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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욱새똥
이 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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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욱새똥.
새의 종류를 찾아보면 백과사전이나 조류도감에 차욱새는 없다. 지구의 어느 모퉁이에도 차욱새는 서식하지 않는다. 같은 새똥이지만 똥새똥은 젊고 차욱새똥은 상당히 늙었다. 차욱새똥, 얼른 새똥이 연상되는 말이다. 승용차 보닛 위에 말라붙은 새똥이란, 닦아내기 참 곤란한 배설물. 그 새똥이 얼른 눈에 어른거리지만, 차욱새똥은 새똥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미얀마 숫자로 차욱은 6을 말한다. 차욱새는 60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똥은 샛을 말하는 3이다. 발음을 자세히 들으면 또온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똥은 숫자 3을 말한다. 고로 차욱새똥은 예순셋, 즉 63을 일컫는 미얀마의 숫자다. 그렇다면 똥새똥은 서른셋을 말한다는 걸 알 수가 있겠다. 하여 똥새똥은 젊고 차욱새똥은 늙었다는 말. 오늘도 나는 미얀마에서 차욱새똥의 아침을 열고 있다. 차욱새, 차웃새, 자세히 들어보면 그 중간 발음.
똥새똥
아이야
네 가슴을 적셔줄 유장한
문장 하나 남기지 못하고
예까지 왔구나 돌아보니 나는
맨발로 걸어서 왔다
날개의 변두리를 지나온 발자국에 내린 무서리 새가 되어 날았다 여기는 먼바다 건너 뼈가 시린 이국 어제 만난 바람의 뒤통수가 오늘은 부쩍 수척해졌다 벵골만 해변 초라한 찻집 추녀 끝에 매달린 앙증맞은 대나무 소쿠리 부러진 음절을 물고 온 되새 떼가 쉬다가 날곤 했다 모든 되새가 발자국 속으로 날아들고 어설픈 부리가 흘린 음표에는 먼바다 건너 차가운 계절이 묻어 있었다 찻집 눈이 큰 처녀 소쿠리 아래 말라붙은 음표 말끔하게 쓸어 담았다 처녀는 내가 흘린 발자국도 무심하게 함께 쓸어 담았지 이곳에서 메모를 남겼다
아이야
너에게 전하는 전언이 아니라 새에게 남기는 쪽지였다 날개를 싸게 융통하고 싶다고 그러나 이제는 늦었다는 쪽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의 마디는 누구에게나 있는 고관절 찻집 눈매가 서글서글한 처녀는 똥새똥이라 했다 새똥을 치웠다는 말이 아니다 미얀마에서 처녀 나이 서른셋이면 보기 드문 노처녀 똥새똥이면 미얀마 숫자로 33이라는 말 이젠 처녀에게 나이를 잠시 빌리고 싶었다
새똥이 입 속에서 머뭇거리다
허물을 벗어놓고 건너간 저녁
이젠 어둠을 재배하는 법을 배워야만 할 시간
아이야
이 차가운 시간을 싸서 보내면
네가 받는 계절의 동쪽이 너무 어둡겠지
1. 늙은 나라의 잠
밤에 글 쓰는 걸 즐기지 않는다.
나는 그렇다.
밤에 쓴 글은 다음 날 아침에 읽어보면 꼭 수정을 요구하는 대목이 있게 마련이다. 아무래도 인간의 정서는 밤의 지배를 받아 감상적으로 기우는 모양.
나는 주로 새벽에 글을 쓴다.
새벽에 글을 쓰기 위해 저녁에 일찍 잔다.
내가 새벽이라 요기고 일어나는 시간, 남들에겐 오밤중이거나 아니면 그 시간까지 자지 않는 녀석들도 있다. 한국에서 글을 쓰기 위해 새벽에 사무실에 내려가면 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취객들의 고함소리. 앞 골목, 술집에서 나와 그때까지 추태를 부리는 놈들도 있다.
한국에서는 사무실에서 글을 쓴다.
집에는 글쓰기의 작업 공간은 고사하고, 서재도 없다.
서재? 서재라니 생각난 건데, 서재가 있기는 하다. 사 층. 건물을 처음 지을 적에는 그게 옥상이었는데, 겨울에 공사를 해서 그런지 비가 오면 천정에 습기가 차기에 그 옥상에 지붕을 만들어 씌웠다. 지붕을 쓰이고 보니 엄청난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을 꾸며서 반은 내 서재로 쓰고 반은 아내의 천연염색 작업실로 쓴다.
서재가 그곳에 있지만, 잘 올라가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매일 새벽에 사무실에 내려가 글을 쓰는데, 여기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밤에 글을 쓴다.
밤에 쓴 글은 수정을 요구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밤에 작업한다. 정전을 예측할 수 없는 나라, 새벽에 전기가 나가면 그날은 글쓰기는 고사하고 아무 짓도 할 수가 없다. 하여, 저녁에 전기가 있으면 무조건 쓰다가 잔다.
아침에 수정을 요구할지라도.
늙은 나라에 와서 잠이 늙었다.
잠이 늙었다? 야자수 아래 허름한 카페에서 생맥주잔을 만지작거리며 그 말을 다시 곱씹어 보았다. 생맥주가 든 잔, 유리 재질이 시원한 냉기를 손바닥에 오롯이 옮겨주고 있었다.
늙은 나라의 잠
잠마저 늙고 있는가
늙은 나라에서
줄어든 잠을 호명하는 시간
두 시간 반이 늦은 나라
잘 적에는
여기 시간으로 자리를 펴고
기상은
한국시간을 따지니
새벽이 풍부해진 나라
늙은 나라 잠엔
늘 목화가 자랐다
목화밭에 내려앉은 열대의 달
기어이 꽃으로 피었지
밭 가득한 꽃
꽃 가득 무성한 달
꽃과 달을 어루만지는 늙은 잠
목화밭에서 귀를 세우면
비로소 열리는 오늘
우리의 나침반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
목화라는 이름 뒤에 꽃이라 수식하지 않아도
목화라는 이미 꽃이었다
오늘 거느리고 자야 할 잠이
몸을 풀고 머리맡에서 졸고 있건만
늙은 나라 잠은
또 목화를 부르고 있었다
한국에서 모서리에 각을 세우고 절도를 유지하던 나의 잠!
이곳에 와서 끝이 무뎌졌다. 내 잠은 분명 각도와 절도를 잃어가고 있었다. 잠이 늙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곳으로 온 지 한 달이 좀 넘었을 뿐인데 많은 변화가 잠에서 감지되었다. 늙어버린 잠, 늙은 잠을 더듬고 있는데, 미친 오토바이가 요란스럽게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뭐 이런 새끼들이 다 있어?
노천카페,
카페 이름이 뭔지는 모르지만, 금방 들어온 녀석들은 테이블이 놓인 노천이 아니라 지붕이 버젓이 얹힌 실내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왔다. 오토바이를 대동한 무리에는 불량스럽고 건방진 티가 역력한 인도계 검둥이도 두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새끼들 완전히 룰루랄라구만!
룰루랄라? 이 나라에는 룰루랄라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룰루랄라를 콧노래나 허밍으로 알고 있지만, 아니다. 자유롭다, 여유롭다, 자유롭게, 여유롭게, 우리 말로 딱 부러지게 풀이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의미로 쓰이는 형용사인데, 이 말이 건너와 의미도 모르고, 콧노래로 이어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리 문턱이 없는 나라지만 카페 안까지 오토바이가 들어오다니, 생맥주를 마시는 내 좌석, 앞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온 녀석들은 바로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껄끄러운 눈으로 보아서인지, 앉으면서 건들거리는 모습까지 눈에 거슬렸다.
카페 안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온다?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못 하는 일이지만, 여기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싸잉께, 여기서는 오토바이를 싸잉께라고 부른다. 싸이카라는 영어에서 따온 것이겠지만, 카라는 발음이 되지 않는 나라이니 카를 까라고 해서 싸잉께가 된 모양이다.
쓴 입맛을 생맥주 한 모금으로 헹구었다.
무덤덤하게,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인데, 왜 이렇게 날카로워졌을까?
지금 내가 극도로 날카로워졌다. 인정해야 한다. 몸도 마음도 날카롭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
자투리 시간에, 자투리 돈으로 시작한 일인데, 시작할 때의 마음과는 달리 내가 서서히 처지고 있다.
이게 아닌데? 분명히 이게 아닌데?
이 열대의 나라에서 나는 잘 구워지고, 또 잘 삶겨지고 있었다.
오늘, 현장에 서서 마신 물이 몇 병인지 헤아릴 수가 없는데 화장실을 한 번도 가지 않았으니 그렇게 마신 물이 다 땀으로 배출된 모양.
며칠째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입맛이 사라졌다.
오늘은 차고 있던 손목시계 줄이 떨어졌다. 갈색 가죽으로 된 시곗줄인데, 그게 땀에 젖어 부풀다가 기어이 연결부분이 끊어졌다. 가죽에 땀이 먹은 끊어진 시곗줄에서 발산되는 고약한 냄새, 시곗줄은 버리고 시계 알맹이만 주머니에 넣었는데, 여기서 맞는 시곗줄을 찾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애초에 열흘, 길어야 보름이면 마칠 걸로 예상했던 일이 늘어지고 있다. 공사가 늘어져서 지체 상환금을 물어주는 일은 아니지만, 마음이 조급하다. 이 공사로 인하여 중요한 일을 미루고 있다는 심리적 부담에 나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일이 예상과는 달리 늘어져서 내가 처지고 있다.
내가 처진다?
그렇다. 일의 늘어지고 나는 처진다.
왜 내가 이렇게 힘든 일을 자청했지?
이럴 때, 힘이 든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친구, 마주 앉아 시원하게 맥주 한잔 나눌 친구 하나 있었으면,
뭐야? 내가 왜 이런 생각에 빠져?
나약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이 나라에 친구가 없는 게 아니다. 친구도 있고, 맥주 한 잔 사달라고 투정할 선배나, 한잔하자고 불러낼, 만만한 후배도 있다.
그러나 귀찮다.
생각만으로도 번거롭고 귀찮다.
그럴 시간도 없고, 그렇게 만나면 상당한 경제적 출혈이 생긴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고 한국에서 마신다면 그러려니 하는 금액이지만, 여기서 한국인을 만나는 저녁이면 현지인 한 달 월급은 간단하게 날아간다.
순간적이지만, 같이 마실 친구가 그립다는 건, 사치다.
그래 그건 사치야, 정신적인 사치.
발 냄새 속에서
야자수 그늘 노천카페
생맥주 두 잔 마셨네
하루치 무게를 잠시 벗어놓았네
쓰기 위해 온 나라가 아니니
발에 풀이 무성했네
다시 짊어지기엔 버거운 무게
탁자 밑에 버려두고 일어서려 했네
어깨에 메고 있던 손가방
대나무 의자 모서리에 걸렸네
순간, 휘청거리는 허공의 야자수
털썩, 주저앉은 등뼈를 받아준
대나무 의자, 발이 없었네
대나무가
발 냄새 속에서 자라고 있네
내려다보니 내 발이었다네
버거운 냄새
땀으로 질퍽한 운동화에 가두고
오늘은 얼마나 뿌리고 다녔는가
발 냄새
이국땅 하오에
불러 모으는 내 발자국
낯선 사내
발 냄새에 버무려지고 있었네
내가 숙성되고 있었네
어제도 여기서 간단하게 생맥주 한잔하고 들어갔다.
그게 내 저녁이었다.
안주는 오늘과 비슷했다. 대나무에 꽂아 구워주는 닭고기 두어 점에 마늘구이 하나. 돼지고기 몇 점, 잘게 썰어 역시 대나무에 꽂아 숯불에 구운 것이 전부였다.
이 나라에는 공식 석상에서 신는 신발이 파낫이라는 발가락 슬리퍼다.
발가락 슬리퍼를 신고 결혼식을 올리는 나라.
국회의원이 발가락 슬리퍼를 신고 회의에 참석하는 나라.
현장에서도 안전화는 없다. 그런 신발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 그게 지금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 파낫을 신고 고소작업을 한다. 파낫을 신고 허공에 걸쳐놓은 철골 위를 다닌다. 쳐다보고 있으면 아슬아슬한 날의 연속이었는데 그게 끝났다. 고소작업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위에 올라가서 하는 작업은 없다.
지붕까지 완벽하게 씌웠다.
고소작업이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한숨을 돌리겠다. 고소작업을 하는데 철골 끝에 올라가는 용접사의 신발이 파낫이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은 작업 복장이 이 나라의 전통 론지였다,
론지!
미얀마 사람들이 입는 치마를 말하는데, 남자들은 뻐쏘라고 하고 여자들은 터매잉이라 부르는데 통으로 된 치마다. 발목까지 오는 치마에 발가락 슬리퍼를 신고 철골 끝에 올라간 용접사를 보니 기가 막혔다.
당장 내려오라고 고함을 쳤더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내려오긴 했는데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었다.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다. 뭐가 잘못됐는데? 분명히 그렇게 물을 것이다.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 저쪽에 있는 시장으로 가서 난전에서 파는 싸구려 반바지 대여섯 개를 사다가 작업할 인부들에게 던져주었다.
그래도 고소작업에는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괜히 시작한 일이 아닌가?
하나라도 떨어지면 어쩌나?
아슬아슬하고 초조한데, 눈치 없는 매니저, 아웅 살린이라는 녀석은 하는 일 없이 철골 위를 올라갔다가 또 내려오고, 눈을 돌리면 또 올라가 있고, 아무리 밑에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그게 되질 않았다. 뭘 도와주고 싶은지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허공에서 작업하는 용접사와 조수를 살피고 매니저라는 녀석을 붙들어 두고, 도무지 정신이 없었다.
한국이면 이틀, 늦어도 사흘이면 넉넉히 마칠 고소작업이 딱 일주일이 걸렸다. 내일부터는 잠시, 잠시 자리를 비워도 큰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래도 다소 위로가 된다.
