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붙임글.
소주병이 삼국지 초편 서문에 밝힌 것처럼, 삼국지는 전해오는 실록(實錄)이 없습니다. 따라서 쓰는 사람에 따라 사건의 전개와 등장 인물 등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 입니다. 어차피 오늘 이후로 누가 다시 쓰더라도 삼국지는 픽션(fiction)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나 삼국지를 읽은 뒤에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몇 개 있습니다. 소주병에게는 한 편, 한편 모두가 소중한 명장면 이지만, 그래도 개개인은 후일 삼국지를 기억하거나 삼국지를 바탕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에는 중요한 대목에서 설명은 물론이고, 주장할 수있는 명장면은 몇 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소주병이 연재한 삼국지의 명장면은 유비가 관운장, 장익덕을 만나, 도원결의를 한 장면과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공명 선생을 만나는 장면과 장비가 조조의 대군을 단신으로 물리친 장판교 장면을 비롯해 동오와 합세해 승리한 적벽대전을 기억하신다면 어디가서 <말 빨>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관운장의 죽음이 그려질 겁니다. 소주병이 그동안 에서 이미 방영되었던 삼국지의 화면을 빌어, 읽는 분들의 재미와 흥미를 제공하기 위하여, 시청률과 광고 수입을 위해 제작된 극(劇)이지만, 원본(原本)의 손상이 없는 범주에서 손질하여 사실적 느낌이 오래 남도록 삼국지를 다시 써 왔습니다.
그러나 에서 방영된 관운장의 죽음을 그리는 가설(假說)은 그동안 알려진 원본과 너무도 차이가 큼니다. 그런것 때문에 일각에서는 삼국지를 평가절하 하고 있지만, 삼국지를 보는 재미는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본인도 흥미를 본위로 하여 가설을 바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허나, 다음편에 쓰여질 가설을 진실로 믿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여러 작가의 손을 거친 삼국지를 통해 알려진 바로는 관운장은 패전후 동오의 손권에 의해 참살(斬殺)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관운장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설(定說)과 가설(假說)의 두 편을 연속하여 올리겠습니다. 정설은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읽어오신 분들에게 어디가서 삼국지 관운장의 최후를 논(論)할 때에 <말빨>에서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계속해 이어지는 가설은 읽고, 보시는 재미를 위함 입니다. 그럼, 정설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번성을 지척에 두고 세웠던 관우의 군영이 서황군에 의해 무너지자 황급히 몸을 피한 관우가 밤새 말을 달려 추격대를 따돌리고 위급함은 면하였으나, 형주를 잃었다는 충격에 관우는 밤새 피하는 중에도 몹시 괴로워 하였다. 그리하여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어느덧 그의 머리와 긴 수염은 밤새, 하얗게 그 빛을 세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관우가 추격하는 적에게 벗어나기 위해 번성 앞의 군영을 떠나왔지만 형주로 가자니 그곳은 이미 손권의 강동군(江東軍)에게 점령을 당한 판이고, 공안(公安)으로 가자니 그곳은 이미 조조의 위군(魏軍)이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 진퇴양난에 빠진 관운장의 걸음걸음엔 눈물이 솟았다.
뒤에 따라오던 관량관 조루가(管糧官 趙累)가 말한다. "지금이라도 성도(城都)의 주공께 사람을 보내시어 원병(援兵)을 청해 가지고, 형주를 탈환하시지요." 관우는 그 말을 옳게 여겨 이적(伊籍)을 성도로 보내고, 자신이 선봉장이 되어 관평, 요화와 함께 퇴각한 군사를 수습하여 형주로 향하였다. 관우가 군사를 이끌고 형주땅 가까이 접근하자 군사들이 하나, 둘 씩 아무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어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도 그럴 것이 관우의 군사들은 대부분 형주 출신인 까닭에 제각기 부모형제와 처자를 찾아 밤도망을 쳐버렸기 때문이었다.
"가고 싶은 자들은 가거라 ! 나는 혼자서라도 형주성을 향해 전진하겠다 !" 관우는 비통에 젖어 부르짖었다. 이제 남은 군사는 오백 명이 안 되었지만, 관우는 그들을 이끌고 여전히 전진하였다. 이렇게 전진하는 도중에 동오의 장수 장흠(蔣欽), 주태(周泰)의 공격을 받았지만 그들과 싸워 모두 물리쳤다. 비록 얼마 되지 않는 군사를 가지고도 관우는 앞장을 서서 능히 대적을 물리쳐 버렸다.
