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Old People's Home)
오든(W.H. Auden)/후고(後考) 번역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기 자신만 폭삭 늙어버린 것 같이 느낀다.
건강이 좋은 엘리트는 혼자서도 옷을 입을 수 있고 점잔을 빼기도 하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혼자 걸을 수도 있으며 책을 완독하기도 하고
가벼운 음악에 맞춰 천천히 움직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몸은 불편한 데가 없지만 정신은 오락가락한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왜 일어났는지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울지는 못하고 슬퍼하면서 속상해한다.)
(*주;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하고 싶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괴로워한다.
늙은이를 모시고 있는 사람들은 늙은이들이 지나치게 참아야만 하고 말 한마디 할 수 없다는 것을
항상 또는 가끔 불평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의 눈을 보면 엘리트여서 과거에는 아무 어려움 없이 했던 일을
지금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울지는 못하고 무척 슬퍼하고 있는 눈치가 역력하다.)
반면에 대부분의 늙은이들은 혼자 걸을 수가 없어 휠체어에 앉아
하루 종일 TV만 보며 친절한 치료사의 가르침에 따라 함께 노래하거나,
혼자 방에 처박혀 외롭게 연옥(煉獄)을 드나들면서 중얼거리거나,
비웃기만 했던 식물처럼 되어 노후를 대비하지도 못하여 무력함을 느끼며
말도 어눌하게 하고 아무 죄도 없는 것처럼 느낀다.
(식물들은 땀을 많이 흘려도 결코 몸이 망가지지 않는다.)
(*주;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거나 식물인간이 되어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늙은이들은 돌보아 주는 가족이 없어 요양원에서 함께 살면서 결속이 되기도 하지만,
엘리트 노인들과 휠체어를 타고 있는 노인들과 방에 처박혀 있는 노인들과
식물인간 같은 노인들은 서로 따로 논다.
드넓은 낙원(樂園)에 사는 가족과 친지들이 변두리에 있는
네 부류의 노인 병동으로 되어 있는 요양원으로 면회하러 오는 것이
마치 관중(觀衆)들이 속(俗)의 세상으로 모여드는 것 같다.
(* 주; 아무 곳이나 마음대로 다니며 살고 있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주말이나 월말에
노인들이 갇혀 있는 양로원으로 면회 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만약 아이가 엄마와 함께 왔다면
정답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 할머니가 맞는가 하고 의아해 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 누구나 늙으면 요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노인들은 집에서가 아니라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수하물처럼
장애 등급별로 수용된 방에서
우리보다 먼저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안다.
할머니를 30분 동안 면회하기 위하여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한때는 활기차고 꽃다웠던 할머니의 얼굴을 떠 올리면서
주말마다 찾아 뵈었던 것이 착한 일이 아니라 기쁨을 주는 일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나 자연현상이 할머니의 이 땅에서의 역할을
갑자기 중단시켜줄 것을 할머니가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으면서도
과연 냉정하게 고통 없이 빨리 죽기만을 바라도 되는 것일까?
<Old People’s Home>
All are limitory, but each has her own
nuance of damage. The elite can dress and decent themselves,
are ambulant with a single stick, adroit
to read a book all through, or play the slow movements of
easy sonatas. (Yet, perhaps their very
carnal freedom is their spirit's bane: intelligent
of what has happened and why, they are obnoxious
to a glum beyond tears.) Then come those on wheels, the average
majority, who endure T.V. and, led by
lenient therapists, do community-singing, then
the loners, muttering in Limbo, and last
the terminally incompetent, as improvident,
unspeakable, impeccable as the plants
they parody. (Plants may sweat profusely but never
sully themselves.) One tie, though, unites them: all
appeared when the world, though much was awry there, was more
spacious, more comely to look at, it's Old Ones
with an audience and secular station. Then a child,
in dismay with Mamma, could refuge with Gran
to be revalued and told a story. As of now,
we all know what to expect, but their generation
is the first to fade like this, not at home but assigned
to a numbered frequent ward, stowed out of conscience
as unpopular luggage.
As I ride the subway
to spend half-an-hour with one, I revisage
who she was in the pomp and sumpture of her hey-day,
when week-end visits were a presumptive joy,
not a good work. Am I cold to wish for a speedy
painless dormition, pray, as I know she prays,
that God or Nature will abrupt her earthly fun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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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선조들보다 더 나아지려고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1897-1962)
“우린 남들을 속이는 데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 속기 시작합니다.”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와 드 라 로슈푸꼬(Francois de la Rochefoucauld, 1613-1680)
첫댓글 '그렇지요.. 어떻게 늙어가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일까?
.......... 하느님은 나에게 어떻게 늙어가도록 하시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