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공동(Supercavitation) 기술의 이해와 개발 사례 분석
작성일: 2020-08-18 15:26:58
초공동(Supercavitation) 기술의 이해와 개발 사례 분석
박재현 해군본부 비서실, 음향공학 석사, 해사62기, 해군 소령
“Damn torpedo, full speed ahead(망할 놈의 어뢰, 전속 앞으로)”, 미국 남북전쟁 중 북부군 제독 페러것Farragut이 했던 말이다. 사실 당시의 어뢰Torpedo는 현대 시대의 기뢰Mine를 일컫는 의미였으나, 수중에서 은밀하게 공격하는 무기에 대한 두려움을 잘 표현해 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 수중무기의 위력과 중요성은 높아져 왔으며, 현재까지도 더 은밀하고 강력한 수중무기를 개발하는 한편 이를 탐지하고 방어·타격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많은 국가가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 중 하나가 초공동Supercavitation 기술이며, 이 글에서는 초공동의 원리를 이해하고 개발사례를 통해 강점과 한계점을 분석하고자 한다.
• 초공동(Supercavitation)이란?
어떠한 물체가 매질Medium 안에서 운동을 하면 마찰Friction과 저항Drag이 발생하게 되며, 매질의 밀도가 높을수록 마찰과 저항도 더 커지게 마련이다. 해수의 밀도는 공기보다 800배 이상 높으며, 잠수함이나 어뢰가 수중에서 고속으로 항주하는 데 제한이 되는 주원인이다. 외부의 힘Stress으로 인해 물의 압력이 포화증기압Saturated Vapor Pressure보다 낮아지게 되면, 물이 기화하며 수증기 방울Cavity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공동Cavitation 현상이라 부른다.
[그림 1] 물과의 접촉으로 저항이 발생하는 전통적인 수중체(위)와 공동으로 몸체를 덮어 물과의 저항을 최소화한 초공동 수중체(아래) 개념도
선박에서의 공동현상은 주로 추진기의 회전으로 인한 압력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공동 현상은 소음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추진효율과 추진체계에 물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이 공동 현상을 줄이려고 노력한 반면, 이를 오히려 유발하여 수중무기의 속력 제한성을 극복하고자 한 기술이 초공동Supercavitation 기술이다.
공동현상의 단계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공기방울의 생성과 파괴로 큰 소음을 발생시키는 초기 공동 Initial Cavitation, 공동이 몸체의 일부를 덮고 불안정하게 팽창·수축하는 부분 공동Partial Cavitation, 공동이 몸체 전체를 충분히 덮는 초공동Supercavitation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초공동 단계에서는 수중체 전체가 공동으로 덮여 해수와의 접촉이 차단되기 때문에, 해수로부터의 마찰과 저항 영향이 최소화 되어 수중체가 고속으로 항주할 수 있게 해 준다. 공동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주로 수중체 앞쪽에 초공동을 유발할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되며, 이를 케비테이터Cavitator라 지칭하겠다.
공동에서는 기존 수중체에서 사용하는 추진기인 스크류는 해수와 닿을 수 없어 사용이 제한되기 때문에 초공동 수중체에는 로켓 추진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는 위 기술을 이론적으로 적용하면 100분 이내에 태평양을 횡단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 초공동 수중무기 개발 사례
최초로 초공동 기술을 적용한 사례는 구 소련에서 개발하여 현재까지도 러시아에서 운용하고 있는 VA-111 쉬크발Shkval 어뢰이다. 1960년대에 개발을 시작하였으며, 200kts(370km/h) 이상의 속력으로 항주 가능하다.
[그림 2] 쉬크발(Shkval) 어뢰 구조도, 앞쪽에는 케비테이터, 뒤쪽에는 로켓엔진이 설치되어 있다.
주요 구조는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으며, 앞쪽에는 공동을 형성하는 케비테이터, 중간에는 케비테이터에 공기를 공급하는 압축공기 탱크, 뒤쪽에는 로켓엔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쉬크발 어뢰는 로켓의 뜨거운 배기를 앞쪽 케비테이터를 통해 배출하면서 물을 기화시켜 공동을 형성 하는 방식을 사용하며, 러시아는 2016년에 쉬크발 어뢰 성능개량을 실시하였다.
