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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지옥을 면하는 길은 오직 예수님 영접
민16:32-35 마13:40-42 막9:47-48 눅16:22-31
세상에는 수많은 피조물이 있는데 피조물이기 때문에 수명이 다하면 죽게 되는데 오르지 인간만은 죽음에 대해 근심걱정을 하므로 인간만이 신을 믿고 종교생활을 한다. 인간을 제외한 어떤 피조물들은 죽음 이후에 대해 생각할 수도 없거니와 그냥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간만은 이 땅에 살아온 이후 옛날이건 지금이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죽음이후의 세계를 한 두 번씩은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는 인간만이 영혼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서 죽음을 걱정하고 준비하는 것은 오직 영혼을 가진 인간만이 유일하다. 다른 동물들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을 전혀 할 수 없는데 우리 인간만은 에덴동산에서 인류조상으로 창조되었던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 누구든지 그가 전에 살았던 지금 살아가고 있던 이 세상 떠난 후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그래도 나는 선하게 살겠다고 남을 위해 희생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 죽음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왜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확실히 말하는데 인류역사상 죽음이라는 사망권세를 이겼던 사람은 예수그리스도 한분 밖에는 없기 때문에 우리도 그를 믿어 부활의 생명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전 인류의 죄값을 치르고자 십자가위에서 죽으셨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를 믿는 사람들만이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든 인생들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 이외는 죽음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종교마다 믿는 신이 있고 인간을 구원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믿는 예수님처럼 죽었다고 다시 살아났던 사람은 예수이외는 아무도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을 믿고서도 구원받는다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그런 무지한 자들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다. 이제 죽음문제를 해결하고부터는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땅에서의 인간의 가치관과 내세관을 갖고 주어진 삶을 바르게 살고자 오늘도 죽음과 삶에 대한 말씀을 생각해 본다. 신을 믿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백성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들여다 본다면 우리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더듬어 알 수 있을 것이다.
1.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성경을 통해 보여 주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인생을 디자인 할 수 있다고 본다. 택함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장차 나올 것을 말씀하고 있다.
(창15:13-14) 13 그분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확실히 알라. 네 씨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닌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이 사백년동안 네 씨를 괴롭히리라. 14 또한 그들이 섬길 그 민족을 내가 심판하리니 그 뒤에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는 동안 아무런 비전도 없이 노예처럼 살아갔으나 때가 되니 모세를 보내사 애굽에서 출애굽을 하게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들(엡1:4)이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것과 같습니다. 때가 되니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여 약속된 땅 가나안을 향해 갈 때 홍해바다를 육지같이 건넜고 광야 40년동안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였으며 매일 하늘에서 만나를 주셔서 식사를 했으며 이방 족속들의 침략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물리쳐주셨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일만 당하면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원망을 늘어놓았던 것은 그들이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눈앞에 닥친 어려움만을 불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천국을 향해 갈 때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 염려로 광야같은 인생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옛날 이스라엘백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도 함께 하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건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낙심과 절망의 고통스러운 삶을 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된 가나안의 땅을 미리 보여주시고자 12지파의 대표들을 선발하여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정탐보고를 듣고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그 백성들이 듣고도 불신하는 예를 봅시다.
