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축 곡차
하지가 지난 한 달 전 유월 하순 우리 지역에 장마가 시작되었다. 올해 장마가 막바지로 칠월 넷째 금요일 아침나절 빗줄기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새 한 달 동안 비가 내리다 그치길 반복하고 있다. 남녘 해안 거제에 호우경보가 두 차례 발령되어 강수량이 많기도 했다. 주말이면 창원으로 건너가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 오후 거제로 복귀하는 쳇바퀴 도는 일상이다.
비가 잦다보니 더위가 찾아올 겨를이 없어 기온이 서늘해 좋다. 빗물에 유충이 씻겨 갔는지 모기는 극성을 부리지 않는다. 대신 내가 머무는 와실은 1층이라선지 곰팡이가 붙으려고 해 난감했다. 마침 그 모습을 살핀 원룸 주인이 자기네 거실에서 쓰던 제습기를 보내주워 일주일 켰더니 실내가 보송보송해졌다. 내가 와실을 비우는 주말엔 주인 양반이 쓰도록 되가져 가십시고 했다.
칠월 넷째 금요일은 정기고사 둘째 날이다. 오전에 고사 감독을 끝내고 오후는 자유로운 시간이다. 고현으로 나가 농협 창구에서 일을 한 가지 봐야했다. 행정실에서 복지 포인트로 얼마간 지역 사랑 상품권을 구매해 영수증을 내라는 재촉을 받고 있다. 연초는 시골이라 단위 농협이나 우체국에서 그 상품권을 팔지 않았다. 대리 구매가 안 된다기에 직접 농협 창구까지 가야겠다.
고현으로 가는 김에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나섰다. 갈 때는 빈 배낭이지만 올 때는 뭔가로 가득 채워 올 작정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곡차다. 연사마을 두 곳 편의점에 곡차를 비치해 두었다만 내 입맛에 들지 않은 부산생탁이었다. 고현의 규모가 큰 마트에 가면 여러 지역에서 제조된 다양한 곡차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혼밥으로 드는 저녁 식사 때 곡차를 한두 병 반주로 곁들인다.
창원에 지낼 때는 국순당에 나온 생탁을 즐겨 들었다. 연사 편의점에는 국순당이 없고 부산생탁 뿐이었다. 연초삼거리로 나가면 여러 종류 곡차를 만날 수 있다. 거제에서 나오는 생탁은 세 종류인데 두 가지가 보였다. 외포에서 나온 ‘얼쑤’ 막걸리와 성포에서 빚은 ‘행운’ 막걸리였다. 값이 조금 더하지만 ‘저구’ 막걸리가 맛이 좋은데 남부면과 동부면 일대에만 보급되어 아쉬웠다.
연사 정류소에서 고현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낯선 거리에서 농협중앙회 고현지부를 찾아 신분증을 제시하고 지역 사랑 상품권을 사고 영수증을 받았다. 그곳 근처 마트에서 곡차를 사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제법 걸어야 되어 버스 정류소 가까이 갔다. 거제는 섬이라 그런지 수협도 규모가 컸다. 수협에서는 금융 사업만이 아닌 유통 판매도 적극적이라 대형 마트를 운영했다.
수협 마트는 버스터미널에서 가까워 내가 고현으로 나가면 종종 들려 시장을 봐왔다. 찌개를 끓일 재료가 될 두부와 애호박이나 풋고추였다. 이제는 수협 마트에 가면 시장 보는 품목이 한 가지 더 늘었다. 각지에서 나오는 곡차를 종류별로 예닐곱 병 구매함이 상례가 되었다. 한두 병으로 한 끼 반주 밖에 안 되어 한꺼번에 여러 병을 사 냉장고에 채워두고 저녁 식사 때 꺼내 비운다.
수협 마트 매장엔 수산물만이 아닌 다양한 농산물과 생필품도 진열되어 있었다. 언젠가는 우럭 활어를 회로 떠 팔기에 사 먹은 적도 있다. 상추는 없어도 초장도 일회용 접시에 포장이 되어 있었다. 수협 매장에 들어 두부를 집고는 곧바로 주류 냉장고로 다가가 곡차를 챙겼다. 지역 브랜드 행운 막걸리도 있었으나 맛이 밋밋해 지평 생막걸리 네 병과 복분자 막걸리 세 병을 골랐다.
지평은 황순원의 ‘소나기’ 마을로 알려진 경기도 양평이다. 양근과 지평이 합쳐지면서 양평이라 불린다. 그 먼 곳에서 제조된 막걸리가 지역 경계를 넘어 이곳까지 퍼졌다. 유통 기한이 스무 날 남짓이라 광복절까지는 변질되지 않는다. 복분자 막걸리는 충북 괴산에서 생산된 살균 탁주라 유통 기한이 일 년이나 되었다. 와실로 돌아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다음 한 주일은 끄떡없다. 20.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