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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을 허락하셔서 주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귀하고 귀한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도 앞뒤 좌우 계신 분들과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 나눕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이라는 것은 도심 도착을 의미하는 라틴어 어드벤투스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시기는 성탄절을 앞두고 4주간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경건의 시간, 그렇게 지내는 그런 시간으로서 기독교의 전통에서 매우 중요한 절기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대림절 이미 지난주에 시작이 되었고요. 이제 성탄절이 오기 전까지 이 마지막 대림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 함께 묵상하면서 남은 기간 그렇게 준비하기를 소망하면서 말씀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림절은 특별히 두 가지 기다림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기다림은 과거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아기로 오신 초림을 기억하는 것이죠. 이 기다림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성취된 사건이죠. 온 인류를 위해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시간. 그래서 우리는 매년 12월이 되면 이 성탄의 계절을 맞이하면서 이 날을 기다리자. 그리고 12월 25일 성탄절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두 번째 기다림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재림의 소망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있죠. 내가 다시 타고 오겠다. 그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공의와 평화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날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그날을 소망하며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 대림절은 단순히 기다림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 시기에 우리가 영적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또한 회개하고 더불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겁니다.
즉 초림의 주님을 기억하면서 여러분 초림의 주님이 오셨다는 것은 복음의 은혜잖아요. 그 복음으로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예수님이 오셨는데 복음과 동떨어진 삶을 살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 예수를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 내가 복음 안에서 잘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죠. 또한 재림의 주님을 소망하면서 믿음을 새롭게 하는 거 주님이 다시 오신다 하셨는데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림의 주님을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도 그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살자는 그러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죠. 따라서 대림절은 두 가지 준비와 기다림이 공존하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준비와 기다림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단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메시지가 아니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동일한 말씀으로 선포해 주신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누구를 기다린 거예요? 초림의 주님 아직 오시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구약을 통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초림의 주님을 기다렸던 것이죠.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요. 이미 초림의 주님은 오셨으니 다시 오시겠다 약속하신 그 주님을 기다리는 거예요. 기다리면서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서 그 주님을 맞이할 것인가 마치 10처녀 비유를 통해서 다섯 처녀가 신랑을 준비하며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도 이 대림절 기간을 통해서 그러한 마음을 다시 한 번 갖고 우리의 삶 가운데 그 주님을 집중하는 시간이라 볼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면 이 성탄의 계절 재림의 준비 어떻게 우리가 할 것인가 먼저 3절을 보시면 초림의 주님을 기억하고 재림의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3절 말씀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십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보신 바와 같이 이 구절에는 두 문장으로 권면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문장은 어디에서요? 광야에서 광야에서라는 장소가 있고 거기서 무엇을 하라는 거예요?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그렇게 권면해 주었습니다. 두 번째 문장은요. 동일한 개념 속에서 볼 수가 있죠. 어디에서 사막에서 사막에서 무엇하라는 것입니까?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는 권면을 주셨다는 거예요. 따라서 우리는 이 두 문장의 말씀을 통해서 이러한 장소라는 부분에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죠.
여러분 광야와 사막과 같은 삶, 우리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죠. 우리의 인생 평탄한 길만 있으면 참 좋겠지만 때로는 광야와 같을 때도 있고 사막을 지나갈 때도 있고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 있을 때 뭘 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길 그 길을 예비하고 하나님이 걸어가실 수 있는 그 대로를 평탄한 작업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는 광야 사막이라는 공간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여러분 광야 사막 하면 문득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메마르고 거칠른 땅, 무리 없고 척박한 땅이라는 것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묵상하다 보면 야 이 광야 사막이라는 곳 그래 그곳은 고독한 곳이지 외로움이 있는 곳이지 고난과 고통의 시간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조금 더 느끼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광야하면 두 가지 사건이 생각이 납니다. 하나는 실제 이스라엘 땅에서 광야를 걷었던 그 장면이 떠오르고요. 또 하나는 지금으로 7년 전 2017년 12월이 기억이 납니다.
당시 우리 가정은 신은교회를 사임을 하고 새로운 사역지를 이동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죠. 어느덧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7년 전 이때쯤을 떠올리면 우리 성도님들이 저희 가정을 가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참 많이 아쉬워해 주셨다라고 느 많이 슬퍼해 주시고, 헤어짐에 대한 아픔, 그건 성도님들 중에는 더 상황에 따라서 다르겠죠. 더 많이 느끼는 분도 있고 덜 느끼는 분도 있었겠죠. 그래서 가는 그 순간에 참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헤어짐을 마주해야 했던 저희 가정도 슬픔의 마음을 참아내고 참아내며 다스려야 할 인도의 시간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다 정리되고 이삿짐을 다 쌓아서 먼저 올려보내고 우리 가정도 차를 타고 올라갑니다.
