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편이 되어 줄게 / 이미옥
벚나무 여린 잎사귀가 초록을 입느라 분주하다. 이팝꽃이 진 거리에 간간이 장미 봉오리가 보이더니 갑자기 더워졌다. 점심을 먹고 자리한 카페에서 당연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바깥의 5월만큼이나 카페 안도 소란스러웠다. 더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 사이에 우리 일행도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카운터 앞에서 주문하는 사람들, 이야기 소리, 믹서기에서 얼음이 갈리는 소리가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슬라이딩 도어(sliding door, 옆으로 밀어서 열고 닫게 되어 있는 문) 밖 야외 테이블에 딱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소음보다 더위가 낫나 보네.’라는 생각으로 무심하게 넘겼다.
내 시선은 자주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그 여자에게 향했다. 탁자에 놓인 음료도 잊은 채 핸드폰을 보면서 연신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떨어져 있어서 화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영상 통화를 하는 거 같았다. 그녀는 수어를 하고 있었다. 슬라이딩 도어를 기준으로 딱 둘로 나뉜 세상. 기분이 묘했다. 그녀는 내가 알 수 없는 언어로 소리 없는 세상에서 소통하고 있다.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우리처럼 즐거워 보인다.
그 잔영이 남아서였을까? 며칠 후 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동아리 쌤이 ‘시민 옹호 실천인’ 교육에 참석해 줄 수 있냐고 물어 왔을 때 그러겠다고 바로 답했다. 평일 이틀 동안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 하는 교육이라 모집이 안 돼서 곤란해하고 있었다. 컴퓨터와 시 수업이 있었지만 빼고 가기로 했다.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장애인복지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왼편에 가득 쌓인 빵을 나눠주고 있었다. 뒤에 안 사실인데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 만든 빵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인기가 많아서 금세 팔린다고 했다. 맞은 편에 작은 카페가 있다. 안내 데스크 옆에는 은행에서나 볼 법한 현금인출기 같은 게 놓여 있다. 그리고 사람들... 슬라이딩 도어 밖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빵 판매대, 카페, 운동실, 복도에서. 멀뚱히 서 있는 내게 직원이 어떻게 왔냐고 묻는다. 교육명보다 동아리 쌤 이름을 먼저 말하며 횡설수설하는 나를 직원이 바로 교육장으로 안내했다.
막연하게 봉사활동 교육이겠거니 했는데 내 생각과 달랐다. 이틀 동안 네 명의 강사가 오전, 오후 2시간씩 장애인 관련 내용을 강의했다. 특히 발달장애인에 대해서 배웠다. 신체 장애인과 달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람들이라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시민 옹호 실천가’는 그들을 변호사처럼 편들어 주고 순수하게 친구가 되어 주는 사람들이다. 봉사가 아니라 동행인 것이다.
교육 중 복지관의 배려로 점심을 그곳에서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비위도 약하고 단체 급식도 많이 해 보지 않아서 고민이 되었다. 교육생 누구도 빠지지 않는데 나만 유난 떠는 것 같아서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벌써 밥을 먹고 있었다. 나도 식판에 평소보다 적은 양의 밥과 반찬을 덜어 빈자리에 앉았다. 밥을 먹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양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그들도 따라 웃는다. 올해 들어 처음 먹는 수박이 무척 달다.
교육이 끝나고 ‘시민 옹호 실천인’ 수료증을 받았다. 나와 다른 친구를 만나는 일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친구를 사귀기 전에 안전 교육을 받은 기분이다. 친구를 다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교육을 충실히 받았을까? 그들에게 안전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지만 편들어 주는 일은 자신 있다. 나는 네 편이야!
첫댓글 귀한 수료증을 받으셨네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우러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제목에서 확 느껴집니다. 하하
선생님 넉넉한 품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답니다.
수료증을 받았으니 봉사활동도 나가셔야겠네요.
네, 친구 사귀러 가야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