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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춘문예공모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해동공자
깊은 숨 / 황혜련
남자는 백일홍 가지를 꺾어들고 앉아있었다. 구부정한 그의 등 뒤로 저녁 해가 서서히 내려앉았다. 남자는 배드민턴을 치러 가는 길이었는지 배롱나무 둥치엔 큼직한 라켓 가방이 놓여 있었다. 나는 남자를 향해 다가가던 걸음을 멀찍이서 멈추고 그를 좀 더 지켜보았다. 남자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백일홍다발을 왼손에 옮겨 쥐고는 그중 한 가지를 빼내어 바닥에다 대고 끼적거렸다. 가지가 움직일 때 분홍꽃잎이 따라서 한들거렸다. 남자는 나를 기다리는 동안의 무료함을 그렇게 달래고 있었다. 꽃가지들도 기다리다가 지루해서 소일 삼아 꺾었을 것이다. 남자는 그것도 시들한지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남자가 고개를 쳐들 때 언뜻 사장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나는 강하게 도리질쳤다. 사장일 리가 없다. 사장은 나를 기다려본 적이 없으며 꽃 같은 걸 들고 있었던 적은 더더욱 없었다. 바람이 부는지 배롱나무 가지가 흔들리면서 백일홍꽃잎이 부스스 남자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집 앞 벤치에 와 있으니 좀 나와달라는 남자의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나는 아직 남자에 대한 그 어떤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지 말라는 문자메시지를 띄워놓고 십자수 일감을 다시 집어들었다. 오늘은 드레스의 윗부분을 완성해야 한다. 남자는 배드민턴을 치러 가야 하니까 웬만큼 기다리다가 돌아갈 것이다. 나는 아이보리색 실을 바늘에 꿰어
가슴 쪽을 메워 나갔다. 내가 요즘 놓고 있는 십자수는 웨딩 도안이었다. 가로36 세로25를 수놓으려면 꼬박 한 달이 걸리는데 이걸 해서 가져다주면 십칠만원을 받는다. 수고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액수이나 이거라도 해야 사장의 밥상에 갈비살을 올릴 수가 있다. 그러나 요즘은 이 짓도 그만둬야 할 것 같은 위기감이 종종 들었다. 전에 없이 눈이 자주 침침해져 계속 이 일에 매달리다가는 시력을 영 잃을 것만 같다. 전에는 멀리 있는 사물도 또렷이 보였는데 십자수를 놓던 몇 해 동안 은연 중 나빠져 이젠 수예감에 코를 박고 있다가 고개를 들면 사물이 시야에서 분별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솜씨에도 구멍이 생겨 요즘은 수예점 주인도 나를 보는 시선이 곱지가 않다. 웨딩 도안을 가져온 것도 그래서다. 일을 그만두기 전에 꼭 한 번 내손으로 놓아보고 싶었다. 웨딩 도안은 신혼부부들에게 인기가 있어 그동안 수예점으로부터 종종 부탁을 받았었으나 외면해왔다. 어쩐지 내가 수놓은 웨딩 도안은 신혼부부에게 불행을 가져다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번 웨딩 도안은 십칠만원을 포기하고 내가 간직할 것이다.
사장과 약속한 오백만원을 만들어 주기위해
전세금에서 오백을 빼고 그 오백에 해당하는
만큼의 월세 계약을 맺었다. 거절할 수도 있었던
돈을 굳이 전세금까지 깨가며 주기로 한 건
그를 다시 보지 않기 위해서다.
신부의 허리선을 따라 윤곽을 잡아가고 있는데 또 문자가 왔다. 남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시간은 이미 기다릴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섰다. 다행이 문자는 남자가 아니었다. 남자는 배드민턴을 치러 갔을 것이다. 나는 다시 십자수에 코를 박았다. 그런데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그의 메시지가 새삼 속을 어지럽혔다. 남자는 어쩌면 정말로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몰랐다. 나는 은근히 남자가 걱정되었다. 나는 십자수 일감을 내려놓고 슬립퍼를 꾀신었다. 한발한발 내딛는데 괜히 가슴이 뛰었다. 반지하에서 바깥으로 연결된 계단은 모두 열여섯 개였다. 계단을 헤아리는 건 사장을 기다릴 때 생긴 버릇이었다. 또박또박 계단을 밟아 지상으로 나오니 바람이 기분 좋게 살갗에 와 닿았다. 벤치에 남자는 없었다. 기다리지 말라고 해놓고 가슴속으로는 헛헛함이 몰려왔다. 나는 슈퍼마켓을 가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그러다가 벤치 맞은 편 배롱나무 아래 앉아있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백일홍 가지를 꺾어들고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남자를 보고 있는데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따뜻한 것이 차올랐다. 나는 기다리는 데만 너무 익숙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기다릴 수도 있다는 걸 잘 몰랐다. 오랜 시간 사장에 빠져있느라 다른 사랑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걸 발견하는 순간 꽃들이 나를 향해 만개해 있으며, 나는 사장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갈 거야.” 사장의 통고는 언제나 일방적이었다. 내 처지 같은 건 아랑곳없었다. 사장을 그렇게 만든 건 나였다. 사장의 전화를 받은 날엔 모든 걸 접고 시장부터 달려가 가장 싱싱하고 물 오른 것들로 장바구니를 채워 그의 밥상을 차려냈다. 눅눅하고 어둡던 내 집에 사람의 온기가 도는 것이 좋았고 누군가를 위해 밥상을 차리는 내가 너무 신기해서 그랬다. 그런데 요즈음 사장의 전화는 종종 두통을 몰고 왔다. 처음엔 두통약을 삼키고 두어 시간 자고나면 나아지곤 했는데 만성이 되면서 이젠 약도 잘 듣질 않는다.