꼬박, 일주일 걸린 고소작업, 그걸 초조하게 다 지켜 보고 있었으니, 어지간히 지쳤다. 애초에 정전을 대비해서 용접용 발전기를 임차했는데 사흘이나 쓰려나 했던 걸 오늘 돌려주며 계산하니 엿새를 썼다.
거기에는 하지 않아도 좋을 일에 엄청난 시간과 자잿값이 들어갔다.
용접사는 집을 지어본 놈이라고 했다.
말끝마다 집을 많이 지어봤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가 그려주고 자로 재서 측정하면, 그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미얀마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 그 말만 지겹도록 들었다.
작업 과정을 설명하고,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 매니저라는 녀석이 이해를 못 하니, 용접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요지는 간단하다.
다락방이 되는 부분만 이 층 높이로 하고 나머지는 낮추자는 말인데, 그게 먹혀들지 않았다. 그 간단한 게 왜 그렇게 어렵게 설명해도 전달되지 않는지. 용접사라는 놈은 그게 무기인지, 제 말대로 안 되면 일을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곤 했다. 의견 충돌이 생기면, 장갑을 벗어 던졌다. 못하겠다. 엿새간 작업하면서 장갑을 벗어 던진 게 세 번이었다.
그놈을 입으로 달래 일을 시키자니, 얼마나 약이 올랐는지,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애초에 그런 걸 대비해서, 용접사와 그 조수에게, 요구하는 일당보다 후하게 쳐주겠고 하고 다짐을 받았다, 집이야 되든 말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약속을 받고 노임을 결정했는데 노임은 더 받고 내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전부가 무시되었다.
이미 내 머릿속의 도면은 엇길로 들어섰다. 집은 그래서 내 생각대로 끌려오질 않을 것이다. 이미 네 예상에서 살짝 빗나간 모양새로 그려지고 있다.
매니저, 아웅 살린이라는 녀석은 내가 하는 말보다, 용접사의 의견을 더 귀를 기울였다. 내 생각을 용접하는 놈의 생각에 끌어다 붙이려고 부단히 애쓰는 눈빛이 가련할 지경이었다.
이런 녀석을 데리고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할까?
녀석의 능력이나 내 말을 알아듣는 속도를 걱정이 앞섰다. 이 녀석이 내 말을 빨리 이해하지 못하는 통에, 자잿값은 더 들어가고 더뎠고, 나는 지쳤다.
사람을 미워하는 게, 아니 미운털이 박힌 놈과 일하는 게 이렇게 힘이 드는 줄 몰랐다. 용접하는 놈의 고집으로 인하여 나는 지쳤다.
철골 공사를 다 마치고 용접했던 놈을 불러, 여기에 천정이 생기고, 네 말대로 했더니, 여기에 이렇게 쓸데없는 공간이 생겼다.
어떻게 할 거냐?
다그쳤더니, 녀석은 그 허공에 합판을 깔고 자면 된다고 농담을 하며 웃고 지나갔다.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고작 웃고 꼬리를 사리는 게 끝이었다.
그렇게 애를 태웠는데? 그곳에 쓸데없이 들어간 자잿값을 환산하면, 그동안 일한 용접사의 노임을 능가하는데?
아웅 살린이라는 녀석은 공간을 보여주며, 이게 쓸데없는 일이었어, 손으로 집어서 지적한 뒤에야, 이 노인이 왜 그렇게 핏대를 세우며 주장했는지 어렴풋이 알았지만, 늦었다.
그렇게 계산하면 이 나라의 인건비가 싼 게 아니다.
꼼짝도 못하고 내가 현장에 종일 붙들려 있었던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오히려 비싸다. 내일부터는 용접사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 사실 하나가 위안이 된다. 아무려나 사고 없이 끝났으니 다행이다. 용접사도 그렇지만, 파낫, 발가락 슬리퍼는 생각하기도, 보기도 싫다.
더운 나라니, 파낫이 편하겠지만 현장에서 그런 슬리퍼라니, 마음이 허락하질 않아 운동화를 신고 현장을 다니는데, 땀이 차는데 종일 운동화니 들어가서 씻으면 발 냄새가 여간 아니다.
그 생각을 하니, 발이 답답하다. 잠시 탁자 밑에서 운동화를 벗었는데 이 냄새! 역시.
2. 나를 사육하는 여자
얼른 들어가야지.
오늘도, 닭고기 몇 점과 생맥주 두 잔이 저녁이 될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입맛이 사라졌다.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이다. 아무거나 잘 먹는다고 칭찬을 듣던 나였다.
그건 아내가 인정하는 내 장점, 잘하는 일 중 하나다.
당신은 아무거나 군소리 안 하고 잘 먹어서 복 받을 거예요.
그런 소리를 들으며 돌아앉아, 간단한 김치나 젓갈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공기를 뚝딱, 했다. 그랬던 내가 입맛이 없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나 이 이역에서 입맛이 사라졌다?
끼니마다 밥을 물에 말아서 고추장을 찍어서 삼키지만, 그것도 보통 고역스러운 게 아니었다. 물에 밥을 말아서 먹는 내 뒷모습을 보는 게 고역이었고, 그것보다 나의 사육사 에모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밥상머리에 서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더 큰 고역이었다. 아! 나를 사육하는, 가련한!
나를 사육하는 여자
고요했다
말을 몰라 고요한 입이었다
침묵의 사육사는 날마다
언어를 정육했다
먹이를 줄 시간이 되었는데
사육사가 불러줄 때가 되었는데
호명을 기다리는 아침의 언어
나의 언어를 사육하는 저 여자
아래층 주방에서 자모를 배합 중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무슨 반찬을 즐겨 먹는지
내가 물린 죽통으로 읽어내는 사육사
어느 언어를 잘 씹는다 싶으면
질리도록 사다 나르는 사육사
눈에 드러나도록
치우치게 먹은 건 없나
뱉고 난 뒤에 점검하는 말의 밥상
물린 밥상 위에 날을 세운 신경전
조용히 불꽃 튀는 눈치와 맞붙은
말을 초월한 눈치
새로 들인 저 인도계 검둥이 사육사
오늘도 저 여자에게 사육될 터
목표치의 살이 오르면
무게를 달아
어디 정육점으로 출하시킬 게 분명한
하여, 요 며칠간은 일을 마치고 들어가며 이 카페에 들러 생맥주로 저녁을 때운다. 물론 저녁을 준비할 나의 사육사 에모에게 저녁을 먹고 들어간다고, 전화한다. 오늘도 카페에 자리를 잡자 바로 전화를 했다.
야자수 아래 시원한 자리가 있었지만, 지붕이 드리워진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달을 피해서 들어온 것이다.
달!
외국 생활을 하면서 쳐다보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달이다.
심사가 고달픈 날은 가능하면, 달을 보지 말아야 했다.
오늘은 심신이 지쳤다. 그래서 달을 보지 말아야 했다.
달은 괴상한 감정을 골로 사람을 이끄는 속성을 지녔다. 그 감정의 골로 빠지면 여지없이 허우적거리게 된다. 노천에도 자리가 있지만 달을 피해 실내로 들어온 것이다. 한국에서 나온 지 겨우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이국의 달은 역시 그런 감정을 불러온다.
집에 들어가 늙은 잠을 주물러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잠이 늙고 있다.
늙은 잠을 더듬거리고 있는데, 나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한 가닥!
이게 뭐야?
누군가의 눈길을 의식하고 눈을 들어보니 개였다.
큼직한 개가 탁자 옆으로 어슬렁거리며 와서 탁자 앞에 천연덕스레 앉아 쳐다보고 있었다. 씹고 있던 닭고기라도 한 점 던져주길 기다리는 애절하게 기다리는 눈빛.
참, 가지가지 하는군!
식당에서 어떻게 개를 키우려고 생각했을까?
이건 상식이 아니라 개념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다, 개념? 개념이 있다. 개의 생각이 바로 개념이 아니던가,
개념이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그런 영양가 없는 생각을 주무르며 앉아 있는데 한 점 던져주길 기다리던 개가 기어이 탁자 아래, 내 발치에 있던 뚜껑이 없는 휴지통으로 대가리를 넣고 조금 전에 내가 버린 닭 뼈다귀를 물어 바닥에 꺼내놓고 핥고 있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까지 되었나? 개랑 같이 먹고 마시는 신세라니?
개는 그걸 다 핥고 또 올려다보았다. 개의 눈빛, 고개를 돌렸지만,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개의 애잔한 눈빛이라니, 몸서리가 쳐진다.
내가 왜 저 눈빛에 빨려 들어가지? 저 눈빛이 어디까지 따라올까?
개의 눈빛이 몸을 타고 오르는 징그러운 벌레로 여겨졌다. 내 몸을 타고 스물스물 기어다니 저 눈빛.
역시 이 노천카페도 몸을 벗은 내 숲이 쉴 곳은 아니다.
몸을 벗은 내 숲?
개의 눈길을 애써 피하며, 남은 맥주, 단숨에 들이키고 소리쳤다.
씬매!
간다거나 식당에서 다 먹고 계산하겠다는 현지어다. 씬매, 직역하면 내린다는 말인데, 버스에서 내릴 때 운전사에게 외치는 말도 씬매다. 이 나라에서는 식당에서 일어설 때 씬매를 외친다. 그러면 종업원이 계산서를 들고 달려온다.
계산서를 들고 달려오는 카페는 시내의 외국인들이 들락거리는, 다소 개방되거나 진화된 카페고, 이런 카페는 씬매라고 소리치면 종업원이나 주인이 와서 먹은 것을 살펴보고 하나하나 다시 적어서 계산한다.
뭘 이렇게 처먹었나?
이렇게 먹은 게, 왜 저쪽에 있는 계산대에서 셈이 되지 않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왜? 와서 마신 잔과 접시를 헤아릴까?
미얀마 현지인들은 담배를 한 갑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드물다. 어느 카페든, 이쑤시개 통보다 조금 큰 담배통이 있다. 그 담배통에 든 담배를 몇 개비나 피웠나 그걸 확인하려고 오는 모양인데, 와서는 먹은 그릇을 헤아린다.
뭘 이렇게나 처먹었어?
그 소리를 듣는 듯한 고약한 기분! 안주 접시를 손으로 들추면서 개수를 헤아려보고 계산을 하는데, 그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먹지 않아도 좋을 것을 처먹은 죄인이 되는 기분, 하기야 현지인들이야 그게 정확하고 같이 헤아리니, 속거나 계산이 잘못될 일이 없으니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종업원이나 주인이 와서 잔을 헤아리고 병을 헤아리고 안주 접시나 밥그릇을 헤아릴 때 고약해지는 기분. 무슨 진술서를 꾸미다가 물증을 파악하기 위해 헤아린다는 기분, 나만 그런 것일까?
주인인 듯한 뚱뚱한, 버마족인 듯한 아줌마가 계산하는데, 한참이 소요되었다. 아니, 이걸 계산하는데, 뭐가 저렇게 오래 걸려? 한참 계산하는 중간에 내가 슬쩍 훼방을 놓았다.
빠세!
빠세! 라고 외친 것이다. 남은 닭고기 몇 점과 굳어서 딱딱하게 굳은 돼지고기 구운 것 두 점을 가리켰다. 빠세, 영어로 소포를 말하는 파슬Parcel이 발음만 건너와서 변형된 말인 모양인데, 꼭 소포에만 쓰이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포장, 포장이 아니고 싸달라는 말로 통용된다.
기꺼이 남은 안주를 가리키며 빠세라고 했으니 셈을 하던 아주머니는 다시 해야 한다.
빠세!
이 나라에선 흔한 일이다. 딱 두 점만 남아도 그걸 기어이 싸간다.
우리 어렸을 때도 어른들은 그랬다. 당시에 내가 자란 고장에서는 ‘돌가루 종우’라고 불리던 시멘트 포대를 찢은 종이에 먹다 남은 고기 몇 점을 싸 오시던 어른들, 지금 그렇게 싸 오면 어느 녀석도 먹지 않겠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는 그렇게 싸 가는 게 일반적이다. 하여, 이곳의 카페나 식당은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으로 만든 접이식 일회용 도시락을 항상 비치하고 있다.
싼 것을 받아서 들고, 나오는데 역시 인사가 없다.
버마족으로 보기엔 피부가 검은, 주인아줌마는 내가 다시 돌아보아도 인사가 없었다.
이 나라는 인사가 없는 나라다.
제 식당에 손님이 오면 그냥 쳐다보기만 한다. 손님이 먹고 나갈 때도 마찬가지. 인사가 없다. 분명히 밍글라바, 인사말이 있는데 식당에서는 들어오는 손님에게나 나가는 손님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 들어올 때 눈이 마주치면 약간 웃을 뿐이다. 인사를 하는 곳은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호텔이나 커피숍뿐이다. 왜 인사가 없을까? 그게 지독히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가게에 오는 손님에게 인사를 하면 많이 팔겠다는 장삿속이 보이기에 인사하지 않는 것이, 우리는 장삿속이 없습니다. 하는 말고 같은 의미라고 했다.
들으니 좀 우습기도 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질문에 대답한 사람도 미얀마인이었으니 머쓱해서 미화한 거겠지.
숙소하고 해야 하나? 집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살피는 게 전기다. 전기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그게 순서다.
오늘도 그랬다. 오토바이가 대문 앞에 도착해 대문 사이로 전기가 들어오나, 살폈다.
툭, 하면 정전인 나라. 이 나라에 와서는 무조건 전기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큰 빌딩이나 호텔은 발전기를 갖추고 살지만, 가정집은 대부분 정전이 되면 마냥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숙소도 예외는 아니다.
다행히 전기가 살아있었다.
저녁을 해결하고 온다고 했기에 에모는 밥을 차리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남 다음, 먹을 디저트, 먹을 약과 물을 챙겨 들고나왔다. 저녁 식후에 먹는 당뇨약과 간장약이었다. 그건 한국에서 준비한 약이다.
