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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국제 영화제 탄생] 첫 개막식 사회의 행운은 영화배우 문성근과 전문 엠시 김연주에게 돌아갔다. 문정수 부산광역시장이 “제1회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을 선언합니다.”며 힘찬 선언으로 신화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개막작 「비밀과 거짓말」 소개를 마치자 지붕처럼 뉘여 있던 야외 스크린이 서서히 일어섰다. 수영만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 남포동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젊은 관객들의 열기에 김동호 집행위원장도 감격하였고 문정수 조직위원장도 흥분하였다. 사무국의 스태프, 자원봉사자들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야외 상영장을 찾은 구름 같은 관객들도 여러 번 놀랐다. 말로만 듣던 야외 스크린의 위풍당당함에, 화려한 불꽃놀이에, 그리고 앞줄에 빼곡히 앉아 있는 영화 스타들의 얼굴에 놀랐다. 개막작의 주인공인 블렌다 블레신과 장 마리 밥티스트, 그리고 신성일, 김지미, 장미희, 심은하, 강수연, 안성기 등이 관객과 함께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처럼 야외 스크린에 영사되는 영화를 감상하며 제1회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식의 탄생을 축하하였다. 한국 최초의 국제 영화제의 역사는 이렇게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한국 영화인의 잔치였으며 부산 시민의 축제였다. 부산 국제 영화제는 행운아였다. 무엇보다 한국 최초의 국제 영화제가 수도 서울도 아닌, ‘문화의 삼류 도시’ 부산에서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부산은 형편없는 극장 시설에서 액션과 에로 영화만 통하는 그야말로 변두리 혹은 시골로 치부되던 시절이었다. 그런 곳에서 재미없는 예술·작가주의 영화를 상영하는 국제 영화제를 연다는 것이었기에 어쩌면 모험이었다. 솔직히 논의 단계에서 단발성 행사로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산 국제 영화제는 열렸고 꿈은 실현되었다. 부산 국제 영화제 첫 회에 31개국, 169편의 작품이 부산에 왔다. 개막일로 잡은 ‘13일의 금요일’에 대한 우려와 걱정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던 것은 무엇보다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 때문이었다. 개막일까지 판매된 입장권은 무려 5만 장을 넘어섰다. 집행부의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할리우드 영화가 아닌 색다른 영화를 맛보고자 하였던 관객의 갈증은 입장권 판매 숫자로 표현되고 있었다. 극장들로 둘러싸인 남포동 피프 광장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최상의 영화제 장소였다. 젊은 열기로 뒤덮인 한낮의 광장, 노천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맥주 한잔 들이켜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피프 광장과 남포동 거리에 주말이 되자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사실 남포동은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인파가 몰려 빼꼭해 보이는데 여기에 영화제까지 덧칠되었으니 장소 선정은 그야말로 최적이다. 부산 국제 영화제 상영 시간표를 들고 오가는 사람들과 주말을 맞이하여 시내로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이 한데 섞여 영화의 거리는 활력으로 넘쳐났다. 피프 광장 야외무대를 통한 영화인들과의 만남도 영화제 분위기를 한층 들뜨게 만들었다. 초청된 한국 영화감독들과 배우들이 야외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무대 인사를 하면 이내 인파들로 메워졌다. 얼굴 한 번 제대로 마주칠 수 없었던 부산에서 스타들의 행렬이 이어졌으니 시민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부산을 처음 방문한 외국 게스트들은 이런 부산 관객의 열정에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그들이 놀란 것은 남포동을 가득 메운 관객의 대부분이 10~20대의 젊은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유명 해외 영화제의 주요 관객들이 중년층임을 감안할 때, 남포동의 관객들은 여느 영화제에서도 보기 힘든 낯선 풍경이었다. 칸과 베를린, 베니스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을 비롯해 버라이어티 등의 외신 기자들은 부산 국제 영화제에 ‘젊은 영화제’라는 수식어를 붙였고 “영화제에 희망이 보인다.”는 소식을 연이어 타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