얼마 전에도 사장은 내 집을 다녀가며 두통을 남겼다. 그는 벨도 누르지 않은 채 그냥 성큼 들어서며 미묘한 웃음만 한 번 지어보이고는 내 방의 주인처럼 행동했다. 그는 두 달 만에 나타나서는 두 시간 만에 다시 온 사람처럼 행동했다. “너 돈 좀 있니?” 그는 대뜸 돈을 요구했다. 나는 십자수 노동으로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돈 이십만원을 꺼내 그 앞에 내밀었다. 그는 그 돈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나는 뭐든 그가 두 번 말하기 전에 알아서 하는 편이었지만 머쓱한 그의 표정 앞에서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다. “오백만원이 필요해.”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게 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내가 가진 돈이라곤 반 지하 단칸방 전세금이 전부이며, 직장도 없이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걸 그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돈을 안주면 꼼짝도 않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를 위한 밥상의 갈비살이 싸늘히 식어 차가운 고체덩어리로 변해갔다. “당장은 없고 사흘 후에 연락 해봐요.” 그제야 그가 갈비를 데워오라며 접시를 내밀었다. 갈비를 데워오자 그는 소주 한 병을 곁들여 갈비 한 접시를 몽땅 비워냈다. 그리고 내 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넌 천사야. 넌 정말 예뻐.” 그는 그렇게 해주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 내 귓불에 대고 끊임없이 속삭였으나 그건 뭔가 자신의 요구가 이루어졌을 때면 늘 하던 말이었다. 그는 내 방에 오면 늘 절차처럼 나를 안았으나 요식이 되어버린 행위는 더 이상 나를 달뜨게 하지 않았다. 내가 원한 건 절차가 되어버린 의식이 아니었다. 고통을 어루만져줄 위무, 내가 원한 건 그 한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한낮 위무가 왜 돈보다 섹스보다 좋은지 이해 못했다. 내게서 내려온 그는 곧바로 잠에 떨어졌다. 나도 자려고 애써보나 두통 때문에 잠들 수 없었다. 그가 깨어있는 내내 두통을 호소했으나 그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의 이기심에 이력이 날만도 하나 사랑에 무게를 두고 있는 한은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는 게 있었다. 결별 밖에는 약이 없지 싶어 결별 선언도 수없이 했으나 입으로는 이별을 말하면서도 눈으로는 그를 잡고 있어 이별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두통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오백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요구했다. 나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 자기 확신뿐 사랑으로 인해 치러야할 일들에는 무감각했다. 그와의 관계를 끌어가기 위해 내가 그동안 치른 노력과 희생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가 자는 동안 나는 다시 십자수를 꺼내들었다. 사장은 내가 십자수 놓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전에 십자수 놓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그걸 해다가 주면 얼마나 받느냐고 나무랐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를 위한 소주값과 갈비살이 이 십자수에서 나오며, 십자수라도 놓지 않으면 하루를 버틸 수 없다는 말을 해봐야 그는 알아듣지 못한다. 십자수를 놓고 있으면 새벽이 빨리 왔다. 나는 십자수 행장을 다시 서랍 깊숙이 숨기고 그를 위해 아침밥을 지었다. 아침상에 생태찌개가 올려지고 한 냄비를 거뜬하게 비운 그가 집을 빠져나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긴 한숨을 내쉬며 두통을 몰아내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긴 잠에서 깨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세 계약서를 다시 쓰는 일이었다. 사장과 약속한 오백만원을 만들어주기 위해 전세금에서 오백을 빼고 그 오백에 해당하는 만큼의 월세 계약을 맺었다. 거절할 수도 있었던 돈을 굳이 전세금까지 깨가며 주기로 한 건 그를 다시 보지 않기 위해서다. 가져갈 것이 있는 한 그는 계속 찾아올 것이다. 그의 계좌로 오백만원을 입금하고 돌아오는 길에 치과엘 들렀다. 사랑니를 뽑기 위해서였다. 그를 위해 전세금을 헐고 담담할 수 없었다. 나는 치통으로 마음의 몸살을 잊고 싶었다. 노의사가 내 이빨을 잡고 한참을 고전했다. 내 몸살에 괜히 애먼 노의사를 끌어들였다는 생각이 들어 아주 잠깐 그냥 둘 걸 그랬나 후회도 해봤지만 사랑니를 뽑기로 한 건 역시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사랑니는 뿌리째 들어내지 않으면 앞으로도 종종 통증을 안고와 나를 괴롭힐 것이다. 사랑니를 뽑고 진료실을 빠져나오려는데 내 뒤통수에 대고 의사가 말했다. “마취가 풀릴 때 아플 거예요. 그리고 일주일 동안 술은 절대 안돼요.” 의사는 내게서 술을 마셔야만 될 어둠의 그림자를 본 것일까. 그러나 나는 돌아오는 길에 소주 한 병을 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잇몸 사이를 누르고 있던 솜방망이를 뱉어버리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절대로 안 되는 일을 하고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혹시 죽을 수도 있을까?
