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민경호
온더코너(www.onthecornerdive.com) 대표
PADI Master Instructor
최후의 낙원을 향해
전 세계 수많은 다이버들이 겨울철 선망하는 다이빙 여행지는 단연 인도네시아 동부의 라자암팟이다. 최근 롱트립으로미솔섬에 대한 리브어보드 투어도 가능해졌다. 승선하는 곳은소롱(Sorong) 항구다. 최근 자카르타에서 한 번에 갈 수 있는항공편이 마련되어 조금 더 이동이 수월해졌다. 2019년 12월마지막 주에 미솔섬을 필수로 포함하는 최소 일정(7박 8일, 6일 20회 다이빙)으로 씨사파리 6호 리브어보드에 승선하였다.온더코너(www.onthecornerdive.com) 멤버 20인으로 차터하였고, 전체 일정의 수립과 포인트 선정을 제가 직접 하였으며,모든 다이빙에서의 조류 체크와 이를 기초로 한 판단 역시 직접했다. 나이트다이빙은 전혀 하지 않고 새벽부터 시작하여20회 전부 데이다이빙으로 밝을 때 하였다.
라자암팟은 광활한 바다이다. 수많은 포인트가 산재하여 있고,여전히 새로운 포인트가 계속해서 개발되고 있으며, 특히 미솔섬에서의 다이빙은 아직 정립되거나 안정되지 않은 인상을 줄정도로 대단히 야생적이다. 라자암팟에 대한 국내 최고 권위를가지고 있는 파인드블루(www.findblue.co.kr) 를 통하여 해당리브어보드를 예약하였고, 일정 전반에 관한 컨설팅을 상세하게 받았다. 라자암팟은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따라 변수가 큰바다인데,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저의 구체적인 요구를 보트에 정확히 전달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원시의 바다, 태초의 바다
원시의 바다, 태초의 바다. 라자암팟뿐만 아니라 찬사를 받고 있는 전 세계 다양한 다이빙 핫스팟에 붙는 수식어이다. 그 중에서도 겨울철 라자암팟 남부, 미솔(Misool)섬 지역은 여지없이 최고라 불리고 있다. 그렇다면 원시의 바다는 어떠한 모습일까. 인간의 모습이 미치지 않았던 시절의 모습일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바다를 알지 못한다. 그 시절의 바다는 기록되지 못하였고, 단지 상상하며 짐작해볼 따름이다. 하지만 알 수 없을 그 시절의 바다가 아직은 라자암팟, 특히 미솔에 남아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기대를 가지고 떠났다.
1950년대, 밀러와 유리라는 두 과학자는 초기의 바다를 재현하는 역사에 남을실험을 진행한다. 창조론에 정반대 명제로서 탄소화합물로부터 DNA가 생겨날수 있다는 것, 즉 생명은 신이 아니라 자연에서 창조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함이었다. 실험은 실패했다. 그러나 위 실험에서 ‘원시 수프’라는 개념이 생겨났고,최근 댄브라운의 소설인 ‘오리진(Origin)’에서는 위 실험을 한층 발전시켜서 입증을 완료하였다. 원시의 수프(Soup),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이제는 어디로 가는가. 그 중 하나의 답을 품고 있는 그곳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마주할 수 있었다.
뜨거운 원시 수프, 미솔섬 다이빙
미솔(Misool)섬에서의 다이빙을 최우선으로 두었기 때문에, 승선과 동시에 소롱항구에서 즉시 남서쪽으로 14시간 동안 항해를 하였다. 다음날 아침, 미솔섬의동쪽 다람(Daram) 지역에서 다이빙을 시작하였다. 첫 포인트는 캔디스토어였다. 수중에 두 개의 큰 산이 솟아 있었고, 월다이빙으로 시작하여 얕은 수심의 플래터에서 마무리하는 형식이었다. 두 개의 산 사이로 조류가 흐르고 청아한 밀물이 들어왔는데, 버팔로 피쉬 스쿨링을 가까이서 만났고, 먹이 활동하는 수많은 물고기 떼가 산을 뒤덮고 있었다. 야생의 생명력이 넘치고 끓어오르는 바다. 뜨거운 원시의 수프, 첫 다이빙만으로도 그런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오후에는 미솔섬의 메인 포인트들이 모여있는 옐리엇(Yellit) 지역에 입수했다. 특히 네 번째 행선지였던 옐리엇 께칠(Kecil)은 14m 수심의 바닥에서부터 수면에 이르기까지 뱃피쉬들이 가득 차 있는 풍경을 보여주었는데,늦은 오후의 따스한 햇살과 함께 너무나 큰 감동이었다.