(민13:26-27) 26 그들이 바란광야의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과 온 회중에게 말을 전하고 그 땅의 열매를 보여 주며 27 모세에게 고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우리가 간즉 참으로 그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열매이니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답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증언하였고 그 증거로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를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른 정탐자들이 보고하기를 거기에는 견고한 성과 장대같이 큰 아낙자손들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들은 부정적 자아의 늪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 광야 생활 내내 그렇게 지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세상의 어려운 상황과 우리들 스스로의 부족함만을 보고 열등감에 빠져 약속된 축복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을 믿지 못하면 이제도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삶의 패턴속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일 처음 선포하신 천국을 소망하지 않고 불안과 갈등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만이라도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정말 사람들은 무엇을 소유했을 때 행복하다고 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은 외적으로 행복해 보이면 행복하다고 하지만 외적으로 보이는 행복이란 곧 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하지만 돈 때문에 불행하게 된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행복이란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나 기회가 되면 이런 것들을 소유하고자 혈안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기에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남을 비교하면서 불행에 지기도 하는데 행복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바르게 알 때 시작됩니다. 거울을 보지 않고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를 이 땅에 보내시고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아야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사랑받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들은 세상사람들 눈에는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종합해 보면 이러한 엄청난 축복들은 예수님을 믿어 하늘나라에서 영생한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그러나 인생의 죄 짐을 예수님께 맡기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은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 인생관으로 말미암아 불행과 실패의 늪에 빠져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인생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내주셔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오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 마음속에 보내 주셔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내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일시적으로는 행복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영원하고 진정한 행복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나옵니다. 하나님은 행복을 소유나 지위나 우열에 두지 않고 사랑의 관계에 있도록 디자인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와 자신과 이웃과의 성숙한 사랑의 관계 속에 행복을 누리도록 디자인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세상에서 무엇을 소유하였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남에게 줄 때 비로소 누리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실존을 믿고 그분이 자기를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천국을 예비하여 놓으신 것을 믿는다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잠14: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다시 말하면 행복이란 이 땅의 것만 으로는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후의 세계까지 연결이 되어야 진정한 행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에 대해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며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히9:27)고 하였는데 인생은 죽음이 두렵지만 행복한 사람은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에 태어난 인생에게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하게 오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이를테면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는 당신에게 앞에 나무를 싣고 가는 화물차에서 갑자기 줄이 끊어지면서 장대같은 나무들이 당신의 차 유리창을 깨면서 날아 들어와 운전하는 당신을 가하였다고 하면 당신의 생명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정말 전혀 예상치 못한 사고였을 것이며 실제로 죽음은 이처럼 예기치 않게 갑자기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끔찍한 예가 아니더라도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총사망자수는 373,000명 정도로 매일 1000명 이상이 사망한다는 것인데 사망 원인 1위는 암, 2위는 심장질환이며 이 외에도 교통사고나 살인이나 자살자수도 무시못할 정도로 OECD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금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일본에서는 노트반도에서 지진으로 200명 이상이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 재해는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로 더욱 마음이 아프다.
위의 이야기는 당신이 오늘 죽을 수 있는 수천가지 경우 수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아무리 조심을 한다 하더라도 죽음을 피해 숨을 수는 없지만 죽음이란 세상에 나온 순서대로 가는 것도 아니고 예고 없이 갑자기 오는 경우가 너무 많으므로 인간은 늘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하니 전능하신 신을 믿는다는 것이 너무 당연스럽게 느껴지는데 죽음이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갑자기 온다는 것을 알고 있노라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고 어떻게 죽어야 복된 죽음인가를 말씀을 통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2. 성경은 죽음을 준비하라는 책이다.
국제심장질환의 전문가인 모리스롤링스 박사가 지은 ‘죽음의 문 저편’ 이라는 책이 발간되어서 세상사람들에게 사후의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다. 롤링스 박사는 심장전문의사로 죽어 있는 사람들을 소생시켰던 무신론자인 롤링스박사는 평소 생각이 종교는 속임수이고 죽음은 단지 고통없는 소멸이라고 생각했으나 1977년 그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자기에게 온 환자 중 한명이 지옥 불꽃속으로 내려가면서 공포에 떨며 소리쳤던 한 남자를 소생시켰던 일을 기억한다. 심장박동과 호흡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그 남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나는 지옥에 있었다면서 공포에 떨며 자기를 도와달라고 자신에게 간청했는데 그는 지옥을 믿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서 진짜로 두려움에 찬 지옥공포의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다. 이 사건으로 무신론자인 롤링스 박사는 기독교인이 되어서 죽음의 문 저편 이라는 책을 썼는데 죽음의 문 저편이라는 곳은 흔히들 말하는 지옥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경에서 지옥에 대한 경고는 162번이나 기록되었으며 이중에서 70번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인데 예수님이 지옥을 70번 말씀하셨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정말로 실존하는 장소라고 믿어야 한다.