닭고기 몇 점과 굳어서 딱딱해진 돼지고기 두어 점,
오토바이 핸들에 걸고 온 비닐봉지를 에모에게 내밀었다.
에모는 그게 뭔지 짐작하고 있다. 그렇게 가져온 것이지만, 버리지 않고 아들 녀석을 불러, 둘이서 참 맛있게 먹는다. 그 점이 고맙다.
3. 그 사내의 소설 공학
집에 오면 바로 늙은 잠을 비루하게 구걸하는 게 아니다.
쓰던 소설이 기다리고 있다. 얼른 씻고 소설을 살펴야 한다.
쓰던 소설이 오로지 나만을 기다린다는 건 가슴이 설레는 일이고, 쓰던 소설을, 호흡이 끊기기 전에 써서 맥을 이어야 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나를 향하는 시간이니 즐겨야 한다.
지금 쓰는 소설은 단편인데 세 편이다. 소설을 한 편 쓰는 게 아니라 세 편 정도를 걸어놓고 작업을 한다. 그게 이 무명 소설가의 독창적인 작법이다. 소설을 세 편이나 네 편을 같이 쓴다고 했더니, 어느 선배 소설가는 놀랍다는 투로, 희한한 놈을 다 본다는 투로, 그게 가능한가, 라고 물었지만, 솔직히 가능하다.
쓸 거리가 많을 적에 세 편이 아니라 여섯 편을 걸어놓고 이것 쓰다가 막히면 저걸 쓰고, 저걸 쓰다가 말이 꼬이면 또 다른 걸 쓴다.
물론, 그것도 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여섯 편을 한꺼번에 쓴 적이 있다. 그렇게 써도 저마다 독창적인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한꺼번에 쓴 소설이라고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소설가 일생에 오백 편을 쓰지 못한다.
내가 쓴 소설을,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하면 오백이 넘는다. 꽁트까지 소설의 범주에 넣는다면, 숫자는 훌쩍 올라간다.
오백,
같이 소설을 쓰는 동료 작가들도 놀라는 숫자다. 일 년에 소설 서너 편을 끄적여도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런 작가는 오백 편을 쓰려면 125년간 써야 하는 분량인데 나는 이미 그 숫자를 넘어섰다.
그 사내의 소설 공학
이 한 편의 시를 위해서
오백 편의 소설을 쓴 사내가 살았다
사내는 이제야
이 한 편의 시 앞에 앉아
이 한 편의 시를 쓴다
이 한 편의 시
소설은 문학이 아니라 사내에게는 공학이었다
사내의 잠은 늙고 있었다
사내에게 소설은 가슴이거나 혼으로 쓰는 장르가 아니었다 머리로 그려가는 건축물이거나 퇴적층을 뚫는 최첨단 건설 작업, 사내는 서사의 골격을 세우기 전 비상구부터 만들었다 짓다가 혹은 파다가 무너지는 소설 잔해는 늘 날카로웠다 항상 출구를 힐끔거리는 사내의 소설 제작에는 늘 금속성 공법이 동원되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생산해야 해
창작이 아니라 공법으로 제작해야 해
제조 기술이 더 숙련되어야 해
걸음이 꼬이지 않도록 오른쪽을 다독이며 소설 공학의 공식에 대입시켜 끌고 가지만 좌표를 잃을 때가 종종 있었다 오백 편이란 그런 숫자였다 그럴 땐 주저앉아 제가 설치하던 금속성 구조물을 보았다 방향을 잃은 구조물을 보는 사내의 느낌이란 지난밤 수음에 사용했던 휴지를 아침에 다시 보는 구겨진 기분
현학적이지 말아야 해
절대로 바닥을 드러내선 안 돼
끌고 가던 독자를 놓치지 않는 장치가 필요해
절대로 제가 뱉어낸 말에서 자기도취에 빠지면 안 돼
사내가 만든 소설 제작기 이용 지침서에는
몇 개의 공식과
몇 줄의 금기 사항이 있었다
늘
그걸 외느라 사내의 입술이 닳았다
입술에 모서리가 없어졌다
오백 편이 넘는 소설을 쓴 무명 작가.
세상에는 그런 사내도 있다.
분명히 있다.
오백 편 째 소설을 쓴 그 날.
마침표를 찍고 나서, 비로소 스스로가 작가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 작가임을 인정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시답잖은 시를 끄적여서 몇 군데 카톡으로 보냈다.
카톡을 날린 곳 중에 기억하는 곳은,
내가 속한 종교 모임인 불교 거사림회, 다 중늙은 불자들이 서로 거사님이라 부르는 모임, 그리고 고등학교 동기 중에서 마음이 맞는 녀석들과 모은 계, 그 계에도 단톡방이 있었다.
그리고 하나는 소설을 써서 같이 합평하고 독서토론을 하는 모임인 창작과 합평, 나이가 들수록 이런 모임이 꼭 필요했다. 지방에서 혼자 작업하는 소설가일수록 이런 모임이 더 필요한 법,
이 모임은 구성원이 여섯인데 전부가 소설가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소설가들이 주축인데 대구에 살다가 수원으로 이사 간 한 여류소설가는 그 모임에 가입되어, 모임이 있을 때마다 수원에서 대구로 내려온다. 참 먼 길을 왕림한다. 수원에서 오는 마당에 내가 구미에서 대구 가는 일이 대수랴,
아무튼, 그날 그렇게 내가 스스로 작가임을 인정하고 약간 고조되어 카톡을 날렸는데, 거사림회에서 축하한다는 답장이 쇄도했고, 생각지도 않은, 난 화분 두 개가 사무실로 배달되었고 고등학교 동기들 모임에서 저녁 답에 생크림이 잔뜩 올려진 케이크 하나가 배달되었다.
그런데 정작, 소설 한 편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아는, 소설 모임에서는, 그 단톡방에 찬물을 끼얹었는가, 너무 조용했다. 단 한마디의 카톡도 올라오지 않았다.
어?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올려서는 안 될 글을 단톡방에 올린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
카톡을 보면 이걸 읽었나 안 읽었나, 표시가 난다.
읽긴 나를 뺀 나머지 다섯 명 모두 읽었는데, 누구도 쉼표나 느낌표 하나 찍지 않았다. 생각하니, 지금까지 한 마디, 언급이 없다. 긴가민가 믿기지 않는 건가,
아! 이 여류소설가들!
정주영과 이병철이 왜 죽었는가?
돈으로 젊음을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야.
권력으로 젊음을 살 수가 있었다면, 진시황은 아직도 살아있을 게 분명해.
이제 우리는 원로임을 인정해야 할 나이, 아직도 중견작가라고 생각하면 곤란하지.
원로란 뭔가?
좋든, 싫든, 남의 푸념을 다 받아줄 수 있는 위치. 동료 소설가가 그 숫자를 달성한 데 가슴을 열고 받아들여야지, 그걸 시샘하거나 시기해서는 큰 작가가 되지 못하는데,
이걸 어쩌나, 직설적으로 얘기할 수도 없고.
등단이라는 절차, 그 문턱을 넘어서는데 지독히 고생했고 마음을 태웠다. 매일신문의 신춘문예를 통과해서,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 문학지와 신춘문예에 최종심에 아홉 차례 올랐었다. 시를 쓰는 후배 시인들은 나를 두고 ‘최종심이 형’이라 부르며 놀리는 녀석도 있다.
소설이라고 하니, 거창하게 선글라스와 007가방, 홍콩이나 마카오의 가보지도 않은 호텔, 그런 게 떠오른다면 내 소설을 읽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독자가 아니다.
그런 거창한, 허구는 내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흔히 쓰이는 번역 투의 문장도 나는 동원하지 않는다.
누구처럼 집에서 글이 되지 않는다고 조용한 카페를 찾는 일도 없다.
그냥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나 쓴다. 소설은 이야기다. 그냥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나, 아무 이야기나 잡고.
일상에서 묻어나는 작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꾸려서 허구를 살짝 덧씌워 이야기를 만든다.
등단 절차를 거치던 해, 그해에 소설 열여섯 편을 써서 여덟 군데 신문사에 보냈다. 결과는 한 신문사에 당선이 되고 두 군데 신문에 최종심에 올랐었다. 그때 내 나이는 마흔일곱, 어디에서,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상당히 늦은 등단이었다.
등단이라니 생각난 건데, 매일신문은 대구에서 발행되는 일간지다.
어디 가서 매일신문 출신이라고 했더니 중앙지를 운운하는 작가를 본 적이 있다. 지방지라고 약간의 차이를 두고 중앙지 출신이라 안주하는 그 작가,
기가 막혔다.
중앙지? 거기에 무슨 우월성을 가져??
실로 희한한 작가 정신이다.
중앙지의 신문으로 등단한 작가가 새로 쓴 글을, 그 작가 이름으로는 응모할 수 없으니 다른 이름을 붙여서 지방지 신춘문예에 응모한다면 당선된다는 보장이 있나? 내가 등단하던 해, 상금이 가장 많은 곳이 매일신문이었다. 중앙지 삼사백인데 나는 팔백을 받았다.
그래! 중앙지 출신들, 글이나 참신하게 쓰며 절대로 데뷔작이 대표작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만들어라.
나는 대표작이 없다.
대표작을 일주일마다 갈아치운다. 가장 최근에 쓴 작품이 대표작이고, 마흔일곱에 지방지 출신인데, 오백 편이 넘었다. 오백 편 중에서 아무거나 꺼내다가 어디에 응모해도 본심에는 넉넉하게 올라갈 수준을 지닌 작품들이다. 내 데뷔작이 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건 결코 대표작이 아니다. 작품의 수준으로 따지면 그 데뷔작을 능가할 작품을 이번 주에도 썼다.
왜, 자꾸 말이 빗나가나?
데뷔작이 대표작으로 굳어버리는 소설가가 부지기수다.
그게 그 소설가의 한계,
한계를 보는 일은 언제나 서글프다.
그게 남의 한계라 할지라도.
등단하던 그해에 열여섯 편을 써서 여덟 군데 신문사에 보내서 등단 절차라는 걸 거쳤다고 누구에겐가 들려준 적이 있다, 우연히 만나 말을 하다 보니 그런 얘기까지 나왔다.
아마도 그 소설가는 경북 청송 어딘가에 산다고 했던 것 같다. 나이도 그렇지만, 등단으로 따지면 까마득한 선배 소설가였다. 지금은 소설의 호흡이 끊겨 쓰지 못한다는 그 소설가에게 계속 최종심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약이 올라서, 한 해에 열여섯 편을 써서 여덟 개의 신문사에 왕창 냈다고 하니, 그 늙은 소설가는 그해에 다 쓴 것이냐고 물었다.
당연하지.
당시에 한 번 어디에 내서 떨어진 작품은 쳐다보지 않았다. 다음에 새로 쓴 작품을 선보였다. 구차하게 한 번 떨어진 작품을 고치고, 또 다듬어서 다시 낸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었고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그 늙은 소설가는 김천의 어느 찻집에서 만났는데 어떻게 한 해에 열여섯 편, 소설을 열여섯 편을 쓰느냐고 되물으며 놀라워했다.
그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열여섯 편에 놀랄 일은 아니다.
한 해에 쉰여섯 편을 쓴 해도 있었다. 내게는 분명 그런 해가 있었다. 그게 코로나가 오기 전인데 미얀마에 있으면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그렇게 생산했다.
일 년에 몇 편을 썼나?
헤아려보는 작가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헤아리지 않아도 셈이 다가올 정도로 쓰는 게 보통이지만, 나라는 작가는 꼭 헤아려야 알 수가 있다. 다작을 한다는 말은 늘 듣고 살았지만, 내가 쓴 작품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소설이 완성되면 내가 개설한 인터넷 카페에 저장하는데 그게 날짜별로 분류되어 제목 앞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번호가 붙는다. 그 번호를 계산하니, 일 년에 소설 쉰여섯 편을 쓴 해도 있었다. 솔직히 그 숫자를 보고 그해에는 나도 적잖이 놀랐다.
일 년이 52주인데, 56편이면 일주일에 한 편을 넘게 썼다는 얘기가 아닌가?
소설은 이야기다.
가끔 소설이 이야기라는 것을 부정하는 소설가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의 부정을 부정한다. 중장비 임대업자, 내가 터를 잡은 구미에서, 나는 사람들 사이에 중장비 임대업자로 알려져 있다.
조수를 거치고 기사를 거쳐서 자수성가한 중기 임대업자.
거래를 수십 년 했는데 우연히 내가 소설가라는 걸 알게 된 거래처 사장이나 담당은 참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참 좋은 기술?
그 말을 듣는 소설가는 기분이 고약했다. 기술인가?
내 문학에 스승이자, 나를 이끌어주었으며, 또 내 소설의 애독자인 오리 할배는 내게 가끔 전화한다. 물론 한국에 있을 때 이야기지만, 전화해서 뜬금없이 묻는다.
영양의 그 영감 잘 있더냐?
전화 첫 마디에 그렇게 던지면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 영감이란 바로 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한참 더듬은 후에, 시인인 오리 할배는 내가 쓴 소설 어디쯤을 읽고 있다는 말을 그렇게 한다.
너는 참, 어쩔 수 없는 이야기꾼이구나.
내 소설을 읽다가 전화를 했다는 오리 할배의 말인데, 이야기꾼이라는 말이 그렇게 정감있게 들린다.
하여, 나는 소설이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오리 할배는 중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한 시인이다.
평생 시를 안고 살았다. 그 오리 할배가 이야기꾼이라고 했으니 나는 이야기꾼이 틀림없다.
소설은 분명 이야기다.
소설이 이야기임을 부정하는 작가, 그 소설가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생산할 수가 없다. 그냥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허구를 끌어다 그럴듯한 이야기로 꾸미는 게 소설이지.
결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학 정신?
개뿔
그런 건 나중에, 죽고 난 뒤에 남에게 평가받을 일이고.
