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나라의 인물들
"조조의 시샘을 받은 불우한 천재" ‘양수’
조조는 측근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꿈을 꾸다가 사람을 죽이는 수가 있으니,
내가 잠들거든 절대로 가까이 오지마라!”
어느날, 조조가 낮잠을 자다가 침상에서 굴러 떨어 졌다. 근위병 한 사람이 얼른들어가 조조를 부축해 침상으로 올리려 했다. 그러자 조조가 벌떡 일어 나더니 갑자기 칼을 뽑아 그 근위병의 목을 쳤다.
그리고는 다시 침상 위로 올라가 잠을 잤다. 한참 뒤 잠에서 깨어난 조조는 목이 떨어진 시체를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누가 이 사람을 죽였느냐?”
주위사람들이 본대로 대답하자, 조조는 슬피울고 죽은 근위병을 후하게 장사 지내도록 지시했다. 그 뒤로 측근들은 조조가 정말 잠결에 사람을 죽이는 줄 알고 조조가 잠이 들면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측근들 조차도 믿지 못한 조조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연극을 한 것인데 그의 각본과 연기, 마무리 솜씨가 얼마나 훌륭했던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근위병의 장례식 날 영구(靈柩) 앞에서 조조의 음흉한 연극을 비꼬는 듯 탄식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엾구나! 조 승상이 꿈꾸고 있었 던 것이 아니라 그대가 꿈꾸고 있었던 것이네!”
양수(陽修)였다. 자는 덕조(德祖).
동탁과 그의 잔당 이각과 곽사가 전횡하던 시절 조정 중신을 지낸 태위 양표의 아들로서 일찍부터 천재로 명성을 떨친 재사(才士)이다.
승상부에서 주부(主簿)를 맡고 있는데, 평시에는 서고(書庫)를 관장하면서 조조의 셋째아들 조식을 가르쳐왔다. 천재 양수가 조조의 휘하에서 어떻게 재기를 떨치다 중도에 사라져 갔는지, 그의 불우한 생애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조조가 궁궐 한쪽에 화원을 꾸며보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다. 화원이 완성되자 조조가 와서 한바퀴 빙 둘러보더니, 문 가운데에다 ‘활(活)’ 자를 써놓고 돌아갔다. 조조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해 모두들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양수는 금방 알아차렸다.
“문(門) 안에 활(活)자를 써 넣었으니 ‘넓을 활(闊)’ 자가 되지요. 문이 너무 넓다는 뜻입니다!”
모두들 탄복하고 다시 문을 좁혔다. 조조가 흡족해 했음은 물론이다. 나중에 조조는 양수가 그렇게 알려준 것을 알고는 은근히 경계하는 마음을 가졌다. 자신의 속을 빤히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런일도있었다. 왕에 오른 조조가 큰아들 조비와 셋째아들 조식 중에서 누구를 세자로 세울것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이다. 두 왕자의 역량을 재보려고 조조는 시신(侍臣) 들에게 이렇게 명을내렸다. “내일 두 왕자를 도성으로 부를터이니 두 왕자가 성문에 이르거든 절대로 안으로 들여보내지 마라!”
다음날, 먼저 조비가 성문 앞에 도착했으나 수비병 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돌아가고 말았다. 조식이 왔다. 역시 수비병들이 완강하게 제지 했으나 조식은, ‘왕명을 받고 들어가는것은 활을 떠난 화살과 같아서 되 돌아설수 없음을 모르느냐!’ 하며 수비병의 목을베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 말을 들은 조조는 ‘과연 내 아들이구나!’ 하며 조식을 크게 칭찬했다. 그게 바로 조조가 원하는 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 조식의 스승 양수가 그렇게 하라고 귀띔을 해준 것임을 알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양수는 조조의 갑작스런 물음에 대비해 조식에게 ‘답교(答敎)’ 라는 책을 만들어 주었다. 조조의 속을 훤히 들여다 보고 예상문제집을 만들어 답까지 가르쳐준 것이었다. 그러나 왕자들의 권력다툼에 관여, 한쪽 편을 드는 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양수의 지나친 총명에 대한 경계심에다, 세자 문제에 대한 신중치 못한 관여가 급기야 조조의 노여움을 사게 된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 지도 모른다. 양수는 금도(襟度)를 지키지 않고 계속 조조의 속을 뒤집어 놓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것이 천재들의 자기방기(自己放棄) 속성 때문이라 하더라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지혜를 뽐낸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할 것이다.
안다고 어찌 다 말 할 수 있으랴. 드디어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한중'의 사곡에서 유비와 격전을 치르고 있던 조조는 패전을 거듭하여 심란했다.
앞으로 나아가자니 사기충천한 '촉'군의 기세가 두렵고, 물러나자니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았다.
그날, 조조가 저녁상에 오른 삶은 닭을 먹고 있을 때, 하후돈이 들어와 군호(軍號)를 물었다. 조조는 그때 마침 닭의 갈비를 뜯고 있었기 때문에 무심코 ‘계륵(鷄肋)!’ 하고 말했다.
사령부로 돌아온 하후돈이 여러 장수들에게 그날 밤의 군호를 하달했지만, 그 자신은 물론 어느 누구도 그 군호의 의미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군호를 들은 양수는 바로 그 뜻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철수 준비를 시켰다. 이를 전해들은 하후돈이 양수를 군막으로 불러 ‘왜 부하들에게 짐을 싸라고 했느냐?’고 물었다. 양수가 대답했다.
“계륵, 즉 닭의 갈비란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인데, 지금의 이 싸움이 그렇습니다. 이길 가능성도 없고 물러서기도 그렇고. 더 있어봤자 별로 이로울게 없으니 아마 곧 철수명령이 떨어질 것입니다!”
조조의 심중을 그대로 꿰뚫은 해석이었다. 조조로서는 유비한테 쫓겨서 철수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후돈은 양수의 말을 듣고 그 혜안에 감복하며 휘하 장병들에게 철수준비를 시켰다.
군사들이 짐을 싸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조조는 양수의 해석 때문임을 알게 되자 그간의 양수에 대한 울분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격노했다.
건방진 놈! 그런 뜻으로 계륵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군율을 문란케 한 양수의 목을 베어 효시(梟示:효시경중의 줄임말로 대개 참수나 능지처참 이후에 행해진다) 하라!”
아! 34년의 짧은 연륜동안 온통 재지(才智)로 점철된 생을 살아온 천재 양수! 대기(大器)로 뻗어나지 못하고 찬바람 부는 진문(陣門)의 기둥에 그의 머리가 걸리고 말았습니다.
출세는 똑똑함이 무기가 아닙니다. 세상은 잘 나가는 단체나 사람에겐 온갖 폄화하려는 시기 질투자가 꼭 있게 마련이어서 오늘도 처세를 잘 하는 금요일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