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 손대장은 장차 우리가 달려야할 라이딩 코스를 늘 머리속에 그리고 있다.. 지도를 펼쳐놓고 산줄기를 살피며,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내는 일은 그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인 듯하다. 이번에는 강원도 홍천의 응봉산(868m), 대학산(876m), 발교산(998m)으로 이어지는 산악 임도였다. 당초에는 덕적도와 굴업도를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올까 생각했지만, 결국 마음은 험준한 산길로 정했다. 산악 임도는 일반 도로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 있다. 거친 자갈길과 깊게 패인 노면, 급경사와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은 라이더의 체력과 담력을 시험한다.
힘든 만큼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도 크다. 특히 한여름의 산악 라이딩은 더욱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물과 간단한 음식, 응급약품을 챙기지 않으면 탈진이나 열사병이라는 복병을 만날 수 있다. 초행길인 만큼 바이크 손대장은 인터넷 위성지도를 샅샅이 살피며 지형을 연구하고 라이딩 코스를 꼼꼼하게 짰다. '서울이 무섭다 하니까 남태령부터 간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새벽부터 서둘렀다. 밴에 자전거를 싣고 서울양양고속도로를 달려 동홍천IC로 향했다. 56번 국도를 따라 솔치재터널을 지나 서석면 초원기사식당에서 두부찌개로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그리고 오전 8시 20분, 오늘의 출발점인 부목재 임도 입구에 도착했다. 부목재는 홍천군 동면과 서석면을 잇는 고갯마루로 해발 약 600m에 이른다. 이곳은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에게는 제법 알려진 임도 코스의 출발점이다. 주변에는 응봉산과 대학산, 발교산, 수리봉 등 800m-900m급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지난해 달렸던 가리산 임도 역시 이 산악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오전 8시 25분, 마침내 페달을 밟았다. 처음부터 대학산 임도로 접어들었다. 하늘은 흐렸고 태양은 구름 속에 숨어 있었다. 오히려 한여름 치고는 선선해 라이딩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임도 초입부터 예상히지 못했던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 키를 훌쩍 넘을 만큼 무성하게 자란 잡초가 길을 뒤덮고 있었다. 길은 보이지 않았고, 자전거 바퀴가 어디를 밟고 있는 지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체인에는 풀잎이 감겨들고 다리는 수풀에 긁혀 여기저기 붉은 상처가 생겼다. 마치 맹인이 더듬거리며 길을 찾듯 페달을 밟았다. 한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한 것도 여러 차례였다. 허리까지 자란 잡초 사이를 헤치며 달리다 보니 시야는 흐려지고 온몸에는 긴장이 가득했다. 손목과 어깨, 목까지 뻐근해졌다.
산악 임도는 단순히 자전거를 타는 길이 아니었다. 때로는 자연과 맞서고, 때로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길을 찾아가는 작은 모험이었다. 약 7km를 달리자 가랫골 임도 사거리가 나타났다. 넓은 공터 한쪽에는 산악감시 초소가 있었고,가랫골과 구세턱골, 화방재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도 보였다. 우리는 잠시 자전거를 세워놓고 숨을 골랐다. 연양갱과 꿀물을 먹으며 떨어진 체력을 보충했다.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가랫골에서 여울목으로 이어지는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쉴 새 없이 반복됐다. 무성한 숲 사이로 난 임도는 구불구불 이어졌고, 인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디선가 산새가 울고 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그 사이로 들리는 것은 오직 두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였다. 때로는 뱀이 길을 가로지르고, 야생동물이 숲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것을 보기도 했다. 벌때가 갑자기 달려들어 벌에 쏘이는 작은 소동도 있었다. 그 순간 우리는 이곳이 인간의 세상이 아니라 자연의 세상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가래골에서 여울목으로 이어지는 원시림은 사람의 발길이 드문 깊은 산속 그대로였다. 구절양장처럼 굽이굽이 이어지는 임도를 달리다 보니 문득 속세를 떠나 깊은 산사의 암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소슬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고, 산등성이를 타고 흘러가는 구름은 마치 바다의 물결처럼 보였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은 지쳐있었지만,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에어컨보다 더 시원했다. 다시 임도 커브를 돌아서자 양지바른 곳에 자주색 칡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나비가 날개를 펼친 듯한 꽃잎이 어찌나 예쁜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에 담았다. 힘겨운 산길에서도 꽃 한 송이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약 12km지점에서는 작은 쉼터를 만났다. 긴 나무의자 세 개가 놓여 있었고 바로 옆으로 맑은 계곡물이 흘렀다. 우리는 계곡에 들어가 얼굴을 씻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계곡 위로 고추잠자리가 한가롭게 날아다녔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산악 임도는 결코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 14,5km 지점부터 여울목을 지나 대각정사까지는 급경사 내리막이 이어졌다. 산악자전거에서 가장 긴장되는 구간이 바로 이런 급경사 커브 내리막이다. 작은 실수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산악 임도에 익숙하지 않은 신출내기라 과감하게 끌바를 선택했다. 그러나 바이크 손대장은 베테랑 답게 유유히 내려갔다. 발교산 자락의 대각정사에 도착해서는 잠시 숨을 골랐다. 산속에 자리한 아담한 사찰은 짙은 녹음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고요했다. 다시 페달을 밟는 순간 급경사 오르막으로 이어졌다, 늘목재까지 약 1,2km 구간이었다.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웠다. 마침내 늘목재 정상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마치 죽음의 길을 통과한 기분이었다.
바이크 손 대장 역시 몹씨 지쳐보였다. 다른 음식은 마다하고 오로지 꿀물만 연가푸 들이켰다. 정면을 바라보니 발교산(998m)이 우뚝 솟아 있었다. 늘목재에서 가랫골 임도 사거리까지 약 4km의 오르막을 다시 올라야 했다. 무성한 잡초는 또 다시 우리를 괴롭혔다. 페달을 밟고, 쉬고, 다시 밟았다. 마침내 가랫골 임도 사거리에 도착했다. 잠시 숨을 돌린 뒤 이번에는 구세턱골 방향으로 내려갔다. 약 3km의 급경사 내리막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444번 지방도로와 만났다. 대학산 임도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오후 3시경. 출발한 지 6시간 35분 만이었다. 약 30km 산악 임도였다.
우리는 밴에 자전거를 싣고 응봉산 임도 입구로 이동하려 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밴이 시동이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할수없이 응봉산 임도 라이딩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홍천 시내 정비업소를 찾아가 의뢰한 결과 배터리가 원인이었다. 정비업소 사장님은 우리를 보더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70대의 나이에 험준한 산악 임도를 자전거로 달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홍천 하오안리의 한 음식점에서 돼지고기 삼겹살 화로구이와 메밀 막국수로 저녁 식사를 하였다. 배고팠던 차에 먹었더니 꿀맛이었다.
돌이켜보면 대학산 벌교산 임도는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 무성한 잡초와 거친 자갈길,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과 급경사 내리막, 예상하지 못했던 벌때와 야생동물까지 우리를 시험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고 자연 앞에서 겸손을 배우며, 함께 달리는 동료의 소중함을 깨닫는 여행이었다. 오늘 라이딩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는 악전고투(惡戰苦鬪)와 고진감래(苦盡甘來)다. 험났했기에 더욱 값졌고, 힘들었기에 더욱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이런 멋진 도전을 함께하며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어준 바이크 손대장에게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