[그림 3] 쉬크발(Shkval) 어뢰 앞쪽의 케비테이터(왼쪽)와 뒤쪽의 로켓엔진(오른쪽) 사진
러시아에서는 2019년 4월 23일에 특수목적 핵추진 잠수함 ‘벨고로드Belgorod’함을 진수하였으며, 주목할 점은 초공동 기술을 접목한 수중 드론 ‘포세이돈Poseidon’을 탑재한다는 점이다.
포세이돈은 직경 1.8m 이상, 길이 약 24m의 핵추진 수중 드론으로, 약 2메가톤까지의 재래식 또는 핵 무장 탑재가 가능하다.
어뢰와 비교하면 덩치도 대형이고 최대속력은 약 56노트, 항속거리는 약 10,000km로 기존 어뢰들의 능력을 뛰어넘는 무기이다.
[그림 4] 러시아 벨고로드(Belgorod)함 구조도, 함수부에 포세이돈 드론이 탑재됨을 보여 준다.
[그림 4]는 벨고로드함의 배치도를 보여 주고 있으며, 함수부에 포세이돈 드론이 탑재됨을 확인할 수 있다. 언론들은 엄청한 폭발력을 가진 포세이돈을 ‘수중 ICBM’ 또는 ‘쓰나미 대파괴Apocalypse 어뢰’라고 부르기도 하며, 장거리 수중항해로 인해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큰 폭발력을 이용한 기지파괴 또는 쓰나미를 형성하여 해안시설을 파괴하는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반대로 포세이돈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자들도 있으며, 이들은 위력적인 쓰나미를 형성하기에는 포세이돈의 폭발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포세이돈의 대형 몸체를 공동으로 덮을 수 있는 초공동 기술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해 기술적인 의혹을 제기한다.
쉬크발, 포세이돈 등 러시아 초공동 무기의 실효성을 입증할 수 있는 실험결과가 공개되지 않은 점도 의혹을 크게 만드는 이유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초공동 무기가 비록 완벽한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작전에 투입되는 전력에 탑재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상대편에게 위협을 주는 전략적 무기로서의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미국도 초공동 기술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으며, 미국 해군에서는 1997년에 수중에서 최초로 수중음속(1500m/s 또는 3,010kts)보다 빠르게 물체가 항주하는 실험을 실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의 개발 진행현황에 대하여는 관련 업체와의 계약체결 등 제한된 정보들만 공개되어 왔으며, 미국 해군연구실ONROffice of Naval Research에서 장기과제로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해군연구실 어뢰개발 분야 담당자는 2004년 인터뷰에서 초공동 어뢰를 전력화하려면 15년 이상은 소요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중국의 경우 2014년에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며 초공동 기술 경쟁에 동참하였다. 기존에 초공동 기술의 한계 중 하나로 지적되었던 점은 안정적인 공동형성의 어려움과 초공동 상태에서 방향전환이 제한되는 점이었다. 방향전환 없는 직주어뢰에만 주로 초공동 기술을 적용하고자 시도하였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의 하얼빈 공업대학 연구팀에서 발표한 방법은, 저속에서는 물체 표면의 막Membrane을 통해 마찰력을 낮추는 특수액체를 지속 공급하여 물체를 덮고, 일정 속력(75km/h) 이상에서 초공동 단계에 진입하게 되는 개념이다. 표면 전체에 설치된 막에서 배출하는 특수액체의 양을 위치별로 조절할 수 있으므로, 표면 간의 압력차이를 이용하여 방향을 전환한다는 이론이다.
당시 본 계획이 발표되었을 시 중국이 초음속Supersonic 잠수함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평가와 함께, 희박한 실현 가능성을 지적하는 회의적인 평가도 적지 않았으며, 이후 개발 진행현황에 대하여 자세히 공개된 사항은 없다.
그 밖의 국가 중에서, 이란은 러시아의 쉬크발 어뢰를 복제하여 자국에서 생산한 후트Hoot 어뢰를 보유하고 있으며, 2017년까지 총 3회의 해상 발사시험을 실시하였다.
독일의 Diehl 업체에서는 2004년에 초공동 어뢰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였으나, 프로젝트의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 극복해야 할 한계점
앞의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초공동 무기는 냉전시대부터 현재까지 긴 개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실효성이 완전히 입증되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초공동 기술은 수중전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 평가되었던 획기적인 기술인데, 왜 아직도 제대로 운용되는 사례가 없는 것인가?
