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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로는 맨유 팬들 사이에서 '스트레트포드의 제왕'으로 불렸다. 왼쪽이 데니스 로, 오른쪽이 조지 베스트의 사인. |
하지만 1960년대 맨유의 플레이 영상을 들여다보면 베스트의 환상적인 개인기에 이은 크로스와 로의 마무리 골을 여러 번 볼 수 있다. 1962년 당시 잉글랜드 최고 이적료 기록(11만5000 파운드)을 세우며 맨유에 입성한 로는 루니처럼 등번호 8번으로 시작했다. 이후 11번을 거쳐 10번을 달았다.
레알 마드리드와 벤피카를 제압하며 챔피언스리그를 따낼 1968년 당시 로는 치명적인 무릎 부상으로 준결승전과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데이비드 새들러가 그의 10번을 달고 대신 뛰었다. 하지만 맨유 팬들은 유럽 클럽대항전 33경기서 28골을 뽑아낸 그를 10번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우승 주역 중 한 명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맨유 팬들 사이에서 '스트레트포드의 제왕'으로 불리며 1973년 맨유를 떠날 때까지 404경기서 237골을 기록했다. 베스트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면 로는 성격 활발한 장난꾸러기였다. 이들은 1965년과 1967년 리그 우승에 이어 1968년 맨유를 처음으로 유럽 챔피언에 등극시켰다.
네덜란드의 축구영웅 데니스 베르캄프의 아버지는 헤딩 중거리슛 바이시클킥 등 모든 슈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데니스 로의 플레이에 감명받아 아들 이름을 '데니스'(철자는 denis와 dennis로 다르다)로 지었다고 한다.
▲1991년 경질 위기서 퍼거슨을 구한 '스파키' 10번 마크 휴즈
7년간 뛰던 맨유를 떠나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돌던 마크 휴즈는 1988년 5월 맨유로 복귀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간곡한 요청때문이었다. 스코틀랜드 애버딘 감독 시절 퍼거슨은 휴즈를 바르셀로나로 이적시킨 맨유의 결정 소식을 접한 후 혀를 끌끌 찼다고 한다.
맨유 지휘봉을 잡은 퍼거슨은 술독에 빠져있던 팀을 쇄신하기 위해 휴즈를 다시 불러들였다. 당시 퍼거슨은 영국 언론과 팬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고 있을 때였다. 지금은 우승제조기로 불리는 그지만 당시는 아무런 우승컵을 따내지 못하고 있었고 머지 않아 사임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위기의 순간이었다.
1991년 5월 15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드 카윕 스타디움. 맨유는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던 바르셀로나와 유럽축구연맹(UEFA) 컵위너스컵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비가 추적 추적 내리던 그날. 휴즈는 자신이 뛰었던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2골을 뽑아내며 퍼거슨 감독에게 첫 우승컵을 안겼다.
후반 22분 그의 첫 골은 7번의 전설 브라이언 롭슨으로부터 시작됐다. 롭슨의 왼발 프리킥은 스티브 브루스의 머리를 스쳐 골문을 향했고 달려들어오던 휴즈가 왼발로 마무리하며 선제골을 뽑아냈다. 7분 후 휴즈는 전혀 각도가 없던 페널티지역 오른쪽 구석에서 위력적인 오른발 슛으로 바르셀로나 골문을 향해 쐐기를 박았다.
마크 휴즈. 그의 첫 골은 7번의 전설 브라이언 롭슨으로부터 시작됐다. 왼쪽부터 마크 휴즈, 브라이언 롭슨, 리 샤프. |
10번 휴즈와 7번 롭슨 콤비는 찰튼 베스트 로 칸토나 등 다른 맨유의 전설들과 비교해서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어느 콤비들보다도 많은 우승을 합작했다. 프리미어리그 원년이었던 1992-1993시즌 마침내 26년만에 리그 우승을 재탈환했으며 이듬해 2연패를 이어갔다.
