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와 고구려의 옹기(甕器) ♧
옹기(甕器)는 아주 오래전부터 식기(食器), 제기(祭器), 옹관(甕棺) 등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와기전이라 하여 옹기를 굽는 직제까지 두었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도 서울과 지방에 100여 명의 옹기장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옹기장(甕器匠)이란 독과 항아리를 만드는 장인(匠人)을 가리키며, 옹기를 생산하는 곳은 옹기점이라 한다.
▲ 명문(銘文)이 있는 안압지 출토 큰항아리
안압지에서 출토된 이 큰항아리는 곡식이나 물을 저장했던 항아리로 보인다.
목 부분에 가는 침선(針線)으로 '십석입옹(十石入瓮)'으로 보이는 글자를 새겼다. '십석입옹'이란
'10석에 해당하는 양이 들어갈 수 있는 항아리'라는 뜻이다. 통일신라시대 1석은 약52ℓ이다.
이 명문은 신라시대 도량형 이해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 (출처 : 경주박물관) -
옹(甕,瓮)은 ‘독’이라는 우리말의 한자어로서 그릇의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독은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져 음식물을 저장하거나
시신을 넣는 관으로도 사용되어 왔고, 삼국시대에 들어와서는 생활에 더욱 긴요하게 사용되었다.
고구려의 안악 3호분 벽화에는 정사각형의 목책을 두른 우물가에 크고 작은 독을 늘어놓은 장면이 있으며, 백제와 신라에서는
쌀이나 술, 기름과 간장, 젓갈 등을 저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 - 옹기가 있는 우물 풍경
정사각형의 목책을 두른 우물에는 모래주머니를 달아 지렛대와 용두레를 이용한,
용두레 형태의 물 긷는 장치가 있다. 우물가에는 두 여인이 떡시루와 그릇을 닦으러 나온 듯하다.
서 있는 여인 위에 '아광(阿光)'이라는 붉은색 글씨가 씌어있는데, 여인의 이름인가?
우물 앞쪽에는 단아한 물단지와 기다란 목재 구시(구유)가 놓였고, 그 왼편으로는
두 개의 커다란 배부른 항아리가 놓여있다. 당당한 형태의 고구려 옹기다.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통틀어 말한다. 질그릇은 진흙으로 만들어 초벌구이를 한 것으로서 오짓물(灰釉-잿물)을 입히지
않아 겉면이 거칠고 윤기가 없지만 공기순환이 좋아 곡식을 담아두어도 벌레가 생기지 않아 저장용기로도 사용하였다.
오지그릇은 이 질그릇에 오짓물(잿물)을 입혀 다시 구워내어 표면이 더 단단하고 윤이 난다. 내화력이 강하고 흡수력이 적기
때문에 저장과 수납용구로 사용하였다. 종류로는 독, 항아리, 자배기, 동이, 웅배기, 뚝배기, 약탕기, 화로 등이 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하구, 구릉과 산골짜기마다 옹기가마터가 무수했다.
점말,점촌,독점,독말,독점말,옹기점,옹기말... 전부 옹기를 만드는 곳이 있던 지명으로
자연부락, 마을이름으로 검색하면 지금도 전국에 수백건이 검색된다.
♧ 구한말의 옹기장수 ♧
▲ 용인 신덕(은이) 옹기막. 80년대
대원군시절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를 피히여 국가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지않고 생업활동을 할 수 있는
옹기점을 운영하며 공동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지금도 대대로 옹기점을 해오신 분들은
열에 여덟아홉은 천주교 신자이다.
(註) 은이(隱里)는 '숨겨진 마을' 또는 '숨어 있는 동네'라는 뜻이며, 천주교 박해 시대에 숨어 살던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며 순교자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성소(聖召)의 씨앗을 뿌렸던 곳이 은이(隱里)이다.
▲ 부산의 옹기(甕器) 보부상들. 1903년
옛말에 '사기장수는 사곱 남고, 옹기장수는 오곱 남긴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옹기유통이 밑천없이 서민들이 할 수 있는 것 중에서는 많이 남는 장사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 무거운 옹기를 지고 전국의 장터를 떠도는 수고에 비하면 그리 과분한 이문도 아닐듯...
▲ 앵병(甇甁)장수
'앵병(甇甁)'은 병과 항아리의 중간 형태로 짠지를 담아두는 전통 옹기그릇이며
주로 부뚜막에 두고 사용하였다. 때론 청주나 막걸리를 담아 보관하는데 쓰기도 하였다.
행상들 중에서 지게를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행상이라면 옹기장수를 들 수 있다. 지게에 열 개도 넘는
옹기를 층층이 쌓고 지게꼬리(지게에 짐을 얹고 잡아매는 줄)로 단단히 맨 다음 짊어지고
장터나 마을의 골목길을 누비며 옹기를 파는 옹기장수의 모습은 매우 흔한 풍경이었다.
옹기장수의 지게작대기는 다른 작대기와 달리 끝에다 뾰족한 쇠붙이를 붙여 미끄럼을 방지하고 있다.
▲ 물동이(물항아리)장수
▲ 옹기장수 (항아리장수)
'항아리'는 아가리가 좁고 배가 부른 질그릇의 한 종류
▲ 장독소래기(장독의 뚜껑)장수
'장독소래기'는 진흙을 빗어서 꼭지가 없이 접시 모양으로 밋밋하게 만든 뚜껑
▲ 옹기(甕器)장수. 1900년
옹기는 독과 황갈색의 질그릇을 총칭하는 말이다. 조선 백성들의 식생활이 장과 김치 등
발효식품 중심이었기 때문에 장독은 필수품이었다. 대개는 옹기점에서 팔았지만
지게에 옹기를 지고 거리나 집집을 돌며 파는 장사꾼도 흔했다.
▲ 옹기장수
▲ 아리랑고개 옹기전 1935년
옹기의 종류로는 독, 항아리, 자배기, 동이, 웅배기, 시루, 뚝배기, 약탕기 등이 있다.
♧ 담을 두른 장독대 ♧
★ 경남 고성 운흥사 장독대 ★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장독대로 운흥사의 원형장독대를 꼽는다.
돌과 황토로 겹겹이 쌓아 올리고 기와로 덮은 원형장독대는
운흥사가 창건된 신라 문무왕 16년에 조성된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 경북 문경 김룡사 장독대 ★
목조 2층 고방을 지나면 두 갈래의 돌계단이 나온다. 멋진 돌담을 두른 상선원으로 가는 계단과
담장을 두른 장독대로 가는 계단이다. 그러니까 김룡사의 장독대는 요사채보다 한층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절집의 장맛은 찾아오는 객들을 대하는 주인의 마음을 반영한다. 김룡사의 장맛은 깊고 달다.
★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 장독대 ★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 종택이다.
안채 마당 가운데 있는 장독대에서도 종택의 위엄이 풍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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