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상 펜으로 책을 읽는다
내가 새롭게 찾은 핑계는 밑줄이다. “나는 사실상 펜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 머리는 종종 내 손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라던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따라 말하자면, 나는 사실상 펜으로 책을 읽는다. 왜냐하면 눈으로 읽은 글이 뇌를 스치듯 사라지는 것과 달리, 밑줄을 그으며 읽은 글의 경우 적어도 손의 감각만은 생생히 기억이 남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책에도 밑줄을 그을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읽었다는 사실조차 기억에 남지 않는 전자책을 읽는 동안에도, 전자 잉크 기반 리더기의 느린 반응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손가락을 꾹 눌러 밑줄을 그었다. 하지만 그건 책에 연필로 긋는 밑줄과 같지 않다. 나는 지금 연필의 손맛, 혹은 아날로그의 가치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그런 말이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볼까.
나는 잠시 타이핑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을 둘러본다. 읽지 않은 책이 가득한 그곳에서 내가 이미 읽은 책들을 몇 권 골라 책상 앞으로 돌아와 휘리릭 책장을 넘긴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밑줄 가운데 유난히 내 눈길을 잡아끄는 몇 개의 밑줄을 고른다. 이런 문장들이다.
내 책들과, 지금 이 책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 내가 읽어야 했으니 읽지 못한 책들은 나를 에워싼 채 내 양심을 짓누르는 중이었다. 내 눈앞에서 나를 비난하고 있는 그 책들을 그때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모르는 척했다.
―브라이언 딜런, 『에세이즘』(2023)
그해 봄, 인생살이가 어지간히 고되고 내 신세와 전쟁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통 보이지 않아 막막해하던 때에, 나는 기차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유난히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내려갈 때는 멀쩡한데 가만히 서서 위로 운반되다 보면 감정이 북받쳤다.
―데버리 리비, 『알고 싶지 않은 것들』(2018)
우리는 모두 유령이에요. 너무 빨리 유령 영화 속으로 들어와 버렸죠. 하지만 저는 이 착한 사내를 상처주기 싫어서 그냥 입을 다뭅니다. 게다가 그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로베르토 볼랴뇨, 「조안나 실베스트리」, 『전화』(2010)
프랑스 시인 로트레이아몽 백작의 “수술대 위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말도로르의 노래』, 1869)라는 시구는 낯선 이미지로 사람들의 안이한 상상력에 충격을 주고 싶어 한 초현실주의자들이 강령이 되었지만, 나는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가능세계’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까. 각각의 작품 속에 고정된 문장들을 가져와 다른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 일, 그건 어쩌면 그 문장들이 지닌 가능성을 하나 돌려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위에서 내가 이어 붙인 문장들은 어떤 가능세계라기보다는, 곤경에 처한 중년 프리랜서(=나)의 처지를 극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하는 듯 보이지만.
―금정연, 「연필로 밑줄 긋기의 감각」, 『글쓰기 싫을 때 읽는 책』(북트리거, 2026), 2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