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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지혜의 書
Chemins spirituels 마티외 리카르 / 임회근 / 담앤북스
마티외리카르.
프랑스生. 파스퇴르연구소 세포유전학 박사. 인도 여행 중 티베트불교 스승들을 만난 뒤 1978년에 승려가 되었다. 1989년부터 달라이 라마의 프랑스어 통역관을 담당했다. 네팔의 셰첸 수도원에서 수행, 티베트 문화 보존,
인도적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승려와 철학자』『행복, 하다』
『명상의 기술』등.
임희근.
서울대 불문과. 프랑스 파리3대학교 불문학 석사/박사.
역서『모든 순간 껴안기』『달라이 라마, 나는 미소를 전합니다』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분노하라』『인간이라는 직업』등.
머리말
1981년 부탄에서 티베트의 정신적 스승인 딜고 켄체 린포체(1910~1991)는 두 달 동안 내게 <정신적 가르침의 보물>을 전했다. 이 책은 티베트불교의 계보를 대표하는 8대 종파의 핵심 가르침을 모아 놓은 것이다.
나는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전승되는 글들을 추려서 번역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이제 그 원이 本 책으로 미미하게나마 실현된 것이다.
"우리가 마음이라 부르는 것은 매우 신기한 하나의 현상이다.
마음은 때로는 딱딱하고 어떤 변화도 못마땅해 한다.
동시에 우리가 마음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이고 깊은 성찰을 통해 변화가 가능하며 꼭 필요한 것임을 확신한다면 매우 유연해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원이나 기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체험에 기반을 두고 이성이 개입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해묵은 습관은 어떤 신속한 해법에 대해서도 저항하기 때문이다."
- 제14대 달라이 라마, 뗀진 가초(1935~ ).
들어가는 말
불교란 근본적으로 괴로움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지도록 이끄는 앎의 길이다. 그 지향점인 깨달음은 현실의 바른 이해에 기반을 둔 지혜이며,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는 여러 감정을 극복하고 無明(진리에 어두움)이
만들어 낸 너울들을 벗겨 내는 일이다.
불교의 수행은 삶에서 좋은 것들을 무조건 단념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단지 우리가 종종 마약처럼 집착하는 고통의 원인들을 털어 버리라고 요구한다. 그러므로 불교를 공부하는 것은 수많은 정보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일이 아니다. 윤회(無明과 괴로움으로 조건 지어진 존재)의 회로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앎(알아차림), 오직 그것을 습득하는 일이다.
악한 행위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피하고
선을 온전히 실천하라.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라.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문제는 삶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삶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그것이다." - 달라이 라마.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의 삶은 만일 우리가 심신의 모든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다면, 스스로의 행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이런 좋은 조건들을 활용해 우리 안에 있는 변화의 잠재력을 활성화할 수 있다면 더욱 더 소중한 것이 된다.
우리가 무슨 수를 쓴다 해도 살아갈 시간은 한정돼 있다.
사고, 질병 그리고 피치 못할 죽음은 예고 없이 닥친다.
그래서 불방일不放逸, 즉 게으르지 않은 생활이 강조되는 것이다.
제1장. 마음수행의 길로 들어서기
*
우유에서 버터를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오직하나다.
우유 속에 이미 크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물을 휘저어 버터를 만든 사람은 없었다.
사금을 채취하는 사람은 금을 광물에서 찾지
대팻밥 속에서 찾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순수하고 온전한 깨달음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일이
의미 있는 까닭은 오직 깨달음의 본성이 이미 모든 존재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체의 노력은 헛수고가 될 터이다.
- 잠괸 콩툴 로되 타예(1813~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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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자문할 수 있다.
“마약 불성佛性이 내 안에 있는 것이라면,
어째서 그것을 즉시 알아차릴 수 없지?”라고,
그 이유는 폐석廢石 속에 파묻힌 금처럼.