생각하니, 그해에 쓴 쉰여섯 편의 소설 중에 장편도 하나 끼어 있었다. 지금은 그 숫자에 도전할 자신이 없다. 소설을 쓰는 분량으로만 따진다면 나는 거의 신의 경지였다.
소설가 한 사람이 평생 몇 편을 쓰고 죽을까?
작가마다 다르겠지만, 평균으로 따진다면, 얼마나 쓸까?
가끔은 그게 궁금한데 그런 통계가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숫자에 연연할 시간이 없다.
일을 마쳤으니 마음을 풀어 놓고 소설을 쓸 시간,
아니 이야기를 그려갈 시간.
에모는 내가 집에 들어오면 씻고 뭘 하는지 알고 있다. 이 층 거실에 꾸민 사무실 책상에서 한 참 글에 빠져 있으면 에모는 시키지 않았지만, 커피를 가지고 온다. 그걸로 목을 축이며 글을 쓰다가 늙은 잠을 구걸한다.
에모는 아들을 끼고 일 층에 살고 나는 이 층에 산다.
부르지 않으면, 여북해서 올라오는 일이 없는데 야심한 밤에 커피를 가지고 올라올 때는 예외다. 이 층에 불이 켜져 있으면 실내계단을 통해 일 층에서 아는 구조다. 야심한 밤에 이방인에게 커피를 가지고 올라오는 에모를 보면 애틋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청상
청상과부의 상은 서리상孀이었다
푸른데 내린 소리
가정부 에모는 서른여섯 살 곧 손자를 본다고 했다 그 소리를 어제서야 들었다 서른여섯에 할머니라 놀랄 일은 아니다 여기서는 미얀마 잣대를 들이대야 했다 아들이 데리고 온 칸테와 하나인 줄 알았는데 큰아들이 있었다는 게 놀라운 사실 아들이 다음 달에 결혼하기에 목돈이 필요했던 터라 실토한 게 분명했다 들어보니 열여덟 살짜리 아들은 이미 처녀와 동거하는 모양 지금 처녀의 배가 부르단다 에모는 열일곱에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둘째를 낳고 남편이 죽어 청상이 된 모양 아직 얼굴 어느 면에서는 소녀티가 나는데 할머니라 믿기지 않아 도대체 지금 몇 살이냐고 다시 물었더니 서른여섯 속으로 셈하니 아귀가 딱 맞았다 한국의 옆집 미용실 아가씨 서른여섯인데 아직 시집도 안 갔다 그렇게 비교하는 건 금물 여기서 측정 수단은 미얀마 잣대 오늘은 에모 표정에 콘크리트 단단히 굳었다 아마도 점심나절에 만났다는 사돈이 될 여자가 무리한 요구를 한 모양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혼사 전에는 그런 갈등이 존재하는 모양 초 청상과부 상의할 곳도 없는데 어쩌나 신부를 돈을 요구하는 대로 주고 데려와야 하는 나라인데 에모는 벌써 십 년 전에 과부 되었다 그냥 청상과부가 아니라 초 청상과부 이 예비 할머니에게 이방인 뭇 사내가 이름을 마구 불러도 정말 괜찮은 건가 에모는 물음표가 필요 없는 미얀마의 문장
청상과부에 서리가 들어간다?
에모가 서리가 있다?
서리를 안고 있는 그녀가 왜 커피를 가지고 올라올까?
왜? 무슨 이유로?
외간 남자의 밤을 생각해서 커피를 준비하는 여자,
그 외간 남자마저도 늙수그레한 이방인.
어쩌다 저런 신세가 되었을까? 커피를 가지고 올라오는 에모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뭐든 도와주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
돈이겠지. 마땅히 돈일 것이다. 이 땅에서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인간적으로 살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에모에게 월급을 왕창 주지 못한다.
왜?
왜 그럴까?
내 재산을 왕창 들어먹고 날라버린 놈 때문인가?
이런 질문에 붙들려 있을 때가 아니다.
전기가 있을 때, 문장을 다듬어야 했다.
요즘 들어 글을 전기로 쓴다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 때가 있다.
소설을 전기로 쓴다?
소설을 전기로 생산한다?
말을 하고 보니 어딘가 걸리는 부분이 있다. 한국에선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문제, 재봉틀을 돌려 양말을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전기로 소설을 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의 글쟁이들은 전기가 없어 보지 않아서 전기로 글을 쓴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전기가 없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
글을 쓰고 있으면 나를 벗을 수가 있다.
한 마디로 글을 쓰는 게 재미가 있다. 문장을 주물럭거리며, 죽은 문장에 호흡을 넣어 살려내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걸쭉하게 창작이라고 미화할 것까진 없다. 그냥 문장을 주물럭거리고 단어를 가지고 논다. 어려서부터 그게 재미가 있었는데 아직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니 소설가가 되었겠지만.
글을 쓰면 항상 소득이 생긴다.
쓰지 않으면 0이다.
모든 건 0의 선상에서 시작한다.
0에서 출발하며 쓰면 쓸수록 만족도를 비롯해 내 작품은 불어난다. 어떨 때는 그렇게 재미있게 가지고 논 글이 난데없이 0으로 돌아가는 날도 있지만, 그래서 그날 쓴 글을 저장할 때 상당히 조심한다.
조심한다고 하는데 0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내 문서에서 쓴 글을 노트북을 믿지 못해, USB에 저장한다고 하는 게, 내 문서의 글을 끌어다가 USB에 덮어씌우기를 해야 하는데 잠시 착각하면, 두 개의 문서를 바탕화면에 나열해놓고 USB의 글을 끌어다 내 문서에 덮어씌우기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 실수를 하면 그날 쓴 글은 0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실수하는 날엔 글쓰기를 지속할 수가 없다. 그날 쓴 글은 완전히 잊어버린다. 그걸 기억해서 다시 쓰겠다고 덤비면 엄청난 짜증을 동반하는 작업이 된다.
조심한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내게 종종 일어난다.
어쩌면 그날 쓴 글에 너무 깊숙이 빠져 있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런 일이 생기지 말았으면,
그런 생각을 하며 씻으러 들어간 사이. 에모는 이 층에 불을 훤하게 켜두고 에어컨을 돌려놓고 있었다.
에어컨을 켜두었지만, 전력이 약해서 에어컨은 돌아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집으로 들어오는 전력은 약해서 따로 전압기를 설치해야 하지만, 그걸 설치하면 옆집의 전기가 사정없이 약해진다.
이웃으로 공평하게 갈 전기를 억지로 끌어들이는 고약한 전압기.
다른 사람들은 돈이 있다고 그걸 설치하지만, 이웃을 생각해서 그걸 설치할 수가 없어 그냥 지내고 있다.
후딱 씻고 이 층에 꾸며놓은 사무실로 나왔다.
이 집은 내가 설계해서 내가 직접 지은 주택이다.
애초에는 이곳에 육 층짜리 아파트,
미얀마에서는 아파트라 부르지만, 한국의 연립 정도를 지으려고 했었다. 여기서 육 층 건물을 지으려면 YCDC라고 불리는, 억지로 해석하자면 양곤개발위원회. 그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 허가가 나오는 기간이 거의 일 년이다.
짧아야 일 년.
그것도 뒷돈이 엄청나게 들어갈 경우나 가능한 기한이다.
이곳에 땅을 사고, 당시에 매니저로 때쑤가 있을 적에 때쑤의 이름으로 등기를 옮기기도 전에 바로 건축 허가를 넣었다. 등기야 뒤에 옮겨도 무방하기에 기간을 줄이려고 그렇게 진행했다. 그때 만난 건축업자가 윈자모라는 자식인데, 멀쩡하게 생긴 놈이었다.
어떻게 그 자식을 알게 되었나, 기억이 희미하지만, 그에게 공사를 몽땅 도급으로 주기로 했다. 도급 계약을 하고 허가까지 윈자모에게 맡겼는데, 이 자식은 내가 모르는 돈이 필요했는지 제 친구 고리대금업자에게 제가 산 땅이라고 하고 그 땅문서를 잡히고 얼마간의 돈을 빌려 쓴 모양, 나에게는 YCDC에 들어가는, 영수증 없는 돈이라 하고 받아 가고,
생각하면 짜증이 나는 일이지만, 기초공사를 하고 중단된 땅에 내가 설계를 다시 그려 내가 직접 인부를 사서 단독 주택으로 완성한 집이다. 지금은 그 땅문서가 없어 옛날 집주인인 할머니 이름으로 된 땅이다.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이걸 팔려고 하면 분명히 바로 해야 할 땅이다. 기막힌 상황이 현실이다. 개구리? 지금 개구리가 되고 있는가? 나는 지금 개구리가 되고 있음이 분명해.
미얀마에서 개구리
이 동네는 원래 어처구니가 없다
두꺼비의 어처구니는 어디에 숨었을까
미얀마에 와서 개구리 되었다 그는 절대 입이 큰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자고 나니 입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나왔다 개구리는 아침마다 제가 뱉어놓은 울음소리를 주워 먹었다 제 갈 길을 찾는 데 개구리는 길치였다
꼭 개구리가 아니더라도 심한 충격을 받으면 그 망치 충격이 바로 뇌를 때리지 않았다 뇌를 감싸고 있는 물렁하고 촘촘한 그물망에 여과되어 좌뇌가 손상되지 않을 속도로 천천히 침투했다 입이 큰 개구리는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혀가 사라졌다 혀가 없는 개구리는 제 좌뇌부터 걱정했다 안개의 뿌연 입자가 개구리 눈을 찔렀다 개구리 눈은 그때 튀어나왔다 막막함을 벗어놓은 저녁은 개구리 뇌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두꺼비가 몰래 설치한 덫에 개구리 얇은 가죽 옆구리가 터졌다 옆구리로 쏟아진 제 창자를 입에 물고 두꺼비를 찾아다녔다 두꺼비는 개구리 집을 날름 삼키고 재두루미 날개를 달았다 두꺼비 날개는 뿌연 안개였다 안개 속에는 발자국이 없었다
부처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두꺼비의 소행 개구리는 담담했다 개구리 옆구리로 쏟아진 창자보다 두꺼비 앞날의 안위를 걱정했다 삼켜버린 개구리 집은 이번 생에 못 받으면 다음 생에 두꺼비가 되어 두꺼비집으로 받는다는 거 개구리는 알고 있었다 개구리는 담담함으로 다시 무장했다 옆구리로 삐져나온 창자가 햇빛에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었다 시뻘건 창자를 노리는 독수리 부리가 허공에 맴돌았다
창자가 삐져나온 개구리가 되어선 곤란하다.
코로나와 미얀마 쿠데타로 삼 년간 못 들어올 적에는 이 집과 더불어 이곳에 있는 재산을 다 잊고 있었다. 미얀마 재산, 0이라는 원점에 두었다.
0!
0이라는 선상은 참 마음이 편한 곳이다.
그 편안한 0에서 잠시 머물렀다. 미얀마에 있는 것은 완전히 포기했었다. 물 건너 있는 재산은 재산이 아니다. 그러나 쿠데타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길이 열려 들어오니 마음이 약간 달라졌다.
현황을 파악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때쑤를 다그쳐 바로 잡으려고 진행하고 있는데, 이 계집애는 네피도의 사립학교 교사로 들어갔으니 변호사와 어떻게 일을 진행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재산 문제로 변호사의 도움받은 적이 없는데 이 나라에서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사사건건 변호사가 필요한 일뿐이다.
환장하겠다.
환장할 일은 그뿐이 아니다.
시내에 짓던 건물이 두 개나 더 있다.
뱀이 짓던 건물이다.
짓기가 중단된 건물, 그걸 생각하면 피가 마르는 일인데 나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덤덤할까? 중단된 건물, 건축업자라는 이름의 뱀, 그 뱀이 기초공사를 마친 땅을 팔아먹고 날았는데, 나는 의외로 덤덤하다.
그 자식은 뱀이었다.
얼굴이 뱀 상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 뱀이라는 걸 느꼈고, 이 얼굴에, 투자해야 하나 잠시 갈등했었다. 뱀, 능구렁이가 아니라 독사, 잔챙이 뱀으로 보았고 입에 두 갈래 혀가 있을 것 같았다.
뱀!
뱀을 소개하고자, 투자를 권유하러 당시에 몽골까지 날아온 놈은 족제비였다. 족제비는 싱가포르에서 매독으로 죽었다. 그 죽은 자식은 족제비 상이었다. 이제 생각하니 뱀과 족제비가 우글거리는 굴에 내가 들어선 게 아닌가?
싱가포르에서 매독으로 죽은 게 오 년은 넘었다. 그 족제비가 뱀에게 얼마를 받아먹었는지는 모른다. 정확하지 않다. 매독으로 죽은 자식은 시체도 한국으로 가져가지 못했으니, 죽은 자식은 원망하지 않기로 하자.