근데 아쉬움을 뒤로한 채 올라갈 수밖에 없었죠. 명절 때만 늘 가던 그 길 명절 때 갔을 때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는데 그때는 왠지 낯선 느낌이 드는 그 현장이었습니다.
그렇게 출발해서 가는데 와이프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겠어요? 이제 새로운 데를 또 적응해야 되는 그런 불편한 마음도 있고 여러 가지 고민과 생각들이 있었겠죠.
그런데 한 집사님으로부터 CCM 한 것과 함께 메시지가 아내에게 카톡으로 전해졌습니다. 그 CCM 찬양은 당시 꽤나 유명했던 히드엘의 광야를 지나며라는 찬양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 가정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그 메시지를 보내주셨던 것이겠죠. 가사의 내용을 들으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가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차를 타고 올라가는 우리의 모습을 한번 떠올려보십시오.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서 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야 방향인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쩌면 외로운 길, 온난한 길, 어두운 밤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가사는 이렇습니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신,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선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에서 앞서서 말씀드렸듯이 이 음악을 들으면서 가니까 굉장히 고독해지는 거예요. 차 안에서 뭐 더 할 얘기도 없고 정말 홀로 어둠을 지나가는 그런 느낌이었죠.
여러분 성경을 보시면 광야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시험과 연단의 장소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출애굽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그 여정은 광야였다는 것이죠. 신광야에서 양식이 떨어져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요. 루비딤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을 호소해야만 했던 것이죠.
그렇게 광야의 길을 또벅또벅 걸어갔던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왕궁에서 살았던 모세가 어느 날 동족을 돕겠다고 길거리에서 사람을 처죽임으로 인해 그는 더 이상 왕궁에 머물 수 없었다.
그래서 어디로 갑니까? 이대한 광야로 가서 은둔의 삶을 보내야 될 시간이었습니다. 엘리아는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셔서 엄청난 승리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던 것이죠.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는 광야의 길 하루쯤 들어가서 도엘세바에 있는 로데나무 앞에서 하나님 나 차라리 죽는 게 낫겠습니다고 호소했던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 정도면 참 그들의 삶에 그의 삶이 평탄해야 했을 텐데 사울 왕으로 인해서 이유 없이 쫓김을 당해 광야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죠. 예수님은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광야는 실현과 연단의 장소라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광야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단지 실현의 장소, 시험의 장소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앞서 찬양에서 소개했듯이 외롭고 기댈 곳 없는 광야에 서 있는 나는요.
누구를 봅니까? 그때부터 주님만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도움이십니다. 할렐루야 주님만이 내 빛이십니다. 주님이 내 친구가 되십니다. 제가 주님 손 놓고선 단 한 곳도 갈 수가 없는 연약한 자입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주님을 찾는 자리 그리고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 광야라는 곳은 외적으로는 메마른 현장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 자신의 백성들과 소통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시면 광야와 사막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다는 거예요. 광야지만 사막이지만 그냥 그렇게 있지 말고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그것이 광야와 사막에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될 일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두 구절은 하나님께서 인지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찾아올 수 있도록 우리로 하여금 준비케 하시니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러분 이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고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여호와의 길을 예비 할 수 있을까요? 4절을 보시면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4절 말씀 한번 같이 읽습니다. 골짜기마다 도두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오. 이 구절을 잘 보시면 세 가지 과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골짜기마다 두두어지며라고 기록하고 있죠. 골짜기마다 도두어진다라는 것은 낮은 곳을 높이는 작업을 하는 것이죠. 그리고 결핍되고 연약함을 채우는 그러한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골짜기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어쩌면 겪을 수밖에 없는 낮아짐과 연약함 혹은 어려움을 의미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시편 24편 4절에 기록된 것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골짜기를 메우라 돋으라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죠. 어떻게 메울 수 있습니까?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그 자리는 채워지게 되는 것이죠.