다시 얼마를 전진하니, 이번에는 적장 서성(徐盛)이 북을 울리고 나팔을 불며 앞길을 막아섰다. "이놈들아 ! 백만 대적인들 내가 떨 줄 아느냐 !" 관우가 그렇게 외치며 달려나가자, 그 위용에 놀라, 적은 그대로 군사를 돌려 달아나 버렸다. 관우는 다시 전진하여 깊은 산속으로 들어왔다.
때마침 달이 밝아 산골짜기를 선명하게 비추는데, 문득 숲속에서 일단의 남녀노유(男女老幼)가 나타나더니, 군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와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남편의 이름을 부르고, 아비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이 아닌가 ? 그 바람에 사기 왕성 하였던 군사들이 뿔뿔히 흩어져서 자기 가족들을 찾느라고 야단법석이 일었다. 그리하여 오래간만에 가족들을 만난 군사들은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뿌리며 살아 있음을 기뻐해 마지 않는다.
관우는 그 모습을 보고 달을 우러러 한탄하였다. "아,아 ! 여몽의 계략이 이렇듯 교묘할 줄은 몰랐구나 ! 나는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 가족을 만난 군사들은 전의가 급격히 떨어져서 장수들의 눈치를 살피며 가족들과 함께 슬며시 사라지는 것이었다. 아무려니 관우는 어떠한 군령으로도 이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만사휴의(萬事休矣)로다 !" 관우는 언덕 위에 높이 서서 달을 우러러보며 돌 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
이윽고 날이 밝자, 관평과 요화는 어떡하든지 활로를 타개할 생각에서 얼마 안 되는 군사를 수습하며, "여기서 맥성(麥城)이 멀지 않으니, 우선 그리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진언하였다. 맥성은 이름이 성일 뿐이지, 성벽(城壁)도 무너지고 성문도 제대로 없는 폐성(廢城)이었다. 관우는 맥성에 도착하자, 군사를 수습하여 성문을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선후책을 논의하니 관량관 조루가 말한다. "여기서 상용성(上庸城)이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그곳은 지금 유봉(劉封)과 맹달(孟達) 장군이 지키고 있으니, 그들의 원병(援兵)을 얻으면 형주를 탈환하기가 그다지 어려운 일을 아닐 것입니다." "음 ...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제 남은 것은 오직 그 방법 뿐인 것 같네." 관우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며, "그러나 지금 우리는 추격해 오는 적에게 겹겹히 쌓여 있는데, 그들의 추격을 누가 감히 뚫고 상용성으로 가리오 ?" 하고, 걱정을 해 보인다.
그러자 요화가 앞으로 나서며 외친다. "소장이 죽음을 각오하고 소임을 맡겠습니다 ! 제가 도중에 죽을지도 모르니, 제가 떠난 다음 또 한사람을 보내 주소서." 드디어 요화는 관운장의 구원요청의 서신을 가슴에 품고 길을 떠난다. 그러자 철통같이 둘러싼 적은 요화를 보기가 무섭게 북을 울리고 함성을 울리며 공격해 온다.
관평이 얼마 남지 않은 군사를 이끌고 적을 막았다. 관평의 지원을 받은 요화는 적장 정봉(丁奉)과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며 포위망을 뚫고 상용성으로 달아났다. 이처럼 죽을 고비를 넘기며 요화는 상용성에 무사히 도착하여 유봉을 만났다. 그러나 유봉은 관우의 서신을 펼쳐 보고 나서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이 문제는 맹달과 상의하여 결정하겠소."
요화는 한시가 급했지만, 유봉은 한가롭게 맹달을 불러오고 있었다. 기별을 받고 급히 달려온 맹달은 관우의 서신을 읽어 보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지금 위군의 공격을 받고 있는 터에, 어찌 관장군을 돕기 위해 군사를 빼낼 수가 있겠소. 그건 안 될 일입니다." 요화는 그 소리를 듣고 눈앞이 캄캄하였다.