두 갈래 혀
태어나서 뱀을 처음 보는 사람도 치를 떨며 소스라치게 놀란단다 까치독사를 처음 보는 사람도 그게 맹독성 까치독사라는 걸 단박에 안다고 했다
두 갈래 혀를 지닌 그는 취한 게 아니었다 그는 푸른 문장을 마구 삼키고 한 아름 칡넝쿨을 토해냈다 턱뼈가 발달하지 못한 그는 토해내다가 아귀가 찢어져 영산홍 꽃물이 입가에 비쳤다 토해낸 칡넝쿨에서 까치독사가 꿈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말의 뼈대처럼 독하게 생겼다 까치독사 낯선 분위기 휘황찬란한 거리 두 갈래 혀를 날름거리던 까치독사가 아스팔트 위에서 옆으로 삐딱하게 드러누웠다 그 위로 지나가는 무수한 바퀴 질주에 중독된 바퀴들 남의 명치를 칼끝으로 쑤시는 지독하고 야멸찬 언어의 내장이 터졌다 악의 축도 함께 무너졌다 맹독성이 공소시효를 지나고 있었다 아스팔트에 납작하게 깔려버린 뱀 등뼈도 턱뼈도 으깨어지고 기다란 가죽만 아스팔트에 눌어붙었는데 갑자기 살아서 돋아나는 독니들 아스팔트를 뚫고 공소시효를 무시하고 올라오는 무수한 이빨들 독을 뿜어내고 아스팔트에 흥건한 독은 오밤중이 되어서 뜬 달빛에 녹아 길바닥에 스며들었다
밤엔 무서리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다음날 새벽 스며든 독이 스며든 자리에 장미가 돋았다 장미 가시에도 독이 서려 있었다 누구를 물어버릴까 장미 가시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장미의 침샘에는 독이 남아 얼지 않고 질펀하게 입술을 적시는 녹은 문장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 그는 자신의 두 갈래 혀로 뱉어낸 말이 선량한 문법에 어긋나는 까치독사의 푸른 독에 중독된 언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육교 밑에 섰다
두 갈래 혀에 발목이 빠져 있다는 걸 알았지만 발을 빼낼 수 없었다 금욕의 땅으로 통하는 육교를 건너지 못하고 허공에서 날름거리는 두 갈래 보고 있었다
삼 년, 아니 35개월의 공백,
내 재산을 온전히 지키기엔 긴 세월이었다.
뱀을 잡아야 한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뱀을 잡는데, 이 나라의 조폭을 동원해야 마땅한지 아니면 경찰력을 사야 마땅할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경제적 출혈은 감수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몽땅 잃는 것보다는 낫다.
현지의 친구, 망망쪼는 조금 물러서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어떤 쪽이든, 결정하자고 했으니, 약간 물러선 자세로 관망하는 실정인데 마음이 편치 않다.
지금 미얀마 국내정세가 안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
쿠데타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말하기도 이른 상태.
밤이면 아직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도시.
망망쪼가 약간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말에도 군부의 이상 기류를 더 관찰하자는 뜻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어떻게 이 문제가 풀어지려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아직은 예측하기 힘든 상황. 여기까지 와서 이 정도가 된 상황이라도 확인한 것에 만족해야 하는가. 낮에는 이 도시도 예전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밤이면 어딘가 모르게 도시는 긴장한다.
어디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나고, 어디에서 언제 폭발이 일어나 몇 명이 죽었다는,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 소문.
지나다니다 보면 경찰서와 군부대 진입로, 길 한가운데 설치한 철조망.
이 시간에 이런 생각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버지께선 살아생전에 말씀하셨다.
얘야! 외국은 돈을 들고 놀러 가는 곳이지 돈을 벌러 가는 곳이 아니란다.
한창 중동 붐이 일어나고, 당시에 중장비 기사였던 내가 외국을 운운하자 아버지께선 나를 불러 앉혀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때 내 대답은 순종적이었는데, 기어이 아버지 말씀을 거슬러서 이런 사태에 다다르게 된 것이 아닐까? 아버지 말씀을 무시하면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
아버지 생각에 잠시 숙연해졌다.
쌩리대!
이 나라에 사는 한국인들이 가끔 하는 말이다. 쌩리대, 생리대, 한번 들으면 그렇게 생리대를 연상하기에 잘 잊지 않는 말인데, 쌕 니래가 정확한 발음이다.
쌩리대!
짜증이 난다는 말이다. 쌕은 마음을 뜻하는 말이고 니래는 더럽다는 말인데, 마음이 더러워서 짜증이다. 굳이 직역하자면, 그렇게 풀이가 된다.
괜히 잡생각에 불과한 집이 떠올라 은근한 짜증으로 연결되었다.
쌩리대
미얀마 들판의 풀이 납작 엎드렸다
풀을 다스리는 제초제 독성
엄혹했다 무서리 내려앉은 들녘
화약 냄새로 가득했다 들판의 키 작은
풀들은 뭇별을 보지 못했다
쌩리대는 미얀마 언어로
짜증 난다는 말
정말 쌩리대였다
미얀마 사람들은 상투를 모른다
설명해도 모르긴 마찬가지
그러나 총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안다
그게 참혹한 일이다
예전보다 정전이 잦아졌다
정전이 될 때마다
벽을 더듬었다
미얀마 벽 여전히 따끈했다
아래층 주방에서 가정부
에모가 새벽부터 부르던 콧노래가
절벽 아래 깊숙하게 떨어졌다
절벽 밑은 암흑이었다
미얀마를 대변하던 언어
순수 미소가 집 나갔다가
배불러 들어왔다
발칙한 골목 마주치는
표정은 모두
오늘은 대체로 흐림이었다
모든 풀 표정 없었다
무표정한 표정을 날카롭지 못한 더듬이로
더듬자니 마구 뿔이 돋는 짜증
쌩리대
쌩리대!
짜증이 인다고 생각하면서도 소설의 호흡은 끊기지 않았다.
쓰고 있는 소설은 무심사에 갔던 화자가 강바람을 맞으며 죽은 이모를 기억하는 대목을 스치고 있었다. 무심사를 스쳐 가는 강바람이 노트북 위에서 이는 기분이었다. 무심사는 대구의 끄트머리 창녕에 이르는 길, 낙동강 강가에 지은 신라 고찰이다. 언젠가 지나가다 한 번 들른 적이 있는데 그곳이 오늘 쓰는 소설의 무대였다.
빨리 자야 하는데, 내일 일도 장난이 아닐 터인데.
시계를 보니 열 시가 조금 넘었다.
거의 두 시간 동안 정신없이 쓰고 있었다. 소설은 내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순순히 끌려오고 있었다.
늦었지만, 오늘은 일이 힘들었으니, 좀 더 써야 하겠다.
끌고 나오는 글에 탄력도 약간 붙었고.
남들은 글을 쓰는 행위나 글을 쓰는 시간을 두고 작업이라고 하거나,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글쓰기를 휴식이라 여긴다. 전업 작가들이야, 쉬다가 글을 쓰려 책상 앞에 앉으니 당연히 작업이 되겠지만, 종일 공사 현장에서 뒹굴다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현장의 일을 벗어나 책상 앞에 앉았는데 그게 어째서 작업인가?
내게는 글을 쓰고 소설을 구상하는 일이 휴식일 따름이다.
어떤 사람은 글을 쓸 시간이 없다고 하며 어느 틈에 그렇게 쓰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그럴 땐 능청스레 대답한다.
바쁜 사람일수록 짬이 많다고.
종일 노는 사람은 짬이 없다. 그러나 바쁜 사람은 이 일을 하다가 저 일로 넘어가는 시간, 그 틈새가 있다. 그게 짬이다. 아무리 단단한 바위도 깨보면 짬이 있다. 석공들은 그걸 짬이라고 말한다. 그 짬을 노련한 석공들은 돌을 깨기 전에 읽고 정을 박아 망치를 두드린다.
노련한 석공은 아니지만, 내게 할애된 시간 중에서 짬은 찾아낼 수가 있다.
오늘은 일이 힘들었으니 휴식을 좀 진하게 해야겠다.
밤 열 시!
이 시간이면 시간의 정체성에 혼돈이 온다.
한국은 두 시간 반이 빠르기에 지금은 내일이다.
나는 오늘을 살고 있을까? 아니면 내일을 사는 걸까?
외국에서 그런 문제를 더듬으면 서글퍼진다. 소설에서 눈을 떼고 그걸 더듬는데 에모가 커피를 가지고 올라왔다.
이젠 에모가 청소하다가 물걸레를 노트북 자판 위에 얹어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청소하다가 잠깐 자리를 비우는 사이,
물걸레가 왜 하필이면 노트북 자판 위에 두는지.
그럴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청소하다가 노트북 자판 위에 물걸레를 얹어두지 말라고 사전에 주의사항을 일러주지 않은 내 잘못인가.
그날의 일은 잊어버리자.
이젠 애모가 아는 것 같다.
노트북이 내게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내가 노트북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어렴풋이 아는 것 같다.
칸테와는 자나?
야심한 밤에 커피를 들고 올라온 청상과부에게 던질 말이 궁했다.
칸테와
칸테와는 가정부 에모의 아들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땐 콧물에 아기 티가 줄줄 흘렀다 강 건너 에야와디에 녀석의 이모가 데리고 있었다 삼 년 만에 나왔더니 껑충 커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처음 에모를 고용할 적에 아이는 절대 데려오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는데 코로나와 더불어 쿠데타로 삼 년 동안 못 나왔는데 나에겐 상의도 없이 내 허락도 없이 칸테와는 제 엄마 방에서 둥지를 견고하게 틀었다 겪어 보니 성가시다고 생각할 일 아니었다 담배나 물심부름 충분히 시킬 수 있었다 덤으로 얻은 놈치고는 쓸 만했다 오늘 보니 머리가 텁수룩해 보는 내가 답답했다 손목 잡고 이발소에 끌고 왔다 이발소 의자에 앉은 녀석과 거울을 통해 눈 맞춘다 여덟 살 녀석과 어떻게 헤어질지 아직 모르지만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로 했다 녀석은 먼 훗날 기억하겠지 눈썹 진한 외국 아저씨가 손목을 잡고 끌고 와 이발을 시켜준 일 나는 이미 죽었거나 더 늙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겠지만 녀석의 기억 속에서 나는 무럭무럭 자라겠다 칸테와는 두 살 때 잃어서 아버지를 모르는 녀석 문득 아버지라는 뭔지는 모르지만 그런 냄새가 아련히 그리워 코를 훔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어쩌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머리 숙였다 내가 사라져도 녀석의 기억에서 무럭무럭 자랄 나를 위해 무엇을 더 선명하게 심어줄까 거울 속의 녀석 눈치를 긁었는지 또 눈웃음쳤다
칸테와는 자고 있다고 하고는 커피를 내려놓은 에모가 제 발자국을 거두어 서둘러 내려갔다.
에모는 이 야심한 밤에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안다.
싸예쎄야!
미얀마 말로 작가라는 말이다. 그 싸예쎄야의 작업에 가능하면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에모는 내가 한국에서 잘 나가는, 저명한 소설가로 알고 있다.
내가 낸 책이 엄청나게 팔리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개뿔
요즘 한국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대신해줄 재미있는 매체가 너무 많은 까닭이다.
옛날 시집의 최대 소비자였던 문학소녀가 다 사라졌다. 이젠 어디에도 시를 읽어주고 암송하며, 좋은 글귀를 따라서 필사를 하던, 문학소녀가 없다. 소설집을 내면 소설가만 읽고 시집을 내면 시인들만 읽는 시대.
어지간히 책이 팔리지 않는 모양이다.
가끔 네 소설을 어느 문학잡지에서 읽었다는 친구나 동료 소설가의 전화를 받으면, 얼마의 원고료를 받고 그 잡지에 글을 보냈느냐고 묻는다. 그렇게 물으면 옆구리가 찔린 기분이 든다. 내 소설을 원고료를 주고 청탁해서 실을 잡지는 없다.
원고료 대신에 내 글이 실려 출간된 잡지 몇 권을 받는 게 고작인 작가에게, 칭찬인지 핀잔인지 아리송한 말을 한다.
원고료도 없이 그따위 잡지에 그 좋은 글을 보내?
이게 칭찬이야? 타박이야? 그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고약하다. 그럼 어쩌나, 아무리 좋은 글이라 할지라도 발표를 해야지. 쓴 소설이 그렇게라도 발표하지 않으면, 내 카페에 올려놓고, 고작 열댓 명이 읽는 것으로 사장된다.
많이 써서 그런지 모르지만, 항상 발표할 지면이 부족하다. 아직, 원고 청탁을 받았는데 소설이 없다, 는 말을 하거나, 마감 기한을 넘겨본 일이 없다. 물론, 그 정도로 내 글을 싣지 못해 안달하는 잡지도 없지만.
어디 발표할 곳만 있으면, 바로 원고부터 넘겨준다. 가령, 내가 속한 지역 소설가협회에서 지역 간 교류를 한다며 다른 지역의 소설가협회와 소설 한 편을 교류해 그해 발표하기로 되었다는 소문이 들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우리 지역에서 사무국장이 그런 소식을 가지고 어느 작가를 추천할까, 물색하면 나는 바로 행동에 들어간다.
아, 거기에 내가 발표하겠다. 우리 지역, 소설가를 망신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런 메시지를 날리고 바로 원고를 보낸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채택되는 것인데, 그렇게 해도 세상에 빛을 못 보고 내 노트북에서 머물다 사장되는 작품이 있다.
가끔은 어느 잡지에서, 다른 잡지의 원고를 대신해서 청탁해주는 일도 있다. 재정이 열악하고, 어려운 잡지사가 생존하는 방법이기도 하겠지만, 가령, 대구의 어느 잡지에서 부산의 어느 잡지, 솔직히 재정이 열악해서 원고료가 없는데, 한 편을 보내 주실 수 있느냐고 문의가 들어온다. 그런 경우라면, 당연히 보내드려야지요. 그렇게 간단히 대답하고 기꺼이 보낸다.
그렇게 조심스레 묻는데 거절하면 사람이 아니지.
메일 주소를 알아서 보내는 시간은 전화를 받고 노트북이 앞에 있으면 오 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 잡지가 살아야 한다.
재정이 열악한데 원고를 구하기까지 힘이 든다면 누가 그런 잡지를 출간하겠는가? 그런 잡지사가 문을 닫으면 우리 문학인으로서, 독자로서 얼마나 큰 손해인가?
그렇게 원고를 보내고 연결되면 그 잡지에서 또 다른 잡지, 연결고리는 그렇게 이어진다.
어떤 잡지에서는 원고를 보내고 한참 뒤에 그럴듯한 청탁서를 만들어 메일로 보내오는 일도 있다. 그게 작가에 대한 예를 갖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보내는 작품이 많아 어느 잡지에 어느 작품을 실었는지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연결고리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쉽게 보내니 좋은 일도 생긴다.
작년에 서울의 어느 잡지에 그렇게 연결되어 원고를 보냈었다.