남자가 백일홍꽃다발을 오른손으로 옮겨 쥐었다. 왼손에 땀이 찼는지 손바닥을 좍 펴서 바지에 대고 문질렀다. 백일홍은 가지가 매끄러워 땀이 차면 더 미끈거렸다.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으나 남자는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밤이 되어도 돌아갈 것 같지 않았다. 화사하던 백일홍도 어스름 속에 거무튀튀하게 변해갔다. 나는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자가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간 줄 알았어요.” 나는 남자 옆에 앉았다. “저기 벤치로 가요.” 남자가 나무둥치에 있던 배드민턴 가방을 들고 일어서려 했다. “아니, 나무 아래가 좋아요. 근데 배롱나무꽃을 왜 백일홍이라고 하는지 알아요?” 내가 남자 손에 있는 백일홍을 보며 물었다. “백일 동안 오래오래 피어있다고 해서 백일홍 아닌가요?” 남자가 겸연쩍은지 한마디 하고는 꽃가지를 등 뒤로 슬쩍 감췄다. “배드민턴 하러 가야잖아요?” 나는 남자가 배드민턴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남자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그런 그쪽은 왜 요즘 배드민턴 하러 안 나와요?” 남자는 내가 배드민턴 구장에 나가지 않은 날 수를 세고 있었던 듯 했다.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내가 배드민턴을 그만 둔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착하기만 한 이 남자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배드민턴이 내게 생기를 불어넣어준 건 사실이나 그 변화가 달갑지 않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배드민턴과 나를 이어준 건 남자였다. 당시 나는 하루하루를 십자수를 놓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노동이라고는 하루 종일 앉아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게 전부여서 변비와 생리불순이 잦았고 간헐적으로 위장병도 찾아들었다. 다행이 불면은 없어 십자수를 놓다가 잠에 떨어지곤 했는데 사장을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면서 나는 잘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불면의 요인을 애써 운동부족으로 돌렸다. 몸을 부린 일이 없으니 잠도 안 오는 거라고 여겼다. 사랑과 아버지의 객사가 평상심을 흔들어놓은 건 사실이나 전에도 그 함량을 훨씬 넘나드는 일은 많았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엄마가 집을 나가고 그 폭력이 고스란히 내게로 향하던 절망이 지금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엄마가 자장면 한 그릇을 사주곤 지폐 몇 장을 남기고 다시 내 눈앞에서 사라질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어야 했던 체념이 지금보다 덜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불면은 단지 운동 부족이다. 나는 운동을 하기로 했다. 운동이래야 동네를 서너 바퀴 도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하고 오면 어렴풋이 가수면 상태에라도 빠지곤 했다. 나는 골목을 나와 전파사를 지나고 청과상회를 지나쳐 성당으로 뻗어있는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으로 산책 코스를 마무리하곤 했다.