우리가 무량한 세월 동안 쌓아 온
성향 때문에 불성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독毒이 그런 성향을 유발하고,
이어서 어지럽혀진 마음이 벌인 행위들이 그것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법계찬法界贊]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파이어의 광채는 언제나 손닿지 않은 그대로 현현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사파이어가 원석原石 속에 묻혀 있는 한 나타나지 않는다.
구경(궁극의 차원)도 이와 같이,
전혀 때 묻지 않았기에 번뇌라는 두터운 베일 속에 감추어져 있다.
그 광채는 윤회, 즉 고통 가득한 세상 속에서는 나타날 수 없으며
고통을 넘어선 열반 속에서만 드러난다.”
그러니 사람들은 갸우뚱할 것이다. 모든 존재. 심지어 개와 돼지조차
의식의 가장 깊은 심층에는 불성의 여러 품성-예컨대 붓다만이 갖춘
열 가지 지혜의 능력인 ‘십력十力’-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할 것이다. 이 품성들은 실제로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지닌
‘깨달음’의 잠재력, 즉 의식의 토대인 본성 속에 존재한다.
존재들의 속성은 그 성품과 떼어 놓을 수 없다. 마치 열과 불울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품성들은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칼이 칼집 속에 있는 한 칼날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고,
거울이 모습과 색깔을 비출 힘을 지니고 있지만 어둠 속에서 끄집어내
환한 곳에 두었을 때에만 그런 힘을 발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깨달음’의 품성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의식에 내재해 있지만 오랫동안 인지되지 않은 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궁극적 본성, ‘깨달음’의 지고한 모든 품성을 고루 갖춘
공空은 항상 우리 안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친해지지 못하는 한은
그저 잠재해 있을 뿐이다.
- 셰첸 걀삽 -
1. 사람 몸을 받아 태어난 일의 소중함.
불교 교리에 따르면, 돌고 도는 윤회의 굴레에서 우리는 온갖 삶의 모습을
취한다.
우유에서 버터를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마찬가지로 순수하고 온전한 깨달음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일이 의미있는
까닭은 오직 깨달음의 본성이 이미 모든 존재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체의 노력은 헛수고가 될 터이다.
2. 그 무엇도 피할 수 없는 무상과 죽음.
우리 삶의 순간순간은 무한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번 생의 남은 시간을 마치 손가락 사이로 금가루가 빠져나가듯 그냥 흘러가게 놓아두고 있다.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 빈손임을 확인한다면, 이보다 더 서글픈 일이
무엇이겠는가? 생의 매 순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자. 현명하게 결정해 최선의 방식으로 활용하자. 더 미루지 말고 본질적인 것에 전념하자. 죽음이 다가왔을 때 회한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티베트의 은거 수행자들은 아침에 일어나 불을 피우면서 "내일은 이 자리에서 다시 불을 피우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수행을 한다.
잠자고 깨어나 들숨 날숨 쉬며
거뜬히 일어나는 것, 기적이어라! - 나가르주나.
우리에게는 다음에 만날 여러 생에 걸어야 할 기나긴 길이 있다. 今生의 죽음은 넘어야 할 하나의 관문일 뿐이다. 우리는 그 관문을 홀로 넘어서며, 기댈 것이라고는 스승을 믿는 마음과 수행에 대한 신심 뿐이다.
"당장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해도 후회할 일이 없어야 한다. 정성껏 땅을 갈아 놓은 농부처럼, 마지막에는 중대한 과업을 끝마친 사람처럼 행복해야 한다." - 감뽀빠(1079~1153).
죽음이 두려워 나는 산으로 갔다네.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의 시간에 대해 명상한 덕분에
불굴의 진리, 그 불멸의 보루를 정복했다네.
이제,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훌쩍 뛰어넘었네!
- 미라레빠(1040~1123).
환상에 집착하며 사는 우리는 얼마나 불행한가.
괴로움 투성이인 세상을 영원한 실상인 줄 알고 사네!
- 빠뚤 린포체(1808~1887).