1992년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리그컵 결승전서 휴즈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며 우승했고 1994년 첼시와의 FA컵 결승전서 4-0 완승으로 우승을 거뒀다.
▲1999년 트레블의 짜릿함 10번 셰링엄
테디 셰링엄이 맨유에 머문 것은 불과 4시즌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 맨유에 합류했던 1997-1998시즌 14골을 뽑아냈음에도 그는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맨유 팬들은 그의 욕이 담긴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1998-1999시즌 애스턴빌라에서 드와이트 요크가 맨유에 합류하며 그의 입지는 더욱 줄었다. 맨유가 이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할 동안 그는 17경기서 2골에 그쳤다. 우승 메달을 간신히 목에 걸 정도의 활약이었다.
그의 진가는 FA컵 결승전부터 발휘됐다. 뉴캐슬과의 결승전서 그는 전반 11분 선제 결승골을 뽑아내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캄프 누서 열린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0-1로 패색이 짙던 그는 7번의 전설의 후계자 베컴의 오른발 코너킥을 오른발 슛으로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렸다.
이어 같은 위치에서 베컴이 또다시 올린 코너킥을 헤딩으로 솔샤르에게 이어주며 역전골을 어시스트했다. 테디가 활약하던 10번의 추억은 짧지만 가장 짜릿했다. 베컴과 셰링엄은 2000년과 2001년까지 프리미어리그 3연패를 일구는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칸토나와 판 니스텔로이의 그늘
에릭 칸토나와 판 니스텔로이는 맨유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칸토나가 7번의 계보를 이었다면 판 니스텔로이는 '데니스 로의 재림(再臨)'으로 불리며 셰링엄 이후 10번을 물려받았다. 칸토나는 설명이 필요없는 맨유의 전설이며 26년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던 1992-1993시즌 마크 휴즈와 나란히 15골을 뽑아내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롭슨이 은퇴한 1994년 이후 7번을 계승했으며 맨유에 머물던 5시즌동안 수많은 우승컵을 안겼다. 판 니스텔로이는 2006년까지 불과 6년간 150골을 맨유에 선물했다. 7번과 10번의 적통을 이은 이들이지만 이들은 유럽축구연맹전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루니-호날두 '1968년의 기억을 좇아'
유럽 챔피언스리그서 첫 우승했던 1968년은 맨유 창단 90주년이었다. 40년이 흐른 2007-2008시즌. 무언가 진실로 갈구하던 그 순간 7번과 10번의 위력이 발휘된 맨유의 전통을 좇아 루니와 호날두가 뭉쳤다.
이들은 AC 밀란에게 무릎을 꿇으며 아쉽게 놓쳤던 유럽 챔피언 자리를 되찾아올 수 있을까? 루니와 호날두는 지난 시즌 맨유 유니폼을 입은 후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루니는 더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가 바라는 성공은 단지 다른 트로피를 따오는 것만은 아니다. 내 모든 시간동안 모든 트로피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선수들은 우리의 놀라운 역사와 성공을 지키기 위해 해야할 역할들을 잘 알고 있다. 과거 선수들이 그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 방식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이다."
맨유의 10번이었던 판 니스텔로이. 하지만 그는 유럽축구연맹전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
첫댓글 빅팀중 유일하게 트레블 한팀 맨유 ...^^
글로리 맨유~
올시즌 챔스랑,리그 더블 ㄱㄱ
아 공격진.. ㅡㅡ 미들 나니나 안델 중 한명만 덜지르지..
기다려보세요 스미스나가면 공격수영입할것같으니 ^^..
완소 루날도 이번엔 챔스 우승을 이끌어다오~
아...진짜 올해도 못하면 거의 10년째라고...
아 루니야 기대된다
호흡을 마춰줄 공격수.. 맨유 미들진은 빵빵해졌는데.ㅜㅜ
이번에 진짜 기대 기대!!
그럼 8번 루니 달던 사람들은 유니폼 새로 구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