그걸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문학잡지의 이름을 딴 소설문학상에 추천되었다는 통보를 얼마 전에 받았다. 상금은 없지만, 수상 작품집으로 단행본을 출간한다는 아주 고마운 소식이었다.
그 수상 작품집에 실을 미발표작 원고를 석 달 내로 보내면 바로 편집해서 출간에 들어간다는 소식은 무명 작가인 내게 얼마나 달콤한가?
현장에서 벽돌을 내리다가, 그 소식을 접하고 벽돌이야 내리든, 말든, 잠시 숙소로 들어와 가장 최근에 쓴 작품을, 날짜순으로, 요구하는 편수만큼 내 문서에서 꺼내 새 폴더에 담아서 바로 날리고 현장에 다시 나갔다.
폴더를 날리기 전, 그 잡지사의 편집장과 통화에서 장난으로 요구했다.
이왕 책을 내는 거, 신작, 단편을 한 서른이나 쉰 편 정도 실으면 어떻겠냐고,
그 물음이 진담인 줄 알았는지, 편집장은 곤혹스러우며 사무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작가님! 그렇게 하면 제작비도 많이 들어갈 뿐 아니라, 역효과를 내서 책이 안 팔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날린 폴더가, 누가 무명 작가에게 한, 잔혹한 장난 전화가 아니라면 반드시 책이 되어 나올 것이다.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내가 두 달 남짓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책이 나올 수도 있겠다.
정말로 모진 놈의 장난 전화가 아니라면,
장난 전화, 장난으로 보낸 메일 주소가 아니길 빈다,
그렇게 원고료에 취약한 잡지에 메일로 원고를 날리다 보니 또 좋은 일이 있다. 어느 잡지의 편집장과 연결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 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가 아니고, 거기가 어디야? 그렇지 텍사스, 텍사스에 그렇게 많은 교민이 사는 줄을 몰랐다. 텍사스에서 한글이 그리운 교민을 위해 출간하는 문학잡지가 있는 모양인데, 그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지난번 어느 잡지에 실린 소설이 아주 좋아 그 글을 싣고 싶은데 허락해주실 수 있느냐고,
아니, 한번 발표한 작품을 어떻게 재수록합니까? 최근의 신작으로 보내드리죠.
그 잡지사에서도 원고료가 없는 모양이었다. 정기 구독자는 없고 그냥 교민사회에 배부하는 잡지였던 티가 역력했다. 그 편집장과는 메일로 의사를 주고받았는데 의외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래서 신작을 메일로 날리고 그 미국 교민사회에서 나온다는 잡지는 아직 받지 못했다. 그게 작년이었는데 아직 책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잡지사에서 또 연락이 왔다. 그 잡지에 실린 소설 중에서 수작은 그 텍사스에 출간되는, 교민이 아닌, 미국인을 상대로 하는 영문 문학지에 번역이 된 영어로 수록하는 제도가 있는데 그 잡지에 영문으로 번역되어 수록하는 걸 동의할 수 있느냐고.
이게 뭔 소리야? 내 소설이 영문으로 번역되어 미국인에게 읽히다니?
나는 반대했다.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 소설은 이미 한번 써먹은 작품이니, 재수록은 허락할 수가 없고 신작으로 그 매체를 통해 발표하겠다. 신작을 받을 메일 주소를 날려라.
그렇게 답장을 보냈더니, 이틀인가 지나니 미국 놈에게 메일이 말아왔다. 영어로 제목은 달았으니, 정확히 놈인지 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영어로 된 메일이니,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내용이야 알아서 무엇하리.
바로 소설 한 편과 사진, 프로필을 첨부해서 메일을 날렸다. 그 메일 끝에 덧붙였다.
시우 어게인!
그 편집장이라는 자식은 내 말이 무슨 뜻이지, 알아챘는지 모르겠다.
다음에 또 청탁하라는 말인데, 의미가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출판사나, 문학 잡지사의 재정이 열악하다.
왜 그럴까?
요즘 사람들이 책을 너무 안 읽어서 그렇겠지.
답은 그거다. 그 생각을 하면 입이 쓰다.
검증된 작가의 검증된 소설만 팔린다. 소설이나 시가 아니라도, 옛날 문학소녀가 가슴 짜릿하게 감수성을 음미할 매체는 넘쳐난다.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주물럭거리면 웹툰에서부터 그림이 있는 판타지까지 물이 넘쳐나니 강을 찾는 사람이 없다.
책이 전혀 팔리지 않는다. 남의 소설집을 읽는 사람은 소설가고, 시집을 사는 사람은 시인뿐인 세상이 되었다.
아, 생각하니 내 소설도 좀 팔린 책 있다.
몇 년 전에 출간한 단행본인데, 그게 아마도 코로나가 닥치기 전에 나온 책일 거다. 단편 소설 중에서 미얀마를 무대로 쓴 소설만 고라서 묶은 것인데.
미얀마 참 희한한 나라,
표제작이 그렇다. 제목이 그렇게 인쇄되어 조금 팔렸다.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이야기를 추슬러 허구로 엮었는데, 희한하게 인터넷에서 미얀마를 검색하면 그 소설집 제목이 뜨는 모양이었다. 지금도 미얀마를 검색하면 그 소설집이 뜨는지 모르겠지만, 그 제목 덕분인지, 조금 팔렸다.
미얀마 참 희한한 나라
미얀마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여행안내 책자가 아닌 그 책을 읽고 미얀마를 여행한 사람도 있다는 후기, 그런 후기가 카페나 블로그에 실려서 가끔 내 이름을 치고 들어가면 눈에 띄기도 했다.
그 책은 약간 팔렸지만, 무명 작가의 껍질을 벗지 못하고 있다.
뭐가 부족한지 안다.
내게 부족한 건 퇴고다. 어쩌면 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무명을 껍질을 부수고 나오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퇴고는 재미가 없다.
지루하다. 내가 쓴 이야기를 되짚어 반성하는 게 언제나 어색했다. 어떤 소설가는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백 번! 백 번 정도, 아니면 백 번이 넘게 퇴고하고 보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잠시 전율했다.
퇴고를 어떻게 그렇게 해?
그 여류소설가는 퇴고를 완벽하게 하지 않은 작품은 작품이라는 말을 붙일 수가 없고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퇴고는 천 번을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 소설가의 말이었는데, 나는 내가 쓴 작품을 두 번 퇴고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냥 써서 내 카페에 저장하면 그만이다. 노트북에 프린트가 연결되어 있지만, 작품을 마무리하고 그 작품을 프린트해서 다시 읽어보는 일이 드물다. 예전에는 그래도 프린트를 해서 서너 번은 다시 고쳐가며 읽었는데, 지금은 아예 프린트조차 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퇴고를 완벽하게 하지 않은 작품은 작품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쓴 소설은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부듯하게 생각하는 오백, 그건 숫자에 불과하고 정작 작품으로는 한 편도 없는 0일 수도 있다.
오백이 아니라 영!
그래, 이젠 그 숫자에 연연하지 말자. 그래 0이다.
그 문제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4. 얼굴의 뿌리
싸예쎄야,
미얀마 말로 글 선생님!
그렇게 퇴고를 등한시하는 내가 과연 씨예쎄야라는 호칭을 들어도 손색이 없는 진정한 작가인가?
잠시 자판에서 손을 떼고 나를 더듬었다.
싸예는 글이라는 말이다. 싸웁이 책이고 쎄야는 선생님이라는 말.
글과 선생님이 합성어가 되어 싸예쎄야, 글 선생님, 작가라는 말인데 이 나라에서는 쎄야, 선생님이라는 말을 아무 곳에나 붙인다. 밖에 나가면 쎄야가 발에 차이는 나라.
그래 사예쎄야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자부해야 조금이라도 더 쓰지.
쎄야
미얀마에서 선생님들 너무 많았다 쎄야는 선생님을 지칭하는 높임말 나도 가정부나 매니저에게 쎄야라고 불렸다 학교 선생님들은 당연히 쎄야고 철물점 주인아저씨도 쎄야다 심지어 택시 운전사도 카쎄야라고 불렀다 내가 짓던 집을 팔아먹고 날아버려다 걸린 놈도 쎄야 미얀마가 이런 나라라는 거 미얀마에는 발칙한 시간이 있다는 거 뼛속 깊이 가르쳐준 고마운 나의 선생님 존체 금안하심을 앙축한다
싸예쎄야라고 자부하는 작자, 머리가 굴러가는 대로 자판을 두드리며 머리는 엉뚱한 영역을 더듬고 있었다.
내가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있지?
가끔 자신에게 던지는 무서운 질문이다.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 아니라구?
또 일에 관한 생각이구나, 내가 왜 이러지? 잠시라도 잊고 싶은데.
이곳 사람들은 정말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왔다.
일을 시켜보니 그랬다. 언어를 익히고 직립보행을 하는 짐승. 정말 그렇다. 일을 시켜보고 실감했다. 두 가지 일을 못 한다는 뜻에서, 이 나라 놈들은 껌을 씹으며 계단을 내려가지 못한다는 말을 한국 교민들은 공공연히 하고 다닌다.
껌을 씹으며 계단을 내려가지 못한다?
그런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설마?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미얀마 사람들을 의심하기보다는 그런 말을 서슴없이 뱉은 위인들을 혐오했는데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 말은 절대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일을 시켜보니 그랬다. 사람의 머리가 아니다.
아웅 살린도 역시 사람이 아니다. 겪어 보니, 녀석은 사람이 아님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매니저라는 녀석이 사람이 아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럼 뭘 믿고 이 거창한 일을 여태 맡기고 있었는데?
내게 던지는 물음이었다.
집을 짓기로 했다.
돈을 받고 지어주는 집이 아니다. 집을 짓는 데는 아무 조건이 없다. 수익을 배제하고 짓는 집이다. 자투리 시간에 자투리 돈으로 집는 집. 그냥 짓는 집. 내가 없는 동안 내 재산을 팔아먹고 날아버린 놈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서 시작한 일.
그 일이 덫이 되었다. 내 부실한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 내 목줄을 죄고 있는 매니저 살린이라는 녀석의 집이다.
이 녀석 때문에 목이 조인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녀석의 집이 아니라 이 녀석의 장인어른 집이다.
녀석은 본디 이름이 아웅 살린인데 나는 줄여서 살린이라 부른다. 미얀마 이름에는 아웅이라는 말이 많이 들어간다. 아웅이란 성공이라는 미얀마 말. 그래서 남자 이름에 많이 들어간다. 여기에서 이름을 물으면 아웅이 들어가는 이름을 자주 듣게 된다. 한국 사람들 귀에 익숙한 이름, 아웅 산 장군이 그렇고 그의 딸 아웅 산 수지 여사가 그렇다.
한국 사람들은 아웅 산 장군의 딸이니, 아웅 산 수지, 아웅 산이 성으로 아는데 이 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性이 없는 나라다. 아웅 산 수지는 자신이 그 아버지. 아웅 산 장군의 딸임을 남들이 단박에 알게 만들려고 수지라는 이름 앞에 아웅 산을 뒤늦게 끌어다 붙인 것이다.
이 나라에는 성이 없다.
가끔 들어보면, 우 틴조, 우 묘민, 이렇게 부르면 우 라는 게 성으로 들리지만, 아니다, 존칭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미스터와 같은 말이다. 여자의 경우, 이름 앞에 마나 고가 들어가는데 역시 여사나 마님이라는 존칭이다. 어떤 녀석은 제 이름을 물었는데, 우 민쏘라고 하는 자식도 있다.
제 이름을 물었는데 존함을 붙이는 녀석.
성이 없기에 이 나라에서 중요한 문서를 작성하려면 꼭 아버지의 이름이 들어간다. 흐먓뽕디까라고 불리는 우리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신분증에는 분명히 아버지 이름이 들어간다. 아버지의 이름 말고 변별력을 주기 위해 얼굴에 있는 특이사항도 함께 기록된다. 그게 얼굴의 뿌리. 이 나라는 신분증이 얼굴의 뿌리로 작용하는 나라다.
얼굴의 뿌리
얼굴에 생긴 점이나 사마귀에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살아가는
민족이 있다
그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허연 실뿌리가 도드라졌다
점 하나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제 얼굴에 생긴 사마귀의 동아줄에 평생 결속된 사람들 콧등에 보기 흉한 점을 왜 달고 다니는지 여기는 점을 제거하는 의술이 없는지 미얀마 십 년이 다 되도록 몰랐다 살린은 오른쪽 귀밑에 까만 사마귀가 달려있다 거울이 아닌 제 눈으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사마귀가 살린의 뿌리 그걸 제거하거나 왼쪽으로 옮기면 범죄 행위다 제 얼굴에 생긴 흉터도 제 마음대로 제거할 수 없다 단 그게 시민증에 기재되었을 경우에 한하여 물론 시민증에는 사진이 버젓이 붙어 있다 사진을 못 믿어 얼굴의 특징을 주민등록증 하단에 기재하는 민족
이 족속은 왼쪽 귀밑에 검은 사마귀가 두 개 있음
이 자식은 주걱턱 위 오른쪽에 점이 하나 있음
시민증에 적히는 문구 엄지손가락 지장은 시민증 어디에도 없다 중요한 문서에는 왼쪽 엄지손가락 자장을 찍는다. 좌무인 대신 신분증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평생 따라다녔다 성이 없는 족속에게 명확하게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필수 아버지의 견고한 가지에서 뻗어나 얼굴에 박힌 점 하나에 깊이 뿌리내린 미얀마 얼굴의 굵은 뿌리
신분증뿐만이 아니라, 큰 문서도 그렇고 은행에서 통장을 하나 개설해도 분명히 아버지의 이름이 들어간다.
이 나라에 와서 문서를 작성하며 아버지의 존함을 수도 없이 적었다.