(마13:42) 그들을 불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풀무불은 다른 말로 용광로불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불의 온도를 넘어선 불이라는 말인데 지옥불을 이렇게 비유해서 표현했다.
(마23:33)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찌 너희가 지옥의 정죄를 피하겠느냐?
뱀은 마귀 또는 사탄이라는 말인데 그들을 섬겼던 자들이 가는 곳이다.
(마25:41)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라
(막9:48) 거기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계14:11)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라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지옥이란 영원히 꺼지지 않는 풀무불이 타는 불못으로 한번 들어간 영혼은 그곳에서 나올 수 없으며 영원히 고통받는 지옥만은 가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신데 이렇게 지옥을 예수님이 말씀하였는데도 과연 지옥이 있을까 의심하면 안된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지옥 가게 되었을 때는 예수님은 그가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이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무서운 지옥이 실존하건만 문제는 사람들이 살아서 갈 수 없는 곳이기에 믿지를 않는 다는 것인데 성경에는 실제로 지옥을 약간 보여준 곳이 있다. 민수기에서는 모세와 대적했던 고라, 단, 아비람이 산채로 지옥에 떨어진 사건을 기록했다.
(민16:32-35) 32 땅이 자기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33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구덩이에 빠지며 땅이 그들 위에서 닫히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끊어져 멸망하니라. 34 그들 주위에 있는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 하였고 35 주로부터 불이 나와서 향을 드린 이백오십 명을 소멸시켰더라.
레위 지파요 고핫 자손이었던 고라가 르우벤 지파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을 지어 회중 가운데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 모세를 거슬렀다. 고라는 모세의 사촌이면서 모세와 아론이 백성의 지도자로서 행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르우벤 지파 사람들이 고라의 불만에 동조하면서 이 사람들의 도전내용은 3절에 나옵니다.“너희가 분수에 넘치게 행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주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 자신을 주의 회중보다 높이려 하느냐?” 13절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데리고 올라와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네가 스스로 우리 위에 우리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하나님께서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지 않는다는 것과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광야로 돌린 것을 모세에게 그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습니다. 고라 일당은 하나님께로부터 귀한 직임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 도전하니 하나님께서 결국 고라의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사람들을 땅을 갈라 땅속불로 던져 넣습니다. 고라와 아비람을 따르던 이백오십 명의 지휘관들도 그들이 들고 있던 향로로부터 불이 나와 모두 불살라졌습니다. 이 사건을 지켜보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너희가 주의 백성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이었는데 백성들은 이 사건을 보면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분명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사람들을 심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인데 백성들은 회개하기는커녕 자신의 죄악으로 죽은 사람들로 인해 또 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니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염병으로 백성들을 치시니 이 때 죽은 사람이 만사천칠백 명이었다(민16:49). 이들은 모세를 대적하다가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들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모든 물건들이 산채로 지옥으로 내려가는 광경을 보여주었던 것은 그들이 산채로 지옥불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는 땅속에 지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한 번 왔다가는 인생들 누구나 가장 깊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은 당신이 죽은 후에는 천국에서 영원을 보내야할지,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야할지 깊이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만약 아무 대책도 없이 살다가 죽어 지옥에 떨어져 대성통곡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지옥으로 가지 않을 기회는 살아있을 때만 딱~한번 뿐이다. 민수기에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를 내리시는 분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민6:24-26) 24 주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주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주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는 복 주시기를 원하며 은혜 베풀어주시를 원하시며 평강의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복은 고사하고 저주밖에 받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겐 엄중한 지옥심판이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옥은 마귀와 사탄이 형벌받는 곳이므로(계19:20) 마귀들을 뒤쫒다 보면 마귀와 함께 영원히 불타는 유황불이 지옥이다(계20:15). 살아있을 때는 어떤 죄라도 회개만 하면 용서받을 수 있으나 죽은 후에는 아무리 작은 죄라도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자만이 그 지옥을 면할 수가 있다. 설마하지 마라. 천국과 지옥은 진짜 있다. 바로 이 순간에도 구원받지 못한 수백만의 영혼들이 지옥고통중에서 울부짖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들이 부르짖는 지옥의 고통과 비교할 만한 것이 지구상에는 전혀 없다. 어떤 악몽이나 어떤 공포영화도 어떤 살인현장도 지옥의 두려움을 그려낼 수 없거니와 비교될만한 것이 이 세상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지옥에 대해 예수님은 마가복음에서 이렇게 경고를 하셨다.