내가 배드민턴을 만난 건, 아니 남자를 만난 건 바로 그 산책길에서였다. 그때만 해도 그 인적 드문 거리에서 단조로운 일상을 바꿔줄 어떤 계기가 마련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산책을 시작하고 일주일쯤 지나서였을 것이다. 내 눈에 낯선 그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배드민턴 라켓 가방을 메고 가는 젊은 부부의 그림이었는데 그것은 내가 산책을 하는 모습만큼이나 일상적인 것이었으나 왠지 내겐 낯설게만 다가왔다. 그들은 밤내내 잠과 씨름하다가 지친 모습으로 나온 나와는 달리 밤을 아주 잘 보낸 싱그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밝고 싱그러운 표정. 내가 낯설어했던 건 아마도 그들에게서 뿜어져나온 밝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밝았던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면서 삶은 잠깐 내 편으로 옮겨 앉는 듯 했으나 사장을 만나면서 다시 어둠 속에 주저앉았다. 가장 빛나야할 이십대 후반과 삼십대 초반을 나는 사장의 그늘에서 보냈다. 사장을 만나면서 나는 결혼에 대한 꿈을 접었고 부부동반도 남의 얘기가 되어버렸다. 나는 나와는 아주 다른 그 부부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하릴없이 동네를 도느니 차라리 배드민턴이나 칠까, 하는 생각. 그러나 내가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도 그것이 생각에서만 그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그 부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달포가 지나도록 보이지 않자 내 의구심은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그 부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남편 혼자였다. 그 남자는 전과 같은 차림으로 배드민턴 라켓 가방을 메고 걸어갔는데 그 모습이 주는 느낌은 전과는 사뭇 달랐다. 남자의 어떤 부분은 나를 닮아 있었다. 나는 남자를 달라지게 한 아내의 빈자리가 궁금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행기 추락사 탑승자 명단에 그 아내의 이름이 들어있으리라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낯선 남자에게 말을 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남의 아내의 근황을 묻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았다. 아내는 시간이 더 흐르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남자 옆에는 아내가 없었다. 나는 더 기다릴 수가 없어 용기를 내기로 했다. 청과상회 앞을 지날 때, 나는 저쪽에서 걸어오는 남자를 향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 라고 하자, 남자가 돌아봤다. 그런데 그때 내 입에서 전혀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어디로 가면 배드민턴을 칠 수 있나요?”
배드민턴구장으로 가는 길은 모두 세 갈래였다. 하나는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이고, 다른 하나는 주택가 골목길, 또 다른 하나는 철길이었다. 대로는 훤해서 좋고, 골목길은 지름길이라 오가는 시간을 줄여준다는 잇점이 있었으나 나는 철길로만 다녔다. 철길은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으나 간혹 아주 간혹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석탄 객차가 여명을 뚫고 지나갈 때가 있었다. 내가 산책길에서 만난 낯선 남자를 따라 배드민턴구장으로 들어서면서 나의 하루는 배드민턴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배드민턴을 치는 시간은 고작해야 저녁나절에 불과했으나 나머지 시간이 배드민턴을 치기 위한 기다림으로 채워지면서 나는 하루 종일 배드민턴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도 우연히 접한 배드민턴에 이렇게까지 빠지게 될 줄은 몰랐다. 나와 운동은 정말 어울리는 짝이 아니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발길질조차 하지 않아 재차 확인을 일삼았다고 하니까. 내가 배드민턴에 빠지게 된 데는 나만의 이유가 있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배드민턴을 치고 있을 때만큼은 사장에게서 벗어나 있는 걸 발견하곤 했던 것이다. 밥 먹을 때, 세수할 때, 잠잘 때 무의식속으로까지 밀고 들어와 내 전부를 흔들어놓던 그가 배드민턴을 치고 있을 때만큼은 어디론가 감쪽같이 숨어버리는 거였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하다가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 어떤 깊은 슬픔을 안고 사는지, 그것들로 인해 하루하루를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는지도 배드민턴을 칠 때만큼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건 정말이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배드민턴을 치고 오니 방문 앞에 눈에 익숙한 신발 한 켤레가 놓여져 있었다. 끈 달린 검정 가죽 구두. 사장의 신발이었다. 그런데 너무 낡아 내가 사준 게 아니었다면 선뜻 못 알아볼 만큼 그 구두는 뒤틀리고 바래어 있었다. 구두는 그동안 그와 떨어져 있었던 시간을 느끼게 했다. 나는 오백만원을 입금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랑니를 뽑고부터 그가 오지 않는 날을 세지 않았다. 전에는 그가 다녀가고 나면 하루하루를 세며 다시 오는 날을 기다렸다. 그렇게 또박또박 하루하루를 세고 있으면 염원이 이루어지듯 어느 날 불쑥 그가 찾아들곤 했다. 그러나 날을 세지 않으면서 그도 오지 않았다. 아니 그가 오지 말라고 날을 세지 않았다. 신발은 있는데 사람은 없는지 현관에 들어서는 기척을 냈는데도 방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는 배드민턴 라켓 가방을 방문 앞에 세워놓고 문을 열었다. 그는 자고 있었다. 그런데 그 광경이 구두 한 켤레 사 신을 형편이 못 된다는 걸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새우처럼 몸을 깊숙이 웅크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잠들어 있었는데, 그 옆에는 혼자 라면을 먹었는지 빈 컵라면 용기와 김치통이 뚜껑이 열린 채 개다리소반 위에 널려 있었다. 그는 밥도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한 듯 오자마자 허기부터 달랜 흔적을 보였다. 전에 그는 라면 따위는 먹지 않던 사람이었다. 컵라면은 더더욱. 그는 밥과 국에 고기가 있어야 수저를 들었고, 라면을 먹더라도 냄비에 물을 붓고 제대로 끓여주어야 먹던 고집 센 남자였다. 그는 다니다가 지치고 배가 고파 나를 찾은 듯 했다. 그런데 내가 없자 손수 컵라면을 사다가 먹고 그 자리에서 잠이 든 것이다. 나는 상을 치우고 웅크린 그의 몸에 이불을 덮어주었다. 낡은 구두를 버리고 새 구두도 한 켤레 사왔다. 그리고 밥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 구두를 사오고 밥을 짓는 건 그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단지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 나는 사랑니를 뽑을 때 그에 대해 남아있던 미움까지 모두 뽑아버렸다. 완전히 자유로워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배드민턴이 있으니 문제없었다.