"당신에게 주어진 이 자유, 그리고 이 좋은 조건을 함부로 낭비하지 마시오! 삶을 헛되이 소진해 버리지 마시오!" - 최잉 랑돌. 19세기 명상가.
3. 씨앗이 자라 열매가 되는 법칙, 因果.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끊임없이 변하는 조건들이 합쳐져서 생긴 결과다. 무지개는 그것을 뜨게 한 요소들이 사라지면 바로 없어진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오직 여러 요인의 상호의존에 의해서만 생겨난다.
그러므로 어떤 현상에도 독립적이고 영원한 실체란 없다.
행위와 그 결과를 동시에 가리키는 말 카르마(業)는 인과법의 특별한 측면이다. 우리가 받을 몫의 행복과 고통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카르마다.
즉 우리는 과거에 우리가 한 행동의 결과를 지금 받고 있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앞으로 몸 받을 내생을 우리 스스로 짓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고통에서 놓여 나고 싶다고.
그런데 보라. 다들 고통을 만나러 달려가는 모습을!
모두가 행복을 갈망하지만
행복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며
행복을 마치 적처럼 파멸시킨다. - 샨띠데바(685~763).
"불행히도 그들 중 대다수는 행복이 긍정적 행위의 결과이고,
고통이 부정적 행위의 결과라는 것을 모른다."
- 딜고 켄체 린포체(1910~1991).
"남을 도울 능력을 얻기 위한 첫걸음은... 더 나은 존재가 되는 일이다."
- 딜고 켄체 린포체(1910~1991).
열반을 포함해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에서 생겨난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과 세상의 본성에 대해
正見(判斷智)을 가져야 한다.
正見이란 어떤 신앙이나 특정 교리에 대한 집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을 이치에 맞게 점검해 얻게 되는 명철한 이해다.
- 제14대 달라이 라마, 뗀진 가초(1935~ ).
4. 고통에 관한 네 가지 진리.
실제로는 고통의 원천인 것을 우리는 종종 행복이라 부른다.
부,권력,영예...
"행복이나 불행은 궁극적으로 마음에 달려 있다."
- 제14대 달라이 라마, 뗀진 가초(1935~ ).
법열(法悅) - 다르마가 주는 행복... 만족...
5. 고통의 원인 끊기, 놓아 버림.
진정한 포기란 속박이 아니라 자유다.
진정한 놓아 버림의 원천은, 삶의 일상적 관심사들에서 숙명적으로 생겨나기 마련인 불만에 마침표를 찍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다.
진정한 포기란 내면의 자유에 장애되는 것을 훌쩍 뛰어넘음으로써 말과
행위를 홀가분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포기란 삶에서 유용한 것을
끊고 지낸다는 뜻이 아니라, 잉여의 짐들을 덜어 낸다는 뜻이다.
어느 은거 수행자가 "나는 아무 것도 필요없다."는 주문을 되풀이할 때,
그는 자기 삶을 맥 빠진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온통 사로잡아도 결국 지나간 다음엔 낭비한 시간의 씁쓸한 뒷맛만 남기는 갖가지 오락거리를 털어 버리는 것이다. 그는 진정 자신을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에만 오롯이 전념하기 위해 복잡한 삶을 간결하게 만드는 것이다. 삶의 복잡한 것들을 털어 버리고 싶다는 마음은 그냥 두어도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충동이 아니다.
"쓸데없는 것을 좇느라 삶을 탕진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 딜고 켄체 린포체(1910~1991).
四聖諦 - 불교에서 말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네 가지 진리로서,
고제(苦諦),집제(集諦),멸제(滅諦),도제(道諦)를 통틀어 이르는 말.
苦集滅道 - 불교의 근본원리인 四聖諦의 첫 글자를 따서 이르는 말.
苦 생로병사의 괴로움,
集은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번뇌의 모임,
滅은 번뇌를 없앤 깨달음의 경계,
道는 깨달음의 경계에 도달한 수행을 이른다.
