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방송작가 박서림 “웹 사이트“에 가면
1958년 장마루촌 이발사와 함께 방송작가로 데뷔한
이래 스스로 쓴 수많은 작품과 작가생활을 하면서 만난
방송인들에 관한 얘기, 또 살면서 만난 친구들 얘기,
일생동안 쓴 일기를 공개 해 놓았다.
방송기록의 보고다.
원로방송작가 박서림(박홍규)님 웹사이트와 방송 기록문화
스스로 쓴 극본이나 삶의 얘기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한 적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각 분야의 예기들 때로는 극본, 때로는
효과음악을 곁들여 개인이 올려놓은 그 기록물들은 필자가
이토록 방대한 자료는 본 적이 없다. 정보학을 전문으로
하는 박사 아들이 “웹 사이트” 를 개설 해 준 덕분
이기도 하지만 남다른 열정과 성실성, 빈틈
없는 성품이 가져온 결과라고 본다.
1998년 40여년을 이어온 글을 절필 하셨다고
했지만 올해 84세가 되기까지 쉴 사이 지난날을 정리하고
시로 쓰고 삶의 얘기를 쓰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웹에 올리지 않은
수많은 작품을 녹음 물로 남겨 놓아 유용하게 쓰실 분이 계시면 넘겨
줄 생각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본 “춘하추동방송”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KBS가 1958년 거대한 상금을 걸고 현상 공모한
6.25가 낳은 전쟁문학작품 “장마루 촌의 이발사”, 1960년대
70년대 TBC 아침 홈드라마 7,000회중 4,000회를 쓴 “아차부인
재치부인” 1964년부터 1989년까지 8,000회 방송 중 3,000회를 쓰신
“즐거운 우리 집” 방송대상을 받은 KBS무대 “윤회설”등의
글을 쓰면서 님의 글을 인용했다.
방송은 오랜 세월 전파를 발사함과 동시에
사라져버리는 것으로 생각 해 왔다. 생방송은 더 다시
말할 필요도 없으려니와 녹음방송도 하루나 이틀 길어야
2주일 3주일 지나면 그 테이프를 다시 활용해야 해서 지워져
버리기 마련이다. 작가는 원고를 제출하고 원고는 방송국
소유가 되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 원고는 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기 마련이다.
또 설사 원고가 보관되어 있어도
방송자체는 아니다. 신문이나 잡지는 원고가
바로 지면에 실린 글이고 신문이나 잡지와 함께 글이
보존되지만 방송은 목소리와 효고, 음악 등을 종합한 콘텐츠여서
글만 남았다고 방송의 기록이 보존된다고 할 수 가없다. 물론 요즈음은
저장기능이 발전해서 대부분의 방송물은 저장되어 보존된다. 그러나
지난날의 방송자료는 귀하고 6.25전의 방송자료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흔히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지난날의 방송자료들을 개인이 모아 정리
해 놓은 모습을 보면서 경의를 표한다.
그 홈에 있는 글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보면
“나의작품모음”에는 아차부인재치부인, 즐거운 우리 집,
(TV) 즐거운 우리 집, 부부만세, 단편극모음, KBS무대, 미발표
작품들에 관한 내용이 있고 이밖에 "일기와 작품", "시론/에세이",
"詩가 있는 房", "실버코너", "從心漫筆" (종심만필), "동인
작품마당", "나의 애송시", "思友錄(사우록)" 그 안에
들어있는 글 한편 한편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있다.
선생님이 쓴 작품에 관한 얘기는
각 편별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필요한 극 대본을 넣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음향
효과도 넣어서 입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아래
그 표지 글을 옮겼다. "종심만평" 코너에는 님이 살면서 만난
인사들, 특히 방송인들에 관한 알고 느낀 얘기들을 상세히 기록해
놓아서 그 시대에 살다간 인사들의 얘기를 잘 알 수 있다. 일생동안
써온 님의 일기가 6.25 등으로 많이 없어졌다지만 남은 일기만으로도
그 시대상과 님의 삶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글들이다. 84세가
되신 지금도 보내드린 메일에는 한번도 빼지 않고 답글을 보내
주실만큼 세심함을 보여주신다.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해
박서림 선생님의 홈 주소를 연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