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3권 4-194 사관寺觀 절 구경 19 원적정사遠迹精舍 원적정사에서 놀고서
천운책장파창태穿雲策杖破蒼苔 구름 뚫고 단장 휘두르며 푸른 이끼 밟고 가는데
고목음중일경개古木陰中一逕開 고목 그늘 속에 길 하나 열려 있네.
산조역지유물외山鳥亦知遊物外 산새 또한 물질 밖에 노는 줄을 알아서
고래한야초근회故來閑惹草根回 짐짓 와서 한가로이 풀뿌리를 건드리고 가네.
►책장策杖 지팡이를 짚음
●고정산高亭山/이제현李齊賢(1287-1367 충렬왕13~공민왕16)
강상산여담소미江上山如淡掃眉 강 위의 산들은 곱게 그린 눈썹 같고
인가처처근화리人家處處槿花籬 인가엔 곳곳마다 무궁화 핀 울타리네
정주욕문송간사停舟欲問松間寺 배 멈추고 송림 속의 절 물으려다
책장선규죽하지策杖先窺竹下池 지팡이 짚고 먼저 대 아래 못 보네
범영모련방초원帆影暮連芳草遠 돛 그림자는 황혼에 초원 멀리 이어지고
종성효출백운지鍾聲曉出白雲遲 종소리는 새벽에 흰 구름에서 더디 나오누나
빙란일망삼오소憑欄一望三吳小 난간에 기대 바라보니, 삼오가 작아 보여
상상장군립마시像想將軍立馬時 장군이 말 세웠던 때 상상되네.
이 시는 고정산(백안승상주군지지伯顔丞相駐軍之地)에서
그 지역의 풍경風景과 함께 역사적 사연을 회고懷古하고 있다.
배를 타고 구경하자니 강 위의 산들은 곱게 그린 여인의 눈썹 같고
그 산들 아래 마을에는 집집마다 꽃을 피운 무궁화가 울타리이다.
배를 멈추고 마을사람에게 이 마을 송림 속에 묻힌 절을 찾아가고자 길을 물으려다,
대숲 아래 맑은 연못의 풍경이 너무 좋아 지팡이를 짚고 서서 엿보고 있다.
해가 지자 하루 숙박하는데 타고 온 배의 돛 그림자가 길어져 풀밭 멀리까지 이어졌고
다음 날 새벽 절의 종소리가 흰 구름 속에서 느릿느릿 울려오고 있다.
높은 다락에 올라 기댄 채 저 멀리 바라보니 옛날 삼오지방의 南宋을
가소롭게 여겼을 元나라 장수 백안의 당시 모습이 상상이 된다.
김종직金宗直은 <청구풍아>에서 미련尾聯에 대해 평했다.
천재지하독차구千載之下讀此句 천년 뒤에라도 이 구를 읽어 보면
백안지고질타伯顔指顧叱咤 백안이 가리키고 돌아보며 꾸짖으면서
목중이무남송目中已無南宋 눈에는 이미 남송이 없었을
기위령기염其威靈氣燄 그 위엄의 신령함과 기상의 불꽃을
유가상견猶可想見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끌 야, 비방할 약惹’ 이끌다, 끌어당기다. 흐트러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