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조명 사이로 발을 내딛으면 방금 전 통과했던 부산 시내와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불과 몇 발짝을 사이에 뒀을 뿐인데 시야 안에 전 세계의 모습이 담긴다. 그리스도상이 두 팔로 감싸 안은 세계 3대 미항인 리우항부터 영화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이 연상되는 기암절벽 마을까지. 이들 사이를 관통하는 열차를 따라 쉴 새 없이 초점을 옮기다 보면 하루 만에 세계일주도 가능하다. 부산에 자리 잡은 세계 최대 철도모형 전시관, 디오라마월드에서는 말이다.
다양한 모형기차를 만날 수 있는 디오라마 월드 <사진제공·디오라마월드>
부산의 숨겨진 명소를 찾다
부산, 그중에서도 해운대 센텀시티는 신세계백화점, 홈플러스같은 대형 쇼핑몰을 비롯해 영화의 전당, 벡스코, 부산시립미술관 등 다양한 문화예술센터가 즐비한 미래형 도시다. 모두가 부산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지만 보다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은 KNN 월석아트홀에 꾸려진 디오라마월드로 향한다.
테마별로 전시된 디오라마들
디오라마월드는 한국기록원이 인증한 세계 최대·대한민국 최초 디오라마 전용관이다. 실존하는 교통수단, 자연환경, 건물 등을 일정한 비율로 축소해 특정한 상황을 연출하는 예술분야를 디오라마라고 한다. 간편하게 '축소모형' 정도로만 알아도 큰 무리는 없다. 이곳에서는 그런 디오라마를 무려 27개나 전시하고 있다. 주제도, 스토리텔링도 제각각이라 어느 한 작품도 무심코 지나치기 어렵다. 세계의 랜드 마크 명소와 문화유적을 섬세하게 묘사한 초대형 정원디오라마, 세계 명차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은 오토라마, 부산을 그대로 재현한 부산디오라마 이외에도 브라질 리우, 알프스마을, 진시황 병마총, 나스카라인, 쥐라기월드와 같은 레일로드라인도 있다. 모두 지구상에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는 것들인데, 다양한 삶의 모습을 상상대로 펼쳐내 보는 재미를 더했다. 한 작품씩 자세히 관찰하고 사진도 찍으려면 모두 돌아보는데 넉넉히 1시간 반~2시간 정도 걸린다.
놀이공원을 지나는 기차 <사진제공·디오라마월드>
지식에 상상을 더하다
입장권을 끊고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레일로드라인은 브라질 리우항이다. 코르코바두산 정상에 세워진 그리스도상이 이곳이 우리에게도 친숙한 리우임을 알려준다. 그리스도상 아래로는 한낮의 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수많은 빌딩 사이로 차들이 오가고 케이블카는 산 정상을 향해 운행 중이다. 기차를 타기 위해 역에 나온 사람들도 보인다. 여기서 잠깐! 굵직한 건물 위주로 대강 훑어봤다고 발걸음을 옮겼다간 디오라마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세상을 지나치게 되니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천천히 둘러보자. '디오라마 뜯어보기'를 실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다. 미션은 예컨대 '산허리 전망대에서 해변을 내려다보는 커플을 찾아요', '월척을 기대하는 절벽의 낚시꾼을 찾아요' 라는 식의 주문들이다. 작품 안에서 무언가를 자꾸 찾아내다 보면 손톱만한 사람 하나하나의 존재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왼쪽/오른쪽]해안 절경을 안고 달리는 동해남부선 기차/ 기차를 움직이게 하는 마법의 녹색 버튼 <사진제공·디오라마월드>
좀 더 생동감 있게 디오라마를 감상하고 싶으면 안내판에 붙어 있는 녹색 버튼을 누르면 된다. 해당 테마에 걸맞는 배경음악, 효과음과 함께 기차가 철도를 따라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디오라마월드에 있는 모든 모형 기차는 레일에 흐르는 전기를 동력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심지어 객실에 불까지 들어오는 모델도 있다. 그렇게 마을을 돌고 돌다 3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멈춘다. 모든 디오라마가 각각의 소리를 내며 움직이지만 전시장이 크고 디오라마 사이의 간격이 넓어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세계 7대 불가사의, 각국 랜드마크가 자리한 정원 디오라마 [왼쪽/오른쪽]뉴욕을 대표하는 자유여신상 / 암석의 결과 색깔까지도 원래의 모습과 똑같이 만든 독도 카메라를 달고 정원 디오라마를 누비는 기차
