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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휴대폰을 울렸던 전화 한 통, 내용은 사장님이 그만두신다는 소식.
그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올해 4월 울산에서의 일.
지난 2년에 비해 올해는 참 힘들었을 해.
부푼 기대를 안고 시작했던 올 시즌이건만 생각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사임 표명한 최 감독, 야단칠 것>이라며 최순호 감독을 향해 굳은 신뢰를 보냈으나
결국엔 새로운 감독님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야 했다.
그렇게 최순호 감독의 고별전을 마치고 향한 울산 원정.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던 경기였건만 명백한 오심으로 또 한 번 패하고 말았고.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심판 판정에 대해 격분하는 팬을 말리는 모습은 봤지만
당신이 직접 그렇게 노한 모습은 처음이라 스스로도 참 얼떨떨했던 기억.
판정에 대해 항의를 한다고 해도 지나간 결과가 번복될 순 없었고.
그렇게 아쉬움을 달래며 경기장을 떠나려 하는데
한 선수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일어날 생각을 못했고.
그 선수는 바로 오재석.
어쩌면 가장 크게 위로받아야 할, 가장 힘들었을 사장님은
그라운드에 앉아 울고 있던 오재석을 일으켜 세웠고.
이후 서포터즈 나르샤 일부가 믹스트존까지 와서 판정에 대해 항의를 했지만
사장님은 <이러면 우리가 더 힘들어진다>며 이를 말리는 모습이었고.
그리고 이날 저녁, 멀리 울산까지 왔지만
또 한 번의 패배로 풀이 죽은 선수들과 서포터들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를 마련해주셨던 사장님.
식사를 마치고 나와 내게 건넸던 말.
오늘 경기 어떻게 봤어.
오늘도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
될 것 같은데 잘 안 된단 말이야.
이후에도 강원의 성적은 크게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결국 지난주, 임기 만료와 맞물려 사퇴를 택했던 김원동 사장님.
지난 주말에 강릉에서 열린 울산전은 김원동 사장님의 고별전이 됐는데,
경기장에 걸린 걸개들이 눈길을 끌었다.
사장님, 인기가 이렇게나 많으셨어요?
팬들과 격 없이 함께 어울리시며 행동으로써 소통을 보여준 분이라
이렇게 떠나실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이제야 이별이 실감 납니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경기.
최순호 감독 고별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둔 것이
한이 될 만큼 아쉬웠는데 제발 오늘은 이길 수 있길.
시작은 좋았다.
전반전이 끝나기 전, 자크미치의 패스를 받은 이정운이 왼발 슛팅으로 골문을 연 것이다.
골을 넣자마자 이정운을 비롯해 모든 선수들이 어디론가 열심히 뛰었다.
벤치에선 준비한 현수막을 꺼내들며 선수들에게 얼른 오라고 손짓을 했고.
10명의 필드플레이어,
그리고 골키퍼 유현까지 벤치로 뛰어온다.
정말,
한 골이 이렇게 소중하고 감사할 줄이야.
강원의 통산 100호골,
그리고 올시즌 정규리그 다섯 번째 골.
올 시즌 답답할 만큼 빈곤한 득점력을 보여줬던 강원이지만
마지막 경기, 한 골이라도 넣어 얼마나 다행인줄 모른다.
모든 선수들이 참 열심히 뛰었다.
최전방의 정성민부터.
최후방의 오재석까지.
키가 20cm나 차이 나는 김신욱과의 헤딩 경합에서
어떻게든 볼을 따내려고 뛰던 모습은 짠하기까지 했다.
오른쪽 뒤로 보이는 걸개는 울산에서 찍힌 사장님과 오재석의 사진이다.
당시 흘렸던 눈물을 생각하며 이번만큼은 꼭 이기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후반 들어 강원은 울산에 두 골을 내주었고.
결국은 1-2 패.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고.
오늘은 사장님 대신 팀 동료 이상돈이 오재석을 일으켜 세웠건만
그는 다시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상대 팀의 김호곤 감독과 인사를 나누었고
고별전 행사를 위해 그라운드 안으로.
고별 행사 영상이 전광판에 나왔고
배경 음악으로 사용했던 천 일 동안의 노래처럼
사장님과 강원은 천 일 여를 함께, 그것도 참 행복하게 지냈다.
정말이지,
<나는 강원FC다>라는 문구가 그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남자다.
지난 추억이 담긴 영상에
선수들도 침울하긴 마찬가지.
감사패를 수여했고
그리고 선수들과 마지막 인사를.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 그 이상으로 뛰었을 사장님.
그리고 서포터들과의 인사를 위해 N석으로.
나르샤는 준비한 장미꽃을 사장님을 향해 던져주었다.
ⓒ 나르샤 김기연님 사진
나르샤를 향한 사장님의 마지막 말씀.