"만약 원병을 보내 주지 않는다면 관운장께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지 모르니, 어떡하든지 도와주셔야 하겠습니다." 요화의 애원에 맹달이 잘라 말한다. "우리가 원병을 보낸들 맥성을 지탱하고, 더구나 그 병력으로 형주를 수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오. 차라리 한중왕(漢中王 : 유비를 지칭함)에게 구원을 청해 보시오."
요화는 크게 노하며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소리쳤다. "이놈들 ! 유봉, 맹달아 ! 의리를 모르는 네놈을 믿은 관장군과 나, 요화가 어리석었다 ! 너희 놈들의 말로가 어찌 되는지 두고보겠다 !" 요화는 성을 발칵 내며 상용성을 떠나, 지친 몸을 이끌고 말에 채찍을 가해 성도(成都)로 길을 떠났다.
한편, 관우는 맥성에서 농성을 하고 있으면서 상용성(上庸城)에서 구원병이 속히 와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유봉과 맹달이 구원병을 보내 주지 않으리라고는 꿈에 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상용에서 군사는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대한 사명을 띠고 떠난 요화마저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이 아닌가. 관우는 날이 갈수록 노심초사하였다. 수하의 군사들은 삼백 명도 안 되는 데다가, 군량조차 떨어져 기아에 허덕이는 판국이었다.
이때, 성문을 지키던 군사가 달려와 관운장에게 알린다. "동오의 제갈근(諸葛槿)이 군후 뵙기를 청합니다." "데려오너라." 이윽고 제갈근이 관우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한다. "오후(吳侯)의 명을 받고 운장을 찾아 뵈러 왔습니다. 운장께서는 지난날 다스리던 한상 구군(漢上 九郡)을 다 잃으시고 이제 고성(孤城)만이 남았는데, 안으로 양초(糧草 :군량과 말먹이)가 없고 밖으로 원병이 없으니 이제 무엇으로 지난날의 꿈을 되찾으실 수가 있겠습니까. 운장께서 만약 오후께 귀순(歸順)만 하신다면 운장 자신도 영화를 같이 누리실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붙잡혀 있는 가족들도 모두 안전할 터인즉 이때에 마음을 돌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제갈근은 지극히 공손한 어조로 귀순을 권고하였다. 관운장은 눈을 감은 채 제갈근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정색을 하며 대답한다. "나는 손권과 더불어 오직 죽음을 불사한 전쟁에 있을 뿐이니, 선생은 돌아가 그 말을 전해 주시오." 그래도 제갈근은 끈덕지게, "만약 운장께서 손후(孫侯)를 도우신다면 조조를 간단히 쳐부수고 천하를 평정할 수 있으오리다."
그러자 옆에 있던 관평이 칼을 뽑아 들며 벼락같이 외친다. "이놈 ! 아가리 못 닥치겠느냐 ? 네가 여기서 죽고 싶으냐 ?" 운장이 손을 들어 만류한다. "저 사람의 입놀림이 괘씸하기로는 당장 목을 베고 싶으나, 네 백부(伯父 : 유비를 칭함)를 도와주시는 공명 선생을 보아서 살려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당장 쫒아 보내거라 !"
제갈근은 망신만 당하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그러나 유봉과 맹달의 지원군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게다가 군량마저 떨어지게 되니 병사들의 밤도망이 이어졌다. 조루(趙累)가 한숨을 지으며 관운장에게 말한다. "유봉과 맹달이 구원병을 보내 주지 않으려 함이 분명합니다. 이런 사정이니 이곳 고성(孤城)을 지키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서천(西川)으로 들어가 재기(再起)를 꾀함이 좋겠습니다." "음 !... 그 말이 옳은 것 같네. 그러면 성을 버리고 밤을 틈타 서천으로 떠나기로 하지."
옆에서 듣고 있던 주창(周倉)과 왕보(王甫)가 말한다. "군후께서는 조루와 함께 서천으로 가십시오. 저희들 두 사람은 맥성을 그대로 지키고 있겠습니다." "어찌하여 두 사람은 남겠다는 것인가 ?"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근거는 이 맥성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마저 버리고 떠난다면 우리는 유랑의 무리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하오니 우리 두 사람은 죽음을 각오하고 맥성을 지킬 터인즉, 군후께서는 속히 서천으로 가셔서 권토중래(捲土重來)의 계략을 세워주십시오." 실로 비장어린 말이었다. "음 !...실로, 두 사람의 심정을 가늠하고도 남도다 !... 그러면 두 사람은 쓰러져가는 맥성이나마 우리들의 본거지로 지키고 있으라...후일 내 그대들의 충심을 기억하리라 !" "바라오니 군후께서는 부디 몸을 조심하소서!"
