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계간 어린이와 문학(2024 봄)
저자: 편집부 외
출판사: 어린이와 문학
출간일: 2024-03-01
책 소개
계간 <어린이와 문학>은 100여 명의 작가, 화가, 편집자 들이 뜻을 모아 펴내는 비영리 아동문학 잡지입니다. 2005년에 월간으로 창간한 이후 15년 만에 계간으로 전환하였고, 2023년 여름을 맞아 통권 제183권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어린이와 문학>은 기존의 등단 제도를 과감하게 없애고 ‘자유 투고제’를 도입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완성도 있는 좋은 작품이라면 기성, 신인 구분 없이 가려 뽑아 잡지에 게재하며, 신인의 경우 작품 게재와 동시에 곧바로 작가로 등단하는 셈입니다.
저자 소개
어린이와 문학 100여 명의 작가, 비평가, 독자들이 모여서 만드는 비영리 순수 어린이·청소년 문예 잡지이며, 2005년 8월에 창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인에게는 발표의 장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자유로운 담론의 장을, 그리고 어린이를 창작과 비평의 중심으로 되불러 옴으로써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지평을 넓혀 왔습니다.
책 속으로
2024년이 열렸습니다. 10기 편집부로 맞는 두 번째 봄이네요. 이번 호 주제는 ‘다시 봄’입니다. 봄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 떠오르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서랍”에서는 김은의, 유다정과 함께 「지식정보책을 쓰는 보람과 즐거움」을 이야기했습니다. 두 분이 지닌 어린이책에 대한 애정과 지식정보책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인상 깊었습니다. 어린이 지식정보책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고 싶은 분들에게, 지식정보책이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있어요. 두 작가가 들려드리는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세요.
“시선”은 김리리의 「죽음과 삶의 경계, 그리고 봄」을 실었습니다. 김리리는 겨울에 일어났던 일들을 어린 시절부터 짚었습니다. 추위와 매서운 바람뿐만 아니라 겨울이 지닌 죽음에 대한 이미지까지 같이 떠올리게 하는 글입니다. 그런 혹독함을 견디고 난 뒤 맞는 봄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하겠지요. 우리에게 봄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번 봄은, 앞으로 맞을 봄
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제10회 어린이와 문학상 심사평”도 실었습니다. 2023년 한 해 동안 <어린이와 문학>에 실린 동시,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각각 운문과 산문으로 나누어 살핀 결과, 운문상은 소리의 「두 마리의 개」, 산문상은 하신하의 「노몬의 북소리」로 선정했습니다. 올해는 어떤 작품들이 어린이와 문학상을 받을까요? 좋은 작품들을 많이 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9회 신인 평론가상”은 안타깝지만 당선작이 없습니다. 올해는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희망합니다.
이번 호에는 동시와 청소년소설에서 투고작을 뽑지 못했습니다. 동화에는 한 작품을 뽑았고요. 투고작에 대한 짧은 심사평은 어린이와 문학 카페에 실었습니다. <어린이와 문학>은 여러분의 투고작을 여전히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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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잡는 아빠
김바다
아빠는
구름 없는 날 밤이면
카메라로 행성을 잡아서
노트북에 가둬 둔다
아침에 내가 일어나면
밤새 잡아온 행성을
살짝 꺼내 보여준다
오늘 아침엔 목성이다
목성의 줄무늬 구름과
커다란 반점 대적반*도
아주 자세히 보여준다
내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입이 귀에 걸리자
아빠 눈이 살짝 웃는다
아빠가
영하의 추위에서
발 동동 구르며
목성 잡아 왔다는 거
다 안다
아빠에게
다음엔 토성 잡아 오라고
살짝 말했더니
한쪽 눈을 찡긋한다
* 대적반 : 거대 소용돌이로 시속 500km 이상의 태풍으로, 지구 3개가 들어갈 정도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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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와 멍멍개
박예분
갓 태어난 새끼 멍게는 0.15cm 올챙이처럼 헤엄쳐 다니다 자라면 바닷속 바위틈에 딱 붙어서 해초 뿌리처럼 자리를 잡는다 더는 몸을 움직일 필요 없어 불필요한 신경과 근육 지느러미와 뇌까지 먹어치우고는
오직 두 개의 구멍만 가지고 산다
하나는 플랑크톤을 먹는 입이고
하나는 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항문인 셈이다
나도 가끔 멍게처럼 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를 화나게 슬프게 하는 말들이
미세먼지처럼 둥둥 떠다녀 숨쉬기 힘들 땐
신경을 끊고 싶지만
나는 멍게가 아니니까
나는 더 자라야 하니까 나만의 방식으로
조용히 멍때리다
밖으로 나가면 기다렸다는 듯 옆집 개가 멍멍 짖는다 나에게 멍게가 싫으면 멍멍개가 되는 건 어떠냐고 할 말이 있으면 바보처럼 참지 말고 숨지도 말고 제대로 짖어보라고 틈만 나면 나를 가르친다
더 크게 멍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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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계약서
박예분
작가인 엄마가
출판사에서 계약서를 받고 놀란다
이런 계약서는 처음 봤다고
갑과 을의 계약 아니라고
너무너무 감동이라며
보여준 서류에 ‘동행계약서’라고 써 있다
작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출판사는 멋지게 책을 만드는 이야기길
동행이라는 말속에
봄볕처럼 따뜻한 생각이 스며있어
손과 손 마주 잡고 걷는 길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몹시 궁금해
나도 같이 걷는다
엄마, 약속해요
책이 출간되면 맨 먼저 읽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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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마지막 용돈
김하준
할머니가 오시는 날엔
참기름 들기름 인절미가 따라왔는데, 오늘은
짝 없는 양말
구멍 난 스타킹
꼬깃꼬깃 손수건
약 한 바구니가 왔다
할머니가 가시면서, 이번엔
나에게 3만 원
형에겐 2만 원을 주셨다
그게
마지막 용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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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윤동재
할머니, 감 가운데 어떤 감이 가장 좋아?
뭐니 뭐니 해도 영감이지
할머니, 곶감 땡감 단감 대봉감 가운데
어느 게 정말 좋아?
다 좋지만 정말 좋은 건
뭐니 뭐니 해도 영감이지
순님아, 너는 감 가운데 어떤 감이 가장 좋아?
나도 뭐니 뭐니 해도 영감이지
이 녀석 봐, 초등학교 6학년이 되니
이제는 할머니를 놀리는구나!
이제는 다 컸다고 했더니
할머니를 놀리기까지 하는구나!
할머니, 그게 아니고
나도 정말 영감이 좋아
얼마 전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시 한 편 써보라고 해
그 말을 듣자마자 영감이 곧바로 떠올라
단숨에 써냈더니 선생님이 보시고
칭찬해 주셨단 말이야.
아하, 그렇구나!
네 말 듣고 보니 그랬구나!
나도 영감을 좋아하고
너도 영감을 좋아하고
곶감 땡감 단감 대봉감 좋다지만
과연 영감이 좋긴 좋구나! 영감이 제일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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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눈썹솔새
이정인
어쩌면 내 손가락은
노랑눈썹솔새일지 몰라요
부리가 뾰족하고
날카로워서
무릎 위에 앉혀놓고
살짝살짝 다듬어 주면
톡, 톡
맑고 간지러운 소릴 내면서
파닥거리다가
접은 날개짓을 펴고
포르르
날아올라요
첫댓글 동행 계약서가 있다구요?
놀랍네요.
동시를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니 좋구요,
할머니의 마지막 용돈도 콧등이 찡하고,
영감은 웃음이 나오는 동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