내가 당분간 배드민턴을 쉬겠다고 하자 남자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당신이 없으니까 구장이 텅 빈 것 같아요. 아내 보내고 당신을 보는 힘으로 버텼는데.” 남자는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종종 그의 시선에서 뜨거움 같은 게 느껴진 적은 있었으나 지금처럼 대놓고 얘기 한 적은 없었다. 남자는 무슨 작정을 하고 온 듯 했다. 그의 고백을 듣는 게 싫지 않았다. 그 앞에 있으면 나도 여느 다른 여자들처럼 상식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사장도 달콤한 말들을 많이 쏟아냈었다. 그러나 입으로는 사랑한다 하면서 나를 자꾸만 어두운 뒷골목으로만 몰아갔다. 한 때는 그의 밥상을 차리며 그를 기다리는 일로 하루를 다 보낸 적도 있었지만 늘 가슴 한 가운데가 묵직하고 답답했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사장과는 좋았던 기억이 없다. 내가 여상을 졸업하고 경리로 취직했을 때, 소설과 인문서적을 발행하는 사장의 출판사는 어느 때보다 호황을 맞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착실하게 월급을 받아 적금을 들 수 있었다. 간혹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가 들러 월급을 빼앗아가곤 했지만 폭력만을 일삼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했다. 그러나 호황도 잠깐, 부채로 출판사는 넘어가고 나도 실직했다. 그리고 이듬해 봄, 사장이 나를 찾아왔다. 겨우내 어디서 뭘 했는지 초췌한 몰골이었는데, 나는 찾아온 이유도 묻지 않고 덥석 그를 받아들였다. 하필 그때가 봄꽃 만개한 4월이었다. 봄은 이유 없이 찬연한 햇살만으로도 참담하게 해 느낌 따위의 확인절차를 부질없게 했다. 나는 그를 보는 순간 입이 닫히고 대신 몸이 열렸다. 그와는 사랑을 묻기도 전에 몸이 먼저 알아버린 관계였으나 부끄럽다거나 낯설지 않았다. 사장은 그렇게 햇살의 힘을 빌려 비싼 모피코트를 충동 구매하듯 받아들여졌다. 몸이 익숙해지자 그를 거부할 힘이 없어졌다. 사장은 일주일에 두 번씩 들러 나를 안고 차려준 밥까지 먹고 돌아갔다. 몇 번의 봄이 가고 오면서 사장의 왕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나 완전히 떠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는 안 올 것처럼 하고 갔다가도 다시 오는 일을 반복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이별은 내 몫으로 남겨졌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길 건너 편의점에는 벌써 불이 들어와 있다. 사내아이 둘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벤치 앞을 씽 지나갔다. 잠깐 흙먼지가 일었다. 그 사이 전파사와 떡집에도 불이 들어와 있다. 남자를 돌려보내야겠는데 남자는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자가 배드민턴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는 나는 그가 배드민턴구장에 있지 않고 내 옆에 있는 게 불편하다. 집 주인여자가 떡집 앞을 지나간다. 어깨에 샤링이 잔뜩 들어간 블라우스를 입고 강아지를 안고 있다. 주인여자가 집으로 가려면 배롱나무 앞을 지나가야 한다. 나는 남자와 같이 있는 게 신경 쓰였다. 아니나다를까, 저만치에서 오던 여자의 시선이 나를 흘끔 지나 노골적으로 남자에게 가서 박혔다. 내가 인사를 하자 주인여자의 얼굴에 억지웃음이 잠깐 번졌다. 주인여자는 중매 일로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여자는 얼마 전 내 방을 찾아와 저자거리의 나이 많은 한 남자를 소개하고 돌아갔다.
그 때 나는 알았다.
나를 지탱해주는 지렛대가 불행이라는 것을.
그동안 내가 살아 고통을 헤집고
부도덕한 사랑에 붙들려 있었던 건
살아있음에 대한 끊임없는 확인 작업이었음을.