밤은 점점 깊어 오는데, 이별의 때는 오고야 말았다. 가는 사람도 죽음을 각오하고 떠나는 길이고 남은 사람도 죽음을 각오하고 남는 것인지라, 생이별이자 사별이 될 마지막 순간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후사(後事)를 잘 부탁하네 !" "군후(軍侯)께서도 부디 몸 조심하십시오 !" 목메인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그들에게는 밤바람조차 몹시 차가웠다.
이윽고 관운장은 관평, 조루와 함께 최후까지 남아 있던 백여 명의 군사를 데리고 서천으로 소리없이 떠났다. 그리하여 대로를 버리고 험준한 산길을 택하여 걸어가노라니, 얼마 안 가 어둠 속에서 적의 복병이 들고 나온다. 함성이 적막을 뒤흔들며 공격해 오는 군사는 동오의 주연(朱然)이 거느린 군사였다. "운장은 게 섰거라 ! 항복을 하면 죽음을 면하리라 !" 주연이 창검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관운장이 대로하며 마주나와 싸웠다.
일 대 일의 싸움에는 관운장을 당해낼 주연이 못 되었다. 주연이 급히 좆겨가자 관우는 더이상 추격하지 아니하고, 다시 혈로를 타개하며 전진하였다. 얼마를 달려 험한 산중에 다다르니, 이번에는 반장(潘璋)이 거느린 동오의 군사들이 나타난다. 반장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나오니 관운장이 대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싸우기를 사오 합 만에 반장이 힘을 잃고 달아나니, 그를 따라 나섰던 병사들도 황급히 달아나 버린다.
관우가 안도의 한숨을 쉬노라니, 관평이 급히 달려와 아뢴다. "관량관 조루가 방금전 적의 칼에 절명하였습니다 !" "뭐야 ? 조루마저 죽었다구 ?" 관우는 크게 당황하며 슬퍼하였다. 군영에서 퇴각하는 와중에 참모 마량의 소식이 끊겨버려, 조루의 간언(諫言)에 의지해 왔었는데, 그 마저 잃고 보니, 이제는 최후의 운명의 시간이 시시각각으로 절박해 오는 느낌이었다. 관운장은 눈물을 뿌리며, 몇 명 남지 않은 병사를 데리고 다시 길을 찾아 전진하였다.
밤은 이미 오경(五更:새벽 3~5시)이어서 바람은 몹시 차가운데, 길은 험준하고 좌우에 우거진 잡초들이 앞길을 방해하였다. 그렇게 어느 좁다란 골짜기에 들어섰을 때 또다시 동오의 복명들이 아우성을 치며 들고 일어난다. 그들은 창검을 가지고 덤비는 것이 아니라, 갈고리와 쇠줄, 쇠그물을 가지고 사방에서 던져오는 것이었다. 관운장이 타고 있는 적토마의 뒷발과 앞발에 쇠줄이 감겼다. 그리고 앞뒤에서 쇠줄을 잡아당기니 말이 대번에 땅바닥에 고꾸라져 버린다. 마상의 관우도 땅에 곤드라 떨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적병들이 노도와 같이 몰려들어 관운장에게 그물을 씌워버리니 관우는 움쭉달쑥 할 수가 없었다.