돌아가신 지 삼십 년이 넘는 한국의 아버지 존함이 이 나라에서 왜 필요한지,
하여 나는 그런 문서를 적을 때 아버지 존함을 미스터리라고 적고 내 이름도 역시 미스터리라고 적어 버린다.
아무튼, 아웅 살린이라는 녀석을 데리고, 집을 짓는 과정에서 내가 모르고 있었던 이 나라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돌출했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들이었고 아웅 살린이라는 녀석도 좀 연구해야겠다. 어딘가 모르게 약하다.
이 녀석을 데리고, 이걸 어떻게 헤쳐 나가지?
잠이 오지 않았다. 늙은 나라 침대에서 잠을 구걸하고 있는데 카톡이 날아왔다.
이 늦은 시간에, 뭐야?
핸드폰은 침대 머리에 던져두었다. 핸드폰을 당겨 카톡을 보니 아들 녀석이었다. 내일의 배차 상황을 보고하는 형식으로 적어놓고 아래는 언제 상견례를 하기로 날을 잡았다는 소식이었다.
상견례?
눈이 번쩍 띄었다.
잘된 일이다. 적어놓은 날짜를 보니 두어 달 남았는데, 내가 한국으로 들어가는 바로 그 주 토요일이었다. 내가 들어가는 걸 염두에 두고 잡은 날인 듯했다.
지난번, 해를 넘기지 말고 날을 잡자고 했는데 그렇게 고집을 피우던 녀석이 맘이 변했나? 녀석은 이제 갓 서른이다. 이른 나이는 아니지만, 늦은 나이도 아니다. 그러나 처녀 쪽이 문제였다.
녀석과 초등학교 동기니, 처녀로는 나이가 적은 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처녀의 아버지는 들어보니 나보다 거의 열 살이 더하다. 그런데 장녀다.
그건 들어서 알고 있는 사항이다. 사귄 지도 벌써 사 년이 넘었으니 더 망설일 이유가 없는데 녀석은 계속 속을 태웠다. 물론 그쪽에서 더 애를 태웠겠지만,
저쪽에서 얼마나 기다리겠냐, 빨리 상견례라도 하자고 했거늘, 녀석은 내년에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눈치를 보니 녀석이 명절마다 인사를 가는 형편이니, 미룰 이유가 전혀 없는데. 말을 듣지 않아 답답했는데 뭔가 뚫리는 기분이었다.
상견례!
뭔가 무거웠던 한 꺼풀을 벗은 기분.
지난번에 나왔다가 들어가서 내 이름으로 된 모든 중장비를 아들 녀석의 이름으로 다 이전했다. 차가 여러 대니 등록비와 취득세가 만만찮았으나 서둘러 그렇게 했다. 짐을 벗는 일이고, 앞으로 미얀마 일에 전력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녀석은 잘난 아비 덕에 열 대가 넘는 중장비의 차주가 되었다.
중장비를 다 넘기고 사업자를 완전히 폐지하고 들어왔으니 세금계산서를 끊는다고 날아오는 비번은 없을 것이 또 국제전화를 해서 그 번호를 불러달라는 일도 없어졌다.
녀석은 운이 좋은 편이다.
굴착기 조종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인데 그 끄트머리를 잡고 편승한 녀석이다.
지금도 학원에 다녀 굴착기 면허를 따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실전에서 일을 위한 기술을 배우기는 매우 어려워졌다. 아마도 녀석이 그렇게 실전을 익힌 마지막 세대. 다른 지역은 몰라도, 내가 굴착기로 밥벌이를 하는 구미에서는 실전 기술을 이제는 배울 수 없다.
구미는 전자 산업도시라 작은 공장보다 대기업이 많다.
중장비 일은 거의 그런 기업을 상대로 한다. 그런 회사는 다음날 굴착기가 들어가게 되면 사전에 서류를 먼저 보내고 안전 담당이 보험 가입증이 첨부된 서류를 확인하고 나서야, 굴착기를 가지고 들어갈 기사의 서류를 요청한다.
그 서류는, 다음날 중장비가 들어가면서 기사가 가지고 가는데 출입을 허용하는 사람은 오로지 기사 한 명이다.
현장에 들어가면 건강 상태까지 확인하고 안전교육을 시킨 다음에 작업한다.
그런 마당이니 조수는 언감생심이다. 조수라고 따라가면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는다. 차주라고 하더라도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데가 태반이다. 만약 중장비가 고장이 나서 급하게 부품이 필요하면 전화로 연락해 그 회사의 경비실에서 건네주는 게 고작이다.
녀석은 그렇게 문턱이 높아지기 직전에 실전의 기술을 익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들어가기 전, 잠시 짬을 이용해 주기장에서 일을 나가지 않는 중장비로 겨우 작동법을 익히고 면허를 아주 쉽게 취득했다. 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물론, 차주의 아들이 아니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
그렇게 배운 중장비를 대학에 다니면서도 짬만 있으면 만지다가 군에 갔는데 주특기가 중장비 조종이었다. 군에서 배워서 나온다고 해도 옳은 기사가 아니다. 현장에 가면 일이 서툴다고 당장 쫓겨날 정도의 실력이, 고작이다.
제대하고 복학을 포기한 놈을 당시에 내가 데리고 있던 기사 중, 최고 사령탑, 황 반장의 조수로 딸려 보냈다. 그렇게 육칠 개월 따라다니다가, 장비를 한 대 맡았는데, 당시에 사무실에서 배차를 담당하던 여동생과 내가, 다음날 작업의 난이도를 고려해서 쉬운 현장으로 배차를 하고 점차 난해한 작업으로 올렸던 게 오 년이다.
중장비, 특히 굴착기는 거의 육칠 년은 해야 현장에서 마다하지 않는다. 중장비 차주가 되려면 그런 기사보다 기능적인 면에서 우월해야 기사를 거느릴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따진다면 녀석은 운이 좋고 시기적으로 잘 맞았다. 어쨌거나 상견례를 하기 했다니 마음이 놓인다.
나는 미얀마에 있고, 녀석이 혼자 거느리고 갈 기사가 여럿이다. 전부가 저보다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기사들이다. 그걸 내가 뒤에서 조종만 하고 있다. 부딪히며, 배워야 한다. 말로는 배우지 못한다. 그게 앞으로의 일이다.
이제 사무실에는 여동생도 없다.
중기업계에서 이십삼 년, 여동생이 중장비 업계에 몸담았던 시간이다. 내가 해외로 들락거려도 혼자서 알아서 하던 여동생이 이젠 없다.
실전에서 실력이 늘면 사무실에서 목소리가 커진다.
녀석의 목소리가 사무실에서 제법 커지자, 여동생은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제 전공을 살려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차려서 나갔다. 사무실에서 녀석에게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답답하면 카톡이나 보이스톡으로 연락해 내게 묻는 게 고작이다.
처음엔 날마다 연락이 오더니, 이젠 좀 뜸해졌다. 혼자 꾸려나가는 법을 체득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지간한 일은 혼자서 처리하는데, 궁금해서 그게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알아서 한단다.
그런데 지금이 몇 시야?
이 자식이 여태 안 자고 있나? 여기에 이 시간이면 한국은 새벽 두 시가 넘었을 터인데?
도대체 안 자고 뭐하는 거야, 그 버릇은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날아온 카톡 뒤에 잘 알았다고 간단하게 토를 달고 누웠다.
녀석은 제대로 꾸려가는데 여기에 있는 이 녀석이 문제다.
아웅 살린,
이 녀석은 한국에 근로자로 오 년을 다녀온 놈인데 한국어를 제법 했다. 말에 비해서 한글은 상당히 수준이 높았고. 웬만한 글은 다 아는 놈이었다. 이 자식은 발음이 어눌한 전화 통화보다는 한글로 카톡을 주고받는 것이 더 수월할 정도로 한글을 야물게 익히고 있었다.
아웅 살린.
코로나가 닥치기 직전에 길가 버스 정류장에서 주운 녀석이다. 그렇다. 나는 녀석을 주운 것이다.
그렇게 주운 녀석이 왜 내 목을 죌까?
명아주 지팡이
지팡이는 자고로 가벼워야 제 노릇 했다 지팡이는 무조건 단단해야 제 자리 지켰다 그러기에 옛 노인들 명아주 지팡이 머리맡에 놓고 잠이 들곤 했다 아이 하나 주웠다 이 자식이 명아주 지팡이 될 줄 몰랐다 버스를 기다리다 길에서 주운 녀석 어리숙한 인도계 검둥이 한국말 조금 하기에 물었더니 한국서 오 년간 일했단다
좀 벌었겠네
쬐끔만요
그 대답은 어느 나라 어느 녀석에게나 똑같다 녀석을 불러 잔심부름 시키니 곧잘 물고 오는 듣기 좋은 소리 코로나로 한국으로 돌아갈 적에 집 지켜주면 푼돈이나 주겠노라고 뒤통수에 다급하게 뱉어놓고 물을 건넜다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미얀마 쿠데타로 갔던 길 되짚는데 딱 삼 년 까맣게 잊고 돌아와서 보니 놀랍게도 녀석은 짓다가 중단된 집에 고양이 깃털 세우고 있었지 콘크리트 뼈대만 세워진 흉물스런 집 날개로 오롯이 품고 있었지 녀석의 품에서 집은 깨지지 않는 둥근 알 그동안 주지 못한 푼돈을 셈해 목돈 주고 정식 매니저로 채용 인도계 검둥이 녀석은 이제 내 명아주 지팡이 가볍고 단단한
미얀마 지팡이
삐딱한 땅에서 휘어진 허리
이젠 녀석을 짚고
꼿꼿이 서서 바로 걸어야 했다
녀석을 명아주 지팡이로 생각했다.
분명히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명아주 지팡이로 생각했는데 같이 일을 해보니 아니었다.
명아주 지팡이라는 그 믿음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금이 가고 있었다.
금?
금은 녀석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일은 분명히 아니다.
너무 관대하게 평가한 것이 분명했다. 나이는 마흔하나, 한국어로 정확히 마흔하나를 정확히 구사하는 녀석. 그러나 생각하는 것은 일차원적이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어떻게 된 녀석인지, 저보다 조금 높은 놈, 힘이 있는 놈에게는 쩔쩔맨다. 그러나 저보다 약한 놈, 이길 수 있는 놈에게는 과분한 힘이나 언어를 휘두른다. 식당에라도 가서 어린 종업원이 뭘 잘못하면 가차 없이 날리는 고함과 욕지거리.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재가 뭘 잘못했어? 불쌍해 보이잖아? 그러지 마라.
누차 이야기를 했지만, 되지 않는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에 인연을 맺은 녀석이라 같이 어려운 일을 해보지 않았다.
녀석의 능력이나 수준을 나는 모르고 명아주 지팡이로 여겼다. 코로나가 닥쳐 미얀마 골목마다 소독한답시고 횟가루를 뽀얗게 뿌릴 적에 급하게 특별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길이 다시 열리고 두 번째 나온 참이다.
한국에서 삼 년, 정확히 35개월이 넘도록 미얀마로 오는 길이 묶였었다.
철저한 차단이었다.
무비자 조약이 체결된 나라였는데, 외국인의 출입을 싫어하는 군부에서 그 약속을 깨버렸다. 비자가 필요했다. 신청했지만, 번번이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인천에서 미얀마로 오는 직항 비행기도 운항이 중단되었다.
길이 없었다.
지난겨울에 길이 트여 겨우 건너왔을 적에 관광비자로 4주, 그러니까 최대로 머물 수 있는 기한을 다 채우고 한국으로 건너갔다.
지난번에 나오니 천지가 바뀌었다.
삼 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 전화가 중단되었다. 그 번호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여기 전화는 선불카드를 사서 요금을 주입하는 방식이고, 유심을 사서 번호를 부여받는 방식인데, 옛날 번호는 이미 살릴 수가 없었다.
영원히 죽은 번호였다.
쿠데타 이후, 두드러지게 변한 것은 쿠데타 이후 달러가 폭등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반인권적인 국가라고 경제적으로 제재를 가했으니 달러가 뚜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건너오면서 달러 가격을 모르고 왔는데, 와서 파악하고 깜짝 놀랐다. 내 재산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반 토막이 되어 있었다. 미얀마 가격으로는 변한 게 없는데 달러로 환산하니 그랬다.
반 토막?
이거? 기회가 될 수도 있겠는데?
밍글라바
밍글라바 미얀마 말로 안녕이라는 인사말 밍글라바의 딱 바라진 골반 수식할 문장을 구해야 했다 전반전에서 코피 났다 어설프게 엮은 문장 쉽사리 삭았다 얼기설기한 미얀마 문장이었지만 메기는 언어 속 은밀한 구멍 찾지 못했다 물속에서 울리는 종소리 시작 알렸다 후반전은 식인 상어의 심장 밑에 폭탄 매달기 물밑 가라앉은 녹슨 깡통 흉하게 눈 찔렀다 바닷속 경기장 비둘기 떼 짠물 속을 맴돌며 응원했다 비굴한 전반전 부패한 햇빛 유치하고 치사했다 편서풍은 드러나도록 편파적이었고 조류 역방향으로 흘렀다 고래는 공정하지 못했고 물 위에 떠도는 난해한 질문은 너무 많았다
전반전 스코어는 잊어버리자
문장에 날개 돋아날 때 메기 싱싱한 지느러미에도 힘 실렸다 날개 달린 메기가 있다 밍글라바 바다에 날개 단 메기 몸 풀었다 상투 속에서 메기 지느러미 근육 단단하게 키웠다 동남풍이 불고 있다 바람의 길을 이제는 알고 있다 전반전을 반전의 전설로 남겨야 했다 식인 상어의 심장 위치 이미 파악했다 메기는 호흡 고르며 밍글라바의 자모 정렬했다 밍글라바 촘촘한 한글로 유려한 문체 구사하고 있었다
달러 가격을 확인하고, 후반전을 꿈꾸었다.
이 땅에서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어쩌면 암팡진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지난번에 나와서 한 일이 있다면 급하게 다시 땅을 하나 샀다는 것.
