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래빠는 계속 말하였다.
"만약 진리를 수행하기로 결심한다면 그 사람은 많은 것을 배우게 되리라.
그러나 만약에 본질적인 진리를 잠시 동안만이라 명상할 수 있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말이 많은 사람을 소중한 가르침을 자신의 낮
은 소견으로 파악하여 그 가치를 떨어뜨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으 마음을 부
동의 경지에 머물게 하지 못한다면 선하게 보이는 모든 행동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결과가 된다. 만약 세속에 대한 큰 집착과 욕망을 지니고 있다면 어
떤 형태의 진리를 수행하든지 그것은 다만 말뿐인 진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
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불교를 연구하다가가 학식을 얻
게 되면 끝내 큰 자부심을 가지고 과거의 위대한 스승들에 대한 신심을 저
버린다. 이로 인하여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수행할 시간이 넉넉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들이
미처 깨닫기도 전에 죽음은 갑자기 찾아와 수행의 기회를 영원히 빼앗아 가
게 된다.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므로 그대들은 불교의 지식을 모조
리 입 안에 가둬 두고 명상에 전념하라. 지식과 명상을 하나로 심화시키지
못하고 많이 배운 뒤에 명상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침내 길 잃
게 되리라. 왜냐하면 지식은 끝이 없고 그것을 모두 습득할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불교 지식이 풍부한 존경할 만한 성직자(승려)에게 묻는다면
그는'불교의 가르침 중에는 어느 하나 필요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리하여 그로부터 수많은 가르침들을 배우게 되지만, 어느것을 수
행해야 할지 끝내 알지 못하게 된다. 비록 한 가지를 선택해서 한동안 수행
해 보겠지만 수승한 체험을 얻지는 못하리라. 그러면 의심과 의혹이 마음속
에 스며들어 이렇게 생각하게 되리라.
'다른 수행법을 행하면 어떨까? 이것보다 저런 행법이 더 낫지 않을까?'
결국 그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쏘마 식물을 연구하는 학
자에게 비유될 수 있다. 그는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린 채 그 식물의 취성
(醉性)을 즐기고 마니 마치 어린애가 꽃을 즐기지 못하고 그저 손에 쥐고 있
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미라래빠는 자신의 훈계를 노래로써 거듭 강조하였다.
들으렴, 신실한 보시자들아.
죄 많은 사람들조차
까르마의 큰 힘을 깨닫지 못하고 해탈의 성취를 꿈꾸네.
날이 가고 해가 가면 인생은 흘러가 버리건만
쾌락을 구하면서 사람들은 삶을 허비하네.
그들은 묻나니
"이 달은 좋아질까. 올해는 좋아질까?"
속절없이 인생의 흐름을 알지 못하 채
우둔한 이들은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네.
진실로 진리 수행을 원한다면
지존자들에게 공양올리고
삼보(三寶)에 귀의하며,
스승에게 봉사하고, 부모에게 공경하며,
대가를 바라지 말고 보시하라.
필요한 자들을 도와주고
진리의 가르침대로 살아가야 하리라.
불자(佛子)의 수행에는 많은 지식이 소용없네.
많은 맹세는 자신을 속일 뿐이니
사랑하는 보시자들아, 나의 말을 실천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