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지목해서 질문드린다고 하긴 첨이네요 왜 제가 선비님을 지목했냐면 바로 20세기 프랑스사에 대해
여쭐려고 그랬습니다 선비님뿐만 아니라 다른분이시라도 잘 알고 계시거나, 자신있게 추측하실 수 있으시겠는 분들은
얼마든지 답변해주셔도 됩니다
1. 우선 밑에 제가 쓴 글의 답변을 보았는데 바로 프랑스와 미국이 1차대전때 베를린을 함락했다면 2차대전의 뿌리를
뽑지 않았을까하는 그 글 말입니다? 저는 차라리 그때 연합군이 베를린을 함락해 독일을 철저히 작살냈으면 2차대전이라는
망상을 품는 자가 없었으리라 믿었었는데, 오히려 그게 더 반발심을 불러일으킬거라거나, 무엇보다 당시 연합군들이
공세능력을 상실해서 베를린을 칠 여력이 없었다 라니 그렇게해서 2차대전이 막아질 순 없었을것 같다는 걸 알았습니다.
근데 또 차라리 1939년 그날,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하는 틈을 노려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면 어땠을까? 생각듭니다
당시 프랑스 정치판과 군부가 너무 무능하고 겁장이들이라 그럴 리가 없엇겠지만, 만약 좀더 용기를 내어 독일을
공격했다면 진즉에 "아직 약한 상태의" 나치독일을 패망시키고 일이 더 커지는걸 막을 수 있었을것 같습니다
1939년 당시 프랑스를 흔히 육군 최강국이라고 하고 1940년 이후 나치독일 전차가 알아주는 이유도 다 독일이
프랑스 전차에 영감을 얻어서 그랬다는 말도 있지요?
아무튼 제가 알기로도 1939년 프랑스의 실질적인 육군력은 영국보다 훨씬 강하고, 소련보다도 강하고, 독일보다도
쎈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독-폴전 때의 독일은 전 병력은 다 폴란드와 싸우는데 집결시켰으며, 또한 39년도 독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강력한 나치독일이 아니라 약소국이였으며, 프랑스가 뒷통수를 제데로 갈긴다면, 1939년에
나치를 합병하여, 베르사유조약 때보다 더 잔인하게 독일을 박살내 여러개의 소국으로 갈라버리고 영세중립국으로
만들어버리며, 히틀러와 나치당 간부들을 다 사형시키고, 일이 커지는걸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역사에도 그냥 자그마한 분쟁 정도로만 남았겠죠?
선비욜룡님, 그리고 여러분들의 생각을 어떻습니까? 2차대전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같은데
2. 그리고 프랑스는 도데체 1차대전의 폐허를 어떻게 극복하고 육군 최강국이 되었는지요? 1차대전때 가장 많은
젊은이가 죽은 나라이고, 상처 뿐인 영광이라면서 짧은 시간내에 유럽 최강국으로 우뚝 솟은 것 같습니다. 영국이나
이탈리아가 1차대전 이후, 2차대전까지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던 것에 비해 프랑스는 마치 1차대전 이후, 미국과 일본이
급성장한것처럼 군사력이 강해지고 산업시설도 복구되었습니다
그래서 1914년때는 독일보다 1.5배나 약한 나라였는데, 오히려 1939년땐 독일보다 1.5배 강한나라가 되었죠..
비록 시기는 완전히 다르지만 1차대전 이후 프랑스의 성장은 마치 2차대전 이후 소련이 참전국들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죽고 산업시설 다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초강대국이 된 것과 비슷해보일 정도인데
대체 프랑스는 상처 뿐인 영광, 가장 많은 젊은이가 죽음, 산업시설의 괴멸이라면서 어떻게 다시 다 복구하고 유럽
최강국, 육군 최강국이 된건가요? (물론 나치에게 어이없이 망하긴 했지만)
첫댓글 글쎄요. 독일 제국과 오헝제국이 분할되고, 박ㅋ살ㅋ나면서 육군력과 해군력에 제한을 먹었고, 여타 국가들도 제정신차리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1대전 이후 육군 최강국은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입니다.