어쩌면 밍글라바를 정말 한글로 그리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밍글라바는 분명히 미얀마 언어로 써야 누구든 읽는다.
그걸 한글로 쓰려고 했었다.
감히, 바람의 길도 안다고 생각했었다.
달러가 폭등을 했으니 이제는 한국에서 얼마를 가져오면 여기서 배가 된다는 점, 이 기막힌 현실이 나를 유혹했다. 여기에 있는 것을 파악해보니, 달러가 뛰었기에 내 재산은 반토막이 되었다. 계산해보니 그랬다. 미얀마 돈으로 팔아서 달러를 바꾸어야 하는 형편이니 반 토막이 되었다는 것,
그렇다면 당연히 물타기를 해야지.
물타기를 한다는 기분으로 한국에서 환전상 계좌로 송금을 해주고 여기서 미얀마 돈을 받아 땅을 계약하고 들어간 것이다.
폰뱅킹, 은행 계좌의 앱이 깔린 핸드폰이 수중에 있다.
마음을 먹었다.
이 두 가지 사항만으로, 이 나라의 어지간한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할 금액이 단 몇 시간 만에 날아왔다.
아직 은행을 믿지 않고 금고 문화가 발달한 이 나라 사람들이 집에 있는 금고에 다 넣지 못할 돈이었다. 아무리 금고 문화가 발달했어도, 그 돈을 다 넣을 금고를 집에 비치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계약은 급한 물살을 탔다. 집에서 가까운 곳의 부동산 소개업, 서너 명에게 연락했더니, 종일 오토바이를 타고 땅을 보러 다녀야 했다. 부동산 업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연결하고 그렇게 연결된 하나가 또 다른 하나를 연결하고, 이 땅을 보고 돌아가서 저 땅과 가격을 보고 다시 돌ㅏ 다른 땅을 보고, 사흘을 다녔는데, 이거디 싶은 땅을 만났다.
우선 시장, 학교, 버스 정류소, 주위 환경, 이런 요소들이 땅값을 결정하는 데 모든 조건이 충족되는 땅이었다. 가격도 거품이 없는 듯했다.
이 정도면 되겠다 싶어 망망쪼를 건너오라고 했다. 특히나 그곳은 매오클라에서도 육 층까지 허가가 나는 지역이었다. 그 땅에 육 층으로 올려서 열두 세대 연립을 짓겠다고 생각이었다.
하도 여러 번 짓고 분양을 해서 그 지역이면 분양가가 얼마고, 건축비가 얼마가 들어가니 얼마의 이윤을 챙기겠다는 예상은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더라도 어렴풋이 감이 잡힌다.
망망쪼는 일을 마치고 저녁에 도착했는데, 땅을 보더니, 엄지를 세웠다.
그날 저녁에 폰뱅킹이 한도가 될 때까지 송금했고, 아침에 일어나 다시 송금했고, 낮부터 현금을 받기 시작했다. 두 군데 환전상을 통했으니 집에서 돈을 받았는데 쌀 포대에 담은 돈이 거실 가득했다.
엄청난 돈을 물타기기라는 이름으로 건너왔다. 덜컥, 돈에 치여 죽을 만큼 들어온 것이다. 단지. 후반전이라 이름으로.
덜컥, 때 묻은 지폐
이 나라에는 오만 짯짜리 지폐가 없다 고액권이 만 짯 그 돈은 나오는 대로 부자들의 금고 안으로 들어가 쌓였다 은행보다는 금고를 더 믿는 나라 오천 짯짜리도 귀하기는 마찬가지 오천 짯짜리로 바꾸려면 당연히 웃돈을 줘야 하는 나라 서민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건 거의 천 짯짜리 8,400만 짯을 천 짯짜리 지폐로 챙기면 얼마나 될까 여태 몰랐다 백만 짯짜리 다발로 야물게 묶어서 여행용 큰 가방으로 세 개에 꽉 차서 지퍼를 억지로 채울 정도 가방이 워낙 커서 혼자 들기에 버거웠다 좀도둑이 설친다는데 강탈 걱정 없었다 어제는 이놈을 은행에 넣으려고 낑낑거리며 화물차를 불러 짐칸에 실었다 은행 앞에서 문지기의 도움으로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데까지는 성공 그런데 이 돈을 다 헤아리는 것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답답했다 먼저 지폐 식별기에서 세고 다시 계수기로 다시 계수기로 헤아려 확인하는데 저걸 언제 다 세나 답답한 마음에 실금이 갔다 미얀마 은행 직원들은 하도 해보아서 표정은 덤덤했고 손놀림은 빨랐다 두 녀석이 계수기를 돌리고 한 녀석이 묶는 걸 보니 괜히 이는 짜증 돈뭉치만 확인하고 뒤에 의자에 앉아 있으니 지점장으로 보이는 인도계 검둥이가 나와서 어깨를 두드렸다 돈 헤아리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는 친절하면서 귀찮은 설명 확인하지 않으면 돈 세기를 중단할 기세 창구 앞에 서서 보고 있으니 한 장 한 장 내가 살아온 날이 계수기를 통해 검수되고 있었다 때에 절은 지폐가 된 내 지난날은 계수기를 거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덜컥 걸리는 지폐 한 장 그래 내 지난날도 저렇게 걸리던 날이 있었지 잘 넘어간 삶이란 어느 놈에게도 없는 법이지 나도 한때 저렇게 걸려 절망하고 방황했었지 그런 호사스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었다 덜컥 걸린 지폐는 위조지폐였다 천 짯짜리를 위조하다니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내 생에서 덜컥 걸리는 날이 있었지만 위조는 아니었다 억울했다 여직원이 위조지폐를 형광등 불빛에 비추어 보이며 흰 바탕에 있어야 할 코끼리 그림이 없다는 설명 위조임을 인정했다 은행에서 내미는 서류 위조지폐가 증빙자료로 첨부된 복잡한 진술서가 눈앞에 펼쳐졌다 단박에 내가 범죄자로 둔갑했다 돌아가신 지 삼십 년이 넘는 아버지의 존함을 영문으로 쓰고 사인을 했다 이 나라는 성이 없기에 뭐든지 증명하려먼 반드시 아버지의 이름을 기록해야 하는 이상한 나라 84.000장이나 되는 지폐에서 나온 한 장의 위조지폐 나는 겨우 22,000일을 조금 넘게 살았다 아무래도 30,000일이 넘도록 기억이 온전하지 못할 터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턱 걸리는 위조지폐는 만나지 않아야 했다 그 처절하고 간곡한 바람을 품고 때에 절은 천 짯짜리 위조지폐처럼 구겨져 이국에서 잠들었다 내 통장에 찍힌 액수는 8,400만 짯에서 딱 천 짯이 빠지는 금액
관광비자,
최대 4주.
한국으로 돌아갈 비자 기한이 뒷생각을 하지 않은 계약을 재촉한 것이다.
땅을 계약한 집을 보니 미얀마식 목조 주택인데 아직 나무가 쓸만했다. 여기는 집을 뜯으면 나무를 버리지 않는다. 중고 목재 가게가 버젓이 영업하고 있다. 그런 곳에 판다고 하고 얼마에 계약하고 돈을 받으면 그 중고 목재상에서 철거를 책임지고 하고 집을 뜯어가는 시스템이다.
그 나무로 아웅 살린의 집을 지어주겠다고 마음을 먹고 들어갔다.
집을 지어주겠다?
아무나 섣불리 할 수 있는 약속이 아닌 게 분명하지만 나는 나에게 약속했다.
그런데 이번에 나와서 파악하니 그 집을 계약한 게 조금 뒤틀어졌다.
계약한 땅은 옛날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는데 지주인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그 자식들이 일곱이었다. 그 땅을 이전하려면 그 자식들의 동의를 다 받고, 이 땅을 이 사람에게 파는데 이의가 있는 사람은 없는가, 신문에 공고를 세 차례나 내고 진행해야 하는데, 변호사, 이 나라에는 법무사가 없다. 값이 싼 법무사에게 맡길 일을 굳이 변호사에게 맡겨야 한다. 변호사를 선임하여 정부청사가 있는 네피도까지 올라가서 처리해야 한단다.
그런데,
자식 일곱 중에서 하나가 연락 두절이고 사인을 받아야 할 자식 중에서 하나가 죽었으니, 죽은 자의 아들과 딸의 사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 자식이 되는 놈은 태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 경비도 경비지만, 기간이 이전하는데, 빨라도 칠팔 개월이 소요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명의를 이전하는데, 거의 일 년이 걸리고 또 건축 허가를 넣으면 또 일 년이 걸린다?
그 일은 하지 않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계약 무효를 더듬고 있을 때, 설상가상 아내의 전화가 빗발쳤다. 내가 미얀마로 건너오고 아내가 무슨 일로 은행에 갔다가 통장에서 빠져나간 뭉칫돈의 흔적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이곳에, 다시 땅을 계약했다는 걸 아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게 들통이 난 것이다. 그 정도의 큰돈이라면 당연히 상의하고 빠져나갔을 돈인데,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름으로 송금된 흔적. 그 흔적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것이다.
아내에게서 밤마다 보이스톡으로 전화가 빗발쳤다.
미얀마 때문에 이렇게 기울어졌는데 재투자는 절대 안 된다. 당신 나이를 생각해라. 지금 걸쳐놓은 일만 처리하고 들어와도 이른 나이가 아니다.
그런 요지의 전화에 나는 갈등했다.
줄기차게 걸려 오는 전화에 매번 참조할 터이니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하고 갈등하는 중에 만나 한국인, 김 선생님에게 미얀마에 지금 매물과 가격은 성립되어 있는데 거래가 전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이렇게 땅을 계약해놓고 육 층으로 연립주택을 지어 분양하고 싶다는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미 미얀마에서 나는 그런 건물을 아홉이나 지었다. 다 분양이 되고 두 개 남은 것이 이상하게 꼬여 중단된 상태라는 걸 그분은 알고 있었다.
그분은 조심스럽게 권유했다. 포기하라고. 한국 회사가 지은 대단지 아파트가 분양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며, 가격을 사정없이 후려쳐서 낮추었지만, 분양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말.
그분이 그렇다면 그게 정답이다.
거의 일주일 갈등했던 문제는 계약 취소라는 이름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 양반은 코로나에도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버틴 양반이라 이곳의 사정에 밝다.
더 갈등할 게 없었다.
명의 이전 기간을 트집 잡아, 계약금 일부를 돌려받고 계약을 무효로 만들기는 쉬웠다. 그 양반 말대로 지금 계약금 일부가 손해나는 것은 나중에 큰돈에 물리는 것에 비교하고 아까워하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고 치부했다.
그래 아까워하지 말자.
그렇게 무효로 만들고 돌아보니 아웅 살린의 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목재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목재가 사라졌다?
중고 목재가 사라졌으니 집을 지을 수가 없다.
지난번에 살만한 땅을 찾아다니다가 아웅 살린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의 집에 처음으로 간 게 그날이었다.
미얀마에 그렇게 오래 있었으면서, 양곤에 그런 집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웅 살린은 매오클라의 도로 건너편 철로 건널목 부근에 산다. 그건 예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제 아내와 아들 하나, 그리고 장모와 장인어른 다섯 식구가 산다. 아직 모계의 흔적이 남은 나라라 장인과 산다는 게 예사로운 나라다,
다섯 식구의 집을 들여다보니, 이건 집이 아니었다.
그 집을 철거하는데 인부 둘이서 두 시간 남짓에 끝났다면 얼마나 허술했는지 감이 잡히리라.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집인데 중심이 되는 기둥의 뿌리가 썩어 삐딱하게 기울었고, 듬성듬성한 마룻장 밑에 오물과, 멀건 대낮에 뛰어다니는 쥐를 보고 있으니,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건축업자인 내가 커피 한잔 얻어 마시기에 상당히 부담되는 집이었다. 아웅 살린, 이 자식은 한국에 가서 오 년간 돈을, 쬐끔, 그래 쬐끔 벌었다고 했는데 집을 다시 짓지 않고 뭘 했는지 모르겠다.
커피가 넘어가지 않았다.
내가 이 시대, 진정한 건축업자인가?
돈을 위해서 집을 짓는 것인가? 사람을 위해 집을 짓는 것인가?
그런 물음을 나에게 던졌다. 내가 나에게 질문을 던진 게 아니라 그 집의 허공에서 그런 질문이 내려온 듯했다.
저쪽에 계약한 땅에 건축 허가가 나오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저쪽 집을 뜯은 목재를 재활용해서 짓겠다. 저쪽에 목재가 있다.
꼭 지어주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그 저쪽이 계약 무효로 날아갔으니,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에는 너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집을 못 짓는다?
허? 큰일이네!
5. 내부의 껍질
내부에 두꺼운 벽을 지니고 있다.
두꺼운 벽은 내 내부에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엇을 받아들이는 게 이렇게 어려울 수가. 어떤 사실이나 변화가 생기면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아마도 내부에 있는 벽이나, 또 하나의 껍질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모양이다. 이 나라에 와서 공무원들의 습성을 받아들이고 수긍하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그게 여과되어 그러려니, 하기까지 내부의 진통을 느껴야 했다. 아무래도 나는 내부에 또 하나의 껍질을 지닌 모양이다.
미얀마 새벽
설익어 타원형이 된 해는
늘 서쪽 지평선 너머에서
한 모금 물로 올라와
남쪽으로 굴러갔다
비둘기의 새벽은 늘 면도날
골목 끝에서 불어오던 편서풍이
턱 밑이 푸릇하게 면도를 했다
퐁지*의 탁발 행렬이 줄을 이어
길게 지나갔다
맨발에 가사장삼
옷자락의 갈색이 옅어지면서
발자국마다 갈색으로 물들었다
퐁지들은 새벽마다 길바닥을 채색했다
이제 막 속 날개를 부풀린 햇살이
퐁지의 반짝이는 정수리에서 잘게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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