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나비꿈 창단공연 이승비 작 연출 주연의 해이비를 보고
공연명 해이비
공연단체 극단 나비꿈
작 연출 이승비
공연기간 2014년 3월 1일~31일
공연장소 대학로 배고파 시어터
관람일시 3월 29일 15시
대학로 배고파 시어터에서 극단 나비꿈의 창단공연, 이승비 작·연출·주연의 <해이비(奚哩悲)>를 관람했다.
해이비(奚哩悲)를 풀이하면 “어찌 슬퍼하리?”이다.
이 극은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의 일대기를 그렸다.
유관순은 1919년 3월 1일 3·1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화 여자 고등 보통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유관순은 공주 감리교회의 앨리스 해먼드 샤프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 학당에 입학하여 교비생[장학생]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촌언니인 유예도(柳禮道)도 샤프여사의 추천으로 유관순보다 먼저 이화 학당에 입학하여 당시 3학년 졸업반이었다. 한 집안의 두 자매가 이화 학당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지령리 주민들이 1900년대 초에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공주에서 관리하는 감리교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운동에 유관순은 친구 몇 명과 함께 학교 담을 넘어 합류하였다. 3월 5일 남대문역[현 서울역] 앞에서 학생단 주도하에 수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한 제2차 대규모 만세 운동이 있었다. 유관순은 이때에도 시위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경무총감부에 구금되었다가 풀려났다. 3월 12일 학교 선배가 유예도등 10여 명의 지방 학생들에게 고향으로 급히 내려가 독립운동자금을 모아 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3월 13일 유관순과 유예도는 고향 천안으로 내려와 마을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려 하였으나 가난한 동리라 모을 돈이 없었다. 이에 마을 어른들은 본인들이 직접 만세 운동을 벌이자고 의견을 모았고,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 숙부 유중무(柳重武), 동네 어른 조인원(趙仁元)[조병옥 부친] 등이 주동이 되었다. 그들은 음력으로 3월 1일이 되는 4월 1일 병천[아우내] 장날을 기해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4월 1일 각지에서 약 3천 명의 장꾼이 아우내 장터에 모여들었고, 유관순은 태극기를 들고 시위 대열에 앞장섰다. 유관순은 병천 일본 헌병 주재소의 헌병에 의해 주재소로 끌려가다가 도망쳤고, 약 1천 5백여 명의 군중과 주재소 입구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이 과정에서 유관순의 부모를 비롯한 19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유관순은 박종환의 집에서 2~3일 몸을 숨기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서 빠져나오던 중 헌병들에게 체포당했다. 공주 지방 법원은 아우내 만세 운동 주동자들인 유관순, 유중무, 조인원 세 사람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였다. 이에 경성 복심 법원에 공소를 제기하였고, 유관순 등은 징역 3년형으로 형이 확정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에 불복하여 다시 최종심인 고등 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유관순은 “삼천리강산이 어디인들 감옥이 아니겠느냐.”라며 상고를 포기했다. 서대문 감옥에 수감된 유관순은 감옥에서 계속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함께 수감되어 있던 이화 학당 박인덕 교사의 만류로 잠시 잠잠하게 있다가, 1920년 3월 1일 3·1 운동 1주년을 맞아 유관순은 또다시 감옥 안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때 갖은 고문을 받아 방광이 파열되었고, 결국 유관순은 1920년 9월 28일 서대문 감옥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무대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교실로 설정을 했다. 배경에 태극기를 영상으로 투사하고, 바퀴달린 등받이 의자 여러 개를 출연자들이 위치를 변동시켜가며 장면변화에 대처한다. 정면 오른쪽에 출입문이 있고, 객석 벽에 유관순 열사의 유언(遺言)이 적힌 전단이 부착되어 있다.
그 내용은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코와 귀가 잘리고.
내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연극이 시작되면 젊은 남녀가 등장해 배경에 영상으로 투사된 태극기의 흰색 바탕에 태극문양과 건곤감리(乾坤坎離)의 4괘를 설명한다.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나타내고, 태극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며, 우주만물이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발전하는 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고,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발전하는 모습을 효(爻)의 조합을 통해 구체화한 것이다. 그 중 건은 우주만물 중에서 하늘을, 곤은 땅을, 감은 물을, 이는 불을 각각 상징한다고 소개한다.
장면이 바뀌면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교실이다. 여학생들이 새 봄을 맞아 즐거운 마음으로 바퀴달린 의자를 타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회전을 하며 물기 오른 나뭇가지나 꽃망울마냥 청춘을 만끽하는 모습이다. 상 하급생 합 반인 듯, 한 여학생을 보고 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언니는 하급생들을 엄격하게 다룬다. 그 때 선생님이 등장하고 역시 여선생인데, 고아한 모습과 지성과 품격을 갖춘 듯싶고, 어딘지 모르게 서양풍을 일찌감치 받아들인 느낌이 든다. 선생님의 등장으로 학생들은 자리를 정돈하고 앉는다.
바로 그 때 사진사가 등장해 선생님과 학생들의 정돈된 모습을 촬영하면서 동시에 배경에 당시의 유관순 열사를 포함한 동료들과 선생님의 흑백사진이 영상으로 투사된다.
장면이 바꾸면서 미션스쿨이라 그런지 기독신앙과 관련된 기도와 찬송을 여학생들이 읊조리고, 당시 일제치하에서의 상황적 전개가 극의 진행에 따라 소개가 된다. 기미년인 1919년 3월 전후의 상황이 극에 간략하게 소개가 되면서, 경성 뿐 아니라, 목천과 천안에서의 유관순 열사의 주도하에 독립만세 운동이 무대에서 상징적으로 전개되고, 순사에게 잡혀가 옥에 갇히는 모습과 고문을 당하고, 대단원에서 젊은 나이에 피어나지 못한 채 떨어져 버린 꽃망울이 된다.
이승비, 조현숙, 최아름, 이헌주, 김범준, 박하은, 이우희, 안태원, 백지훈, 최다운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호흡의 일치는 관객을 감동으로 몰아간다.
조연출 김연진, 무대 박찬호, 영상 신해룡, 음악 윤드보라 구본춘, 액탱코치 조현숙, 안무 최아름 백지훈, 의상 윤현주단, 분장 임영희, 사진 신귀만 이진호, 홍보영상 권성민, 기획홍보 조현숙 윤드보라 홍보마케팅 오승아, 포스터 팜플릿 가지디자인, 포스터 제작 이기영, 음향 김연진, 영상 김연진, 조명 김용빈 등 스텝 진의 열정과 노력도 일치가 되어, 극단 나비꿈의 창단공연 이승비 장희진 작, 이승비 연출·주연의 <해이비((奚哩悲)>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극단 나비꿈이 3월을 맞아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의 일대기를 공연하는 것은 3.1운동과 애국선열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한국연극에 극단 나비꿈이 독립운동과 같은 자세와 심정으로 임하겠다는 굳건한 의지로도 받아들여져, 여간 흔쾌하고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운 게 아니다.
극단 나비꿈과 이승비 대표의 차기작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3월29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