(막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렸어도 지옥으로 향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다. 70억이 살아가고 있는 지구촌에는 매일 매일240,000명이 죽어 가고 있다면 오늘은 당신이 그 속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당신도 곧 포함된다면 그 날이 당신에게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이 언제 죽을지는 당신이 결정하지 않는다. 당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당신이 오늘 죽어도 될 만큼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죽음에 대해 준비가 안 되었다면 그런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게 된다. 그곳은 유황불속에서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는 곳이다. 당신의 탐욕적인 육체는 세상에서 한 순간 살지만 지옥에서 당신이 받는 고통은 영원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쾌락을 다 즐긴들 그것 때문에 지옥에 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포기하지 못해서 지옥으로 갈 것이다. 영원에 비하면 이세상의 삶은 1초 보다도 짧은데 당신은 지금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죽음에 대한 주님의 엄중한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마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넓어 그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아서 그 길을 찾는 자가 적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지옥의 넓은 길로 가고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생명길로 간다는 것인데 좋은 것만 따라 다니고 칭찬 듣기 좋아하고 남에게 자랑하기 위하는 세속적 태도로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볼 수 없는 그곳은 사탄 마귀와 그의 졸개들이 지옥에 온 사람들에게 영원한 형벌을 주는 장소이며 사람들은 그 고통을 면하고자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곳이 지옥이다.
3. 누가 지옥에 가는가?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진리를 경멸한 사람들이 지옥에 갑니다. 한마디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도 지옥의 울부짖음에 예외는 없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죄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 하면 살아있을 때 당신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인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값싸게 취급하며 경멸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10: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이 있으리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하신 손에 빠져드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세속적인 삶과 성적인 죄와 물질적인 죄를 좋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옥의 맹렬한 불속에서 울부짖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잠시의 육적인 쾌락에 빠졌다가 영원한 지옥에 갈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당신이 정말 어리석은 자이면 처절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면서 물질 때문에 사람들 앞에 인정을 받았어도 그 물질로 이웃을 섬기지 않았으면 그는 죽어서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다고 하시면서 한 부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눅16:19-31)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요즘버전으로 하면 어느 한 부자는 값비싼 자주색 패션과 예날 임금들이 입었던 아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친구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면서 하루를 보내는데 모든 사람들이 정말 그를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면 과연 이 부자는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요? 성경은 그런 삶을 어리석은 삶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부자는 재물이 많고 인정도 있었지만 내세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저 친구들과 먹고 마시는 즐거움에 자신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라서 그는 정말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합니다.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오늘의 주인공은 부자와 그 집 문간에서 거지로 살아가는 나사로라는 사람입니다. 나사로라는 말은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뜻을 가지 이름이니 그 이름에서 보았듯이 그는 거지로 살았지만 하나님 믿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그 부자집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하였던 자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어느 날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사망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이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 하나이다
이들 사후의 세계는 살았을 때와 전혀 다르다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에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리지만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중에서 아브라함에게 간구하지만 어느것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 성도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사후의 세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지옥에서 부자는 엄청난 괴로움을 받고 있는데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 지옥이다.