오늘 여러분에게 제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지금 굉장히 비가 많이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있기에
저는 사랑받으며 돌아갈 수 있습니다.
분명히 여러분에게 약속드립니다!
강원! 꼭 돌아오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우승도 하고! 챔피언스리그도 가고!
전용구장도 지어서 여러분과 함께 춤을 출수 있는
그런 날을 꼭 기다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여러분들 떠나지 말고 꼭 기다려 주십시오.
강원FC 사랑해 주십시오.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팬들과의 인사를 마치고 사장실로 향하던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서포터들 경기장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불러달라고.
그 때 인사 다시 하겠다고.
이렇게 팬들과도 마지막 인사를 마쳤다.
그리고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포항과의 홈 경기 2-0 승리 이후
김원동 사장님과 나눴던 대화를 옮겨 적어본다.
강원이 흥하고, 더 좋은 일이 있을 때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만 잘 버티고 일어나 지금이 있었노라면 그렇게 올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마지막 글에 쓸 수밖에 없다는 게 참 슬프다.
2010시즌, 돌아보면 아쉬운 점이 많을 텐데.
- 지금도 선수들에게 굉장히 미안하다. 경영자로서 책임자로서 선수들에게 제대로 운동할 수 있는 환경 여건을 만들어줬어야 했는데 이놈의 눈은 그치질 않지 그러다 보니 3월 한 달이 다 갔다. 눈이 와서 선수들이 훈련을 못 하고 눈을 치워야하는 구단은 K리그엔 우리밖에 없었고 그 모습을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실내 훈련으로 대체하다 보니 전반전에는 잘 뛰던 선수들이 후반전에는 체력이 떨어져 헉헉거리더라. 그 모습에 정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 어려운 환경, 선수들이 불만 없이 잘 따라줘서 정말 고맙고 이를 넘어 강원이 더 단단해질 수 있으리라 본다.
올해도 봉사활동은 계속 되었다.
ⓒ 나르샤 신장근님 사진.
- 다른 구단에선 <일단 이기기나 하지. 무슨 봉사활동이냐>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이기면 하고 지면 안 하는 게 무슨 봉사인가. 봉사 활동은 보여주기 위한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다.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해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해나가면서 강원만의 색깔로 자리 잡게 하고 싶다.
팬들과의 소통이 인터넷 상에서 화제다.
- 나를 보고 축구 얘기를 하는 사람들, 특히 강원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참 고맙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지고 돌아가는 날에 서포터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그러면 하나같이 하소연이 날아온다. <이 선수는 왜 오늘 경기 못 나왔어요. 이 선수 잘하는데 왜 교체 했어요>. 이런 부분을 같이 얘기해보고 고민해보고, 또 팀 경영에 대한 거라면 내가 답을 해줄 수 있고. 구단 내부 사정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고 대화하는 게 얼마나 좋은가. 이것이 소통의 밑거름이 되고 서로 이해하고 신뢰하면서 우리 함께 좋은 팀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창단 해에 비해 관중이 줄었는데 이에 대한 걱정은 없었는지.
- 그 부분에 대해선 걱정을 해본 적이 전혀 없다. 팬들의 표현이 과격하다 보니 지면 욕도 한다. 하지만 그 자체가 관심이고 욕하면서도 또 경기장을 찾는다. 그런 점에서 강원은 정말 복 받은 구단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선수들과의 미팅에서도 말했다. 경기는 질 수도 있지만 절대 기 싸움에서는 지지 말자고. 그런 모습만 보여주면 팬들이 계속 우리를 찾아주리라 생각한다.
진정으로 꿈꾸는 구단은 무엇인가.
ⓒ 나르샤 김기연님 사진.
- 지방 자치 단체와 구단과의 협력 관계가 돈독해 그것이 일종의 문화로 발전하는 것이다. 프로팀은 지역 연고가 안 되면 살아남을 수가 없기에 진정한 지역의 팀으로 남고 싶다. 또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든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 것이다. 미미하긴 하지만 우리가 그런 형태를 잘 만들어가고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소통이 밑거름되어야 하고 그 결과로서 나중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남고 싶다. 무리한 경영으로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 열을 올리기보다는 조금 늦어도 차근차근히 건강한 경영으로 팬들과 함께하는 구단을 만들고 싶다.
어쩌면 가장 많은 위로가 가장 먼저 필요했을 사람이건만
항상 눈물 흘리는 선수를 먼저 위로했고.
항상 경기장을 찾아와 준 팬을 먼저 위로했다.
이것이 바로 김원동 사장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지금 이 글의 배경음악 제목처럼 그런 사람 또 있겠는가.
