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12(수)
욥1:9,10
9 그러자 사탄이 주께 대답했다. "욥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그처럼 하나님을 잘 경외할 리가 있겠습니까?
10 주께서 언제나 욥과 그의 집안사람들은 물론이고, 그의 재산도 사방에 울타리를 쳐서 잘 지켜주시지 않았습니까? 또 욥이 하는 일마다 주께서 복을 내려주셨으므로, 욥의 가축들이 온 땅에 넘치도록 불어난 것이아닙니까?
→ Give & take의 법칙은 사탄이 만들어 낸 것일까요? 사탄이 지금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 이니간 세상에서는 이 법이 상당히 강력한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신봉하는 법칙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많이 듣곤 하는데, 이 세상을 사탄이 다스리고 있으니 자기 사람들에게 단단히 각인시켜 둔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give & take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은 사랑입니다! 세상은 give & take이지만 하나님은 주고 또 주는 분이십니다. 일방적으로 주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법 아래에서 살아가는 행복을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욥2:10
10 그러나 욥이 아내에게 대답했다. "어리석은 여편네들처럼 말하지 말아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는 좋아라 하고 받았으면서, 이렇게 고난을 주신다고 그분을 내팽개친단 말이오?" 이렇게 욥은, 이 모든 극심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 그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
→ 이득이 되는 것은 재빨리 받고, 손해 나는 일은 결사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세상 사는 일인 듯합니다.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이익과 손해만 생각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고대 사람 욥은 옳고 그름을 생각하는 사람인 듯합니다. 그리고 그 옳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주권'인 것도 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기준입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복과 저주를 내리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귄리요 권한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들은, 피조물들읕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을 분입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재앙을 찬송하며 받아들이는 욥의 놀라운 수준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이십니다. 할렐루야!
2025.3.13(목)
욥16:2,3,17
2 “그런 말은 나도 수없이 들었네. 자네들의 말은 내게 위로를 주기는커녕 괴로움만 더해 주는군 그래.
3 자네들은 그처럼 허망한 말을 언제까지 늘어놓을 텐가? 도대체 무슨 심정으로 나에게 그토록 앞다투어 답을 주려고 애쓰는
가?
17 “친구들이여, 그래도 내 손은 여전히 불의를 저지르지 않았고, 내 기도는 순수하다네.
→ 딜렘마에 빠져있는 욥과 친구들입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진리와는 다른 상황입니다. 그래서 욥은 혼란에 빠져서 하나님께 항의하고 묻고자 하고 있으며, 친구들은 욥이 죄를 지어서 그런 것이라고 단정하고 죄를 회개하라고 권면하다가 욥이 듣지 않으니 이제는 서로 싸움이 됩니다. 내가 아는 범위가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지요! 다른 차원의 일이 생겼는데, 낮은 차원에서 이해하려 하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모를 때는 잠잠해야 하는데 잠잠하지 않고 자신이 아는 범위 안에다 우겨넣어서 해석하려 하다보니 이상해지고 서로 맞지 않아 싸움만 일어날 뿐입니다. 다들 알기 때문에, 또 의롭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것 같기는 합니다. 차라리 모르면, 차라리 자신이 죄인이면 오히려 이렇게 다툼은 되지 않았겠지요! 함부로 말하지 말고, 함브로 판단하지 말고, 그지 하나님 앞에서 잠잠해야겠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합니다. 주여~!
2025.3.14(금)
욥21:16-18
16 하지만 그자들이 누리는 복과 번영은 결코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일군 것이 아니네. 그러므로 나는 그자들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가 없네.
17 "하지만 악한 자들의 등불이 꺼지는 일이 얼마나 자주 있었던가? 그자들에게 재앙이 닥치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던가? 하나님께서 그자들에게 분노하셔서 그자들을 곤경에 빠뜨리신 것을 몇 번이나 보았던가?
18 그자들이 바람에 날려가는 지푸라기같이,폭풍에 흩날리는 겨와 같이 된 적이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
→ 이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가 기대하지 않는 결과입니다. 선한 사람이 잘 되고 형통해야 사람들이 선을 추구할텐데, 악한 사람들은 벌을 받고 망해야 악을 두려워하고 죄를 조심할텐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을, 반대로 되는 것을 보기 때문에 우리는 황망해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시는가 하고 느낍니다. 욥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삽도 이 문제로 번민했고, 하박국은 하나님께 따졌고, 요나는 그런 하나님을 피해 도망가기까지 했습니다. 아삽이 말했지요? "내가 공연히 선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애쓴 것 같습니다'라구요! 우리는 이런 갈등을 하곤 하는데, 지금 욥이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관점에서 하나님께 따집니다. 권선징악, 인과응보, 이런 단어들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들이고, 우리는 그것들을 신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윤리의 틀, 공자나 맹자 안에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보다 크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훨씬 이상의 차원에서 일하시고 진정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할렐루야!
2025..16(일)
욥42:3,5.6
3 주께서는 물으시길 '알지도 못하면서 내 뜻을 흐리는 자가 누구냐?' 하셨습니다. 바로 제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입을 놀렸습니다. 너무나 경이롭고 기이해서 저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떠들어댔습니다.
5 지금까지 저는 귀로만 주님께 대하여 들어왔지만, 이제는 제 눈으로 직접 주님을 뵙고 있습니다.
6 그러므로 저는 여태 제가 말한 모든 말들을 심히 부끄럽게 여기며, 스스로를 경멸하며 흙과 티끌과 잿더미 가운데 앉아 회개합니다.
→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든 것을 아는 사람처럼 떠들이대곤 합니다. 자신이 아는 것이 모든 것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 위에 또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합니다. 그러다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저지르곤 합니다. 판단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사람은 판단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만 판단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나서지 말아야 하고, 화내지 말아야 하고, 단언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그 이상의 세상이 있습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더 높고 높은 세상이 하나님 세상입니다. 그러니 그냥 하나님께 굴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 높은 차원에서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내가 직접 하나님을 경험하여 더 높은 수준의 하나님을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욥처럼 그제서야 경탄하며 회개히겠지요!
욥42:10
10 욥이 세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모두 마쳤을 때, 주께서는 욥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곧 주께서는 욥의 재산을 이전에 그가 소유하고 있던 재산보다 갑절이나 더 늘려 주셨다.
→ 욥이 세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은 그가 친구들을 용서했다는 뜻이겠지요? 고통 중에 있는 욥을 위로하고 격려하기보다는 정죄하고 화를 내며 싸우기까지 했던 미운 친구들입니다. 용서하고 싶지 읺을 수 있는 친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그런 친구들을 용서하고 깨끗해지기를 원하신 듯힙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직접 제사를 드리지 않고 욥을 통해서 제사를 드리게 한 것이겠지요! 친구들은 욥에게 사과했을 것이고 욥은 기꺼이 용서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한 것이겠지요! 욥 자신도 하나님을 만나뵙고 자신을 회개했으니 친구들을 용서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사실 으리 인승들은 조금 차이는 있어도 다들 똑같습니다. 다들 한계 가운데서 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부족하고, 무능하고, 무식하고, 무력하고~, 그러면서도 완전한 척, 유능한 척, 유식한 척, 힘잎센 척 합니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곤 하지요! 서로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고, 서로를 용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님 나로 자신을 알게 하셔서 겸손하게 하시고, 마음을 넓혀주셔서 다른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