24.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 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한마디로 부자는 불꽃속에서 괴로움을 받으면서 손가락 끝에 물 한방울도 허락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그래서 부자는 두 번째 요청을 하는데 세상에 남아 있는 5형제들에게 제발 누군가를 보내서 지옥을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29.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라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당연히 두 번째 요청도 거절되었던 것은 지옥은 어떤 요청도 들어주는 곳이 아니라는 곳입니다. 만약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리 죽은 자가 살아나서 지옥을 얘기하여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죽음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1) 모든 사람은 다 죽는다
진리중의 진리는 죽음은 빈부귀천이나 남녀노소에 차별이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보아도 사망이 보통 때는 우리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이지도 않다가 어떤 때는 사망이 보일 듯 말듯 하다가 또 얼마쯤 지나면 바깥마당까지 와 있다가 그 다음에는 안마당 가까이 와서 어슬렁거리다 어느 날은 창문에서 앉아서 우리를 내려 보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목을 조이며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것에서 누가 죽음의 사자를 피할 수 있겠는가?
자연사이건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간 경우 장례식장에 가면 누구나 마음이 숙연해지고 참 애석하지만 마치 그 장례식이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머지않아 나도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태어난 이상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는 것입니다. 그저 조금 먼저 가고 조금 나중 갈 뿐이지 나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시간이 온다는 것을 알자. 죽는 데는 예수를 믿던 안믿던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정말 공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죽음에 관련하여 지나치는 몇 가지 있습니다.
1) 떠날 시간을 모른다
요즘은 백세시대라고들 하지만 백세를 넘긴 사람들은 아주 극 소수이고 대부분 사람들은 백년은 고사하고 칠 팔십도 살기 어려운데 자신만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에 때로는 싸우고 욕심 부리며 치열하게 다투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아이들이 땅뺏기 놀이를 하면서 서로 땅을 많이 뺏기 위해 다투다가 해가 지면 부모가 얘들아 집에 가자 하면 그 많이 빼앗은 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것을 잊고서 인간은 이처럼 조금이라도 더 차지할려고 이웃과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왜냐하면 아직 떠날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만일 의사로부터 3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사망경고를 들었다면 그런 사람은 이제 이웃과 다투지 않고 오히려 마지막 남은 삶을 정리하고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죽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렇게 준비하고 가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죽을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움켜잡고 놓지 않으려고 애쓰다 갑자기 떠나게 된다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2) 죽음 이후 믿는 자와 불신자의 삶은 전혀 다르다
이 땅에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 두 사람의 삶도 전혀 달랐지만 죽어서도 너무나 극과 극처럼 차이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사로는 부자집 대문에서 거지로서 잘 곳도 마땅치 않았고 피부에 진물이 날 정도로 개들이 헌데를 핥을 정도로 비참하게 살면서도 그의 이름에서 보듯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은 변함없었다.
나사로가 죽은 후 얼마 있다가 부자도 죽었다. 그가 죽은 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슬퍼했는지 모른다. 그 부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속에 양지바른 명당이라는 곳에 묻혔지만 정말 그의 사후의 세계는 행복했던가? 우리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에는 이들의 사후세계가 소개되고 있는데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안에서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부자는 낙원과 대조되는 음부로 가서 뜨거운 불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13:49) 49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50 풀무불(영원한 멸망의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지옥은 풀무풀로 철을 녹일 수 있는 아주 뜨거운 용광로의 불과 같은 불인데 이 불에 대하여 막 9장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영원히 불타는 곳이라고 합니다.
(막9:48-49) 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그런 뜨거운 불타는 지옥에서는 누구든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내가 이런 지옥이 욌다는 것을 아무리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옥불꽃 속에서 고통받던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애원하였지만 지옥은 자비와 긍휼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는 절망 그 자체가 바로 지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모든 사람은 사 후에는 천국과 지옥 중 어는 한 곳으로 간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안으로 갔고 부자는 지옥으로 갔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인 완충지대나 중립지대는 없다는 것이다.
