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김영옥
비가 내려서 일까.
초저녁인데 가게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 나는 아스팔트 위로 구슬처럼 튕겨오르는 굵은 빗줄기를 바라 본다. 우두둑! 두둑! 차양 위로 쏟아지는 빗소리는 가야금 줄을 숨 가쁘게 퉁기는 휘모리장단처럼 느껴진다.
삼거리에서 골목길 사람을 단골로 작은 수퍼를 하고 있다. 손님이 들고나는 틈틈이 창문을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를 보는 것으로 작은 위안을 삼는다. 봄이면 보랏빛 라일락 꽃향기가 가게 안에 갇힌 여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여름이면 담장 위로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가 창밖에서 나를 바라본다. 마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처럼 주황빛으로 물든다. 가을날 낙엽이 흩날리고 가게 앞으로 쓸려온 나뭇잎을 보며 외로움과 슬픔으로 가슴이 아릿해지기도 한다. 겨울이면 나풀나풀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앞을 떨군 감나무가지에 살포시 내려앉는 눈은 소복의 여인처럼 깨끗하다. 겨울 달빛을 향한 하얀 나뭇가지는 여인의 마음을 내비치듯 가로등 불빛 아래서 조심스럽게 반짝인다.
가게 문을 여는 이른 아침부터 문을 닫는 밤늦은 시간까지 창을 통해 수많은 행인을 바라본다. 말끔한 교복차림으로 등교하는 풋풋한 학생과 출근 시간에 쫓기어 바쁘게 걷는 직장인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술렁이던 골목길이 숨을 돌릴 때쯤, 행길 끝에서 싱싱한 과일을 손수레에 가득 싣고 오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가게 앞은 할아버지가 잠시 숨을 돌리고 가는 정거장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가게 문을 열고 들여다보며 "안녕 하세유?"하며 인사를 건넨다. 할아버지는 여느 상인처럼 큰소리로 호객하거나 과일을 깎아 맛보라며 손님을 끌지 않는다. 손님들도 대대분 과일 맛을 물어보거나 값을 따지지 않는다. 과일 할아버지와 손님은 신용과 믿음으로 오랜 단골로 맺어져 있다. 해질 무렵이면 물건을 다 팔고 '내일 뵈유."라며 저녁인사를 하고 빈 수레를 가볍게 밀고 간다.
나는 답답한 공간을 싫어한다. 유리창에 상품 포스터를 붙이거나 상호도 쓰지 않았다. 커다란 유리문과 넓은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은 오롯이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낙이다. 어쩌면 타인을 보며 느끼는 여러 생각과 상상의 시간을 즐기고 싶은 나의 호기심이 아닐까. 가게 앞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과 오가는 행인의 얼굴, 걸음걸이, 옷차림을 살피며 그들의 성품을 점치는 관상쟁이가 되기도 한다. 휴대전화를 하며 걸어가는 행인들의 표정과 음성을 들으며 ' 저 사람은 지금 어떤 일이 있겠구나. ' 라는 추리소설을 쓰는 오만함을 갖기도 한다. 종일 가게 안에 갇혀 있는 내게 그런 작은 상상도 없다면 지루하고 건조한 생활이 얼마나 답답할까. 골목 안 사람들 삶의 변화를 창을 통해 보고,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한 지도 어느새 십여년이 지났다.
저녁이면 아웃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은 아침의 활기찬 모습과 또 다른 모습이다. 과일과 채소를 트럭에 싣고 골목길을 다니며 물건을 파는 아이 아빠가 트럭을 세워 놓고 가게를 들어서는데 그의 얼굴이 수심이 가득하다. 오늘은 장사를 망친 모양이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는 그의 모습에서도 오늘 장사가 잘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여름날 뜨거운 열기에 채소가 팔리지 않았으니 시들어버린 채소를 다시 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시든 채소처럼 처진 속을 술 한잔에 달래고 싶을 게다. 난전에서 장사하는 할머니도 오늘 장사가 신통치 않은 표정이다. 굽은 등 뒤로 작은 손수레에 실려 있는 채소꾸러미가 할머니의 걸음을 무겁게 한다. 벽시계가 11시를 앞두고 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남자가 한 손에 검은 봉지를 들고 지나간다. 그 봉지 않에는 가족들의 간식거리가 담겨 있을 것이다. 터덜터덜 걷는 걸음 소리에도 한집안의 가장으로 육중한 삶의 무게가 전해져 온다. 늦은 밤, 가로등 불빛이 내려앉는 여인숙 골목길에서 나온 남자가 가게를 향해 오는 그의 걸음과 표정을 읽는다. 느릿한 걸음과 몸짓으로 보아 외상을 하러 오는 것 같다. 여윳돈이 있으면 당당한 모습으로 가볍고 빠른 발걸음으로 달려오기 때문에 지금처럼 어색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창을 통해 카메라 렌즈처럼 여러 모습을 담는다. 쪽방 골목에는 하루 벌이로 사는 일용직 사람, 홀로 사는 노인이 좁은 방에 노동으로 지친 몸과 외로움을 내려놓는 곳이다. 때론 보이던 얼굴이 보이지 않고, 낯선 얼굴이 보이기도 하면, 그들이 조금은 지금보다 나아진 모습으로 떠나고 들어오는 희망의 골목길이었으면 한다.
어느 날, 가게 밖에서 창을 통해 안을 보았다. 밖에서 들여다보는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가게 앞을 지나치는 누군가가 무심히 앉은 나를 바라본다고 생각하니 문득 궁금해졌다. 손님을 기다리다 나른함을 못 이겨 스스륵 감기는 눈을 억지로 치켜뜨는 모습을 떠 올려본다. 그들에게 대형할인점에서 밀려 힘겹게 살아가는 구멍가게 여주인의 고단한 삶이 측은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그날 이후 창문에 얼굴을 비춰보고 옷매무새도 신경을 쓴다. 손님을 기다리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으면 책을 들고 고개를 숙인다. 내가 창을 통해 보이는 모습만 보듯 그들의 눈에 책 읽는 모습으로 지치지 않을까 하는 얕은 마음이 들킨 것 같아 슬며시 웃는다.
나는 요즘 마음 속에 작은 창문을 하나 달아달았다. 가게의 창을 벗어나 가슴의 창을 통해 조금은 더 깊은 생각과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함에서다. 깊은 우물 바닥, 검은 이끼 핀 돌 틈으로 새로운 샘물이 솟는다. 오랫동안 깊은 우물 안에서 잠겨 있었던 꿈을 깨웠다. 나태와 미움 오만과 질투의 이끼가 긴 돌멩이를 끄집어 낸다. 일주일에 한 번 나는 글 공부를 위해 이 공간을 떠난다. 그 시간이 내 마음의 창을 아름답게 만드는 시간이다. 시간에 쫓기지만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희망과 조약돌이 채워진다. 투명하고 작은 알갱이들이 가슴을 채운다.
유리 창문으로 부드러운 햇살이 쏟아진다. 긴 밤을 보낸 나에게 희망의 빛으로 가슴에 스며든다. 나의 새 아침을 여는 영롱한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