집착과 혐오의 토대 위에 그 밖의 정신적 독약들도 나타난다.
세속의 활동에 여념이 없어 더이상 죽음은 생각지 않고
수행은 미룬 채 헛된 세상사에 몰두하는 것이 악마다.
명상시간에 앉아서 문득 장보러 가는 생각을 한다고 쳤을 때
그 생각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저절로 스러지게 놓아두면,
생각은 거기서 더 멀리가지 못한다.
반면 생각을 알아차리지 않고 점점 더 커지게 놓아두면
생각은 두 번째 생각을 낳고 세 번째 생각을 낳고 당신은 이미 명상에서
멀어져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생각을 멈추는 게 아니다. 불가능하다.
우리 목적은 생각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단순함, 생생함 속에 머무른다면 그럴 수 있다.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지도록 가만히 두고
생각을 조장하지도 생각에 집착하지도 않으면 그럴 수 있다.
한 생각이 나타나자마자, 그 공한 본성을 알아차려라.
환상의 사슬은 끊어질 것이다.
주체와 객체가 둘이 아닌데도 우리에겐 마치 구분되는 두 실체인 듯 보인다.
세상은 같은 업을 지닌 자들에게는 똑같이 보인다.
업이 다른 자들에게는 다르게 보인다.
"지혜 중에 제일은 그 무엇이든 실제로 있다고 믿지 않는 것
스승 중에 제일은 숨겨진 잘못을 공격하는 사람
가르침 중에 제일은 은밀한 과오를 가차 없이 치는 사람
친구 중에 제일은 주의와 불방일(不放逸)
실제 수행에서 제일의 그물은 원수, 장애, 질병, 고통
방법 중에 제일은 마음을 변치 않게 하는 것." 아티샤(982∼1054)
제2장. 마음수행의 기초 다지기
1. 깨달음의 지혜에 귀의하기.
모든 존재가 언젠가는 부모였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존재, 즉 그토록 긴 세월 동안 마치 끝없는 들판을 방황하는 맹인처럼 윤회 속을 헤매는 현재의 부모나 과거 생의 부모들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한없는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마음이 집착에 묶여 있는 한 그들에게 음식,의복,돈 아니면 그저 애정을 주지만 그런 것들은 부모에게 기껏해야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행복만 안겨 줄 뿐이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고통에서 완전히 해탈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도울 수 있는 길은 다르마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 밖에 없다.
2. 이타적 자애와 연민 기르기.
존재에는 나라고 할 만한 진짜 자아라는 것이 따로 없음을 깨닫고,
결국 존재는 상호 의존하는 현상들이 합쳐져 이루어진 것임을
터득한 이들의 연민이 필요하다...
존재와 사물들에 고유의 실체가 없음을 깨달았을 때
이러한 연민이 가능하다. - 깡규르 린포체(1897~1975).
3. 육바라밀 실천하기.
모든 이의 행복을 위해 깨달음을 얻겠다는 이타적 발원은 육바라밀의 실천으로 실현된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대승불교의 6가지 수행덕목.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어떤 개념에도 매이지 않는 지혜의 성취를 완성함으로써 사람은
수승(殊勝)한 절대적 몸에 이른다." - 빠뚤 린포체(1808~1887).
석학 중에 제일은 각자의 실체 없음을 체득한 사람
정진 중에 제일은 일상의 잡다한 활동을 포기하는 것
선행 중에 제일은 누군가를 다르마의 길에 들어서게 하는 것
남들을 돕는 방법 중에 제일은 그들의 마음을 해탈의 길로 돌려주는 것.
- 아티샤(982~1054).
그대가 찾는 것이 행복이라면
우선 고통을 감내하라.
눈물의 쓴맛을 보지 않고는
웃음의 진가를 알 수 없으리. - 쳉가와 로되 걀첸(1402~1472).
"자기의 분노를 이기는 사람이 모든 적들을 이기는 셈이다."
- 샨띠데바(685~763).