그리고 주제넘게 사장직 선임에 관해서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께 몇 마디 하고 싶습니다. 전임 사장만큼 능력 있는 사장님을 데려와 주세요. 강원 팬들, 정말 수준 높은 축구 행정 맛본 분들입니다. 단언컨대 웬만한 사장 갖고는 강원 팬들의 입 맛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팬들을 만만하게 보고 아무나 앉혀놔도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그 끝이 좋지 않을 게 뻔하지 않은가요.
맛있기로 소문난 집에서 요리한 음식을 맛본 사람들이 어떻게 즉석에서 흉내만 낸 음식에 만족할 수 있을까요. 무늬만 그럴법한 게 아닌 속도 알찬 결정 부탁드립니다. 지금 배 안 고픈 사람 없습니다. 아무리 승리에 배고파서 정신이 없어도 마냥 배 채우기에 급급하지 말고 정말 힘을 낼 수 있는 제대로 된 음식을 준비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 잘 유지해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유능한 사장님을 데려와 주세요.
그리고 하나 더. 팬들과 함.께.할.수.있.는 사장님을 데려와 주세요. 노래 가사처럼 팬들이 괴로워할 땐 위로가 되고 서러울 땐 눈물이 되어 줄 수 있는, 허전하고 쓸쓸할 때 벗이 될 수 있는 사장님을 데려와 주세요.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서로 등불이 되어줄 수 있는 사장님을 데려와 주세요.
될 것 같은데 잘 안 된다고 말씀하실 때 <사장님 걱정 마세요. 다 잘 될 거에요> 라고 가벼운 위로 한 마디 못 건넨 게 후회스럽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지난 시간을 외로이 지내시게 한 건 아닌가 싶어 죄송스럽다. 최순호 감독님이 떠났을 때만 해도 김원동 사장님이 남아 계시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라운드 안의 수장과 그라운드 밖의 수장이 모두 자리를 뜨면서 이제 정말 강원FC의 시즌 1이 끝났다는 느낌이 든다.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세요.
그리고 기다릴 테니 꼭 다시 돌아오시고요.
새로이 시작될 시즌 2는 웃을 날이 조금이라도 많아지길.
+ 사진 제공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혹시라도 제가 무단으로 사용한 사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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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읽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날날이 잇겟지요.ㅜ
강원... 정말 멋진팀이네요.. 팬이든 선수든.. 모든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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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네요. 사장님도, 선수들도, 그리고 강원 팬분들도...
아... 정말 멋지네요... 잘읽었습니다..
아...눈물이 나네요. 멋진 강원FC와 팬들 힘내십시오. 아 나... 반하겠네
아 ,, 소름
아 슬퍼 눈물나..........ㅠㅠ
ㅜㅜ..............................................
김원동 사장님 멋진 분이군요. 사람의 앞일은 어찌 변할 지 모릅니다. 부디 미래에 다시 복귀하셔서 강원fc의 영광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도 저렇게 멋진 사장님이 계셨으면 좋겠네요 ㅜㅜ 강원 지금 낙하산이 들어와 있는건가요?
슬퍼서 눈물이 나요...ㅠㅠ
진짜 멋지다....
당일날보다 눈물이 더 납니다ㅜㅜ 이 자료영구보관해야겠어요 꼭 더좋은모습으로다시뵐수있기를...
강원 정말 멋지네요 ㅠ,ㅜ 잘될거에요 !!!
아저씨가 꽃 주는 장면이 아 ㅠㅠ 좋은 분 만나셨던거 같아요. 강원에 꼭 다시 오셨으면 좋겠네요!
좋은 글 잘봤습니다! 김원동 사장님 꼭 다시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기다릴게요♡
아아--님은 갔습니다...그러나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꺼라 믿습니다...몸건강하시고 다시뵐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좋은분 떠나보낸 제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타팀 팬이지만 한글자 한글자 읽으면서 뭉클해졌네요. 예전부터 김원동 사장님 글 올라올 때마다 참 좋은 사장님 두셨구나 했는데.. 말씀하신대로 꼭 돌아오셔서 강원의 중흥기를 이끌지 않을까 싶네요.
꼭~ 다시 돌아오실거라 믿습니다~
사장님을 원정 갔다오다 몇번 만났죠.
밥도 얻어먹고 담배 피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며 사람들과 소통할 줄 알고 팀에 대한 토론도 하시는 멋진 분이셨죠.
정치색을 입히고 보고 싶지 않습니다.
축구에 대한 열정과 강원FC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느꼈죠.
요즘 회자되는 차기 강원FC 사장 후보들이 뛰어넘기는 힘들거라고 생각되네요.
이런 문제로 강원이 싫어질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ㄷㄷ.. 진짜 강원은 성적만 받쳐준다면 멋진 팀인데 ㅠㅠㅠ...
6년뒤 다시 함께 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사장님 고맙습니다...그리고 사랑합니다..
3년간 사장님하고 같이 보낸 순간이 떠오는는 것이.....찹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