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은골의 원오사
생수솟는 원오사의 사성각 낙성식

오색찬란한 가을 단풍 속에서 숨겨진 사찰을 찾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그 사찰속에 숨겨진 유래를 찾으면 전설의 동화처럼 더 아름답다.
2018년 10월 27일 계룡시 엄사면의 계룡산 은골에 자리잡은 원오사에서 사성각 낙성식이 열렸다.
엄사면은 계룡산의 용머리에 해당되는 574고지 향적봉의 목부분에서
우측으로 길게 뻗은 능선 속에 위치하고 있다.
그 엄사면 도심 뒤편 은골에 터를 잡은 원오사의 주지는
2008년 육군본부 군종감을 마치고 전역한 이종인 대령 원오스님이다.
27일은 1천여 평의 대지 위에 대웅전과 요사채를 세우고
사성각(四聖閣)을 건립하여 네분 신의 점안식과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고 받들어
후세에 번영을 이룬다는 천도제를 올리는 날이었다.
사성각 입구의 오색천은 하늘을 덮었다.
병풍으로 탱화가 가려진 이각은 사연이 깊다.
작년 4월 계룡산의 여 산신령이 어깨를 쓰다듬으며 산신각을 지으라는 현몽을 꾸었다.
그리하여 1년 8개월 만에 대웅전 옆 산신 외에도 세 분의 신,
즉 용왕신, 칠성신, 독성(나반존자)을 포함한 사성각을 짓게 되었고
드디어 낙성식을 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이날 행사는 사성각내 4점의 탱화(신)에 성스런 혼을 불어 넣기 위해서 재받이 행사부터 거행하였다. 이를 위해 여섯 스님이 나서서 법문과 경을 읽고
불교 고유 악기인 북, 피리, 징, 요랑을 연주하고 목탁을 두드리는 가운데
바라춤으로 한껏 흥을 돋우었다.
점안식 후에는 병풍을 걷고 일반 대중들이 참배하는 순으로 진행되었다.
낙성식 후에는 대웅전에서 별도의 천도재를 지냈는데,
이리하여 총 3시간의 의식이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탱화를 시주한 보살들을 위시하여
제주도 등 원근 각지에서 참배하려는 불자들이 찾아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원오사가 오늘이 있기까지
명산대찰이라는 말처럼 명산에는 큰 사찰(절)이 자리잡고 있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의 대부분은 불교쪽이다.
크고 작은 불사들이 산에서 내려와 도심 한가운데에도 포교당을 짓는 추세이다.
이곳 원오사도 도시에 내려온 경우이다.
위치 선정이나 가람의 한 부분인 사성각도 현몽에 따라 신설하였다 한다.
원오스님은 군종법사로 근무하던 중 은퇴 5년 전 2003년도에 이곳 원오사의 위치를 현몽받았다.
현몽 후 석달 만에 드디어 이곳을 찾아냈다고 한다.
1년후 천마산 정상을 마주보는 이곳에 1천여 평의 땅부터 구입한다.
4년 후 전역을 하였고, 2010~11년까지 2년간 전 자산을 투자하여 불사를 이룬다.
그 숱한 고충을 원오스님은 침묵으로 답한다.
이날 사성각 낙성식은 불교의 7대가람인 사찰입구의 일주문에서부터
천왕문, 불이문, 석탑, 범종각, 대웅전, 산신각 등은 가히 예술이라 할 만큼
한국불교의 특성을 보여준다.
대찰이 아닌 일반 소규모 사찰은 이런 가람의 형태를 갖춘다는게 모를 일이다.

사성각을 아시나요 !
사성각은 우리민족의 뿌리깊은 산악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나라를 세운 국조(國祖)도 죽어서는 산신이 되고,
국조를 낳은 성모도 산신이었다는 설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대웅전 뒤편에 산신각을 세웠다는 유래가 있다.
불교의 혼란기에 우리는 사찰 안에 전(殿)과 당(堂)과는 다른 각(閣)이라는 건물이 생겨났다.
이는 다른 불교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각 신앙이다.
이곳 원오사의 사성각은 산신을 포함 칠성, 용왕, 독성(나반존자) 4분을 모신 각이다.
우리는 종교를 통하여 심성을 바르게 갖고 주변사람과 서로 화합한다.
나아가 타 종교도 인정하고 특정종교라면서 터부시하기보다는
우리 역사와 문화라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일었다.
원각경에 보면, “일심(心)이 청정하면 일신(身)이 청정하고,
일신(身)이 청정하면 다신(多身)이 청정하여,
나아가 십방중생(十方衆生)이 청정하여 지나니”라는 경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이정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