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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그리스도인의 금전거래에 대하여.
사람이 살다보면, 예기치 않게 사고가 나서 입원을 하게 되었다든지, 수술을 하게 되었다든지, 미처 어떤 상황을 대비하기도 전에 갑자기 일이 터짐으로 급히 돈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급전"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막상 닥치고 보면, 큰돈도 아닌데, 은행을 통하려면 담보 요구나, 보증인, 또는 적금 가입등 대출 조건을 요구하며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그렇다고 수시로 휴대폰에 돈 쓰라고 날아오는 사채를 쓰기에는 언론을 통해서 접한 고리에, 패가망신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선뜻 내키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부모님이나, 좀 형편이 될 만한 형제와 같은 피붙이입니다. 그러나 부모형제도 딱히 여의치 못한 경우에는, 친구나 친근한 회사 동료를 떠올리고, 교인들 같은 경우에는 평소 마음을 열고 영적으로, 또는 인격적으로 교유를 나누고 있는 구역(순모임, 목장, 다락방... 명칭이야 어떻든) 식구든지, 자신이 속을 터놓고 개인사정을 나누고 있는 분들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지만, 아예 염치불구 체면불구하고 다급한 심정으로 “돈 좀 꿔주세요...”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당사자는 함께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라면 정말 아픈 마음으로 기도를 하겠지만, 돈을 꿔달라면 좀 난감해지는 것입니다. 오죽 답답하면 나한테까지 돈을 다 꿔달라고 할까 하는 마음에 거절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돈을 꿔주기에는 내 형편이 그리 녹녹하지도 않고, 안 꿔주자니 어렵사리 말을 꺼낸 상대방이 상처를 입을 것 같고... 또한 서로 사랑한다면,“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요일 3:18)는 말씀도 있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돈을 꿔줘도 문제입니다. 돈이라는 것이 묘한 힘이 있어서 서로의 순수한 사랑의 관계가 돈이 오가면서부터는 “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잠 22:7)는 말씀처럼 “주종관계”로 전락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돈을 준 자와 돈을 받은 자, 돈을 갚아야 할 자와 돈을 받아내야 할 자라는 새로운 관계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을 꿔가는 사람들 치고 돈을 떼어 먹겠다고 말하는 사람 없고, 빌린 돈을 오래오래 늦게늦게 갚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다급하고 어려운 사정을 풀어준 이 돈을 고맙게 쓰고, 신속하게 이자까지 해서 갚겠다고 말하기 마련이고, 그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생각대로 돈이 돌지를 않는 것이고, 수금이 되기로 한 곳, 나와야 할 곳에서 돈이 나오질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돈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지요...
결국 그 거짓말 하는 돈과 함께 빌린 자 역시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고," 신의"가 가장 중요한 관계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기화 되면 서로를 못 보는 상황이 생기며, “돈 잃고 사람 잃는” 비극적인 결과로 치닫게 되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장로(또는 집사)가 돈을 떼어 먹다니 이럴 수가!” 상처가 깊어 교회를 떠나버리거나 신앙을 버리기도 하고, 안티 기독교인이 되어 교회의 훼방자가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돈 거래, 특별히 같은 교회를 섬기거나, 같은 신자들끼리의 돈 거래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경우에는 특정인의 주장을 펼치기 보다는 “성경은 이 문제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앞서 말씀 드린 이유로 금전적인 부채로 서로 묶여 있으면, 준 자는 받아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게 되고, 빌린 자는 이것을 다 갚기 전에는 그 짐스러움 때문에 서로 온전한 사랑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2. 차라리 주라!
그렇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나 몰라라 하기에도 마음이 힘들고, 또한 신앙적으로도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초대 교회의 상황들, 모두가 어려운 처지요, 박해중에 예수 때문에 실직을 한 사람도 많은 상황속의 교인들이 어떻게 어려움들(재정적인 어려움들을 포함해서)을 극복해갔는가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행 2:44-45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행 4:32-37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서로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줬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초대 교회에서는 믿는 자들끼리 서로 돈을 꾸어주고, 받고 하는 식의 금전 거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묻는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9: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신자 간에도 사람 사는 일인지라, 서로 빌려주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정신은 받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상대방이 설령 되돌려 주지 않는다할지라도 이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사랑으로 덮어주라는 말씀입니다.
눅 6:34-35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그러나, 소유욕을 본능으로 갖고 있는 인간인지라, 그리고 그 금액이 내가 안 받아도 좋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감당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꾸어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꾸어주면, 그 돈을 다 받을 때까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표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돈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인들끼리 계 놀이, 보증서는 일도 하지 말라!
계 놀이는 지금처럼 서구적인 은행이 들어오기 전, 십시일반으로 서로를 돕는다는 우리 민족 고유의 친목과 단합의 정신이 담겨있는 미풍양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계가 깨지길 잘하고, 계가 한번 깨지면 그 계라는 것의 속성상 서로 알음알음으로 친분 관계로 계원이 모집되기 때문에 돈 잃고 사람 잃고, 심할 경우에는 이혼도 당하며 가정 파탄이 나기도 하고, 교회에 큰 시험거리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차라리 은행에 적금을 들거나, 저축성 보험을 들어서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건강하고, 규모있는 일입니다.
보증을 서는 일에 관하여는, 잠언에 다음과 같이 여러 차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으므로 별도의 언급은 여기서 하지 않겠습니다.
잠 6:1-2 (1)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잠 11:15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잠 17:18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
잠 22:26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
4. 하나님께도 돈을 꾸어드리지 말라!
말이 좀 어폐가 있습니다만, 하나님께 헌금을 드려 놓고도 자꾸 본전 생각(?)이 나고, 내가 이렇게 (헌금을)드렸는데, 내가 이렇게 옥합을 깨듯 (헌금을)했는데, 하나님이 내게 이러실 수가? 라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는 하나님께 돈을 꾸어준 사람이며, 따라서 하나님께 무엇을 받아낼 조건이나 자격을 내가 갖고 있다는 채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이런 채권자의식에 젖어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의와 공로로만 가득 차 있어서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며, 따라서 하나님께 감사함이 자리할 곳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헌금은, 헌금을 바쳐놓고도 그 헌금더미에 엎드러져 즉사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행 5:5)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하고, 제거함을 받는 것입니다. 무서운 일이지요...
우리가 성도들 간의 어려움들을 꾸어주고, 이자쳐서 되갚고 하는 금전 거래를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각 사람 안에 계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 사람 안에도 그리스도가 계시는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청지기 의식 때문입니다.
■ 결국...
그리스도인들 간의 금전 관계는, 상대방을 나의 형제자매요, 핏줄보다 더 진한 사이로 인식하고 그저 안 받아도 좋다는 심정으로 “거저 주는 빌려줌”(서로 모순되는 단어의 조합입니다만.)이어야 합니다. 금액이 좀 크면, 차라리 교회 공동체가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며, 서로 감동이 되는 대로 모아서 도와 주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빌려주지 않느니만 못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 중에는 “차용증을 정확하게 받고, 필요하면 담보도 설정하고, 빌려주는 것이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 사람이 갚지 못해서(또는 갚지 않아서) 못 받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먼저 정직한 답변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돈을 잃을 지언정 사람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이라면 별문제이겠습니다만, 정작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가 당사자가 되는 상황이라면, 그렇지 않은 경우다 대부분이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서로 받아내야할 채권자요, 갚아야할 채무자로 관계가 변질되게 하기보다는, 서로 통용하고 나누어 주던 초대교회처럼 값없이 돌아보고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는 "사랑의 빚으로 감싸 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첫댓글 좋은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