즉 믿음의 고백이 필요하다는 것 혹시 삶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지치고 지쳐 낙심하는 인생이 있으십니까? 삶의 결핍을 회복하기 위해 함께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말씀을 붙잡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회복의 은혜다. 그래서 여러분 이사야 41장 10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내 하나님이 되리라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두려워하지 말 것은 우리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 골짜기를 갈지라도 거기에 두려움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또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신다. 그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놀라지 않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굳세게 하시는 나를 도와주시겠다 말씀하시고 오른손으로 붙잡아주시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 말씀을 붙잡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연약함 이것을 극복하려고 스스로 노력해봐야 사실 그렇게 많이 극복해 줄 수가 없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봅니다. 따라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여정 가운데 이곳저곳 파여져 있는 웅덩이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게 될 때 그 웅덩이로 인해서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웅덩이로 인해서 여러분 놀라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하시는 하나님 도우시겠다 약속하신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며 넉넉히 승리하며 나아가는 존귀하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 골짜기라는 것은 우리 삶에 이런 외적인 것도 골짜기가 생길 수 있지만 우리 영적인 문제도 골짜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죠 죄악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 가운데 파고듦으로 인해서 우리는 그런 과정 속에서 은혜가 결핍되어지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죠. 영적 실체가 도래할 수 있다는 거예요. 믿음의 연약함이죠.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그러면 돋을 수 있는가 그것은요. 믿음을 올릴 수 있는 말씀을 붙잡아야 됩니다.
여러분 로마서 1장 17절에 말하죠.
러므로 믿음은 들으면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즉 낮아진 우리의 영혼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펼치셔야 돼 세상의 이야기, 세상의 방법들을 추구하면서 세상의 죄 가운데 머물렀을 때 우리의 신앙이 골짜기 가운데서 헤매고 있을 때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을 펼치셔서 하나님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어떻게 하면 회복될 수 있는가를 보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몸과 영혼이 골짜기로 인해서 어려움에 처해질 때에 함께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시고 또한 말씀을 펼치셔서 그 말씀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믿음을 고백하며 나아가는 우리 존귀하신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근데 또 한 가지 생각할 게 있어요. 개인의 골짜기도 있지만 공동체 안에도 골짜기가 생긴다는 것이죠. 따라서 공동체에 있는 골짜기를 메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겁니다. 항상 좋으면 좋은데 좋지 않고 또 골짜기가 생길 때가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공동체는요. 영적 골짜기에 있는 자들을 일으키는 매우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나 혼자일 때는 할 수 없는데 공동체가 있어서 세워지는 축복이 있다는 것이죠.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눌 때에 결핍이 채워지고 그 사랑의 공급으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할 수 있다는 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회복시켜 주셨기 때문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결핍할 때 나에게 주신 사랑을 나누어주면 이 옆에 있는 결핍된 자가 회복되는 은총이 있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결핍된 곳이 채워지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이 여러분 갈라디아서 6장 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을 주시거든요.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갈라디아서 6장 2절 시작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렇죠. 서로 짐을 질 수 있는 희생과 섬김이 있을 때 공동체는 메워지고 채워짐으로 인해서 하나 되는 놀라운 축복의 은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 신 공동체가 서로를 세워가며 서로의 짐을 지워주며 함께 나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골짜기를 메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라고 돼 있죠. 성경에서 산이나 언덕이라는 것은 우리 높아진 자 교만, 또 세상의 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장애물이라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교만함을 내려놓고 낮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주님을 맞이하려면 겸손해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죠.
잠언 16장 18절은 이렇게 말씀을 주십니다. 함께 읽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여러분 높은 산과 언덕은 인간이 스스로 높이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절대화하는 아주 안 좋은 모습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스스로 바벨탑을 쌓기 시작한 거예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내가 스스로 뭔가를 극복하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고 높아지려고 애를 쓰고 우리의 이름을 내려고 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대로를 평탄하게 만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만함이 낮아질 때에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난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높아진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잖아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들이 겸손하여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가 우리의 삶 가운데 풍성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어떻게 맞추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그것은 겸손과 회개, 겸손함으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죠. 하나님께 자신을 낮추는 시간을 투자할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낮아지게 되는 것이 여러분 야고서 4장 10절은 말합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며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
여러분 겸손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태도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살아갈 수 없는 삶. 그래서 여러분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우리 고백하잖아요. 은혜로만 살아간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고백을 하잖아.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할렐루야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같았는데 묵상하고 묵상하고 또 묵상해 보니 하나님의 모습 그렇게 고백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사도바울도 고백하는 거예요. 나의 낮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가 깃들어 있는 삶이 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특별히 이러한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 그것이 바로 높아지지 않는 겸손의 마음,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삶이죠.
여러분 예수님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된 자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를 포기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께서 2천년 전 말구유에 태어나실 때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를 낮추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빌립보서 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겸손은 높은 보좌를 포기하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순종의 겸손이었다는 거예요.
그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이게 예수님께 우리가 꼭 배워야 될 제자의 삶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온유와 겸손 온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통제를 받고 사는 거예요. 내가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지만 내 마음대로 달려갈 수 있지만 하나님이 멈추라 하면 멈추고 하나님이 가라 하면 갈 수 있는 삶이 온유한 삶 또한 겸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죠.