전시장 한가운데는 정원 디오라마가 자리 잡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현장, 파리 에펠탑, 이탈리아 콜로세움, 부산 광안대교 등 각국의 랜드마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든 초대형 디오라마관이다. 인류 문명의 축소판과 같은 이곳을 여권 한 장 없이 자유롭게 오가는 것은 역시나 기차다. 그중 한 대에는 카메라도 달려 있다. 기차가 움직이면 조종석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이 정원 디오라마관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송출된다. 이 시스템을 가장 반기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아이들은 스크린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면 기차를 쫓던 종종걸음도 멈추고 까르르 웃곤 한다. 어른들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며 신기해한다. 지식에 상상을 더한 이 아름다운 세계에서 어른과 아이 모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왼쪽/오른쪽]앙코르와트의 황금기차/ 고장 난 디오라마를 수리하는 직원 <사진제공·디오라마월드>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일반인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이곳의 디오라마는 1인 기업을 운영하는 전준석 씨가 15년 동안 취미로 만든 것들이다. 작품 규모나 섬세한 표현력 면에서 전문가 이상의 기량을 발휘했기에 일반인의 솜씨라고는 쉬이 믿기지 않는다. 특히 앙코르와트를 표현한 디오라마는 완성까지 5년이나 걸린 대작이다. 작품 길이만 5m. 돌 하나하나까지 직접 만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쓰러진 벽돌을 감싼 넝쿨은 실제 나무이며 앙코르와트를 지나는 기차 외관은 순금이다. 어마어마한 시간과 비용이 투자된 셈이다.
2층에 마련된 다용도 휴게 공간 [왼쪽/오른쪽]기차역사관을 둘러보는 사람들 <사진제공. 디오라마월드>/ 부산지하철 1호선 기관실 조종간
2층에는 간단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휴식공간과 기차의 역사를 총망라한 기차역사관이 있다. 기차역사관은 기차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부산지하철 1호선 기관실 조종간을 통째로 전시해 철도 관련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해준다. 2층 외벽을 따라 전시된 각종 모형들은 디오라마월드가 4월 30일까지 진행하는 '2017 종이모형 페스티벌'에 출품한 개인의 작품을 전시한 것이다. 입장할 때 받은 스티커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으니 마음에 드는 작품 밑에 살며시 두고 나오면 된다.
2층 전시관에 설치된 '은하철도999' 포토존. 주제곡이 흘러나와 7080 세대도 흥겹다.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걸음, 이기대 해안산책로
디오라마월드 관람을 마친 후에는 뻐근했던 몸도 풀 겸 하염없이 걸을 수 있는 곳으로 향한다. 차로 2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이기대 해안산책로. 부산의 너른 바다를 한눈에 담으며 산책할 수 있는 멋진 길이다. 정확한 시작 지점을 모르면 '이기대 더뷰'를 검색하면 된다. '이기대 더뷰'로 올라가는 하나뿐인 길목에서 이기대공원 안내도를 만나면 옳게 찾아온 것이다. 앞으로 4km를 내리 걸어야 하니 잠시나마 발목을 풀어준 뒤 출발한다.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은 이기대 산책로 [왼쪽/오른쪽]광안대교 뷰포인트 / 허물지 않고 일부러 남겨 놓은 군사용 해안경계철책
이곳은 본래 군사보호구역이었다가 1993년부터 일반에 출입이 허가됐다. 2005년부터 산책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이기대 해안산책로이자 해파랑길(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부터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초광역 걷기 길) 제1 구간 중 일부로 많은 방문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기대 더뷰'쪽에서 출발하면 동생말과 장바위, 처마바위 등을 지나 오륙도에 이르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흔들리는 구름다리에는 내성이 생기지만 남구 해안의 장쾌한 풍경은 아무리 지나쳐도 처음 만난 듯 반갑고 새롭다. 군사용 해안경계 철책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좁은 길도 오히려 운치를 더한다. 그렇게 풍경 속에 담겨 오륙도에 닿는다 해도 끝이 아니다. 부산의 진가를 느끼게 할 또 다른 걸음의 시작일 뿐.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구름다리
여행정보
- 주소 : 부산 해운대구 우동 1468-1 월석아트홀
- 문의 : 1577-7600
- 주소 : 부산광역시 남구 이기대공원로 68
- 문의 : 이기대공원관리사무소 051-607-6398~9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관광진흥팀 양자영 취재기자
첫댓글 여기가 어딘가요 부산해운대인가
아름답고,소중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