미국은 1대전 이후 군대가 양적, 질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면서 유럽내 국가따위는 ㅂㅂㅇ 칠 정도로 커집니다.
프랑스의 2대전 개전 당시, 가짜전쟁에 대한 연구는 수두룩 빽빽하니 관련사항을 검색만 하셔도 아실 듯.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폴란드 전역은 소련이 폴란드에 개입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연합군 수뇌부의 실책입니다. 그리고 폴란드군에 대한 과신도 문제였고 말이죠.
프랑스의 산업시설은 궤멸이라고 하기엔 좀 뭐 한 것이.. 독궈나 프랑스나 주요 전역은 벨기에, 프랑스 중북부지방이라서 말이죠. 산업시설에 대한 완벽한 폭격과 궤멸은 2대전에야 가능한 얘기입니다. 1대전은 참호전하느라 그 지역만 no man's land가 된 겁니다. 벨기에 지못미.
더군다나 프랑스와 영국의 경제력은 1대전 이전과 비슷한 수준을 종전 시에 유지합니다. 제가 과제하면서 미국 국회도서관에서 찾은 내용이니 맞을겁니다. 단지 미국이 엄청난 발전을 이뤄내서 영국, 프랑스의 주도의 경제가 미국 주도로 넘어갔고, 그 경제력의 원천이 미국산 채권이라는 점이 달라진 점이네요.
@ulysses 근데 딱히 미국이 경제력에서 1대전에 큰 도움을 줬느냐면 그것도 아니라서 정부 자체로는 전비 부담이 연합국 전체의 19%정도고 영국과 프랑스가 전비의 대부분을 부담했습니다. 문제는 영프 산업기반의 자금줄을 미국 기업들이 틀어쥐었고, 은행들의 빚이 늘어나서 미국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겠네요.종합하자면 프랑스는 그냥 굴리던 산업시설 열심히 굴리고, 굴리던 식민지 열심히 굴려서 예전 수준으로 근근히 돌아간 것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그나마도 베르사유 조약으로 군축한 독일에게 겨우 1.5배~2배가량의 군대를 유지하는데 그쳤지만요. 걍 주변국이 다 약체화되서 상대적으로 강국으로 보일 뿐이었던 게 타당할겁니다.
글쎄요; 미군 특성상 1차대전과 경제대공황 이후 그 규모는 엄청 쪼그라 들었죠. 그러다 보니 보너스 아미 사건 같은 것도 터지고, 맥아더는 필리핀으로 쫓겨나가고; 1941년 까진 미군은 공세보단 수세인 측면이 더 강하다고 봐야합니다.
@MrGuinness 그렇지만 해군도 어마어마한 양적 성장을 했고 육군의 경우도 남북전쟁 이후 정체된 육군 기술이 개선되면서 육군의 질적 성장도 많이 이루어졌죠. 대공황때문에의 규모축소는 다른나라도 비슷한 상황이었고. 수세는 맞지만 세계 1위 군대라는 수식을 붙이기엔 부족함이 없다고 보이네요.
