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산 제376회 아차산(287m) 오르기
늘 맞이하는 오늘이지만 처음 살아 보는 참된 오늘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들이 누룩처럼
가득 번져 어제보다 더 행복하고 더 좋은 일들이 찾아오는 오늘일 줄을 믿습니다. 추움이 가득한 오늘,
몸과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따뜻한 바이러스가 우리 삶에 가득했으면 합니다.
오늘은 친구들과 걷기로 건강을 다지는 날입니다. 오늘은 아차산을 오르는 날로 광장동에서 생태공원을 거쳐
아차산성, 해맞이광장을 거쳐 1,5,3,4보루를 둘러보고 긴 고랑길을 내려오는 코스입니다.
우리는 5호선 광나무역에서 모여 광장동 좁은 골목을 걸으며 아차산에 올랐습니다.
오르는 길에 광장 중학교와 40년 전에 근무했던 광장초등학교를 지납니다.
전에는 학교 앞이 온통 미나리꽝이었습니다.
산천이 4번 변했으니 그 주변도 변함도 눈이 부십니다. 2년간 근무했던 시절이 주마등같이 지나갑니다.
생태공원에는 보수 공사로 많은 곳이 출입을 막았습니다. <성동구 자투리땅 >경작지가 써늘합니다.
이창호 대장님이 ‘오늘은 짧은 거리를 걷는다’ 고 하며 먼 길을 돌아 오를 셈인가 봅니다.
아차산은 온통 바위로 이룬 산입니다. 어쩌면 하나의 바위가 땅에 묻혀 풀이 나고 나무가 자라는 갓 같습니다.
대견하게도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 산입니다. 그렇기에 산을 오르는 길은 바위로 줄이 매어져 있어
줄을 당기며 오르는 길입니다.
아차산은 강동구와 구리시를 품고 있는 낮은 산으로 산수가 좋아 사시사철 많은 사람이 찾아옵니다.
옛날에 삼청동 점을 잘 치는 점쟁이를 임금이 통속에 쥐 한 마리를 넣고 쥐가 몇 마리냐? 물으니
세 마리가 들었다고 했다니 백성을 속인다고 하여 죽이라고 명령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었답니다.
임금은 쥐가 이상하여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두 마리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죽이지 말라는 전갈을 가지고 손을 흔들려 달려오는 것을 보고 빨리 죽이라는 것인 줄 알고
죽여 버렸다는 유래에서 나왔다는 유래가 있었습니다.
전망대에서 한강을 내려다봅니다. 미세먼지로 전망이 흐릿하개 보이지만 세계 으뜸이 한강과 강변을 줄지어
달리는 차의 행렬이 평화롭습니다.
1300여년 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대성암으로 가는 길은 마치 외할머니를 찾아가는 외가에가는 길처럼 정이
가득한 길을 오손 도손 이야기하며 동요를 부르며 줄지어 갑니다.
대성암(大聖庵)은 좁을 대지위에 본존이며 종각 등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고 아름답습니다.
의상대사의 설법을 들으러 많은 신도들이 찾아왔으며 수도 자리 뒤에 있는 바위구멍에서는 많은 쌀이 나와 많은 사람에게
공양할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밥을 짓는 사람이 쌀을 더 얻으려고 구멍을 넓히니 그 때부터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위를 기어올라 전망대에 이릅니다. 시야가 확~ 트인 곳에서 고구려 장군의 호령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며
한강 넘아 고구려 백제, 신라 군사들이 격전을 보는 것 같습니다.
좀 비탈진 곳에 자리를 펴고 간식을 먹는 즐거운 시간입니다. 2박 3일 제주 여행을 마치고 어제 저녁차로 올라온 이규선
교수님이 제주도에서 귤 농사를 짓는 윤행원 친구의 소식과 귤을 가득 내놓습니다. 어찌나 작은 귤이 맛있는지요.
옛날에는 제주도에서만 귤농사를 지어 귤나무 한그루에 자식을 대학을 보냈다는데 요즘은 남쪽 지방에서 귤 농사를
지어 우리가 손쉽게 귤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아차산 정상에 오릅니다. 아차산은 주병의 용마봉은 해발 348m. 망우현은 282m을 함께 불렀지만 요즘은 주변의
산지와 구분하여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으로 나누어 부르며 아차산 3보루 지점이 아차산 정상이라고 합니다.
아차산 3보루는 국가지정문화재 제455호로 지정되었답니다.
보루에는 성벽과 문지, 건물지, 저수조, 배수로가 남아 있으며 건물지는 <ㄱ>자 모양의 온돌이 설치되었습니다.
아차산 <긴 고랑길>을 내려옵니다.
이곳은 봄에느 보의 전령사인 매화꽃을 만날 수 있으며 여름에는 더위를피할수 있는 계곡에서 물놀이에
취할 수 있답니다. 온통 돌로 깔려 있어 유럽 도시의 보도와 마차길에 깊게 박혀있는 돌길 같이 보였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쌀쌀하지만 땅도 질지 않고 땀도 나지 않아 걷기에 참 좋은 날씨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가던 중곡동 <청진동 해장국> 집을 찾아 뼈다구 해장국을 먹으며 종례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