"나는 그대들에게 해탈에 이르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해탈은 오직 그대들에게 달려 있을 뿐임을 알라." - 붓다.
"나쁜 성향은 없애도 자꾸 살아나며,
새로운 습관은 상황에 의해 쉽게 없어져 버린다."
- 걀와 양곤빠(1213~1287).
우리는 숲속 빈터나 다른 한적한 곳을 자주 찾아야 한다.
그런 곳에서는 세상사에 쏠려 산란한 마음이 차분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동떨어진 한적한 장소는 마음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요소가 없다.
거기엔 장사꾼도 없으며, 정신적 성장과 양립할 수 없는 의도로 활동하는
좋지 못한 동료들도 없다. 게다가 편안히 거할 수 있는 바위 속의 자연동굴, 나뭇잎으로 이루어진 오두막은 수행하기에 더없이 좋다.
서늘한 나무 그늘에서 행복을 증진시키는 쾌적한 모든 것들 틈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수행에서 나오는 온전한 유연성... 모든 존재를 향한 연민...
주체와 객체라는 개념의 사라짐... 평등체험...
개념에 그치지 않는 최상의 지혜... 현상을 오류 없이 깨달음... 진정한 앎...
4. 덮개를 제거하고 복덕 쌓기.
사람의 본성을 순수하게 만들려 애쓰는 것은 숯을 천 년 동안 씻어도
하얗게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쓸모없는 일이다.
그보다는 우리의 선한 본성을 가리는 덮개를 벗겨 내는 것이 요체다.
긴 여행에서 목적지에 확실히 도착하기 위해서는 장애의 소지가 될 만한
것들을 없애고, 여정에 꼭 필요한 것들과 몇 가지 요소만 챙겨야 한다.
붓다의 가르침이 비범한 점은
바로 그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실체로 여기는 것이 꿈처럼 실체가 없다는 것, 이른바 실재라 하는 이것에 본질이 없다는 것,
그 실재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 뇨슐 켄 린포체(1932~1999).
5. 정신적 스승의 마음과 계합하기.
수승(殊勝, 특별히 뛰어남)한 존재를 자주 접하게 되면,
마 안 가 그 분의 품성이 우리에게 스미게 된다.
제3장. 마음수행 실천하기
1. 마음의 본성 깨닫기.
화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은 그 자신의 습관에서 나오는 생각들에 굴복한다.
이렇게 마음은 수많은 개념,즐거움,괴로움에 의해 끝없이 동요한다.
어떻게 되든, 결코 지속적인 행복의 길을 택하지는 못한다.
아아, 마음은 고통 속을 끝없이 헤매는구나!
배척과 소유, 희망과 두려움의
헛된 개념에 지쳐 제 고통을 제가 사고 있구나!
그 뿌리는 이원성에 대한 믿음,
그것 없이는 마음이 아무 것도 쌓아 올리지 못하니.
이렇게 쌓아 올린 것으로부터 불순한 생각들이 생겨난다.
이런 고통의 쓸데없는 짐 덩어리
아무도 내게 억지로 지우지 않았고
나 자신이 내게 지우는 그 짐 덩어리
내려놓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 미팜 린포체(1846~1912).
아무 것도 바꾸지 말고, 사물이 저절로 현전하는 방식에 버릇 들이라.
스스로 빛나는 원초적 지혜가 내면에서 일어나리라.
- 넨각 룽릭 니마(19세기).
마음은 형태도 빛깔도 실체도 없다. 마음의 텅 빈 면모가 이것이다.
마음의 본성을 바로 알아차릴 때, 그것이 이른바 열반, 즉 고통의 피안이다. - 딜고 켄체 린포체(1910~1991).
어느 산등성이 풀밭에서 빠뚤 린포체는 제자 뇨슐 룽톡과 함께
노숙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제자를 불렀다.
"마음의 본성이 무엇인지 네가 여전히 모른다 하지 않았느냐?"
"맞습니다."
