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2,36-41; 요한 20,11-18
+ 찬미 예수님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아침,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확인하고 돌아간 뒤에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하고 묻자,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나중에 토마 사도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외치는데요, 막달라 마리아가 먼저 “나의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뒤이어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하고 물으십니다. “누구를 찾느냐?” 요한복음 18장에서 이 말씀은 무척 가슴 아픈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에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군대와 성전 경비병 그리고 유다가 예수님을 잡으러 오자, 예수님께서 똑같이 물으셨습니다. “누구를 찾느냐?”(요한 18,6)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물으십니다. “누구를 찾느냐?” 붙잡히실 때 이 말씀은, 당신을 죽이려는 이들을 향한 비장하고 참담한 물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후 이 말씀은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제자에게 건네시는 다정하고 애틋한 물음이 됩니다. 부활은 이처럼 같은 말, 같은 것을 바꾸어 놓는 힘이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애절하게 청합니다. “당신이 그분을 옮겼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말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가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리아야!”
마리아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돌아서서 “라뿌니!”하고 부릅니다. 부활하셨으면 진작 말씀해 주시지 왜 이렇게 애태우게 하시는지 원망스러워서 우리말로 “나쁜 이”라고 한 게 와전되서 “라뿌니”라고 기록된 것은 아닐까요. ‘라뿌니’는 ‘랍비’ 즉 ‘선생님’의 애칭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3절)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자신을 부르시는 음성에서 마리아는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아차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라고 말씀하시는데요,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셨으니 예전처럼 제자들과 함께 지낼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하고 전하여라.”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호칭이 나오는데요,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을 ‘내 형제’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인류와 하느님과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의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12절)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인데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아버지께 올라가신 후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써,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 딸이 되고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나누시는 관계에 참여하게 됩니다.
오늘 1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유다인들에게 말합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오심으로 인해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 딸이 되고 예수님과 형제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로마 8,29)
또한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당신 이름을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히브 2,11-12)
여기서 히브리서는 시편 22장을 인용합니다. 즉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로 시작하며 예수님의 수난을 예고하고 있는 그 시편입니다. “저는 당신 이름을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라는 시편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이 말씀이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고 전합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끝까지 머물렀던 막달라 마리아는 이렇게 수난의 증인이면서 부활의 첫 증인이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전한 부활의 메시지는, 우리가 이제 하느님의 아들, 딸이라는 것, 예수님의 형제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서로 형제자매라는 것입니다.
프라 안젤리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1440-1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