@ulysses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게 일단 1차대전 직후의 미군을 보면 딱 남북전쟁 이후랑 같거나 더 악화입니다. 남북전쟁 이후 미군은 인디언 전쟁이나 미-서전쟁으로 그나마 어느정도 감을 유지했지만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엔 그럴만한 경험이 없거든요; 또한 전쟁이 종결되자마자 한달만에 65만명이 소집해제되었고 9개월 동안 3백 25만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전역했습니다. 결국 남아있는건 19000명의 장교들과 20만5천명의 병사들이었고 이 숫자는 2차대전이 터질때 까지 크게 늘지 않았습니다. 영국은 원래 육군을 소규모로 유지했고 프랑스는 독일에게 깨지기 전까진 제 1육군국이었으니까요
@ulysses 어떤 면에서 보면 2차 대전뿐만 아니라 1차 대전 때도
미군이 세계 1위의 군대라고 말하는 책이 상당히 많더라구요?.. 쇼미더머니 덕분일듯 싶은데 미궈의 천조국 역사는
대체 언제부터인건지 참...(전 냉전부터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듯)
사실 히틀러를 막을려면 폴란드 침공때보단 체코 병합때 막았어야했습니다. 동유럽에서 제대로 된 민주국가는 체코뿐이었고 폴란드는 단치히 문제만 아니었으면 히틀러 편을 들었을지도 모르는 형편이라; 거기에 체코슬로바키아의 전쟁 수행력이 폴란드보다 못하다고는 할 수 없거든요.
게다가 프랑스의 움직임을 단순히 겁쟁이로 평가하기도 그런게, 프랑스 군부야 말로 1차대전의 치킨게임으로 인한 피해를 잘 알고 있던 처지였습니다. 때문에 자국군을 무의미하게 희생시키고 싶진 않았죠. 마지노 선을 비롯한 요새 방어에 치중한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독일이 아무리 약해졌다 그래도, 프랑스에 작지 않은
상처를 입힐거라능 판단을 한 것이군요?
@빅토르레즈노프 솔직히 괴벨스의 뻥카가 먹힌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의 양상이 완전히 달랐는데... 1차대전의 시점에서 상대국의 수도까지 따먹을정도로 전격전이 가능 했을까...
1939년이면 늦었습니다. 병력은 프랑스가 좀 더 많긴 한데 지원부대 비율이 높거든요. 1939년 사단수는 프랑스 102, 독일 103으로 독일이 우위에 서기 시작합니다. 1940년엔 프랑스 104, 독일 141 사단이죠. 병력은 독프가 비슷하거나 프랑스가 좀 더 많아도 독일 전투부대 비중이 높아서 2차대전 독일 전투력이 우위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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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리고 소풍만하다 왔죠. 당시 독일 수뇌부들은 프랑스와 영국의 선전포고로 패닉에 빠진 상태였고 서부 국경을 지키고 있던건 22개의 사단, 그것도 소집도 끝나지 않았고 주력이라고 하기엔 뭐라한 사단들이었습니다. 물론 프랑스측도 제대로 동원된건 아니지만요; 참고로 독일 영내로 32킬로미터까지 진격해 나갑니다.
2. 적어도 1차대전의 프랑스군은 성공적으로 봐야합니다. 슐리펜 계획을 막아내고 조직적 철수를 해내었으며 적에게 엄청난 출혈을 강조해냈으니 말입니다.
@애기아빠 2. 1차대전때 프랑스군은 높게 평가받아야 마땅합니다. 영국군이 상비군을 완성시키는데 2년이 걸리고 러시아군도 기대이하의 활약을 선보이며 더럽게 털리던 때 부족한 인구로나마 독일군을 상대로 몸빵한 것이라 말이죠. 프랑스 장군들 개개인의 능력도 나폴레옹 전쟁이후 최고의 인재풀이라 평가받을 정도로 최상의 상태였습니다.
요즘 나오는 1차대전 당시 프랑스군에 대한 연구를 보면 실제로 1차대전때의 삽질에 대해 비판받는다기보다는 2차대전때 워낙 못미더운 모습을 보여줘서 저평가받는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이래뵈도 1918년의 2차 마른전투때 투입된 50몇개의 연합군 사단중 40개를 담당했던게 프랑스군이니까요.
@애기아빠 애초에 청년학파는 해군교리 관련이라 프랑스군에 대한 영향은 미미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 포슈 까느라 우려먹는 공세제일주의라면 모를까나요.