"그러나 그건 어렵지 않느니라. 저 아래 절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느냐?"
"예."
"별들이 빛나는 게 보이느냐?"
"예."
"그렇다면, 마음의 본성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그 순간 뇨슐 룽톡은 자기 마음의 본성을 깨달았다.
- 빠뚤 린포체(1808~1887).
2. 은거 수행의 의미 바르게 알기.
은거 수행자들이 은거를 굳이 결정한 것은 마음을 어지럽히는 하찮고 끝없는 일상사 속에서는 자기 마음을 제어할 수 없고, 행복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서 도피한 것이 아니라
좀더 세상을 잘 관조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더 잘 간파하기 위해
세상과 거리를 둔 것이다.
3. 꾸준히 규칙적으로 수행하기
내면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 시간에는 마음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처받은 짐승은 숲속으로 숨어들어 상처를
치유한 다음에 다시 제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다.
우리의 상처는 이기주의,악의,집착, 그 밖의 마음의 독이 초래한 상처들이다.
그대 가진 것에 집착한다면, 깨달은 마음을 우습게 아는 것.
그대 마음이 무엇에든 집착하게 그냥 둔다면, 그대는 견해가 없는 사람.
- 젯쭌 탁빠 걀첸(1147~1216).
"산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존재들을 깨어남이라는 완성으로 인도하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랴!"
- 샵까르.
전념은 모든 미덕의 원천이니...
이것이 내가 진심으로 하는 조언이다.
만약 그대가 방일(放逸)하면,
황무지에 사는 짐승들보다 나을 바가 없으리니...
이것이 내가 진심으로 하는 조언이다. - 리진 최키 닥빠(1595~1659).
만약 그대가 진정으로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기대어서는 안 된다.
- 라씐 남카 직메(1597~1650).
적은 것에 만족할 줄 모른다면,
하나를 가져도 다시 둘을 갖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니 당신 자신의 키를 잘 쥐고,
남이 당신 코에 코뚜레를 꿰고 좌우하도록 믿고 맡기지 말라.
- 두좀 린포체(1904~1987).
4. 정견(正見)과 명상 그리고 행위.
正見,명상,행위는 모든 가르침에 항상 나오는 세 가지 주제로,
불교수행을 규정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이다.
正見이란 실재를 인지하는 방식을 말한다.
분석과 관조에 토대를 둔 正見은 사물에는 견고한 실체가 없는데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그런 실체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게 한다.
모든 것이 상호 의존적이고 무상하며 고유의 실체가 없다.
이런 견해는 특히 마음의 본성을 밝혀 준다.
"正見이란 깨어 있는 의식이 전혀 실체가 없는 空性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 아티샤(982~1054).
마음은 애초부터 태어난 적 없으며
변함없이 空하고 빛난다는 것을...
불변의 하늘에 뜬 구름처럼
행위, 부정적 감정, 선하고 악한 모든 것은
마음에서 생겨나고 마음에 의지한다.
그러나 마음의 본성은 뿌리도 토대도 없다. - 롱첸 랍잠(1308~1363).
세상의 무의미한 삶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고독 속에서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꼭 해 볼 만한 일...
無始이래로 나의 적은
자아에 대한 믿음,
그것이 내 심장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았다.
하여 나를 생사윤회의 끔찍한 감옥에 가두었다. - 셰쳰 걀삽(1871~1926).
그대가 내면의 체험을 증득(證得)하지 못하고
명상에 의해 견해를 완연히 환하게 밝히지 못했다면
철학적 쟁론이나 독서만으로는 거기에 이르지 못하리라.
끊임없이 명상하라.
이것이 내가 진심으로 하는 조언이다. - 리진 최키 닥빠(1595~1659).
스승은 보배의 산
거기서 거룩한 가르침의 원천이 샘솟아 난다.
지칠 줄 모르는 믿음을 갖춘 이들은 거기서 목을 축일 줄 알고
모든 허물에서 해방되리라.
확실히 믿으라! - 목촉빠 린첸 쬔두.
