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길(순종황제 어가길)을 따라
1909년 1월 7일~8일, 1월 12일~13일 총 2박 4일간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대구를 방문했다. 순종의 자의가 아니라 이토히로부미로가 이완용에게, 이완용이 순종에게 권유하여 이루어진 일이지만 역사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당시 대한제국은 군대해산으로 의병활동이 격화되자 일제는 반일감정을 무마하기 위하여 황제가 직접 백성들을 위로하는 형식을 빌려 남행과 서북행을 결정하였다. 마침 4년 전에 개통한 경부선을 따라 열차로 대구-부산-마산-대구를 차례로 순시한 것이다.
대구 순행 일정과 경과코스 등을 최근 북성로 어가길을 정비하면서 조형물과 사진 등으로 잘 정리해 두었다. 북성로 중간 쯤에서 좌측으로 삼덕상회라는 일식가옥 카페가 있고, 북성로는 달성공원까지 이어졌으나 당시는 길이 제대로 나있지 않았다.
바로 우측으로 북성로 길보다 좁은 붉은 색으로 포장된 길이 바로 어가길이고 달성공원까지 이어진다. 이곳에 조형물이 세워져 있어 찾기가 쉽다. 대구의 최고 친일행위자인 경상북도관찰사서리 겸 대구군수 직에 있던 박중양이 밤을 세워 급히 만든 길이 바로 어가길이다. 이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서성로가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횡단보도를 따라 건너려면 좀 돌아가야 한다. 어가길은 수창초등학교 뒷길로 이어지고 도시철도 3호선 달성공원 역이 우측으로 서있다. 여기서도 길을 횡단할 수 없다. 횡단보도도 없고 신호도 없다. 어가길을 제대로 걸으려면 두 곳에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설치해야 할것 같다.
달성공원에 도착한 순종은 사립학교 운동회와 기생들의 공연을 관람한 후 이토히로부미와 함께 기념식수를 했는데 일본 수종 향나무 가이즈카다. 공원 정문쪽에서 봤을 때 우측 것이 순종이, 좌측 것이 이토히로부미가 심은 것이다.
그런데 불과 9개월 뒤 10월 26일 이토는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권총 세 발로 조선합병의 날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사형을 앞둔 안중근은 "총도 못구했고, 길이 너무 먼 데다 호위 군사가 많아 성공하기 어려웠지만 그보다도 황제께서 함께 계시는데 어찌 저격을 하겠느냐"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토가 심은 향나무는 이토의 무덤이 될 뻔했던 것이다.
사진으로나마 조선의 마지막 황제가 찾은 어가길을 따라 100년 전 그날로 돌아가보는 것도 뜻있은 일이리라.
<어가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세운 조형물 해설표석>
<이 길이 어가길이다>
<서성로를 지난 어가길, 횡단보도가 없어 돌아와야 한다>
<순종황제 어가길>
<지금의 수창초등학교>
<도시철도 3호선 달성공원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