천주교는 연옥이라 하여 죽은 자를 위해 살아 있는 가족이 선을 행하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다고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예수 믿고 죽으면 천국이고 안 믿고 죽으면 지옥이다.
4. 지옥의 실상
(1) 지옥은 불타는 곳이다.
여러분들은 혹시 불에 손가락이라도 데웠다면 정말 고통스러울 것이지만 지옥은 그정도 불이 아니고 그렇게 짧게 불에 닿았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부자가 불꽃가운데서 고통받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24) 내가 이 불꽃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마13:50)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지옥불은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이라고 밝혔는데 지진이 일어나는 지대서 분출하는 유황가스를 조금만 마셔도 불쾌하고 우리 목숨을 끊는 무서운 독가스인데 지옥은 유황가스가 계속 타는 불못이라는 것이니 뜨겁기도 하겠지만 불쾌한 유황가스를 맡는 곳이라면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리라고 봅니다. 그런 지옥불은 꺼지지 않는 뜨거운 형벌의 불이라서 그곳에 있는 영혼들은 소리치는 소리가 무슨 소리냐 하면 ---했을 걸 하는 후회하는 소리만이 애처롭게 들려오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지옥갈 인간들을 지옥에 가지않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위에서 죽으신 것은 당신의 죄값을 지불하고 천국으로 보내고자 오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예수님을 만나야만 인생의 모든 문제에 해답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5. 둘째 사망을 당한 영혼들이 지옥에 간다
지옥을 가는 자들의 리스트가 계시록에 나옵니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지옥에 간다는 것은 두 번째 사망을 당한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1) 지옥은 두 번째 사망을 당하는 곳이다.
지옥에 간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두 번 사망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이땅에서 한번 사망하고 그 영혼이 지옥 간다면 그는 두 번 사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는 사람은 이 땅에서 육신으로 한번 사망하면 둘째 사망은 없습니다.
둘째 사망을 당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아니하는 자들인데 그들중에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살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제일의 자살국가로 떠올랐습니다. 전직 대통령도 자살하고 톱스타도 자살하니 그들을 따랐던 일반사람들이 자살을 모방하다보니 매일 자살자가 30여명이 넘으니 세계 제일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자살할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자살은 이유가 어떻든 모두가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절대로 자살을 미화시켜서는 안됩니다. 살인자를 비롯해 행음자들, 우상숭배자들, 술객들, 거짓말하는 자들이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2) 부자는 천국가기가 어렵다
물질이 많은 것이 죄는 아니나 그 물질을 어디에 사용했느냐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 물질로 인생을 연락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거나 향락에 빠져 하나님 섬기는 것을 소홀히 한 결과로 부자는 지옥에 간 것입니다. 소유한 물질이 많으면 세상일에 바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물질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관이 분명해야 하는데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단지 청지기라는 물질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물질관을 갖고 있으면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신앙생활에 전혀 방해가 안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지기로서의 물질관이 없고 내가 물질의 주인으로 생각하면 하나님 섬길 시간도 없거니와 결국 물질에 노예가 되어 지옥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19:23-24)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재능이나 물질이나 그 어느 것이라도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데 사용하여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줄 압니다. 지옥에 간 사람들은 살았을 동안 지옥이 있다는 것을 전혀 믿지도 않았고 사후 세계에 관하여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고 오직 오늘만을 위해 쾌락과 향락에 빠지면서 인생을 즐긴 자였으니 죽은 후 이를 갉고 후회하면서 영원히 불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수술도 하지만 수술후에는 퇴원할 수 있다는 소망이 있기에 고통을 참지만 지옥 고통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고통이 계속되는 곳이므로 오직 절망만이 있는 곳이다.