주인여자가 방문했을 때 나는 거의 완성된 드레스의 목선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진주를 박고 있었다. 이층에 사는 주인여자는 계산만 분명히 해주면 전혀 간섭을 하지 않아 평소 편하게 생각해왔다. 주인여자는 사장이 드나드는 것도 묵인하는 듯 했다. 그러니 주인여자의 방문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주인여자는 방부터 휘 둘러보더니 내가 놓고 있는 웨딩 십자수에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그러더니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어머 예뻐라. 신랑신부네. 아가씨 시집가고 싶은가보다 그치? 나는 그냥 내버려뒀다. 뭔가 용건이 있어 온 듯 하나 먼저 묻지 않았다. 용건이래야 집세를 올려달라거나 공과금을 더 내야 한다거나 뭐 그런 따위일 것이다. 십자수를 붙들고 호들갑을 더 떨던 주인여자는 내가 마음을 놓는 듯 하자 은근슬쩍 본론으로 파고들었다. 아가씬 시집 안가? 로 시작하는 걸로 봐서 찾아온 용건이 집세나 공과금 때문은 아닌 듯 했다. 맨날 이런 것만 붙잡고 있으면 뭐해. 시집을 가야지, 안 그래? 내가 미소로 답하자 주인여자는 일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아가씨 팔자 한 번 안 고쳐볼래? 시장 입구에 가구점 주씨 있잖아? 상처한지 5년쯤 됐는데 맨날 나를 들들 볶지 뭐야? 애들도 다 크고 손갈 게 없어. 그냥 가서 주씨 시중이나 차분히 들면 돼. 그럼 그 많은 재산 다 누구 게 되겠어, 안 그래? 십자수를 놓던 내 손놀림이 뚝 멎었다. 내가 아무런 대꾸가 없자 주인여자는 탄력을 받아 더 많은 말을 풀어놓았다. 아가씨가 좋아지내는 사람 있는 거 다 알아. 근데 언뜻 보니 마누라 있는 놈 같던데. 내 말 맞지? 그런 놈 맨날 만나봐야 아가씨 골병만 들고 못써. 여자란 자고로 남자를 잘 만나야 하는 거야. 가구점 주씨가 나이가 많은 게 좀 흠이긴 해도 사람은 진국이야. 어때 한번 만나볼 테야? 내가 십자수 바늘을 잘못 찔러 검지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그 피는 완성된 십자수 위로 번져 금세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붉게 물들였다.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손끝만 바르르 떨고 있자 그제야 주인여자는 자신이 뭔가 큰 실수를 했다는 걸 눈치 채는 듯 했다. 주인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놓았다. 그러나 주인여자는 나가면서도 끝내 자신이 한 짓이 정당한 것이었음을 주장했다. 아니, 주씨가 어때서 그래? 자기한테는 넘치는 자리구만. 그나마 주씨나 되니 그런 말을 하지 남의 서방이랑 놀던 년을 누가 거들떠나 본다고 그래? 나 원 참. 나는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아니 벼락이라도 맞아 죽고만 싶었다. 나는 웨딩 십자수를 집게 가위로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집히는 대로 집어던졌다. 휴지, 책, 컵 등이 주인여자가 나간 문에 맞아 깨지고 부서졌다. 그 속으로 신음과 같은 외마디 말이 흘러나와 엉겼다. “제발 날 가만 내버려 둬.”
어릴 때 내 꿈은 빨리 자라서 공장 같은데 취직하는 거였다. 공장에 취직하면 집을 나갈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장 노동자가 공순이로 천대받으며 자살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공장은 꿈자리에 놓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뒤 내 꿈은 가수로 바뀌었다. 집시와 같은 무명가수. 뿌리를 내리는 일 따위엔 관심 없는 내게 어울릴법한 일이었다. 그러나 꿈일 뿐 가수는 어쩐지 버겁게 느껴졌다. 그러자 한적한 바닷가의 카페 여주인이 되고 싶었다. 사람이 없는 곳엔 슬픔이나 분노 따위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 나는 그 꿈의 시기를 훌쩍 지나 후미지고 습한 기운이 감도는 반 지하 셋방에서 아무 것도 아닌 채로 살고 있다. 내가 또다시 어떤 꿈을 꾸든 남은 인생도 결국은 지금처럼 남루하고 초라한 일상의 연속일 것이다.