사람이 지혜를 證得했다는 표시는 자신을 제어할 줄 안다는 것이다.
통달하지 못했다면 모두에게 함부로 이야기해 주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몇 년간 은거 수행을 했노라고 자랑하지 말고, 입 다물라.
- 두좀 린포체(1904~1987).
모든 현상의 원천인 자신의 마음을 觀하면 명징한 空性만 보인다.
실재라 여겨질 수 있는 아무런 실체도 없다. - 샵까르(1781~1851).
제4장. 마음수행의 장애 제거하기
1. 허물 찾기.
제자를 깨우는 일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 참스승의 정책은 어떤 상황에서도 확실히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제자가 방향을 잘못 잡거나 스스로의 나약함 속에 매몰되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해주는 소중한 지침이다.
붓다의 모든 가르침은 단 하나의 목표로 수렴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
실제로 마음을 다스리면 자연히 몸과 말도 다스릴 수 있게 되고 그것만으로도 고통을 아주 끝낼 수 있다...
通察智... 비판은 스승과 같다... 지성을 총동원...
남들이 뱉는 말을 일일이 귀담아 듣는다면
해야 할 일이 한도 끝도 없으나,
스스로 결정을 내릴 때는
단호히 계획의 범위를 정할 수 있다. - 빠뚤 린포체(1808~1887).
창조 단계를 장악... 이원론 파괴... 강력한 승리자...
당신 생각만으로도 모든 고통이 산산이 흩어집니다...
땅에 박힌 팻말처럼 단단히 고정된 시선일랑 던져 버려라!
개인적 경험 없이 남을 가르치는 것은
마치 책에서 배워 춤추는 것 같으니
남들이 네 말을 헌신적으로 듣는 듯해도
네 편에서 보면 그건 순전히 속임수.
장광설 그만두어라.
겉만 번지르르해 보이는 그런 말씀일랑. - 빠뚤 린포체.
눈속임하는 거짓 붓다들을 믿지 말라.
허깨비들에게 보호를 구하지 말라.
유치한 중생에게 조언을 청하지 말라.
스승 보기를 마치 붓다 그 분을 보듯이 하라.
- 도둡 뗀뻬 니마(1865~1926).
“그들은 말한다. 고통에서 놓여나고 싶다고.
그런데 보라. 다들 고통을 만나러 달려가는 모습을!
모두가 행복을 갈망하지만 행복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며
행복을 마치 적처럼 파멸시킨다."
- [샨띠데바(685~763)] 중
“물 한 잔에 소금을 조금만 집어넣어도 그 물은 전부 짠물이 된다.
그러나 갠지스강처럼 큰 강에 소금을 조금 집어넣으면
그 맛은 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평소에 쌓은 공덕이 미미한 사람은
아무리 작은 부정적 행위라도 그것을 저지르면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선을 자주 행하는 사람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선행을 많이 하도록 힘써라."
- [깡규르 린포체(1897~1975)] 중
“어떤 갈등이 일어나면 겸손함을 유지하면서
공정한 해결책을 진심으로 찾도록 노력하라.
당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느 편도 들지 않는 당신의 초연한 입장 때문에
공격적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단호한 태도를 취하되, 그렇다고 연민을 놓아 버려서는 안 된다.
만약 당신의 입장을 부각시키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되,
분노나 악의를 품지 말고서 하라."
- [제14대 달라이 라마, 뗀진 갸초] 중
제14대 달라이 라마 뗀진 갸초(1935~ ).
1935년에 태어나서 2살 때 제13대 달라이 라마 툽텐 갸초의 계승자로
인정받았다. 티베트의 포탈라 궁에 살다가 24세 때 중국이 침공해 라싸에서 큰 저항이 일어나자 인도 다람살라에 자리잡았다. 그는 자신의 현실참여를 정의를 위한 싸움이라고 표현한다. 30년 전부터는 과학분야의 전문가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 신경과학 연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수행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