자신을 높이는 모든 교만과 방해 요소를 제거하고 예수님처럼 스스로 다치고 살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예비하고 때로를 평탄하게 할 수 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교만하지 않도록 이 대림절 기간에 하나님 1년을 돌아보면서 혹시 내 스스로 높아진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 용서하시고 주님 앞에 낮아지고 겸손해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나아가는 이 복된 기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 번째는요.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된다. 그렇게 말합니다. 고르지 못한 곳 얼마 전에 우리 장로님을 비롯한 경대분들이 주차장 옆에 땅을 고르는데 땅을 고른데 땅을 고른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이게 불편함을 좀 지우겠다는 거잖아요. 거기서 족구를 해야 되는데 돌이 막 이렇게 나와 있으니까 돌을 좀 치우고 그 위에 흙을 잘 깔아서 이탈하는 것을 만들 고르는 작업인 것이죠.
여러분 그 고르는 작업을 안 하면 우리의 삶에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사실 평소에 그냥 다닐 때 모르는데 거기에서 무언가를 해야 될 때 그 돌이 우리에게 불편함을 가져다준다. 그 발 밑에 있는 그 돌만 없으면 괜찮은데 어느 날은 그곳을 뛰어가다가 그 돌을 밟고 발을 찔리기도 할 수도 있는 것이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따라서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그것이 우리의 삶의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우리의 영적인 것들을 갈아먹는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우선순위가 뒤바뀔 때 이러한 작은 것들로 인해서 뒤바뀔 때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믿음보다 세상 성공을 우선시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여러분 그것이 우리의 영적인 궁핍함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삶의 혼란스러운 작은 것들을 정리하는 작업들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바로 앞에 있는 것들을 정리해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 105절은 이렇게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다. 여러분 내 앞에 바로 놓여져 있는 그것들을 보지 못하면 거기에 걸려 넘어질 수가 있고 다칠 수도 있고 그래서 그 앞에 있는 작은 것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되는데 그것은 내 발의 등 그 귀에 빛을 비추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아갈 때 사소한 것들까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나의 삶의 작은 것들까지도 평탄하게 만드는 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험한 곳이 있죠. 험한 곳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우리의 죄가 될 수 있고 두려움 또한 미움 불신앙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외부적인 어떤 상황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시험과 고난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들이 평지가 될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죠.
여러분 그런데 내 앞에 찾아오는 이러한 것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은요. 하나님께 맡기는 것밖에 없어요. 여러분 내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지혜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자문 3장 5절에서 7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길에 대해서 같이 읽어볼까요?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내 병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내 길을 기도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우리 앞에 험한 것들까지도 제거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하나님을 붙잡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그 기름을 우리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여호와를 신뢰함으로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기며 나아가는 은총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 가지 말씀을 드렸어요. 우리가 해야 될 것. 물론 내가 스스로 할 수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삶의 골짜기를 메워야 되는 또한 산마다 언덕마다 높아져 있는 것들을 낮추는 작업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고르지 아니한 험한 곳 그러한 것을 평탄화 작업을 해야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대림절을 보내면서 기다림 가운데 해야 될 일이다라는.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이 일을 하면서 뭘 기다려야 되는 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되는데 오늘 5절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해 주고 있어요.
5절 말씀 같이 읽어볼까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리라. 할렐루야.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날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때에는 반드시 우리가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광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준비하는 시간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것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앞으로 10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하셨고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우리가 영광의 주님을 보는 은총이 있다.
할렐루야 준비하고 있지 않다가 여러분 영광이 임하면 우리 열처녀 비유에서 보셨듯이 하나님의 눈에 들어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장의 모습을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하나님 앞에 우리가 날마다 날마다 나는 이 대림절 기간이 무엇보다도 우리가 잘 기다리면서 준비하는 훈련이 대림절 기간은 그것들을 상기시키면서 주님 다시 오신다 했는데 우리가 그걸 잊지 않고 초림의 주님을 기억하며 재림의 주님을 진짜 소망하며 하루하루 살아야겠다 다짐하면서 하루하루 우리의 신앙을 경건하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어쩌면 동방 박사들 같이 별을 보면서 간직하고 그 주님을 봤을 때, 그 별을 봤을 때 자신의 삶을 다 지어 그 주님을 찾아갔던 그 상처럼, 우리도 그 주님을 발견하는 그런 저와 여러분 이 대림절 기간을 통해서 잘 준비하며 기다리는 이러한 놀라운 은총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