내게도 좋은 시절이 한 번쯤은 있었다. 그땐 몰랐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그래도 그 때가 좋은 시절로 남았다. 꿈자리에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출판사에서 일 할 때 나는 행복했었다. 몸은 고달팠지만 내 몫의 책상이 있고, 한 달이 지나 그 수고에 대한 대가를 받을 때 나는 존재감 때문에 가슴이 떨렸었다. 유명한 소설가가 내게 와서 돈을 받아가고 수많은 거래처 사람들이 굽실거리듯 거래를 성사시키고 갈 때 나는 혼자 몰래 삶을 비소하며 자신감도 키워갔었다. 그 속에서 사랑도 했었다. 비록 짝사랑이었지만 사랑의 감정은 또 다른 존재감의 얼굴이었다. 출판사를 드나드는 한 중년의 독신 소설가를 사랑했는데, 그의 여자가 되기에 너무 어리고 보잘 것 없어 혼자 삭힌 사랑이었지만 내겐 아주 새롭고 낯선 경험으로 남았다. 소설가를 사랑하면서 나는 한때 소설가의 아내가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소설가의 아내가 되면 사랑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가의 아내로 살면 꿈을 지속시켜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수가 되고 싶었고 바닷가에서 살고 싶었던 내 꿈을, 가수가 되지 못했고 카페 여주인이 되지 못한 내면의 고독을 소설가는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나도 글을 잘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수 있다면 무명가수나 카페 여주인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소설가의 아내가 되어 이해받기를 바라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풀어낼 아무런 무기가 없었다. 출판사에 출근해 소설가의 책상을 닦는 일밖에는. 그러나 이젠 그마저도 못하고 반 지하 월세 방에서 하루하루 십자수를 놓으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집 주인여자는 아직도 내가 자신을 향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늙은 가구점 주인과 타협할 수 없는 나만의 고독을 읽지 못한 한 그 주인여자는 내 방을 또 찾아올 것이다. 주인여자 눈에 비친 나는 알코올 중독으로 노숙하는 아버지의 딸에, 불륜이나 저지르며 서른을 훌쩍 넘기도록 시집도 못간 한낱 비루한 여인에 불과할 테니까. 내가 살아내야 하는 현실은 상처한 가구점 주씨의 아내거나 햇빛도 안 드는 반 지하에서 십자수나 놓으며 늙어가는 게 전부라고 생각할 테니까. 무명가수나 바닷가 카페의 여주인도 못되는.
톡, 톡, 톡, 톡. 어디서 배드민턴 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아빠와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아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공은 왕복 세 번을 넘기지 못하고 자꾸만 벤치 주변에 떨어졌다. 내 앞에 떨어진 공을 남자가 주워 아들에게 주었다. 톡톡 토도독 토옥톡 톡톡. 생에 대한 모멸감이 들 때 나는 배드민턴을 치러 갔다. 배드민턴은 내게 재미나 운동, 그 이상이었다. 그 정체를 딱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안겨다주었다. 사장과의 만남도 낯선 경험이었음엔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두통을 유발했고 늘 모멸감이나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배드민턴은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았다. 밑바닥에 깔려있던 모멸감이나 수치심조차 깨끗하게 들어내 주었다. 물론 배드민턴에도 사소한 감정의 대립이 아주 없지는 않다. 게임에서 이기려는 승부 근성이 앞서다보면 치기가 동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나는 게임에 한창 열을 올리다가도 어느 순간 맥을 탁 놓아버려 그런 인간적인 본능이 스르르 사라져버리곤 했다. 톡톡톡톡. 배드민턴은 내게 또 다른 선물도 안겨주었다. 곁을 죽어라 따라다니던 만성 고질병들이 배드민턴을 치면서 스르르 꼬리를 감추었다. 몸이 고단하니 불면이 올 리 없고 잠을 잘 자니 두통도 사라졌다. 그리고 배드민턴 때문이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 순 없어도 배드민턴을 치는 동안 위장병도 변비도 생리불순도 모두 사라졌다. 사장의 자리에 배드민턴을 가져다놓으니 많은 게 달라졌다.
“내일부터 배드민턴 치러 나올 거죠?” 남자는 다시 한번 못박듯 말했다. 남자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배드민턴에 빠져 지냈는지 잘 알고 있다. 남자가 배드민턴을 그만 둘 생각이 없는 것처럼 나 또한 그럴 거라고 여기고 있다. 지난 몇 년 배드민턴을 치면서 삶의 온갖 시름을 달랬던 건 사실이다. 그 덕분에 경기에 나가 메달도 따고 건강도 되찾았다. 만일 배드민턴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두통과 위장병은 만성으로 똬리를 틀고 아버지와 사장에 대한 미움은 분노로 변해 운명을 탓하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배드민턴은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놓은 셈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웬일인지 나는 그 모든 변화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뭔가 알맹이가 빠진 듯 허전하고 몸 둘 바 마음 둘 바 모르는 사람처럼 하루 종일 서성댔다. 그러다보면 공중을 떠다니는 먼지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떨 땐 부유하다가 소리도 없이 사라져가는 가랑잎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게서 불행의 요소들이 사라지자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무명가수의 꿈이 사라지고 바닷가 카페 여주인의 그림자가 없어지자 나는 미확인된 비행물체처럼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나를 지탱해 주는 지렛대가 불행이란 것을. 그동안 내가 고통을 헤집고 부도덕한 사랑에 붙들려 있었던 건 살아있음에 대한 끊임없는 확인 작업이었음을.
