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 마리아의 승천은 성경적인가?/ 사내아이는 누구인가? (묵시11,19-12,1-11)
<사내아이는 누구인가?>
여인은 이스라엘 왕국의 예루살렘을 대표한다면, 그렇다면 사내아이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켜 말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1) 해와 달, 별이 이미 이스라엘 왕국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2) 이 사내아이는 보좌 앞으로 휴거 되는데 성경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왕국의 휴거를 말한 적이 없고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관한 예언과 부합되지 않는다.
(3) 이 사내아이는 어린양의 피를 믿지만(묵시12,11),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환난 때에 주님을 믿을 것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주 예수님의 발이 감람산 위에 설 때 하느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구원의 샘을 여실 것이며 이제야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스가랴13,1; 14,4; 12,10-14).
또 어떤 사람은 사내아이가 교회 전체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교회 전체가 다 부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와 같이 말한다면 온 교회가 다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
(2) 교회 전체가 다 동시에 휴거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는 먼저 휴거 되고 어떤 이는 나중에 휴거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의 사내아이는 처음으로 휴거 되는 것이다.
(3) 철창으로 만국을 다스린다는 약속은 교회 전체에게 준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에게 준 것이며(2,26-27), 교회 전체는 다 이기는 자가 될 수는 없다.
(4) 왕국에서 주님과 함께 왕권을 얻는 것은 교회 전체가 아니며 오직 주님과 함께 고난을 당한 사람이라야 주님과 함께 왕이 될 수 있다(2티모2,12).
그렇다면 사내아이는 누구인가? 이기고 또한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묵시12,2절에서 무엇을 가리켜서 아이를 배었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어린 아기가 모태 안에 있다는 것이며, 그 의미가 바로 어린 아기와 그 어머니가 완전히 하나이고 한 몸이라는 뜻이다. 어머니와 그는 하나로 연합된 것이다.
또 다른 면에서 이 어린 아기는 어머니와 다르다. 그 아기의 장래는 어머니와는 장래에 관한 한 전적으로 다른 존재이다. 그는 태어난 후에 하느님의 보좌에 휴거될 것이고(묵시12,5,11; 필리3,10-11), 그의 어머니는 광야로 도피하게 될 것이다(필리12,6).
그런데 또 하나의 요점이 있다. 그 여인이 아기를 배었을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어머니뿐이다. 그 아기는 볼 수 없고 외면적으로 어머니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들은 명백히 존재를 가지고 있고 다만 어머니 안에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그는 존재하고 있으며 또한 그의 어머니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3절에서 이 용의 형태는 어떠했는가? 용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었고, 머리에는 일곱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이것은 13,1절의 바다로부터 올라온 짐승과 같은 모습이었다. 13,1절은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들이 있더라.”고 말한다.
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에게도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또한 면류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사탄의 목적, 곧 그가 얻기 원하는 것이 바로 면류관이며 통치권을 차지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일곱 머리는 인류역사의 일곱제국을 말하며, 1. 에굽(바로), 2. 앗수르(나내렙), 3. 바밸론(너부갓네살), 4. 페르시라(고래스), 5. 헬라(알렉산더), 이 다섯 제국은 ‘이미 망했고’, 6. 로마(가이사), 이것은 현재 ‘하나는 있고’, 마지막으로 장차 올 적그리스도가 마지막 제국이다.
열 뿔은 적그리스도를 돕는 마지막 10개의 나라들이며, 과거의 짐승들과는 달리 앞의 모든 제국을 다 합친다고 해도 이 짐승을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생명공학 IT의 발전으로 지난 코로나시대의 통제와 억압를 경험했듯이, 지구촌 80억을 한 사람이 권력을 쥔다. 이 적그리스도가 대환난 7년을 다스리며 완전히 파괴시킨다.
용과 짐승의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용의 면류관은 머리에 있으나, 짐승의 면류관은 뿔 위에 있다(묵시13,1). 머리는 결정권을 나타내고 뿔은 집행권을 나타낸다. 머리는 통제하고 뿔은 집행한다. 곧 뿔은 머리의 말을 들으며 머리가 움직이면 뿔도 움직인다. 짐승이 행한 모든 것은 모두 용의 통제에 의한 것이다.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목적 안에서 다 분깃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짊어져야 할 책임을 감당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 중에서 한 무리의 사람을 택하시는 것이다. 이 한 무리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일부분이고, 하느님이 선택해내신 무리이며, 사내아기 곧 이 여자가 해산한 사내아이인 것이다. 전체는 어머니이고 소수는 바로 사내아이인 것이다.
여기서 사내아이는 바로 12,11절의 “형제들”이다. 이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고, 상당한 수가 합해져서 한 사내아이가 됨을 의미한다. 다만 어머니와 비교할 때 이 사내아이는 적은 수이다. 이 무리는 전체와 비교할 때 비록 숫자는 적지만, 하느님의 계획이 그들 위에 있고 하느님의 목적이 그들에게 있다.
