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좋고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부산에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산교구 조영만세례자요한 신부입니다. 독일에서 박형순 신부님과 5년을 살다 몇 년이 지나서야 이렇게 한국 땅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좋고 귀한 만남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좋고 그리운 하느님을 이 주일 만나러 오신 여러분들과 함께 정성껏 미사 봉헌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침묵으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과 만날 마음을 갖추겠습니다.
(강론)
< 예측불가능>
예측불가능한 세상을 삽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누구도 10년 전에 내가 인천 원당동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분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인천에 연고지가 없습니다. 원당동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어느날은 이렇게 원당동 성당에 와서 강론대 앞에 서 있습니다.
아무리 살아도 때로는 산다는 일을 정말 모르겠습니다. 박형순 신부님과도 그렇습니다. 유학이 아니면 우리는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룩에서 그리고 독일의 문스터와 에쎈 그리고 본에서 본당 신부와 유학신부로 만나, 그 때는 우리가 사목을 끝내고 공부를 끝내고 한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귀국한 지 3년. 저는 다시 독일이 그립습니다. 내가 예측했고, 밖에서 최소한 내 조국에 대하여 기대했던 모든 신뢰가, 시간이 갈 수록 이건 아니다 싶은 일상으로 너무 쉽게 장악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가 예측할 수가 없는 세상입니다.
정상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아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다들 분주하고 바쁜 일상을 살면서도 하나같이 죽겠다 아우성입니다. 힘들어 죽겠고, 바빠 죽겠고, 돈 없어 죽겠고, 심지어 요즘은 더워 죽겠습니다. 이건 우리가 기대하지도 또한 예측하지도 않았던 인생입니다.
큰 걸 바라지 않거든요. 바르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접을 받고, 나 좋자고 누구에게도 불평등한 차별을 요구하지 않으며, 좀 천천히. 양심과 도리에 따라 서로를 돕고 배려하며 살면 됩니다. 좀 더 쉽게 웃고, 좀 더 다정하게 말하며, 그럴 수도 있다고 등을 토닥여 줄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어떻게 됩니까? 호구가 됩니다.
영악해야 하고, 눈치봐야 하고, 내 손해가 조금이라도 나는 것에 대해서는 한 발짝도 물러서면 안됩니다. 그래야 내 새끼 먹이고 내 가족 건사하며 입에 풀칠이라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이렇게 지독한 경쟁 속으로 우리 삶을 넣어버리고 나서 도태되면 무능한 걸로,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 나라로.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가서 될 일인가!
그러다보니 신앙생활도 갈수록 그래지는 거지요. 이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그나마 이 한 육신 믿고 내맡길 데라고는 여기 밖에 없으니, 어떻하겠습니까? 비는 거지요. 이 한 육신. 이 한 몸. 이 한 영혼. 그저 큰 사건 사고 없이 그냥 적당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큰 불행 겪지 아니하고 상처와 시련과 눈물 흘리지 아니하고 그렇게 적당히 보살펴주시고 지켜주십사고 빌고 청하는.
그러다보니 사실 무당집에서 비는 것을 성당에서도 빌고, 점쟁이에게 청하는 것을 사제들에게 청하고, 우리의 기도라는 것이. 어쩌면 단 한 번도 나의 일상을 넘어선 적이 없이. 양심을 살고, 도리를 살고. 칼이 목에 들어와도 아닌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떤 여한도 없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신앙인으로서 일어서 본 적 없이. 그저 좋은 게 좋은 거고, 조용한 게 좋은 거고, 질서와 국익과 안보 따위를 복음적 가치와 대치시켜버리니. 어떻습니까? 예측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결국은 인간의 예측 따위를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그런 가공의 가치들이 만들어 놓은 가짜 평화들이 득실거립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대한민국에서 누가 정의를 말하지요? 누가 평화를 말하지요? 누가 선과 평등과 공동체를 말합니까? 그런 말 하면 안됩니다. 빨갱이가 됩니다. 좋은 게 좋은 겁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불면 바람보다 더 빨리 드러누워야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얼마 되지 않는 것조차 빼앗기지 않을꺼라고. 다 그렇게 쫄아들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살이 한 복판에서 듣게 되는 우리 주님의 음성.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49-5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불. 부정한 것들을 태워버리고, 더러운 심사들을 불질러버리며, 갖은 불순물의 것들을 말끔히 태워. 순정의. 순백의 본질로 다시금 되돌려주시는 그 불을 지나치게 영성화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남이 아니라 내 자신이 먼저 타올라야 합니다. 내 안의 안일한 부정과 더러움, 치사함과 영악함을. 오늘 속시원하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불을 지금 내 안에, 차라리 그 불을 일으켜 달라고! 청해야 합니다.
“나는 너를 뱉어버리겠다. 니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버리겠다.”(묵시 3,16) 이 단죄를 받지 않으려면 그렇습니다. 주님 제 안에 당신의 불. 나의 안일함을. 나의 무관심과 나태와 간교함을. 내 이웃이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지 보지를 아니하고, 나와 상관없는 이들의 고통과 눈물과 상처에 대하여, 이제 좀 그만하라고. 너무 쉽게 등 돌리고 돌아선 바로 그 발걸음이 오히려 분열이고 고립이고 불온한 것이었음을. 통탄하고 인정하고 무릅 꿇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분열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옳다고 고집해왔던 것, 단정하고 판단하고 단죄해왔던, 나는 옳고 너는 언제나 틀렸던. 그 모든 거짓의 정의들. 그것들은 분열되어야 합니다. 입만 열면 국민 분열이니 뭐니 결국 지 하고 싶은대로만 하려는 이들이 내세우는 분열 협박에 쫄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그들이 말하는 평화. 엄청난 무기와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이 바벨탑이 우리를 지켜줄 것인양 떠드는 거짓 평화에 대하여, 왜 이러십니까? 우리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옳음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분열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가짜 평화 속에서 적당히 살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못 먹고 못 가지고 못 걸치고 살아도, 옳은 것이 무엇인지, 바른 것이 무엇이고, 하느님께서 우리들 각자 하나하나에게 마련해놓으신 좋은 몫들에 대하여, 절대로 우리는 그것을 놓지 않을 겁니다! 왜냐구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 십자가를 통하여 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의 사람들이고, 하느님은 이런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멘. 원당동 성당의 그리스도인 여러분.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하느님께서 이미 오래전 눈에 넣어두시고, 당신 피로 구원해내신 그분의 자녀들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당당함으로 이 예측할 수 없는 세상. 두렵더라도 강건함을 잃지 않고, 비록 불안하더라도 더 강한 믿음을 지니고, 이 현혹의 세상을 굳건하게 살아가시기를 청합니다.
멀리 부산에서 겨우 밥 빌어 먹는 사제로 살면서도, 그래도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만나, 그래도 내 인생이 하느님 뜻. 단 한 줄은 이렇게 목숨걸고 살아냈습니다!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나보다 더 깊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가 원당동 성당 모든 신자분들의 가정에 풍성히 내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 연중 제20주일 인천교구 원당동성당 교중미사]
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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