남자가 등 뒤에 숨겨두었던 백일홍다발을 꺼내어 슬며시 내게 내밀었다. “받아줘요. 당신 주려고 꺾었어요.” 꽃잎은 어느새 시들어가고 있었다. 밤 조명을 받아 빛깔조차 거무죽죽했다. 그러나 남자가 들고 있는 백일홍이 내겐 그 어떤 화려한 꽃다발보다 조화로워 보였다. 나는 그 꽃다발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남자는 일상의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겠구나. 이 남자와 살면 남들처럼 살 수도 있겠구나……. ‘남들처럼’이란 배드민턴을 치러 갈 때 무거운 라켓 가방은 남자가 들고 나는 물통이나 들고 살랑거리며 따라가는 거라든지, 할인매장에서 남자가 큰 수레를 끌 때 나는 아이스크림이나 빨며 필요한 물건을 집어 수레에 넣기만 하면 되는 그런 사사로운 것이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남자가 내손을 잡아끌었다. “내 사람이 돼줘요.” 나는 꽃다발을 받고 싶었다. 이 꽃다발만 받아 쥔다면 나도 남들처럼 살 수 있었다. 한낱 꿈에 머물렀던 일이 내게도 현실로 다가올 수 있었다. 새로운 청사진이 펼쳐지자 순간 내 몸을 휩싸고 돌던 어둠의 그림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꽃잎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현실의 힘은 그 어떤 환상이나 이데아보다 강해 내가 믿고 있던 신념이나 삶의 요소를 한 순간에 날려 보냈다. 그러나 나는 꽃다발을 받으려다 멈칫했다. 불행의 요소들을 떨쳐버리고 살아갈 수 없었다. 무명가수와 바닷가 카페 여주인의 꿈을 접고 살아낼 수 없었다. 남자는 배드민턴에 다름 아니었다. 나는 이미 배드민턴만 치면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내가 자신만의 우물을 안고 사는 한 남자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 밖에 할 줄 모르는 이 남자를 불행하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꽃다발을 정중히 사양했다. 남자의 얼굴에 그늘이 살짝 드리워졌다. “배롱나무는 꽃대가 아주 늦게 나온다죠? 그치만 일단 피고나면 아주아주 오랫동안 예쁘게 피어있대요.” 남자가 둥치에 있던 배드민턴 가방을 들고 일어나 멀어져갔다. 배롱나무 아래 백일홍 다발만이 덩그마니 남았다. 그 위로 검붉은 꽃잎이 몇 장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당선소감] “고단한 삶에 주저않고 싶을때 작은 위안이 됐으면”
사람들이 가끔 제게 하루 종일 뭐 하냐는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직업도 없이 혼자 사는 제가 이상하게 보였나 봅니다. 저는 소설을 쓴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조롱거리밖에 되지 못하거나 왜? 라는 또 다른 질문을 낳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 ‘깊은 숨’은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쓰여졌습니다.
이 작품을 쓸 즈음 많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여름이었는데, 약을 먹어도 열이 내리지 않고 팔다리가 부어 조금만 만져도 통증이 온몸으로 번졌습니다. 그 아픈 걸 잊어버리려고 소설을 썼습니다. 신기하게도 소설을 쓰고 있을 때는 아프지 않았고 이 작품을 다 완성해 갈 즈음 제 몸도 거뜬해졌습니다.
소설이 저를 치유했던 것처럼, 제 소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 제 소설을 읽고 살아내야 할 힘을 얻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제가 소설을 써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감사드려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열심히 쓰는 걸로 보답하겠습니다.
부족한 제 작품에 숨을 불어넣어주어 이제는 소설을 쓴다는 얘기를 할 수 있게 해준 경상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황혜련-
-1964년 강릉 출생
-숙명여대 대학원 졸업
[심사평] “소소한 삶의 여적을 섬세하게 표현한 필력에 주목”
예선을 거쳐 올라 온 9편 중 결함이 없는 문체, 그리고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문제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형상화 했는가를 놓고 저울질 했는데, 그 범주에 든 작품이 ‘깊은 숨’과 ‘밤의 찬가’였다.
두 편 다 정체성 찾기에 골몰하는 여성의 방황과 일탈을 추적한 작품이다.
재개발 지역의 삼류극장 매표원 노처녀와 가수지망생 동성연애자 청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밤의 찬가’는 이야기 자체가 비현실적이어서 억지로 꿰맞춘 흔적이 역력한데 비해 ‘깊은 숨’에서의 ‘나’는 눈만 돌리면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여자다.
그녀 역시 한 남자의 폭력에 순응하여 젊음을 소진해 버린 허드렛 인생이지만, 그러나 그 내면에는 너와 나의 거리에서 빚어질 수 밖에 없는 모든 존재의 슬픔이 시냇물처럼 아프게 흐르고 있다.
소소한 삶의 여적을 섬세한 여성심리와 함께 무리없이 그려내고 있는 그 필력에 주목하고 앞으로 기대를 걸 만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백시종-
-196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
-한국소설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채만식문학상 노근리평화문학상 등 수상
-<오주팔이 간다> <돼지감자꽃> <강치> 등 30여 편 장편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