1차대전때 독일군도 교리상 경직된 것도 동일합니다. 1차 이프리스에서 프랑스군이 욕먹는 착검돌격했다가 괴멸당하는 사태가 독일군에게도 벌여졌으니요. 그동안 칭송받던 레토-포르벡도 실상 경직된 교리에 공세만 추구하다가 끝에 나가리되서 어쩔 수 없이 게릴라전을 수행하게된 인물이고 말입니다.
@애기아빠 1차대전의 프랑스군이 계속해서 무시되는 것은 영미권의 전후 프랑스에 대한 저평가로 인한 것입니다. 헤이그도 그렇고 퍼싱도 그렇고 각각 영국군과 미군이 백일전투를 승리시키는게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믿었고 2차대전에서 프랑스가 개털리자 아예 프랑스군의 활약에 대한 대대적인 저평가가 가해졌죠. 프랑스군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의 주력을 도맡았고 만약에 프랑스군이 1916년부터 전의나 전력이 최하 상태였다면 프랑스 장군인 페르디낭 포슈가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임하게될 이유가 없죠. 포슈의 연합군 취임은 프랑스군이 전쟁 끝까지 주력을 도맡았다는 증거입니다.
@애기아빠 애초에 오헝제국이나 이탈리아보다 조금 더 괜찮았을 수준의 병력이 1919년에 "연합군의 칼"이라는 별명으로 칭해졌을 리가 없죠. 처음에 비해서 질이 떨어졌을 언정 원체 수가 적고 군을 재건하는데 1916년까지 걸렸던 영국군이나, 경험부족의 미원정군이나 서부전선과 별 상관없이 1917년에 나가리된 러시아군중 독일군의 공세를 도맡을 수 있는 군세는 프랑스군뿐이였고 이 역할은 전쟁 끝까지 맡게 됩니다.
관련 내용으로 2013년에 출간된 Britain and France in Two World Wars나 Greenhalgh 교수의 여러 저서들이 있습니다.
@애기아빠 저도 애기아빠님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것인지 이해합니다. 프랑스군은 대전중반부 이후 숙련된 인력을 상당수 상실해서 전의나 전력이 전후 최하 상태였다는 것으로 프랑스군이 원체 약했다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군은 대전직후 큰 피해끝에 약했졌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건 반 맞고 반 틀린 셈입니다. 프랑스군은 2차 마른 전투에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연합군에서 주력을 맡게되었고 전쟁초기같이 연합군=프랑스군 수준의 전력을 보유하지 못했지만 포슈가 연합군 총사령관이 된 것만해도 연합군의 주력은 프랑스군이라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1차대전 당시 프랑스군은 충분히 평가받을 몴이 있습니다.
@애기아빠 저도 니베르 공세이후 프랑스군이 빌빌댄 것은 사실이지만 "백일전투"라는 명칭으로 봤을 때 1918년의 춘계공세와 연합군의 대반격이 대개로 영미권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점을 감안해야합니다. 헤이그는 끝까지 연합군의 대반격이 영국군의 승리라 강조했고 John Mosier이란 사람은 아예 미군이 연합군의 대반격을 이끌었다는 준역사왜곡을 저지른 바가 있습니다.
춘계공세때 털린 것도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분열을 독일군이 잘 파고든 것이고 이를 극복한 것은 연합군 총사령부가 만들어져서 각군의 개인플레이가 줄여지고 한 전략하에 싸울 수 있도록 조절될 여지가 만들어져서입니다.
@애기아빠 파리상실까지 갈 뻔했던 2차 마른전투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군세를 유지했던 것도 프랑스군이고 이후 반격을 결정한 것도 프랑스군의 포슈였습니다. 니베르 공세이후 빌빌댄 것은 사실일지언정 연합군의 반격때의 활약마저 축소하는 것은 옳지 않겠죠.