미솔섬 투어에서 가장 큰 기대를 품었던 두 번의 다이빙이 있다. 하나는 엔초비 피나클(Antichovi Pinnacle)에서의 격렬한 먹이활동, 특히 모불라레이들의 헌팅 장면. 다른 하나는 현시점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포인트인 매직마운틴의 새벽다이빙. 이 두 순간을 위해 많은 정보 수집을 하고 최적의 물때를 계산하였다. 뉴문 이틀 전인 12월 24일, 해와 달의 강한 인력을 한껏 받은 밀물이 엔초비 피나클 위로 차올랐고, 중천에 뜬 해와 함께 점심 직후 만조 시간대에 두근거리며 입수했다. 사막의 모래알처럼 많은 멸치 떼가 피나클 지형이 잘 안보일 정도로 뒤덮고 있었고, 갑자기 사방에서 모불라레이 십수 마리가 나타나서 휘저었다. 모불라레이가 하늘을 가르면 멸치 떼가 피나클 바닥으로 붙었고, 그 순간 푸른 수면이 가득 펼쳐지고는 했다. 하지만 바닥에, 즉 산호 바로 위에 멸치 떼들이 깔리면 곧이어 수많은 대형어류들이줄을 이어가며 먹이활동을 왕성하게 벌인다. 잭, GT, 나폴레옹, 블루핀 등 온갖 종류의 다양한 대형어류들이 서로 뒤섞인 채 격류를 이뤄 흘러갔다. 일행들은 탄성을 버블로 뱉어냈고, 짙게 남은 여운은 저녁시간까지 길게 남아 선상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까지 감동이 이어졌다.
다음날인 다이빙 셋째 날이자 크리스마스 당일이고 뉴문 하루 전날. 미솔섬에코리조트로부터 원하던 새벽시간대의 매직마운틴 퍼밋을 받았다. 아침 일찍 청아한 밀물이 한껏 들어오는 날이었다. 저는 이 날 매직마운틴에 첫 입장을 하고 싶었다. 한 시간대에 단 한 보트만이 입수할 수 있는 곳이자, 미솔섬 다이빙의 하이라이트. 전 세계 다이버가 현 시점 가장 주목하는 포인트. 동틀 무렵에 들어간 매직마운틴은 짙게 푸른 물빛을 품고 있었고, 만타들은 고즈넉하게 아침목욕을 하고 있었다. 산호 위로 많은 물고기들이 흩날렸고, 다이버들의 등장에도 오셔닉 만타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그들의 휴식과 유영을 이어나갔다. 곧 해가 한층 떠올라서 수중이 밝아지자 오셔닉 만타들은 해맞이 춤을 추었고, 저와 일행들의 머리위로 스치듯 날아오르는 순간들이 많았다. 어느덧 다이브타임은 80분이 넘어갔고, 미솔의 아침은 밝은지오래다. 가득 부푼 마음으로 출수하였고, 수면 위는 물비늘이 자글거렸다.오후에는 반나절 이상을 달려 드디어 라자암팟(중부)으로 이동하였다.
산호 삼각지대의 심장, 라자암팟
라자암팟 중부(Central) 다이빙의 시작은 그 유명한 멜리사의 정원(Melisa`sGarden)이었다. 멜리사의 정원은 라자암팟과 그 유명세를 나란히 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포인트이다. 이번 투어에서 유일하게 2회 입수한 곳이기도 하다. 얕은 수심의 광활한 경산호 군락을 오랫동안 구석구석 보고 싶었기에, 밀물이 들어올 때에 맞추어 입수하여 바로 얕은 수심에서 진행했다. 멀리서부터 밀려온 깨끗한 물이 뿔산호 사이사이로 흘렀고, 푸질리어는 햇살과조류라는 리듬에 따라 화려한 군무를 보여줬다. 자세히 보아도 예쁘고, 오래보면 더 멋진 곳이다.
