집을 지나오고/동풍은 나를 지나가네/불어오는 소리만 들릴 뿐/바람 이는 곳은 보이지 않네’
기찻길 침목은 촘촘하다. 침목 간격대로 걸으면 종종걸음을 치게 된다. 그렇다고 침목을 하나씩 건너뛰며 걸으면 간격이 멀어 폴짝거려야 한다. 걸음걸이에 맞추려면 침목 한 칸 반이 딱 맞다. 그러려면 어느 한쪽 발은 침목 사이를 내디뎌야 된다. 결국 침목과 발걸음은 엇박자일 수밖에 없다. 불편하다. 마침 쌓인 눈이 침목과 침목 사이의 골을 메워줘 조금 낫다. 가끔 외줄 철길 위를 체조선수처럼 걸어본다. 몸이 갸우뚱거린다. 균형 잡기가 쉽지 않다. 사는 것도 그럴 것이다. 날마다 외줄을 타며 용케 견뎌왔다.
팔당댐 부근에 봉안터널(250m)이 있다. 터널 안은 조명이 은은하다. 사람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불빛이 밝아진다. 터널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철길 위로 푸른 하늘조각이 반공중에 걸려있다. 사람들 말소리가 우렁우렁하다. 터널 기찻길 침목에는 연인들의 낙서가 눈에 띈다. ‘사랑해 ×××’류가 대부분이다.
기찻길 옆 낭만카페 봉주르는 1982년 대학로에서 문을 열었던 장안의 소문난 카페다. 1992년 지금의 남양주 기찻길 옆으로 이사와 자리를 잡았다. 입구엔 조각가 김원근의 우스꽝스러운 조각이 서 있다. 조각상은 보리알갱이 같이 퉁퉁하고 둥글둥글하다. 보면 볼수록 정겹다. 시멘트 조각에 색을 칠한 것이다.
기찻길은 평행이다. 가도 가도 아스라하다. 하얀 눈 더미 위에 검붉게 삭은 두 줄기 철길이 뻗쳐나간다. 가물가물 한 점의 소실점이 된다. 매서운 겨울 칼바람이 얼굴을 파고든다. 능내리 연꽃마을의 연못엔 말라비틀어진 연잎사귀만 바스락거린다. 목쉰 바람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팔당댐 위쪽 강물은 입을 앙다물고 있다. 팔선녀가 내려와 놀던 자리에 여덟 개의 당(
堂)을 지어 놀았다는 팔당(
八堂). 이곳 토박이들은 팔당이라 하지 않고 ‘바댕이’라고 부른다. 팔당이 바댕이로 변한 것이다.
팔당댐 위는 꽁꽁 얼어붙었고, 그 아래는 물이 흐른다. 고인 물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얼어붙은 물엔 새들이 살지 못한다. 왜가리, 큰고니, 청둥오리는 댐 아래에서 먹이를 찾는다. 팔당대교를 사이에 두고 하남 검단산과 남양주 예봉산이 마주보고 있다. 산과 산 사이에 강물이 흐른다. 겨울강물은 쫄쫄 흐른다.
왜 우리는 그 젊은 날, ‘느닷없이 불쑥불쑥 춘천을 가고 싶어’ 했을까. 왜 할일도 없으면서 그곳에 가려했을까. 무조건 경춘선 타고 집을 나섰을까. 그렇다. 그땐 문밖을 나서면 천지가 적막강산,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오로지 춘천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팔당 덕소를 지나 대성리 강촌에 가면 그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랬다. ‘봄은 산 너머 남촌 아닌 춘천에서 왔던’ 것이다. 그곳에 가면 ‘단풍도 꽃이 되고, 귀도 눈이 되었던’ 것이다.
사랑은 평행선이다. 기찻길이다. 기찻길은 결코 마주보며 가지 않는다. 앞을 보고 나란히 간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 딱 그 거리만큼 떨어져 간다. 너무 사랑한다고 두 길이 하나가 되면 기차는 가지 못한다. 싫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도 기차는 달리지 못한다. 철선과 철선 사이의 거리는 절대고독의 공간이다. 사랑은 외로움이다. 외로우니까 사랑이다. 외로우니까 인간이다. 두 발 달린 짐승이다. 눈 덮인 옛 능내역 부근의 기찻길. |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기찻길 입구=팔당역이나 운길산역이나 옛 기찻길 입구 찾기가 쉽지 않다. 팔당역에서는 옛 팔당역사 쪽으로 2km쯤 더 올라가야 한다. 팔당역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지난 조개울에서 예봉산장 길을 따라가다보면 무인철도 건널목이 나타난다. 바로 그곳이 출발점이다. 그냥 길을 따라 옛 팔당역사쪽으로 쭉 올라가도 된다. 가다 보면 왼쪽에 동태음식전문점 와카리와 카페 티나세가 있는데 그 뒤쪽이 기찻길 시작점이다. 도로 벽에 ‘추억의 기찻길산책’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운길산역에서는 장어집이 있는 한강(진중삼거리) 쪽으로 내려와 길을 타고 500m쯤 가다보면 오른쪽에 끊어진 기찻길이 보인다.
▼교통
△중앙선 전철=용산∼이촌∼옥수∼왕십리∼청량리∼회기∼구리∼도농∼양정∼덕소∼도심∼팔당∼운길산. 팔당역이나 운길산역에서 내려 반대방향으로 가면 된다.
▼먹을거리=봉안터널 아래 보리밥집 시골밥상(031-576-8355). 팔당촌두부집(031-576-4110). 페치카에 몸을 녹이고, 항아리수제비, 고추장삼겹살, 쌈밥, 산채비빔밥, 해물파전, 커피 막걸리 등을 맛볼 수 있는 카페 봉주르(031-576-7711).
▼주변 볼거리
△주필거미박물관=김주필박사가 2004년 설립. 거미표본 5000여 종이 있으며 살아있는 거미와 곤충표본 화석 등을 볼 수 있다. 031-576-7908.
△우석헌자연사박물관=광물 암석 화석 공룡 등 다양한 전시물. 031-572-9555.
△남양주역사박물관=팔당에 있음. 봉선사대종 문양, 현판 탁본, 석기, 토기, 생활용품 등 유물 전시. 031-576-0558.
△몽골문화촌=몽골식 가옥 겔, 몽골음식, 몽골 전통악기, 장신구, 전통의복, 춤, 노래 등 체험. 031-590-2793.
△들꽃식물원=몽골문화촌 앞 소재. 31개 테마의 야생화 눈길. 031-559-9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