적장 마충(馬忠)이 기고만장한 웃음을 웃으며 나타난다. "천하의 영웅 관운장도 내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는구려. 하하하하 !..." "....." 관우는 무겁게 눈을 감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 "운장의 아들 관평도 이미 사로잡혔으니, 이제는 부자가 모두 마음을 돌리시오." "....." 관우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그 소리에도 역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날이 밝아오자 관우는 포로의 몸이되어 손권 앞에 끌려나왔다. 손권은 크게 반색하며 말한다. "나는 오랫동안 장군을 사모해 오던 터인데 이제 서로 만나게 되니 매우 기쁘오. 오늘날 장군이 사로잡히게 된 것은 장군이 늙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는 천운(天運)인 것이오. 장군과 나는 유항숙을 매개로 서로 사돈간이니, 장군은 하늘의 뜻을 헤아려 나와 함께 천하를 도모토록 합시다." 관우는 그 소리를 듣고 소리를 가다듬어 꾸짖는다. "이 쥐새끼 같은 놈아 ! 네가 어찌 감히 하늘의 뜻을 헤아릴 수가 있단 말이냐 ! 유황숙과 나는 도원(桃園)에서 의(義)를 맺을 때 서로 한실(漢室)을 재건코자 맹세한 바, 어찌 너는 아직도 천하 도모를 운운한단 말이냐 ! 그런 역적을 내가 도우라구 ? 천만부당한 일이로다 !"
이렇게 소리치는 관운장의 음성은 하도 우렁차서, 장중은 잠시 숙연하였다. 관운장은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높이 들며 말한다. "나는 너희 계책에 빠져 이미 사로잡힌 몸, 내 이제 의를 모르는 너희에게 옳고 그름을 타일러 본들 무슨 소용이랴. 오직 죽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니, 다른 말은 일체 말아다오."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내는 듯한 비장한 말이었다.
손권이 좌우를 돌아보며 속삭여 묻는다. "관운장은 당대의 영웅이니, 그를 설복하여 귀순시킬 무슨 방도가 없겠나 ?" 주부 좌함(主簿 左咸)이 대답한다. "일찍이 조조도 관운장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그를 사로 잡았을 때, 후(侯)로 봉하고 작(爵:벼슬)을 주면서, 삼 일에 소연(小宴), 오 일에 대연(大宴)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랬어도 후일 유비가 하북의 원소에게 의탁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자, 조조의 오관(五關)을 뚫고 지나가며 (오관참장 : 五關斬將) 여섯 명의 장수를 죽인 일도 있지 않습니까 ? 그러한 관운장의 지조를 우리가 무슨 수로 꺾을 수 있겠사옵니까 ?"
"좌함의 말씀이 지극히 옳은 말씀이오." 모든 장수들이 입을 모아 동의한다. "음 .... 그렇다면 관운장을 구 할 길이 없겠군. 그러면 저들 부자를 모두 참하라 !" 드디어 손권은 비통한 명령을 내렸다. 이리하여 관운장과 관평은 손권의 손에 마지막 최후를 마치고야 말았으니, 때는 건안(建安) 이십사년 시월, 그의 나이는 오십팔세였다. ...
* 관우(關羽) : ( ? ~ 219) 삼국지 8편 글 앞에 올린 인물평.
자(字)는 운장(雲長)으로 하동군 해현(河東郡 解縣) 출신으로 이곳은 중국 최대의 염호(鹽湖)가 있어 소금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한(漢)나라 시절에는 소금이 국가 전매품이어서 밀매가 성행했는데, 관우는 소금 밀매에 관여했다가, 소금상인을 죽이고 유주(幽州) 탁현으로 도피하여 지내던중 장비와 유비를 차례로 만나 형제지의(兄弟之義)를 맺게된, 대의(大義)를 중시하고 강직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충의(忠義)의 화신(化身)이다. 관우는 신장이 9척이나 되고, 붉은 얼굴에 배꼽까지 이르는 길고 아름다운 삼각 수염을 가지고 있으며, 82근이나 되는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휘두르고, 적토마(赤兎馬)를 탄 용맹한 장수였다. 전투에서 적장 방덕에게 맞은 독화살을 당시의 명의(名醫)였던 화타에게 어깨를 째어서 뼈를 긁어내는 수술을 받으면서도 태연하게 바둑을 두었다는 일화도 전해지는 호장(虎將)이다. 이렇게 오래 전부터 충의와 무용의 상징으로 중국 민간에서 숭배되어 온 관우는 급기야는 민간에서는 그를 무신(武神)과 재신(財神)으로 모시는 등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601년 우리나라에도 관우의 동관왕묘(東關王廟)가 세워지기도 하였는데, 줄여서 동묘(東廟)라고 불리는 동관 왕묘는 지금은 지하철 역(驛)이름으로 불리지만, 1963년부터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삼국지(三國志) (294) 외로운 성에 지는 해 (관운장의 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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