5절은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기는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사내아기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보좌로 이끌려 올라갔습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요한묵시록에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린다는 말이 세 번이나 언급되고 있다. 첫 번째는 2,26-27절로서 “이기는 이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분명히 교회 중의 이기는 이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또한 19,15절은 “그의 입에서 날카로운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이것은 주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검(칼)은 반역자들을 심판하실 말씀이다(요한12,48). 그렇다면 12장에 언급된 부분은 누구를 가리켜 말한 것인가?
만일 교회의 이기는 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바로 주 예수님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주 예수님을 가리켜 말할 가능성이 있는가? 없다! 왜 그럴 가능성이 없는가? 첫째, 이 사내아이는 해산하자마자 하느님의 보좌 앞으로 이끌려 올라갔는데, 태어나자마자 곧 보좌로 올라간 것은 주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은 삼십 삼 년 반을 사시고 죽고 부활하신 후에야 비로소 승천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내아기가 교회 가운데의 이기는 이를 가리켜 말한 것임을 믿는다. 이 사내아기는 교회 중의 일부분이며, 이들이 바로 이기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사내아이는 그들을 가리키는 것이지, 주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내아이는 주 예수님을 포함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곧 주 예수님은 첫 번째 이기는 아이셨으므로 모든 이기는 이는 주 예수님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사내아이와 어머니는 서로 다르지만 또한 하나이다. 이기는 이들은 교회와 다르지만 또한 교회 안에 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기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보좌로 이끌려 올라갔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휴거되는 것을 말한다. 왜 사내아기가 하느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휴거되는가? 이는 한 사람, 곧 교회의 머리가 이 보좌에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목적은 한 사람만을 보좌에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보좌에 있게 하시는 것이다. 알렐루야!
하느님의 원래 목적은 수많은 사람들로 보좌에 올라오게 하시는 것이요, 수많은 사람들로 통치권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그리스도와 교회가 함께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를 원하시지만, 교회 중 많은 사람들이 이때에 하느님의 보좌 앞으로 이끌려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영적 성숙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 곧 이기는 이들만이 하느님의 보좌 앞에 올라갈 수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목적에 도달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보좌 앞으로 휴거된 것이다. 사내아기가 휴거 되자 곧 두 가지 일이 발생했다. 6-7절에서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여인이 천이백육십 일 동안 보살핌을 받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5절에서는 “사내아기가 하느님의 보좌 앞으로 휴거되었다”고 말하고, 6절에서는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갔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여인이 광야로 도망간 것은 사내아기의 휴거로 인한 것이고, 하늘의 전쟁도 역시 사내아기의 휴거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내아기가 휴거되자 곧 하늘에서는 전쟁이 발생했다.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바로 사내아기가 휴거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볼 때, 휴거는 다만 개인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더욱 여러 시대에 걸쳐 내려온 전쟁, 곧 옛 뱀의 수천 년 동안 하느님과 원수가 되었던 것을 종결하기 위한 것이다.
이 용은 하나의 뱀이 변화한 것으로서 그의 능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진 것이다. 그러나 사내아기가 들려 올라가자, 그 용은 더 이상 커질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그는 하늘에서부터 쫓겨났다. 그러므로 휴거는 사탄으로 하여금 더 이상 하늘에 있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집행이다.
이 전쟁의 결과로 용은 패배하였고, 하늘에서 더 이상 있을 곳을 얻지 못하고 쫓겨났다. 본래 주 예수님의 죽으심은 사탄이 사람의 타락 가운데서 얻은 지위를 처리했다. 곧 구속이 사탄의 합법적인 지위를 이미 파괴한 것이다. 교회(또는 단위 교회인 믿는 이 개인)의 일은 바로 주님의 구속 안에서 이미 성취하신 것을 하느님의 나라(왕국) 안에서 집행하고, 사탄이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서 얻은 합법적인 지위를 끝내는 것이다.
구속은 사람의 타락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하신 처리이며, 하느님의 나라는 타락에 대해서 교회가 한 처리이다. 심판의 일은 그리스도의 일이었지만, 심판의 집행은 교회의 일이다. 사탄은 구속 안에서 심판을 받았으며,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10절은 “그 때에 나는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던 자, 하느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발하던 그자가 내쫓겼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 곧 왕국이다.
사탄이 쫓겨날 때, 사탄의 사자들도 쫓겨나고, 따라서 하늘에 더 이상 그들의 장소가 없게 될 때, 이것이 하느님의 구원이요, 능력이요, 하느님의 나라요, 그리스도의 권세이다. 이것은 주제가 이미 실현된 것이고 이미 성취된 것이다. 이 성취의 열쇠는 사내아기의 휴거이다.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사탄이 쫓겨난 이유는 사내아기가 들림 받았기 때문이다.
사탄이 쫓겨난 결과는 우리 하느님과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한 것이다. 이기는 이들의 휴거는 사탄을 쫓아내고 하느님의 나라를 가져온다. 이기는 이들의 일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가져오기 위한 것이다. 주님의 일은 이미 완성되었으며, 따라서 그분은 이미 보좌에 앉아 계신다. 이제는 이기는 이들이 이것을 가져와야 한다.
알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