(3) 지옥에서도 의식이 있다
병원에 중환자실에 가보면 몇 년 째 식물인간으로 있는 사람들은 맥박만 뛰다 뿐이지 주사를 찔러도 전혀 아픈 것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눈 한번 깜작이지 않는다. 이처럼 식물인간은 살아있지만 고통을 못느끼고 있는데 지옥은 의식을 못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독한 유황냄새도 맡는 고통이며 그 뜨거운 열기며 갈증이며 모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가족들까지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여기 부자는 아직도 세상에 있는 자기 5형제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자기처럼 이 지옥에 오면 어쩌나 하고 근심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애원하는데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에 대해 아브라함은 분명히 말합니다.
부자는 지옥에 오지 않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것이라는 것을 지옥에서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하신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회개하면 천국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입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회개하면서 만일 죽은 자가 저희에게 가서 빨리 지옥고통을 전해달라는 부탁이나 아브라함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31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세상에 있을 때는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중에서 나가서 전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살아있는 동안에 교회에 나가면서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지옥에 오지 않는 것이지 혹시 죽었던 자가 살아 나가서 지옥의 이야기를 열 번 백번 한다 하여도 불신자들은 그들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지옥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지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가는 문과 길은 넓어서 많은 사람이 그리고 가고 영생으로 가는 문은 좁고 길은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적은 수가 천국으로 가고 대다수는 지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는 구원받았던 경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노아시절 물로 지구를 멸망시켰을 때 전 인류 중에 8명만 구원받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유황불로 심판을 받았을 때 롯과 롯의 두 딸 세 사람만 구원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아래의 리스트에 있는 죄를 짓고 있다면 지옥에 가기로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주님을 영접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면 그 때는 너무 늦습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지금 주님께 나오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위해 지옥을 준비해 놓으셨는데 사탄을 따르는 천사와 불신자들이 그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만드신 지옥은 하나님의 진노가 부어지는 곳입니다. 주님의 진노가 불경건한 자들과 죄인들을 향해 부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옥에 대해 거듭 경고하였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창녀나 술중독자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눅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분을 두려워하라. 참으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분을 두려하라.
예수님이 구원받은 제자들에게 지옥에 관한 가장 공포스러운 사실은 그곳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는 것이 가장 끔찍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지옥의 형벌이 100년 1000년이 아니라 영원하고 영원한 형벌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이 말은 분명히 성경적인 진리를 함축하는 말이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하면 거부감이 들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를 들어보면 그 중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을 지옥에 보내지 않기 때문이 너무 불공정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독교 교리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교리가 얼마나 합리적인 교리인지를 설명드려 보고자 합니다. 우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는 단지 예수님이 역사적 인물임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갈라디아서 2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첫 번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사실은 죄를 진 내가 못박혔였어야 하는데 죄 없는 예수님이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지금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주인이 되어 사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내 안의 주인이 되어 사는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 믿음은 내가 믿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나에게 오셔서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하는 믿음을 주신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들이 왜 중요하냐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 대신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으로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 값을 치룰 만한 능력이 없지만 구원의 길은 단 하나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내가 받을 지옥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으므로 내 모든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전가 되었다고 믿는 것을 예수님을 믿는다고 것입니다.
그리고 사망은 죄값으로 죽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예수님역시 인류의 죄 값을 갚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고전 15:17-18) 17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되지 못하셨다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이라. 18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한 것이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럼에도 거룩하심으로 죄의 삯을 완벽히 지불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을 유일한 길은 나의 죄 값을 치뤄주신 예수님을 믿는 것 뿐입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교리가 어떤 의미를 지녔으며 얼마나 논리적인지를 이해하셨는지요? 내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내 죄에 대한 죄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을 대속의 은혜라고 합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의 작은 소원도 하나님께서 들어 응답하시지만 지옥에 간 불신자들의 기도는 어는 것 하나 응답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구했던 것이 어느 것 하나도 응답 안 되고 거절되었듯이 기회는 지금이 바로 구원받을 유일한 기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증거합니다. 이 말씀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을 영접하는 복된 여러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