그 이유는 획기적인 만큼 극복해야 할 한계점도 크기 때문이다. 고속으로 추진하며 안정적인 초공동을 유지하는 기술 등의 근본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핵심적인 한계점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방향 조정의 어려움이다. 수중에서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해수의 저항을 활용한 타Rudder가 주로 사용되는데, 수중체 전체가 공동으로 덮이게 되면 타가 해수와 접촉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측면에서 유체를 분사하거나 새로운 방식의 타를 적용하는 아이디어도 있으나, 방향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공동의 형태 변화로 통제가 힘들어지는 등의 제반적인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각 측면 공동 간의 압력 차이를 만들어 방향을 조정하는 방법도 있으나, 아직은 성공적인 실험사례를 찾기가 힘들다.
둘째, 탐지장비 사용의 제한이다. 수중에서 표적 탐지를 위해서는 표적이 발생하는 소음을 탐지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초공동 추진체의 경우 공동 형성 소음과 추진계통에서의 소음으로 인해 상당히 높은 자체소음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표적이 만든 음파가 전달되어 오는 해수와 추진체 주변의 공동 간의 음향 임피던스Acoustic Impedance 차이로 인한 낮은 음파전달율, 공기방울로 인한 음파의 산란Scattering 등으로 표적 소음을 탐지하는데 상당한 제한이 있다.
• 기타 개발 사례
미국 업체 Juliet Marine Systems에서는 지난 2011년에 초공동 기술을 적용한 ‘고스트Ghost’라는 수상정 시제품을 공개했다. 본체는 수면 위 대기중에 위치하고 본체와 연결된 두 개의 초공동 추진체만 수중에 위치하는 구조로 해수와의 마찰을 최소화함으로써 50kts 이상의 고속항해가 가능하다.
[그림 5] 초공동 기술을 적용한 고스트(Ghost) 수상정의 항해사진, 수중에 잠긴 두 개의 추진체가 공동에 덮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6] 고스트(Ghost) 수상정 구조도, 두 개의 추진체 전부에 설치된 프로펠러 겸 케비테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각 초공동 추진체 앞에 설치된 프로펠러가 물을 끌어당기며 수상정을 전진시키는 동시에 프로펠러의 회전을 이용하여 추진체 전체를 공동으로 덮는다는 점이다. 프로펠러를 뒤에만 설치하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함으로써, 물을 이용한 추진 방법과 초공동 효과를 동시에 활용한 좋은 예시라고 볼 수 있다. 빠른 속력의 장점을 활용하여 연안전투, 특수전 지원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평가된다.
2019년 말경 미군에서는 노르웨이 업체 DSG에서 개발한 CAV-X 초공동 탄환에 대한 수중발사시험을 실시하였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탄환은 부식에 강하게 만들기 위해 텅스텐 재질로 제작되었으며, 수중에서 전진하며 탄환의 앞쪽 끝에 있는 작은 구멍이 공동 현상을 발생시킨다. 공동에 덮인 탄환은 60m 거리까지 파괴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정확하게 타격이 가능하다. 발사를 위한 별도의 부가장치가 불필요하며, 기존의 총알 대신 장전하여 발사하기만 하면 된다.
[그림 7] 2019년 말 미군에서 실시한 CAV-X 초공동 탄환 수중 발사시험 사진
개발업체인 DSG는 수중, 수중에서 대기로, 대기에서 수중으로 발사하여 사용할 수 있는 CAV-X 탄환의 다목적성과 기존 장비와의 호환성을 강점으로 내세워 다양한 국가에 판매할 계획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화에서 적의 총탄을 피해 물 속으로 뛰어드는 주인공의 모습은 곧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맺 는 말
초공동 기술은 거의 반세기 넘게 신기술로 간주되며 개발이 지속되고 있다. 실전 적용 측면에서는 회의적인 평가도 적지 않지만, 작전운용능력이 확보되면 기존의 수중 무기체계로는 대적할 수 없는 속력으로 수중전의 판도를 바꾸게 될 것이기 때문에 결코 개발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초공동 기술을 잠수함이나 어뢰 등의 수중체에만 적용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앞에서 설명한 초공동 탄환과 같은 특수전 분야, 고속 수송체에 적용한 전투지원 분야 등의 다양한 분야에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천재 과학자이자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당시 밀라노의 한 공작에게 일자리를 청하였으나 공작은 다빈치의 아이디어들을 몽상적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후대의 사람들에게는 다빈치가 남긴 스케치들이 시대를 수백 년 앞서간 아이디어로 평가되고 있다.
혁신적인 성장은 실현이 불가능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시도에서 시작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실현하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 국방이 첨단 기술을 선도하고 강한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