멜리사의 정원 북쪽, 파네무(Pianamu) 전망대 인근에 바투 루푸스(BatuRufus)라는 포인트가 있다. 지형과 산호가 주제인 곳이다. 많이 방문하는 포인트는 아니지만, 저는 이곳에서의 다이빙이 라자암팟 투어 전반에 걸쳐 가장 감동이었다. 얕은 수심에 남동향으로 창이 나 있고, 그 주변을 화려한 산호들이 채우고 있다. 창 위로 떨어지는 햇살을 담아내고자 점심 직후 해가위에 있을 때 입수했다. 양배추 산호군락을 지나 얕은 수심으로 올라가니 다른 세상으로 입장을 안내하는 것 같은 파란 입구가 보였고, 분홍빛 부채산호가 이정표처럼 서있었다. 창을 통과하여 섬을 조금 돌아가니 황갈색 연산호가 가득하였고 살랑하게 불어오는 써지에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라자암팟 북부 포인트에 속하는 맹그로브 릿지(Mangrove Ridge)에 대한 기대도 컸다. 맹그로브 숲에서 하는 다이빙은 통상 시야가 좋은 편이 아닌데,맹그로브 릿지는 외해로 나와 있고 얕은 수심의 맹그로브 군락에서 바로 월로 수심이 깊어지기 때문에 시야가 양호하고 산호도 많았다. 수중에서 수면을 통해 바라본 맹그로브의 실루엣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인상파가 담아내고자 하였던 빛의 춤사위가 이런 것이었을까, 싶었다. 맹그로브 릿지 출수후, 보트는 남동쪽으로 90분을 이동하여 만타 릿지(Manta Ridge)에 도착하였다. 얕은 수심에서 하강조류를 버티면서 눈앞에서 춤을 추는 만타들을 80분 넘는 시간 동안 내내 보았다. 바다의 4DX 영화관이라 하겠다. 해가 서쪽으로 누워갈 무렵에는 사완다렉 제티(Sawandarek Jetty)에 입수하였다. 해가 기울었을 때 입수하면 제티의 기둥 사이로 햇살이 보기 좋게 갈라진다는정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20m 수심에는 라자암팟의 상징과도 같은 스윗립들이 모여 있었고, 얕은 수심에는 연산호가 가득했으며 제티의 기둥 사이로따뜻하게 들어오는 햇살은 몽환적이었다.
끓어 넘치는 생명력
마지막 다이빙은 케이프 크리(Cape Kri) 포인트에서 했다. 종 다양성이 대단하기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스윗립 스쿨링, 나폴레옹의 먹이활동 등을 보며 벅차게 상승하다가 수면을 잔뜩 두들기는 스콜을 마주했다. 이번 투어중 처음 만나는 스콜이다. 라자암팟 투어 내내, 특히 미솔섬에서의 다이빙을 할 때, 이곳은 무질서의 혼돈(Chaos)이 메타포로 자리하는 바다라고 느껴졌다. 끝없이 펼쳐진 산호, 수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물고기, 온갖 종류의 다양한 생물들. 그들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생존을 위한 활동을 펼쳤고, 그 생명력은 섞이고 흩어지고 모이고끓어올랐다. 그 속에서 일행들은 흥분하여 과호흡을 하고, 탄성을 버블로 지르고, 각자의 심박을 귀로 들었다. 생명력이 가득한 태초의 바다.원시의 수프. 그 끓어 넘침이 마지막 다이빙 때 수면에도 나타나는 것같아, 누워서 안전정지를 하며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태초의 바다에서 각종 탄소화합물들에 고온,전기자극, 진동 등을 가하면서, 기나긴 영겁의 시간을 지나면 엔트로피를 역행하여 DNA가 ‘자연적으로’ 등장할 수도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태초의 바다에서 온 우리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생명력이 끓어 넘치는 미솔섬과 라자암팟의 바다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질문과 답을 동시에 던져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하여 결국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는, 저는 여전히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다시금 태초의 바다인 라자암팟에 그 답을 찾으러 가봐야겠다. 이 시대의 기원(Origin), 그 뜨겁게 끓고 있는 수프가 멀지 않은 남쪽 바다에 있다.
출처
http://www.sdm.kr
scuba diver 2020년 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