1차대전의 프랑스군은 충분히 성공적이였고 한국에 번역된 1차대전 관련 서적들 대부분이 프랑스쪽 입장을 제대로 반명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야합니다.
@애기아빠 보불전쟁때 프랑스군은 포슈의 분석만 봐도 "이길 수 있던 것은 뻘짓하느라 못이긴 케이스"라 생각하고 2차대전때도 답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1차대전의 프랑스군은 전체적으로 잘했다는 평가를 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프랑스군이 그간 평가절하되었던 것은 영미권의 영향이 수두룩하고 요즘 들어서야 Greenhalgh 교수등의 서적이 출간되면서 프랑스군에 대한 재평가가 차근차근 되고 있죠.
@애기아빠 18년도의 독일군이 그렇게 오합지졸이 아니였습니다. 후방군은 보급부족과 스페인 독감으로 상당한 질적하락을 보이고 있었지만 전선에서의 독일군은 춘계공세이후에도 연합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최소한 붕괴하지 않고 연합군에서도 "독일군의 저항이 상당하다"라는 평가가 파다했습니다.
그리고 2차 마른 전투는 단순히 프랑스의 수도를 구하는 전투가 아닌 처음으로 연합군이 포슈 휘하로 집결되서 일원화된 상태에서 독일군을 맞이한 전투입니다. 애초에 영불군이 털렸던게 헤이그는 영국해협을 사수하고 페탱은 파리를 사수하느라 분열되서 그런 것인데 프랑스군의 비중이 많았던 이유가 파리를 구하기 위해 하나 뿐이라면...
@애기아빠 파리를 벌써 털리고 말았겠죠. 2차 마른 전투의 경우에는 미군은 물론 이탈리아군도 가세한 전투입니다.
사실 Greenhalgh 교수의 글을 읽어본지가 좀 되가지고 반론하기가 좀 힘드네요. 우선 백일전투때 프랑스군이 주력을 도맡았다는 점을 근거로 두고 싶은데 제가 생각해도 살짝 좀 부족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말입니다.
저도 애기아빠님이랑 1차대전 이야기하는게 매우 재미있네요. 그리고 잊혀진 전쟁이라고 말씀하신 점에 대해 백번 공감합니다. 이래뵈도 세계대전이란 전쟁이 왜 이리 인지도가 낮은지....
@애기아빠 외교사적으로 연합군의 뻘짓과 히틀러의 똘기로 요약할 수 있는 2차대전의 개전사유도 1차대전은 얽히고 섥힌 내용도 풍부하고 인간군상도 모두 개성이 있는 편이죠.
거기다가 살짝 코즈믹 호러 느낌도 나고 말입니다. 누구도 어떻게 끝낼 줄 모르는 전쟁을 풀어해치려고 노력하는 장군들과 정치인, 그리고 그 사이에 고생하는 병사들과 시민들, 뭐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1.은 다른 분들도 잘 설명하셨고 1차대전 관련이 아니라서 제가 답하기 좀 어렵네요. 부족한 지식으로나마 말하자면, 2차대전 당시 프랑스군은 최대한 방어전을 수행해서 인력을 아끼고 싶어했지 먼저 쳐들어가서 인력을 소비할 입장이 아니였습니다.
2.의 경우에는 영국군이 평화때 대폭 축소하고 독일군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상당히 감축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대규모의 육군을 유지한게 프랑스군이라서 그런 것으로 압니다. 해군위주 국가인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육군위주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죠.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즉, 기타 연합군은 군비의 축소, 그리고 독일은 베르사유조약의 엄청난 크리 때문에 프랑스가 상대적으로 잘 회복한 것 같이 보이는 거군요?
@티거6호 회복했다기보다는 잘 유지된 것에 가깝겠죠. 불빠라지만 2차대전때 프랑스군이 미숙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선비-욜롱 그럼 만약 1939년의 프랑스가 나치를 선제공격 했다고 쳐
100퍼 이길거란 보장도 없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